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좌절 이겨낸 것 바로,사랑과 기도의 힘”

어머니도 넉달만에 받아들여
친구들 괴물 놀려 자살 시도
사랑하는 가족들 고통 싫어
하나님 알고 체험하면 행복

“사람들은 나를 슈퍼 히어로로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우울한 시기도 보냈다. 나는 여러분과 동일한 평범한 사람인데,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과 기도의 힘 때문”이라며 “한국의 청소년들이 너무 높은 주변의 기대 때문에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길 원한다” 팔 다리가 없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복음적 희망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고 있는 ‘행복 전도사’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한국을 방문,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자신의 인생을 담은 두번째 책 「플라잉」 소개를 위해 한국에 온 부이치치는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강조하고 “한국의 자살률이 낮아지길 원한다”며 “나도 10살 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해 힘들었지만, 부모님이 도와줘 자살까지는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는데 집에 와서까지 놀림을 받는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따돌림과 폭력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를 가정에서부터 심어줘야 한다. 한 사람을 자살에서 구해내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호주 태생인 부이치치는 선천적으로 팔 다리가 없다. 얼굴과 몸통 뿐인 자신의 모습이 괴로워 8세 이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부모의 전폭적인 믿음과 사랑 안에서 점차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호주 로건 그리피스 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목적으로 세워진 ‘LIFE WITHOUT LIMBS(사지 없는 삶)’ 대표로 있다.
 
지난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아·장애인·청소년들을 후원하는 ‘닉 부이치치 재단’을 설립, 전 세계를 돌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2월 가나에 씨와 결혼, 올해 2월 아들 키요시를 얻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감격스러웠지만 안아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부이지치는 “닉 부이치치 한국 재단도 설립해 고아와 장애인, 아이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싶고, 북한의 고아와 아이들을 돕는 사역도 기대하고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북한도 방문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고 “한국 정부나 교육기관이 청년들에게 수학이나 과학뿐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교과목에 넣어 가르치길 원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또 남녀 간 교제에 대해 “배우자가 나타나기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남자들은 순결한 여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데, 먼저는 자신이 순결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때에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 살 때도 행복했던 사람이 결혼해서도 행복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에 대해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이지치는 이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언급, “교회를 그냥 매주 습관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만남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실제 삶 가운데서 체험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세상의 인정과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도전을 주었다.
한편 닉 부이치치는 17일 SBS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도 출연해 자신의 삶을 전했다.
방송에서 부이치치는 “내가 해표지증으로 태어났을 때 간호사들은 울었고, 아버지는 나지막이 신음하셨다. 어머니는 아기가 보고 싶지 않다며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내가 아름답다며 ‘신이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하셨다”고 들려주었다. 해표지증은 1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장애로, 팔과 다리가 없거나 남들보다 짧은 증상이다.
부이지치는 또 “어머니는 나를 받아들이는 데 4개월이나 걸렸다. 부모님은 나 같은 아이가 태어날까 봐 동생을 가지는 걸 두려워했다. 하지만 두 분은 용기를 냈고, 동생들은 모두 팔과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친구들로부터 ‘몬스터’, ‘에일리언’ 등으로 놀림을 받아 자살을 시도했던 사연도 들려줬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학교 화단에 숨기도 했고, 울면서 내 삶에 대해 생각했다. 10살 때 우울증이 생겼는데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차라리 ‘세상을 등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전한 부이지치는 “욕조물 속에 빠져 죽으려고 하던 중, 부모님과 동생들이 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며 “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줄 수 없었다.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내 카나에와 함께한 사진을 공개한 그는 “고난 속에서도 카나에는 나를 사랑해줬고, 나는 카나에가 나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아내의 집에서는 그 어떤 반대도 없었다. 아내가 닉을 정말 사랑한다고 밝히자 장모님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셨다. 장모님은 나와 아내가 결혼해 가족이 되길 기도해왔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아내는 ‘만약 닉처럼 팔 다리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부모님 물음에 ‘괜찮아요 좋은 롤 모델 닉이 있으니까요. 팔 다리가 없는 5명의 아이를 낳아도 닉을 사랑하듯 사랑할 거예요’라고 했다”며 자신도 아들을 팔로 안아줄 수는 없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응원할 것이라고 깊은 사랑을 보였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21일 저녁 서울 세종로 케이티(KT) 본사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원세훈때 ‘NLL 대화록 열람 불가’ 원칙 하룻새 뒤집혀
검찰에 낸 발췌본보다 분량 늘어…의도적 짜깁기 의혹
서상기, 간사 연락 대신 보좌관 통해 1시간전 일방통보

