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만의 아시안컵 우승 물거품

유효슈팅 '제로'에 연이은 수비 실수 '와르르'…요르단에 사상 첫 패배

허무하게 끝난 우승 도전…6경기서 10실점 허술한 수비 조직력 노출

 

한국, 아시안컵 결승 진출 실패

6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

 

클린스만호가 요르단에 충격패하며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을 멈췄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7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완패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면서도 1956년 제1회 대회와 1960년 제2회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뒤로는 한 번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뮌헨) 등 유럽 빅리거들이 공수에 포진해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까지 받아 우승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으나 64년 만의 우승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희비교차

요르단 무사 알타마리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한 대표팀 선수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에서 10골이나 내줄 정도로 수비 조직력에 문제를 보였다.

한국은 준우승한 2015년 호주 대회와 8강까지 간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를 합쳐 모두 4골을 내줬는데 이번 대회에서 그 두 배를 넘는 실점을 기록했다.

클린스만호는 지난해 9월 웨일스와 평가전부터 이어온 무패 행진을 12경기(8승 4무)에서 마감했다.

한국(23위)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요르단(87위)보다 64계단이나 위에 있다.

아울러 요르단과 상대 전적에서 3승 3무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날 사상 첫 패배를 당했다.

 

전방부터 압박하는 한국

 한국 김태환, 이강인, 이재성이 전방에서 마흐무드 알마르디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요르단과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역전당했다가 겨우 상대 자책골로 2-2 무승부를 만들더니, 이날은 지난 졸전을 '반변교사'로 삼지 못하고 완패하고 말았다.

특히 두 실점 장면 모두 한국 선수의 실수에서 비롯된 점이 뼈아프다.

이번 대회 최대 돌풍의 주인공이 된 요르단은 다음날 열리는 이란-카타르 경기 승자와 오는 11일 오전 0시 결승전을 치른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한국이 탈락하면서 이번 대회 우승 경쟁은 중동 팀들 간의 대결로 압축됐다.

 

VAR 판독 기다리는 손흥민

손흥민이 페널티킥 관련 주심의 VAR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클린스만호는 손흥민이 최전방에 서고 황희찬(울버햄프턴), 이강인이 좌우 공격을 맡는 삼각편대를 가동했다.

황인범(즈베즈다)과 이재성(마인츠), 박용우(알아인)가 중원에 포진했다.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김민재(뮌헨) 대신 김영권과 정승현(이상 울산)이 중앙수비를 맡았다.

좌우 측면 수비는 설영우(울산)와 김태환(전북)이 책임졌고 골키퍼 장갑은 조현우(울산)가 꼈다.

한국은 슈팅 수에서 7대 17로 요르단에 밀렸다. 특히 유효슈팅은 하나도(요르단 7개) 시도하지 못했다.

한국은 전반 18분 누라 알라와브데가 역습 상황에서 시도한 슈팅, 전반 42분 발재간이 좋은 야잔 알나이마트가 수비진을 제치고 골지역 정면까지 들어가 왼발로 때린 슈팅을 모두 조현우의 선방으로 막아냈다.

한국은 전반 32분 황인범의 크로스에 이은 이재성이 헤더가 오른쪽 골대를 맞은 게 득점에 가까웠던 유일한 장면이었다.

 

누구 슛?

시저스킥을 시도하는 이강인 뒤로 이재성이 헤더를 시도하고 있다. 

 

앞서 전반 29분에는 설영우가 야잔 알아랍의 파울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내는가 싶었으나 주심은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알아랍의 파울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중계 화면으로는 오히려 설영우가 알아랍의 발을 밟은 것으로 보였다.

결국 선제골은 요르단의 차지였다. 요르단의 에이스 무사 알타마리와 가장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던 알나이마트가 첫 골을 합작했다.

후반 8분 부정확한 박용우의 백 패스를 탈취한 알타마리가 침투 패스를 찔러주자 알나이마트가 조현우를 넘기는 오른발 칩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선제골에 더욱 기세를 올린 요르단은 지속해서 한국 진영을 몰아치더니 후반 21분 추가골까지 넣었다.

 

항의하는 이강인

이강인이 요르단 페널티 박스에서 모하마드 아부 하쉬쉬의 태클에 넘어진 뒤 심판이 파울을 불지 않자 항의하고 있다. 

 

이번에도 한국이 실수를 범해 실점의 빌미를 내줬다.

