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정월 대보름

● 칼럼 2012. 2. 13. 18:04 Posted by SisaHan
싸늘한 바람이 코 끝을 매콤하게 해준다. 겨울 하늘 여기 저기 흩어진 별들 사이 커다란 쟁반 같은 둥근달이 하늘 한복판에서 현현한 빛을 발하고 있다. 아!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든가.
이때가 되면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찧는 모습 보고 싶어 맑은 하늘 점지해달라고 얼마나 기원했었던가. 진정 이 달은 그 시절 내 고향 충남 홍성 땅에서 올려 보았던 그 달과 같은 것인가? 그 때의 보름달은 이렇게 차갑게도, 이토록 정 없이도 안보였는데….
이미 도시는 잠자리에 들어갔을 이 시간.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눈 속 하나 가득히 하얀 달빛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그리곤 정 없는 달이라고 불평했던 나를 이끌고 동화 속의 어린시절 내 고향 땅을 찾아간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 곱게 물들여 다듬어진 명주치마 저고리가 어서 만들어 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어머니의 한 올 한 올 바느질 손끝이 자꾸 더디다 생각되면 밖으로 나가 한바탕 눈싸움을 하고 돌아왔다. 노랑저고리 분홍치마 눈이 부셨다. 어머니는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옷을 입혀보고 옷고름 매는 법을 가르쳐 주며 우리 딸들 참 예쁘기도 해라 하며 머리를 곱게 빗겨주고 댕기도 드리워 주었다. 곱게 차려입은 우리는 설빔자랑하고 싶은 아이들과 어울려 거리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양지바른 선례네 마당엔 이미 널판이 놓여있다. ‘쿵더쿵 쿵더쿵’ 널뛰는 소리에 가슴 설레며 동생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뛰어갔다. 널판 양 끝에 올라 탄 우리는. 땀이 흥건히 날만큼 신나게 널을 뛰었던 것이다. 
열나흘 날 저녁이 돌아왔다. 정초 명절의 축제가 최고조에 다다르게 된다. 동네 머스마들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 속에 떨어진 고무신 조각과 광솔 붙은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철사를 꿰어 단단한 끈을 만들곤 깡통 속에 성냥불을 그어 댕겼다. 이 산마루에서 저 산마루로 뛰어다니며 쥐 불울 놓으며 크고 작은 깡통불은 지금의 불꽃 놀이만큼 화려하고 보기 좋았다. 어른들은 불끈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향해 활을 쏘고 우리들은 신바람이 나서 응원하곤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옆 신작로 길 냇물을 이어주는 다리로 모여들었다. 나도 동갑내기 아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나이수대로 그 긴 다리를 열 번 건너고 나면 다리가 뻐근해 오지만 일 년 내 내 다리 병 앓지 않고 튼튼하게 지낼 수 있다기에 아파도 열심히 달렸다.
 
자정이 훨씬 넘었다. 몽당귀신이 들어와 눈썹을 하얗게 쉬게 할까봐 무서워서 한잠도 못자고 대보름 전야를 꼬박 새웠다. 어머니는 어느새 잣과 부럼(밤 호도 땅콩 은행 등)을 준비해놓고 이른 새벽까지 탐스런 잣 끝에 불을 붙여 그해 운수 점을 치고 부럼을 깨물면 한해의 치통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밤도 은행도 한 옹 큼 쥐어주곤 했다.
오곡(五穀) 밥, 아홉가지 나물로 아침을 먹고 집집마다 떡을 돌리며 열두 집을 찾아 열두 공기 잡곡밥을 얻어먹으며 튼튼한 몸, 잘 크라는 어른들의 이 말에 잘도 뛰어다녔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 날리는 재미였다. 창호지에 온갖 그림을 그려 오빠가 만들어준 연을 하늘 꼭대기까지 날리면 나도 둥실 하늘을 날았다. 지금도 생생히 각인되어있는 어린 시절 설 명절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축제가 세상의 어느 것 보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을 본다. 동리아이들과 신바람 나게 어울려 놀았던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고풍이 되었다. 한국이 놀랄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세계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행복 지수는 178개국에서 102번째라 했다. 행복지수는 경제력과 비례하지 않았다. 실종된 동화속의 유년 시절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찾아주는 길은 없을까?  서양권에서 정월 대보름은 한갓 여느   달과 다름없는 만월(full moon)인지 모르나 이 시절을 공유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영악해진 아이들을 대할 때 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칼럼] 최시중, 그 이후

● 칼럼 2012. 2. 13. 18:03 Posted by SisaHan
자질의 제1순위가 정치적 중립성이라 할 방송통신위원장이 정치권에 거액의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자신의 멘토를 극구 방통위 수장에 임명해 결과적으로 이런 코미디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늘 그렇듯 반성이나 성찰은 없다. 시치미 뚝 떼고 후임자를 임명하면 그만이다. 
중립성과 전문성. 방송과 통신 정책 수장에게 요구되는 핵심 자질이다. 두 조건을 완벽하게 비켜 간 최시중 위원장이 공공의 가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방송의 공영성 강화나 시청권 보장 같은 공적 가치 대신 정치공학이나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만 그득했다. 예컨대 그가 수신료를 6000~7000원(현 2500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운을 떼면서 앞세운 논리는 방송산업의 발전이었다. 시청자 편익 증대가 아니었다. 종합편성채널 광고 늘려주자고 수신료를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문화방송>(MBC)에 제자리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공영방송의 외피를 벗으란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영적 소유구조에 광고로 먹고사는 방송들이 세계 여러 곳에 많음에도 억지를 부렸다. MBC 앞에 자주 붙는 공영이란 말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대신 IP-TV 도입이나 종편 도입과 같은 유료채널 확충엔 적극적이었다.
 
