▶사진 왼쪽부터 이우종 안수집사, 김홍숙 권사, 임수택 담임목사, 민경옥·최은희 권사.

갈릴리 장로교회(담임 임수택 목사)는 창립 27주년 기념 주일인 6월1일 낮 예배시간에 임직식을 거행, 안수집사와 권사 4명이 임직했다. 임수택 목사 집례로 진행된 임직식에서 이우종 집사가 안수집사로 장립하고, 김홍숙, 민경옥, 최은희 집사가 권사로 임직했다.
 
이날 임직식에서 유복영 목사가 ‘하나님께 칭찬받는 충성된 종이 되라’고 권면의 말씀을 전했고, 김신기 목사(밀알선교단장)는 축사를 했다. 임직자들은 “주님께 충성하고 교회에 헌신하며 공동체를 위해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 문의: 647-824-8870 >

 
6월15일 문창준 목사 이임·박의환 목사 취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캐나다노회 소속 호산나장로교회(33 Pritchard Ave. Toronto, M6N 1T4)가 6월15일 주일 오후 5시 담임목사 이·취임 감사예배를 드린다. 이번 이취임 예식에는 그동안 담임목사로 시무해온 문창준 목사가 이임하고, 새 담임목사로 박의환 목사가 취임한다. 예배는 KAPC 캐나다노회(노회장 최영철 안디옥교회 담임목사) 주관으로 드린다.
 
이임하는 문창준 목사는 고려대와 부산대대학원 출신으로 TBC와 KBS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미주총신대학원(M.Div)과 International Seminary(D.Min)를 나와 1994년 부산 혜린교회를 개척, 4년간 목회를 했다. 이어 토론토에서 낙원교회를 개척해 1998~2002년 담임목사로 시무한 후 다시 호산나장로교회를 세워 지금까지 12년간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해왔다. 호산나교회는 앞으로 문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할 예정이다.
 
새로 취임하는 박의환 2대 담임목사는 연세대와 고신대 신대원(M.Div)을 졸업하고 북서울교회 강도사로 사역하다 캐나다에 이민, 2005년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빌라델비아장로교회 청년담당, 열린문장로교회 협동목사에 이어 호산나장로교회 교육목사로 사역해왔다. 
호산나교회는 주일예배를 오후 2시에 드리며, 주일학교도 오후 2시에 열린다. 수요일 예배 오후 2시, 토요일 오전 6시30분 새벽기도회가 있다.

< 문의: 416-685-7461 >



[1500자 칼럼] 눈물, 그리고 인공 눈물

● 칼럼 2014. 6. 9. 20:02 Posted by SisaHan
어느 글에 보니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눈물샘이 있어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눈물을 흘리게 되어있는데 그 눈물샘 가운데 남자의 눈물샘이 더 크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울면 남자답지 못하다면서 어른들이 꾸중을 하시는 바람에 옳게 울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함을 당할 때 하나님은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남자가 울 일이 많기 때문에 더 큰 눈물샘을 주시고 울게 하셨는데 울지 못하니 결국 속으로 흘러 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산다는 셈이다. 

오래 전에 한국의 어느 방송국에서는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용은 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씨 조선의 개국 시 아버지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왕도 어떤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 울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했다.
어쨌던 사람은 울어야 한다. 슬프든지 괴롭든지 또는 기쁘든지 자신의 감정을 눈물로 나타낸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타내 보이라고 울음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욱 강조된 눈물은 자신의 죄악이나 허물을 생각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고 그 눈물을 귀하게 여기셨다.

부모님 주일을 지나면서 나는 큰 슬픔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다윗이 다른 지방으로 갔다가 돌아오니 자신이 머무는 성에 아말렉 족속이 침공하여 자신의 가족을 비롯하여 모든 부하들의 가족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저들은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고 했다. 나는 그 본문을 보면서 자녀의 죽음 앞에 울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마음과 함께 그렇게 부모나 자녀의 육신적 죽음 앞에서 슬피 운다면 내 가족의 영혼을 위한 울음으로는 얼마나 울었을까 하는 반문을 던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가실 때 예루살렘 여인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성민들이나 지도자들이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죄악 가운데 살 때 곧 임박한 환난이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대로 죄악 가운데 머물고 있는가 하는 탄식과 함께 여인들과 자식들만 아니라 온 예루살렘 성민이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강권하시는 말씀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눈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울어봤을까?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워서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해 본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그렇게 눈물 흘리며 살지 못하는 것을 본 선지자들은 울음꾼을 불러서라도 울라고 가르쳤다. 오늘의 표현을 빌면 인공 눈물이라도 넣어가면서 울 수 없겠는가?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의 해양 참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대통령만 아니라 목사나 장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그리고 많이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교회의 책임인데. 기독교인의 숫자가 한국 인구의 1/4 이라고 자랑했다면 그것은 기독교회가 한국의 선장이나 마찬가진데 우리도 먼저 달아나고 있지않는가? 무책임하게.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개나 소’, 그 질긴 DNA