센터서클 부근에서 황인범이 어설프가 공을 소유하다 빼앗겼고, 이를 가로챈 알타마리가 50여m를 홀로 드리블하더니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은 후반 43분 문전으로 돌파해 들어간 조규성(미트윌란)이 바라 마리의 발에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내는가 싶었으나 심판은 오히려 조규성의 시뮬레이션 파울을 선언하며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 안홍석 기자 >

‘준연동형 + 준위성정당’ 결단... “칼 든 상대에 방패라도 들어야”

민주당 “정권심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통합형 비례정당 추진”

 

준연동형 유지하되 ‘통합형 비례정당’ 을 추진
위성정당 논란 의식 네차례 사과 ·고육책 강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들머리에서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며 오는 4월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다른 야당과 공동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며 “위성정당에 준하는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5·18 민주묘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한 걸음 진척된 소중한 성취”라며 이렇게 말했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듯했던 이 대표는 전날까지만 해도 ‘권역별 병립형’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를 뒤집고 현행 유지를 택했다. 그러면서 “깨어 행동하는 국민들께서 ‘멋지게 이기는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1월28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2016년 20대 총선까지 적용했던 병립형 비례제 회귀에 무게를 실었던 자신의 발언을 ‘대국민 호소’로 바꾼 것이다. 이로써 이 대표는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준연동형제를 유지하겠다고 한 지난 대선 때부터의 ‘약속’은 지키게 됐다.

이와 함께 이 대표는 “정권 심판과 역사의 전진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준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며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구축해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이끌어내겠다. 민주개혁 세력의 맏형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야당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다수 야당이 참여하는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공동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 들머리에서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뒤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다만, 이 대표는 ‘통합형 비례정당’이 “준위성정당”이라는 점을 사과하며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이 국민의힘 탓이라는 것이다. 통합형 비례정당을 포함해 ‘위성정당 금지 실패’를 두고 이날 네차례 사과한 이 대표는 “거대 양당 한쪽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패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다른 쪽도 대응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국민의힘이 △위성정당 금지 △권역별 병립형을 도입하는 대신 지역구와 이중등록 허용 △소수정당 30% 할당 또는 권역별 최소 정당득표율 3%에 1석 우선 배정 방안 등 민주당이 내놓은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 임재우 - 강재구 기자 >

 

이재명, 병립형 심사숙고 끝 준연동형 결단…‘선거제 퇴행’ 압박에 방향 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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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로 결론을 내린 것은 명분을 지켜야 한다는 당 안팎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강하게 시사했다. 당이 전 당원 투표를 통해 선거제 향방을 정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도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유력한 방안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도부가 지난 2일, 선거제 관련 결정을 이 대표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다고 한 뒤 이 대표는 이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2∼3일 전쯤 사실상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결정에는 80여명에 달하는 당내 의원들과 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 시민사회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이탄희 의원은 ‘(병립형 회귀라는) 선거제 퇴행을 막아달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평산마을 자택을 예방한 이 대표에게 “민주당과 우호적인 제3의 세력들까지도 힘을 모아서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치를 바꾸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에 힘을 실었다.

이 대표로서는 지난 대선 때 “다당제를 위한 선거개혁, 비례대표제 강화는 평생의 꿈”이라고 한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것도 부담이 됐을 것 같다. 한 초선 의원은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를 못 얻으면 총선과 그 후에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해도 병립형 비례대표제보다 큰 손해가 없을 것이라는 실리적 판단도 작용했다. 이 대표는 “예측된 결과도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기에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 고한솔 - 이우연 기자 >

이미 뇌물공여죄 처벌 받았는데… ‘불법승계 아니다’는 법원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등  “범죄 증명 없다” 모두 무죄로

                기소 3년5개월 만에…법원 “검찰 입증 부족하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이 회장 승계 및 지배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삼성물산과 주주에게도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 회장의 합병 관련 뇌물 공여 혐의와 두 회사 합병의 불법성은 별개 사안이라고도 밝혔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재판장 박정제)는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2020년 9월1일 이 회장을 기소한지 3년5개월 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17일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2015년 이 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그룹을 승계받도록 하기 위한 계획안 ‘프로젝트 지(G)’에 따라, 이 회장이 최대주주(23.2%)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불공정하게 흡수·합병했다고 봤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게, 삼성물산(이 회장 지분 0%)의 주식은 낮게 평가됐는데, 이를 위해 삼성이 주가조작, 분식회계, 거짓공시 등 부정거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라는 점을 단정할 수 없다”며 “기업 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효율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선 “삼성그룹의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6년 불법 승계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는 “뇌물을 줘 처벌을 받았지만 정작 그 뇌물의 목적은 없었다가 되는 셈”이라며 “선행 판결들을 두고도 무죄 판단한 법원의 행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그룹은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경영 판단이 매우 중요한데 다행히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이재호- 홍대선 기자 >

