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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표방 66일, 단일화 진통에 ‘살신’

● COREA 2012. 12. 9. 18: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안철수 출마에서 사퇴까지

안철수 후보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선거일을 딱 3개월 앞두고 시작된 그의 대선행보는 66일째인 23일, 후보 사퇴로 막을 내렸다. 
그의 첫 대선전략은 제3후보였다. 국민들은 그를 야권후보로 봤지만, 안 후보 본인은 새 정치와 정치쇄신을 구호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기존 정당과는 동일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야권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줬다. 그는 단일화에 관한 질문에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고, 국민이 그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논의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런 전략 탓인지 안 후보의 첫 대선행보는 문재인 후보와는 뚜렷하게 달랐다. 출마 선언 이튿날 국립묘지를 찾은 안 후보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3명의 대통령 묘역을 다 참배했다. 문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찾은 것과 비교됐다.
 
안 후보의 출마로 3자구도로 정립되면서 선거판은 요동쳤다. 9월21~22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9.7% 대 44.6%로 5%포인트 차로 이겼다. 두 주 전에는 오히려 박 후보가 안 후보를 6.5%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안 후보는 9월이 지나기 전에 첫번째 벽에 부딪쳤다. 사당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의혹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는 9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정치쇄신을 내세운 안 후보가 두번째 부딪친 걸림돌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정치쇄신안이었다. 그는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수 100명 축소와 국고보조금 축소 등을 야심차게 제시했지만, 이 안은 보수 쪽보다는 오히려 진보진영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100명 수를 명시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를 든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이후였다. 
9월 중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문 후보가 갈수록 지지율이 오른 데 비해 안 후보의 지지율은 조금씩 내려갔다. 그는 10월5~6일 <한겨레> 조사에서 야권후보 지지도에서 38.7%를 얻어 49.8%를 얻은 문 후보에게 뒤졌다. 문 후보와의 경쟁에서 처음으로 역전됐다. 
안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 경쟁에서 관건인 호남 공략에 나섰다. 그는 문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남지역을 방문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그의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특히 호남의 여론이 안 후보에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안 후보는 11월5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야권 단일화를 위한 두 후보 회동을 제의했다. 문 후보가 수용함에 따라 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두 사람이 만나 “후보 등록 전에 단일화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가능한 한 늦추는 듯 보였다. ‘새정치 공동선언’을 끝내고 룰 협상을 하자는 안 후보의 의견에 따라 양쪽 실무진이 공동선언 협의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늦어졌다. 야권 지지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안 후보는 공동선언과 룰 협상을 함께 하자고 제의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일화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협상은 하루 만인 14일 논의가 중단됐다. 민주당 쪽의 발언 등을 문제 삼은 안 후보의 제동 때문이었다. 
닷새의 중단 끝에 두 후보가 18일 만난 뒤 19일부터 다시 룰 협상에 들어갔지만, 시기상 경선 등 여론조사 외에는 어렵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방안을 놓고도 문항 설계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됐다. 문 후보는 지지도나 적합도로 할 것을 제의했지만, 안 후보 쪽은 양자 가상대결을 고수했다. 이런 와중에 21일 단일화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렸다. 안 후보로서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기회였다. 하지만 안 후보는 토론에서도 문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 후보는 23일 오후 후보 등록을 위한 범죄경력증명서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직접 떼는 등 등록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막판에 후보 양보라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 김종철 기자 >


빌라델비아 찬양대회

● 교회소식 2012. 12. 9. 18: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빌라델비아장로교회(담임 김경진 목사)는 25일 주일 예배 후 에스더 전도회(회장 김형미) 주최로 기관별 찬양대회를 열고 찬양
실력을 겨루며 기쁨을 나눴다.
이날 대회에서 야고보전도회(위 사진)와 마르다 및 바울 전도회가 각각 사랑·믿음·소망상을 차지, 쌀 한포씩의 상품을 받았다.