● 칼럼 2014. 6. 9. 20:00 Posted by SisaHan
“개나 소나 내는 성명서!”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가 다른 교수들로부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동참할 것을 독려받자 “교통사고에 불과한 일을 가지고 서울대 교수명의의 성명서를 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개나 소나 내는 성명서! 자제해 주기 바랍니다”라며 언급했다는 충격적인 대목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동료교수 한 사람은 “내가 인간인 게 부끄럽다”고 탄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연일 서울의 주요대학을 비롯해 전국의 수많은 대학 교수들, 심지어 해외의 한인교수들 1천5백여명도 시국성명을 내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진상규명과 무능·무책임한 정부의 책임 추궁, 사후 대책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선교사들도 1만5천여명이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교육계 뿐 아니라 문학인 8백명은 “생명과 존엄을 외치는 국민들의 분노를 진압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는 강경 성명을 냈다. 그 치대교수에게는 이들 모두가 희극적인 ‘개나 소들의 짖어 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서울대 치과대학은 수능 최고점수 학생들이 지망하는 곳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수재들이 들어가 공부하는 대학이다. 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동료 대학교수들을 ‘개나 소’로 지칭했으니, 휘하의 가르치는 학생들은 개나 소의 새끼들일 터이요, 아예 그만도 못한 야생 짐승들은 아닐까. 그의 시각과 정신상태가 정말 경이롭다.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라면 그야말로 일류학부의 최고급 학자로 인정받고 선망받는 명예로운 자리다. 비단 명예 뿐만 아니라 재력으로도 월등한 생활이 뒤따른다. 전혀 남부럽지 않게 풍요롭고 윤택한 상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봐야한다. 항상 고급차에 일등석, 화려한 생활인의 안락이 몸에 밴 그에게 진료실에 누워 입을 벌리는 환자들은 자신에게 꼬리치는 강아지나 맘대로 부리는 송아지 쯤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콩나물 출퇴근하는 시민들, 제주도를 가면서 배멀미를 참아가며 밤샘 여행하는 학생들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나 그렇게 산다고. 그렇게 저질인 사람들이 배가 뒤집혀 수백명 죽었다고 뭐가 그리 대수인가. 수시로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들 난리인가, 왜 정부가 책임을 져야하고 성명은 무슨 씨나락 까먹은 소리냔 말이다…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국 보도국장이 내뱉었다는 말과 생각이 어찌 그리 같은지, 서울시장에 출마한 재벌가 아들의 ‘미개인’ 발언도, 눈물로 지새는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망언시리즈 들도, 그 배경을 보면 오십보 백보다. 대한민국의 상류 지배계층 상당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일반 국민들이 짐승같은 존재로 여겨진다는 시각이 드러난 게 아닐까. 근래 입만 벙끗하면 ‘종북’이니 ‘좌파’니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흐름과도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런 류의 시각과 매도는 또 다른 데서 그 연원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개화하고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 발호하던 때,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坦退助)라는 자는 “아시아는 우민과 야만인들의 집합장”이라고 싸잡아 비하했고, 오이 겐타로(大井憲太郞)라는 자는 “조선은 아프리카 나라들과 다름없는 야만국이고 중국은 민족성이 가축이나 마찬가지”라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근린국들은 소나 돼지와 같은 사람들의 나라라고 멸시했다. 또 을사늑약의 숨은 주역인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는 “한국인의 습성은 이리처럼 잔인 혹독한 본성을 아첨과 가식의 양가죽 속에 감추고 있다”고 업수히 묘사하며 일본이 경영해야만 한다고 외쳤다. (필자 1997년 졸저 「일본의 망령, 우익 그 뿌리와 번식」 P181~182)
바로 일본 우익의 원류들이며, 지금도 극우들의 시각이다. 그런데 그들의 시각이 한국의 상류 지배층 한 부류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제에서 해방된 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에 그 연원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분단현실과 반공을 등에 업고 수십년 권력을 지탱해 온 일제잔재들, 그들의 뇌 속에는 선량한 시민과 동족까지 개나 소로 여기는 반인륜·반민족적 DNA가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