국가정보원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지난해 대선 개입에 이어 두번째다. 검찰 수사에서 정치관여 혐의가 드러나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논의되고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음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정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여전히 진위가 모호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들고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몰랐다’거나 ‘시나리오는 없었다’고 반박하지만, 국정원이 대화록을 여당 쪽에만 무단 공개한 시점 등을 고려하면 국정원이 ‘정보 장사’를 통해 정치개입 2라운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대화록 무단 공개 시점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이 국회 본관 646호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새누리당) 방으로 대화록 원문과 발췌본을 들고 온 시간은 20일 오후 4시께였다. 서 위원장과 새누리당 정보위원 4명만이 1차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1시간 전인 3시7분, 서 위원장은 자신의 보좌관을 통해 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 쪽에 “오후 4시에 대화록을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정보위는 그동안 여야 간사 사이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회의 일정 등을 잡았고, 보좌관을 통하는 사례는 없었다는 게 민주당 쪽 설명이다. 결국 ‘일방 통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다.
정청래 의원 등 야당 정보위원들은 열람을 거부했고, 여당 의원들만 4시5분부터 40분 동안 대화록 발췌본과 원문을 대조해 가며 열람했다. 서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정보위원 5명은 열람 직후인 4시45분께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 포기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무단 열람과 공개가 이뤄진 이날의 오전 상황은 국정원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여야 원내대표는 6월 임시국회 안에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 처리에 노력한다는 합의를 이뤄냈다. 여야가 국정원 개혁에 ‘즉각’ 착수한다는 합의도 함께 나왔다. 궁지에 몰린 남재준 국정원장이,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한 새누리당의 열람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내던져버리고 대화록 무단 공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서상기 위원장은 국정원에 열람을 요청한 시기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서 위원장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열람을 요청하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요청은 국정원이 대화록 원문과 발췌본을 통째로 국회로 들고 오기 불과 하루 전인 19일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지난해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시절부터 줄곧 고수해온 ‘열람 불가’ 원칙이 불과 하루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것이다.

■ 주객이 바뀐 대화 내용
국정원이 가져온 발췌본의 대화 내용도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가 적극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서상기 위원장은 “국정원이 가져온 발췌본은 검찰 수사 당시 제출됐던 것과는 동일본이 아닐 것이다. 확인해봐야겠지만 페이지 수가 더 늘어난 거 같다”고 했다. 엔엘엘 포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된 정문헌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대화록 내용은 당연히 ‘수사 대상에 한정해’ 엔엘엘 관련 내용만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국정원이 새누리당 쪽에 열람시켜준 발췌본 내용이 검찰에 제출한 것과 다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21일 <조선일보> 등이 보도한 대화록 내용이란 것을 보면 북방한계선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고, 오히려 그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미국의 대북 제재나 대미 관련 인식,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대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할 정도라면 그와 관련한 대화 내용이 주가 돼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 뒤 자신들은 물론 현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여론을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직설화법으로 익히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대화록 이곳저곳에 편의대로 잘라내 짜맞춘 뒤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 김남일 기자 >

 

[1500자 칼럼] 졸업 시즌에 갖는 회한

● 칼럼 2013. 6. 22. 17:48 Posted by SisaHan
장대 비 속에서 초여름을 맞는다. 싱그러운 계절과 달리 오가는 행인들의 품새는 다소 느슨해져 보인다.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서서히 이완되는 느낌이랄까. 때문인지 거리의 차량들도 차츰 줄어드는 듯 하고 팍팍하던 생활권이 헐렁해져 옴을 느낀다. 아이들의 찰진 웃음을 싣고 도심을 빠져 나가는 이들은 가족끼리 장거리 여행길에 오르거나, 호숫가 휴양지에서 도약을 꿈꾸다 여름 끝머리쯤 다시 모여들 것이다. 학생들의 학제에 맞춰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신선하면서 부럽기도 하고 때론 시류에 편승 못해 안타깝기도 하다. 이제나 저제나 생업에 발이 묶여 온가족 함께 휴가를 떠나기는커녕 꼭 참가해야 할 중요한 자리마저 나서지 못해 발을 구를 때가 많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이지만 늘 이맘때면 떠오르는 서글픈 기억이 하나 있다.
 
큰아이가 대학 신입생이 되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그의 모교로 부터 졸업식 초대장을 받았다. 구월 어느 날 밤이라는 날짜를 확인하고 나서야 고등학교 졸업식을 건너뛰었다는 생각이 났다. 보통 유월 하순경에 치러지는 졸업식이 몇 달 뒤로 연기된 것도 그렇고 이미 대학생이 되었는데 새삼스레 고교 졸업식을 한다는 것도 의아했다. 어쨌건 온 가족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야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은 게 문제였다. 며칠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데, 전후 사정을 고려한 아이가 혼자 참석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섭섭함 뒤로 장부의 기상이 엿보여 다소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걱정하지 말라’며 당당하게 집을 나섰던 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예식이 생각보다 성대했고 감명 깊게 치러졌다며 대학 졸업식 땐 꼭 함께 하기를 희망했다. 애써 담담한 척하며 경과를 보고하는 녀석을 보며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하지 못했음이 후회되었다.
 