 

[사설] 납득하기 어려운 이재용 ‘불법 승계’ 전부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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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불법 승계 의혹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공정 합병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삼성물산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20년 기소됐다. 하지만 3년5개월의 재판 끝에 나온 결과는 공소사실 전부에 대한 무죄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이날 선고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지배력 강화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합병의 목적과 그 과정에서 시세 조종, 불법 로비, 회계 사기 등이 있었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1심 재판부의 판단은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국정농단 사건 판결에 비춰 의문이 든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각 회사의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번 재판부는 “두 그룹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와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고 봤다. 또 이 회장은 승계 작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는데, 이번 판결에 따르면 뇌물까지 써가며 진행한 승계 작업에 불법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게 된다. 모든 게 합법적이었다면 굳이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며 권력자에게 뇌물을 건넬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결론이다.

검찰이 주된 증거로 삼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프로젝트 지(G)’ 문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미전실 자금 파트에서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종합 검토한 보고서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재벌 총수의 승계 계획을 담고 있는 문건이 단지 검토 보고서일 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이번 판결은 검찰의 역량과 의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던진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불기소’ 권고에도 기소를 강행하며 자신감을 비친 바 있다. 하지만 비록 1심 재판이기는 하나 수많은 공소사실 중 단 한가지도 입증하지 못한 꼴이 됐다. 압수수색 절차상 위법으로 다수의 증거가 배척되기도 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사이 검찰을 떠났다. 검찰이 수사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상급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된다면 검찰은 실패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대법 판단과 달리 “합병 목적, 승계 단정 어렵다”…1심 법원, 이재용 무죄 이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이뤄졌다는 검찰의 수사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행위를 두고 ‘이 회장을 위한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이라고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다른 판단이다. ‘위법한 합병이 아님에도 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과 함께 청탁을 했어야 하는지’ 등 여러 의문이 남는다.

검찰의 공소 사실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룹 승계 계획안인 ‘프로젝트 지(G)’에 따라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비율(제일모직 1주 대 삼성물산 3주 비율)로 합병하고 △합병이 계획대로 이뤄지도록 허위 정보를 흘려 두 회사의 가치를 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는 게 골자다.

이런 기소 사실에 대해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박정제)는 “두 그룹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와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승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앞서 2019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뇌물공여 사건에서 이 회장에게 유죄를 판결하며, 두 회사의 합병을 각 회사의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재판부의 판단이 대법원 판단을 부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대법원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고 판결했다. 검찰 역시 이 회장을 재판에 넘길 당시 이 판결 내용을 공소장에 담았다.

이날 재판부는 ‘승계 작업은 있었지만 승계 작업 자체가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며, 합병 과정에 위법은 없었기에 무죄’라는 논리를 구성했다. 재판부는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미래전략실 임직원이 합병을 추진·검토하고 태스크포스(TF)가 밀접하게 협의, 업무를 조정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며 승계 작업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면서도 “선행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가 위법·부당하다거나,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 방법을 사용했거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법은 없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선행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 승계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서, 이 회장 등의 구체적 범죄 사실이었던 합병 관련 중요 정보 은폐 및 거짓 정보 유포,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세 조종 등은 줄줄이 무죄 결론으로 이어졌다.

한편, 이날 검찰의 핵심 증거들을 재판부가 “위법 수집증거”라고 판단한 것 역시 무죄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자료는 검찰이 2019년 5월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증거들로, 당시 검찰은 인천 송도 로직스 공장의 바닥을 뜯어내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압수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은닉한 전자정보가 임의제출된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전자정보 탐색·복제·출력 과정을 거치고 혐의 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 복제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검찰은 임의 복제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위법하고, 위법한 증거에 기반한 진술 증거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역시 전자정보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검찰이 증거 수집 절차를 어겨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 이재호 기자 >

재판 개입이나 판사 사찰 등 주요 혐의는 모두 무죄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법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하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재판 개입이나 판사 사찰 등 주요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문제 소지가 있다고 본 일부 혐의에 대해서도 ‘법이 금지한 행위지만 사법행정을 위한 정당행위’, ‘부적절하지만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님’ 등의 논리로 죄가 없다고 봤다.