2010년 <에스비에스>(SBS) 월드컵 단독중계나 케이블의 지상파 재전송 대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시청권보다는 사업자 이해가 우선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월드컵을 지상파로 보지 못했다. 케이블 가입자 수백만명이 지난달 <한국방송>(KBS) 2채널을 하루 이상 보지 못했다. 
방송과 통신은 모두를 위한 재화다. 이게 편파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쓰였을 때 공공에 미치는 화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은 가장 먼저 방송사에 분노를 터뜨렸다. 
오죽했으면 언론학자 200여명이 이 정권 초 미디어공공성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었을까? 공공성이 위기에 처했는데 대학에서 학문적 논의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의 소산이다. 
최 위원장이 남긴 상처는 깊다. 2010년 말 종편 4곳을 허가한 최 위원장은 직접 광고영업 혜택까지 줬다. 종편에 준 이 떡이 재앙이 되고 있다. 종편의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위탁이 풀리지 않으면서 미디어 공공성을 지켜낼 방송광고판매제도의 도입이 장기간 늦춰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종편 쪽의 무리한 영업과 SBS의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 체제 이탈 등의 여파로 미디어 다양성의 토대인 작은 매체들 광고가 줄고 있다. 
그가 방통위원장 취임 뒤 바로 벌인 공영방송 사장들 물갈이는 방송뉴스의 공정성 상실과 신뢰도 위기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취재 대신 낙하산 사장과 싸우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최 위원장 후임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올바른 방송철학이나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법 전문가가 후임으로 유력하다는 예상을 보건대 이런 우려는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하다. 
오는 4월 국민의 선택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무너져 내린 미디어 공공성의 가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근본 틀을 다음 국회에서 설계하거나 마련해야 한다. 방통위 체제 개편은 물론 공영방송 사장 선임 방식 개선과 공익적인 방송광고판매제도 마련, 여론 독과점 규제 강화 등 숙제가 수두룩하다. 국민이냐, 특정 업자 편이냐?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해법지가 달라질 것이다.

<강성만 -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채택이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된 뒤 시리아 사태가 더욱 급박하게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정권의 종말이 가깝다는 관측도 나돌고 있지만 참혹한 유혈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저항 격화와 진압 강화라는 악순환 속에 민간인의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런 인도주의적 참상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시리아 사태를 자국의 이해관계로만 접근하는 강대국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무산시킴으로써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시리아 사태가 튀니지나 이집트식의 새로운 민중혁명이 아니라 리비아식 서방 식민주의 부활로 귀결될 가능성을 우려해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 반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방의 개입으로 자국 무기판매 이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중동지역 핵심 교두보인 시리아를 서방 손에 넘기게 될까 우려해 오명조차 감수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아랍연맹 쪽과 연락기구를 만들고 반정부세력 지원 국제연대를 결성하는 등 독자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를 돌아볼 때 서방식 개입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독재 타도와 저항시민 보호라는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한 서방의 리비아 무력개입에 대해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방의 개입을 ‘아랍의 봄’ ‘중동 민주화’에 대한 배신이며, 해방자로 위장한 식민주의 부활 시도라고 비판하는 시각들이 있다. 실제로 서방은 카다피 제거 뒤 결국 카다피 정권에서 노른자위를 차지했다가 서방 개입 때 그들과 손잡은 세력을 권좌에 앉혔다. 그들이 카다피와 다른 점은 오직 친서방파라는 것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퇴행적이고 반인권적인 아랍국가들이 카다피와는 달리 서방의 보호를 받는 이유도 그들이 친서방이기 때문이다.
 
서방이든 반서방이든 대국들의 이런 패권주의 행태가 오늘의 중동분쟁을 낳았고 시리아 사태 해결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사드 정권 만행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국제사회가 더욱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유엔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도력을 발휘해, 러시아와 서방이 타협할 수 있는 새로운 중재안을 마련하고 시리아 민중들을 참상에서 구해야 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출연한 공익재단의 밑그림을 밝혔다. 아이티 기반으로 수평적 나눔을 통해 사회적 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나눔은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시혜성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받은 몫을 다시 돌려주는 수평적인 개념이어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 교육 지원, 세대간 재능 기부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안 원장은 지난해 안철수연구소 지분을 출연하겠다면서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공익재단이 새로운 기부문화로 더 많은 동참과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바란다. 공익재단에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부 자체만으로도 그 무엇보다 충분히 의미있고 값진 일이다. 안 원장은 자신이 말한 대로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인 만큼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이면 될 법하다.
 
웹이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기부자가 수혜자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하고, 수혜자도 기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선택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도 눈에 띈다. 실제로 외국의 키바, 코지스 등은 소셜네트워크 기술을 사회활동에 접목해 100년 이상 활동한 단체 이상의 성과를 낸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안 원장이 재단 설립과 기부로 본인의 역할을 한정하고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진이 재단을 이끌어가도록 하겠다고 한 점도 신선하다. 재단 쪽 계획대로 공익법인으로 시작해 성실공익법인으로 자리매김하면 운용소득의 80% 이상을 직접 공익 목적에 사용하고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보장될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갤럽이 조사한 2010년 세계기부지수를 보면 153개국 중 81위로 경제규모에 비해 무척 낮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각인된 개인 기부자의 이미지는 시장에서 평생 콩나물을 팔아 모은 재산을 내놓는 할머니 같은 분이었다. 재벌총수 등의 사재 출연은 사회적 물의를 빚고 면죄부를 받기 위한 방편에 머물렀고, 거액 기부는 기업의 회삿돈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가진 이들이 새로운 기부문화 조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기부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성숙한 분위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