2년 후, 둘째의 졸업식 날이었다. 사정이 여의치 못함은 그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큰 아이의 간곡한 권유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이의 고교 졸업식을 놓치고 싶지않아 혼자서 참석했다. 학부형석에 홀로 앉은 나는 쳐지는 어깨를 애써 세우며 식전의 실내를 돌아보았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치장이며, 1, 2층 넓은 객석에 빼곡히 들어찬 축하객들의 여유로움이 눈에 들어왔다. 형식보다 졸업생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기 위한 분위기가 읽혀져 좋았다. 
잠시 후, 객석의 술렁거림과 함께 백파이프의 선율에 따라 하얀 가운을 걸친 교사들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고 뒤를 이어 청색 물결을 이룬 졸업생들이 자유롭게 들어섰다. 모든 축하객이 열렬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운집한 군중 속에서 용케 어미를 찾아내어 손을 흔드는 녀석, 비단 우리 모자뿐이 아니었으리라.
 
그 날은 신나는 둘째 옆에 쓸쓸한 표정의 큰아이가 내내 어른거렸다. 단상 위에서 졸업장을 받을 때, 우수 학생이 되어 상장을 받을 때, 꽃다발을 안고 폼 나게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지켜 봐 주고, 시시때때 기쁨을 교감할 수 있는 가족의 부재가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그 자리를 경험하기 전에는 큰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어미였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만 유독 이 일은 미성년의 아이에게 빚 진 마음이 되어 떠나질 않는다. 
갓 피어오른 장미꽃 묶음을 기억 저편의 녀석에게 안겨주고 싶은 유월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소셜 픽션’이라는 화두

● 칼럼 2013. 6. 22. 17:42 Posted by SisaHan
이제 너무나 유명해진 세계적 공연기업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의 생미셸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이 서커스단이 오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1980년대 후반 생미셸 지역은 환경적·사회적 문제로 가득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수십년 동안 쓰레기를 매립해 북미 최대의 쓰레기매립장이 되어 있었다. 공기는 매립장에서 나오는 가스로 오염되어 있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지역주민의 40%가 저소득층으로 분류됐다. 
그런데 당시 몬트리올시와 지역주민들은 대담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 지역을 친환경 공원과 문화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쓰레기매립지를 친환경 공원과 문화도시로 변화시키겠다니, 어쩌면 황당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상상력이 이 지역을 밀고 가는 힘이 됐다. 이 상상력 앞에 민간기업인 ‘태양의 서커스’와 캐나다 중앙정부 및 퀘벡·몬트리올 지방정부가 모두 힘을 합쳤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각자 가진 것을 꺼내 기여하며 협업했다.
 
지금 태양의 서커스가 입주한 단지 ‘라 토후’도 이들이 함께 기여해 만들었다. 바로 쓰레기매립장 위에 세워진 곳이다. 이 단지에는 국립서커스학교, 서커스 공연장, 예술가 숙소, 태양의 서커스 본사뿐 아니라 매립 쓰레기를 에너지 등으로 전환하는 재활용센터 등이 함께 입주해 있다. 
성과도 눈부시다. 1997년 이곳에 입주한 태양의 서커스는 날개를 달아 세계로 발돋움하며 성장했다. 몬트리올은 세계 서커스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게 됐고, 이 지역에 관광객과 예술가가 몰려들었다. 쓰레기매립장이던 이곳에 쓰레기로부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환경기술이 접목됐다. 매립장은 차차 거대한 공원으로 변신하고 있다. 
현실적 제약조건을 넘어선 사회적 상상은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는 늘 상상에서 시작된다. 
공상과학소설(사이언스픽션)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알베르 로비다가 1800년대 말에 낸 20세기 예측서들을 보자. 다수 채널을 가진 대형 텔레비전, 24시간 실시간 뉴스 채널, 홈쇼핑, 영상 전화기, 대륙간 항공, 인공 강우, 시험관 아기, 패스트푸드, 국립공원 시스템 등이 그의 책에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먼저 상상력을 발휘한 뒤, 과학기술이 뒤따라가서 현실로 만들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창립자는 지난 4월 스콜월드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상과학소설이 결국 과학을 움직였다. 먼저 상상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소셜픽션(social fiction)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많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 서 있다. 동시에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법을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많다. 지역 풀뿌리 단체도 많아졌고, 지자체도 고민이 깊어졌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도 커졌다. 많은 이들이 사회문제 해결 노력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문제 해결 방법론에만 천착하다 공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미시적 논쟁에 얽매이면 각자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복잡해지며 논의가 멈추기 쉽다.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상상을 공유하지 않으면, 부딪쳤을 때 쉬이 주저앉게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함마드 유누스의 말처럼 소셜픽션을 쓰는 것이다. 함께 쓰면 더 좋겠다. 그 픽션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벽을 허물고 토론하는 데까지 가면 더 좋겠다. 몬트리올에서처럼 말이다. 

< 이원재 - 경제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