10차례 재판 관여 인정…하지만 ‘죄 아니다’ ‘실체 없다’

임 전 차장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형사처벌에 이르지 못했지만 명시적으로 인정된 재판개입(재판관여행위)은 모두 10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판결 이유 수정 요청 △홍일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형사사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인의 형사사건, 서기호 전 통진당 의원 행정소송 등 재판부에 요구사항을 전달한 행위 등이다.

이미 앞선 재판에서 ‘재판개입’이라고 인정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3건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2건 △비위 법관이 연루된 형사사건 선고 연기를 요청한 행위도 포함된다. 이런 행위를 처벌하지 못한 이유는 오직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서 남용할 수 없다’는 법리뿐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죄는 구성요건이 추상적이라 법원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권한이 없어 무죄’라는 법리는 직권남용죄 존재 의의를 날려버리는 행위고 법원은 직권남용죄의 사각지대에 두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선 재판에서 ‘재판거래’의 사실관계가 드러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사건도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과 관련해 청와대-외교부-김앤장법률사무소(일본 기업 쪽 대리)와 협의 채널을 가동한 사실은 이미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인정된 바 있다. 하지만 임 전 차장 재판부는 김앤장 변호사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임 전 차장이 김앤장에 외교부와의 협의 내용을 알려준 사실 자체를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임 전 차장이 김앤장 요청으로 한일 청구권협정 해석에 관한 헌법재판소 내부 자료 유출을 지시한 혐의는 유죄 판단을 받았다.

 ‘사법부를 위하여’…법 금지 행위도 위법성 조각

‘법 금지 행위’이지만 ‘사법부를 위한 일’이라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일종의 조직보위론도 등장했다. 임 전 차장은 비위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법관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영장판사에 제공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직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영장판사 등에 전달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금지한 ‘누설’에 해당한다”면서도 “사법신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정당한 목적”이 있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이 ‘정운호 게이트’ 연루 판사의 구속영장청구서를 일선 법원에서 받아본 일도 사법행정업무로 둔갑했다. “직무상 비밀 엄수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들”끼리 “업무상 필요”로 자료를 공유했을 뿐, “수사정보 유출과 수사방해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라는 것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행정권자가 재판부와 재판자료로 소통하기 시작하면 재판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제 사실상 검찰은 법원 내부 인사에 대해 수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법원의 판단은 다른 국가기관에서 벌어진 공무상비밀누설 사건과 견주어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서 가해자 영장 정보를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에 유출한 국방부 군무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때 재판부는 ‘수사 방해가 초래되지 않았다’는 피고인 주장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죄는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비밀 누설로 위협받는 국가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제 수사기능에 장애가 초래됐는지와 무관하게 죄가 성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비위가 드러난 법관이 스스로 퇴직할 때까지 감사 등 조처를 미룬 행위도 ‘사법부를 위한 일’이 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비위법관에 대한 감사 등의 추가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로도 기소했는데 법원은 “법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비위법관에 대한 비리혐의 조사 등의 가치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합리적 재량의 범위 내의 행위”로 판단했다.

헌법상 권리 침해했는데 ‘예규 지키기 위해’ 면죄부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한 ‘판사 사찰’ 역시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에 비판적 의견을 낸 법관의 사찰을 지시한 행위를 “적절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형사처벌 사유에 해당하는 위법성을 띤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방안을 검토한 행위도 무죄였다. 앞선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는 이를 ‘법관의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인정했는데, 이번 재판부는 ‘중복가입금지 예규’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상 기본권 침해 문제가 관료주의적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유죄가 인정된 임 전 차장의 10개의 혐의도 하나하나 ‘사법부 독립’을 해친 중대한 범죄행위였지만, 법원은 ‘사법농단’이 허울뿐인 사건이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재판부는 양형이유에서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가 투입된 수사가 이뤄지는 동안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법원이 앞장서서 ‘사법농단’ 사태의 중대성을 축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논평을 통해 “1심 법원이 성립을 인정한 (임 전 차장의) 범죄행위는 결코 가벼운 행위라고 할 수 없다”며 “이번 1심 판단은 ‘사법농단’의 의미를 축소하고 제 식구에게 관대한 양형을 정했다고 자인한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 이지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