< 문의: 416-444-1716 >


박VS문, 광화문서 시간차 유세

● Hot 뉴스 2012. 12. 9. 15: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주말인 8일 오후 최대 승부처 가운데 한 곳인 서울 한복판 같은 장소에서 시간차를 두고 대규모 유세전을 펼친다. 문 후보 지원에 나선 안철수 전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대학로와 코엑스를 찾아 이틀째 ‘젊은층 표심 잡기’에 나선다.
지난 6일 경기 서남권과 7일 서울 동부권 유세를 마친 박 후보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지역 합동유세’를 열어 사흘째 수도권 공략을 이어간다. 이날 행사에는 새누리당의 서울 48개 지역 국회의원 및 원외당협위원장과 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각종 단체 회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문 후보는 같은 날 오후 5시30분 역시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대첩,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문화 유세’를 벌인다. 문 후보의 광화문 유세에는 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급 인사들과, 심상정 전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 조국 서울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 ‘국민연대’ 인사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이날 광화문 시간차 유세전은 애초 서울광장에서 유세를 벌이기로 했던 박 후보가 7일 밤 유세장소를 갑작스레 광화문 광장으로 옮기며 이뤄졌다. 두 후보의 ‘광화문 유세전’은 지난 6일 오후 안철수 전 후보의 문재인 지지 선언으로 선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상태에서 열리는 첫 주말 유세전이라는 점에서 두 진영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서울광장에서 4시부터 다른 집회가 예정돼 있어 서로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장소를) 옮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광온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새누리당의 유세 장소 변경으로 민주당 유세준비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유세 준비·진행에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안철수 전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인 대학로와 코엑스 등 두 곳을 걸으면서 대학생 및 젊은 직장인들에게 문 후보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1500자 칼럼] 옛날 옛적에

● 칼럼 2012. 12. 4. 21: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첫 손녀를 본 지 어언 일 년이 지났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말 할 수 없는 기쁨아래 곧 할머니가 된다는 황당함도 스멀거렸다. 오십 후반의 첫 손자는 그렇게 이른 편도 아니었건만 초가을 어디쯤으로 착각하고 있던 내 인생의 계절이 갑자기 겨울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삼십 여년 만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던 날, 그 쏴아 했던 감정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고 할머니란 소리가 술술 저절로 나왔다. 정겨운 호칭이 하나 더 주어졌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의 탄생으로 썰렁했던 집안에 훈기가 돌고 메말랐던 감성이 봄비 맞은 들녘처럼 촉촉해졌다. 나날이 달라지는 아이의 재롱으로 활력이 생겼고 팍팍하던 삶에 윤기가 돌았다. 그렇게 나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던 녀석이 지금은 장거리 출타 중이다. 
대구의 친정에 다니러간 며느리에게서 종종 아이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이 온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나 아이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기엔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새로 보내온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 속으로 빠져들다가 신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녀 서현이가 홀 한 가운데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비틀 베틀 걷고 있었다. 젖먹이를 안고 빙 둘러 앉아있던 아이엄마들의 시선이 모두 서현에게 쏠렸다. 어떤 아이엄마는 부러운 듯, ‘저기, 언니 걷는 것 좀 봐.’ 하는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펼쳐진 상황이 상상되지 않아 아들에게 물었더니, 엄마와 함께하는 생후 6~7개월 반, 유아 조기교육실의 전경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한 돌짜리 서현이가 동생들 반에 침입하여 아장걸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된 상황이었다. 동영상을 몇 차례 더 돌려보며 이 기이한 현상을 관찰하다가 머리가 띵 해 옴을 느꼈다. 조기교육 열풍이 젖먹이들에게 까지 뻗쳐있음이 확연해서였다. 무한경쟁시대에 교육이 대세라지만 유아들의 성장발육까지도 교육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게 씁쓸했다. 
한국의 영유아교육의 현주소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대에 맞는 할머니 역할을 하려면 현재 돌아가는 추세는 알아두어야 할 것도 같았다. 한 사이트에서 영유아교육의 적정 시기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육십프로가 넘는 응답자가 생후 6개월부터 12개월 전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또한 교육의 지표는 창의력과 신체발달, 인성에 역점을 두었고 감성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오감을 골고루 자극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하였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모두 바람직한 이론을 바탕한 목표설정이었으나 정형화된 방법이 마음에 걸렸다. 교육의 시기도 태아교육을 생각하면 이르다고 볼 수 없지만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시기를 그렇게 잡는다는 게 의아했다.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속담을 실천시키는 시발점으로 보아야 할 지 아리송하기까지 했다. 꼭 전문교육기관을 거쳐야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엄마들의 사고가 위험스럽고 틀에 박힌 시스템 안에서 얼마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오늘따라 할머니와 함께 한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어머니의 매운 회초리를 피해 할머니 치마 속으로 숨어들던 기억이며 올망졸망한 형제들 입에 박하사탕 하나씩 물려놓고 옛날 옛적에……. 로 시작한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어린 소견에도 참 재미있었다. 충렬왕전, 박 혁거세전, 홍길동전 등등 할머니의 이야기엔 오늘날처럼 인성, 감성, 창의력을 강조하지 않아도 그 속에 모두 녹아있었다. 특별히 오감을 자극 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아도 산으로 들로 뛰고 놀면서 자연히 해결되었던 그 시절을 내 손녀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대를 거스르는 할머니가 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나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되기 위해 이야기 창고부터 불려야겠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 임순숙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