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푸틴’ 행보를 해온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미국 뉴욕 카네기홀 연주에 제동이 걸리면서 독일에 머물고 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긴급 대타’로 투입됐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25일(현지시각) 저녁 세계 최정상급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와 갑작스러운 협연을 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25~27일 빈필을 이끌고 연주할 계획이었으나, 카네기홀은 공연 하루 전날 이를 전격 취소했다. 빈필과 협연하기로 예정돼 있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공연도 함께 취소됐다. 게르기예프와 마추예프 모두 푸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게르기예프의 공연을 앞두고 트위터에 ‘#CancelGergiev’(게르기예프를 취소하라)가 퍼지는 등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카네기홀은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며 지휘자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야닉 네제 세갱으로 교체한다고 24일 밝혔다. 그러면서도 협연 피아니스트를 누구로 교체할지는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카네기홀은 공연 당일인 25일에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은 이번 공연에서 빈필과 함께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이번 연주를 위해 독일 베를린에 머물던 조성진이 긴급히 나서준 데 대해 카네기홀과 빈필이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한겨레> 자료사진
게르기예프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푸틴을 지지해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하자 러시아 문화예술계 인사 19명과 함께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99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마추예프도 이 서명에 함께했다. 게르기예프는 푸틴이 세번째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방송에서 지지 연설을 했다. 앞서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도 공공연하게 푸틴을 지지했다.
게르기예프에 대한 음악계의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시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예정된 라스칼라 극장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게르기예프에게 통보했다. 게르기예프가 수석지휘자로 있는 독일 뮌헨 필하모닉도 그에게 명확한 의견 표명을 요구했다. 침묵하면 해고하겠다는 통보나 마찬가지다.
반면, 체코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체코 필하모닉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입주한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걸었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멜니코프는 미국의 한 공연에 앞서 “러시아 출신이라는 데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한 이들에게 화가 난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와 슈만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한국에서도 몇차례 공연했다. 임석규 기자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푸틴 오른쪽)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국가 지도자를 직접 제재하는 것은 아주 드문 초강경 대응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재무부는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은 민주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침공을 감행한 직접 책임자”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미국의 직접 제재를 당한 국가 지도자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각한 경제, 외교적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우방들과 단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면 추가 제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 국영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백악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 펀드는 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국부 펀드다.
미국 외교관계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드워드 피시맨 선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는 대체로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우크라이나에 강한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영국도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에 대해 직접 제재를 가했다. 유럽연합 회원국 외무 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2차 제재를 승인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 외에 러시아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에 대한 제재 방안도 통과시켰다. 이번 조처로 러시아 국영 금융 기관 등 전체 금융계의 70% 정도가 유럽연합 금융 시장을 접근할 수 없게 된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에 대한 항공기 부품과 반도체 수출도 금지된다.
영국 정부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의 영국 내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재벌 기업 소속 항공기의 영국 영공 진입을 금지시켰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앞서 영국은 러시아 은행 브이티비(VTB)와 군수 업체 로스텍의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국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영국 진입을 금지시킨 바 있다. 캐나다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되면, 러시아의 국제 금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에너지 수출 등 무역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해, 지금까지는 이 제재안이 배제되어 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의 제재가 “그들의 전적인 무기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는 영국의 아에로플로트 항공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이날 영국 항공기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를 금지시켰다. 신기섭 기자
푸틴 “다른 선택지 없었다”…젤렌스키 “새 ‘철의 장막’ 내려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자국 입장 호소
프랑스 · 인도 등 “군사작전 중단, 대화로 해결” 외교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관련해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외교전’도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앞장서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자국 주요 기업인들과 한 면담에서 “러시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없는 안보 위협이 가해졌다”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군사작전)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4일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듣는 것은 미사일 폭발, 전투 소리뿐만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철의 장막’이 내려지는 소리”라며 “우크라이나에 이 장막이 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유럽을 동유럽 사회주의와 서유럽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눴던 사상적·물리적 경계를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세계 정치지도자들에게 “자유 세계를 이끄는 당신들이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내일 당신들이 이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호소했다.
주변국들은 더 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이어갔지만,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결심이 워낙 확고해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 뒤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자, 해결사를 자처하며 이 문제의 외교적 해법 찾기에 나서왔다.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인도 총리실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모디 총리가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당사자가 외교적 협상과 대화의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심해 노력해 달라”며 “폭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도 24일 푸틴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외교를 통한 군사적 충돌을 막기 바란다”고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묘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중국은 일관해서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복잡하고 특수한 경위가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반드시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유럽 안보 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잇따라 비난하며, 제재를 쏟아낸 미국 등 서구 국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셈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밝히며 “이번 침공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한 국제질서와 관련된 문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사태 타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길윤형 기자
우크라 개전 이틀 만에 중-러 정상회담…중국 “교섭 통해 해결해야”
푸틴 대통령 “우크라와 고위급 담판 원해”
시진핑 주석 “교섭 통한 문제 해결 지지”
앞서 러 외교장관은 전제조건으로 ‘항복’ 요구
푸틴 ‘조건 없는 대화’ 의사인지는 불분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신화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화 회담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회담을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전제조건’이 없는 진지한 대화 의사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보도자료를 내어 두 나라 정상이 이날 오후에 전화 회담을 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특수군 작전의 상황과 위치를 설명”한 뒤 그동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의 합리적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오랫동안 무시해 왔고, 약속을 거듭해 뒤집어 왔다”는 지론을 다시 밝혔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담판을 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냉전의 정신을 버리고 모든 국가들이 정당한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중시하고 존중해 교섭을 통해 균형잡히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의 안전보장체제를 형성해야 한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모든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고 유엔(UN)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한다는 중국의 기본적 입장은 일관돼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상의 불만에 대해선 이해하지만, 전쟁을 금지한 유엔 헌장을 무시해가며 전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러시아의 방식엔 중국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에 대항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협력국인 중국이 사실상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에둘러 밝히고, 교섭을 요구함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됐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진지하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고위급 담판’을 할 의사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자료가 공개되기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무기를 내려 놓는다면 키예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 것이어서, 중국 외교부가 전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길윤형 기자
푸틴 멈춰세울 ‘카드’가 없다…경제 제재 효과도 미지수
미국 · 유럽 “우크라에 병력 투입 안 해”
“우크라 넘어 나토 회원 공격하면 대응”
경제제재 꺼냈지만 시간 걸리고 푸틴 못 멈춰
젤렌스키 “우리는 홀로 남겨져 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기갑부대가 수도 키예프의 30㎞까지 육박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돌려세울 카드가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서방은 예고했던 경제·금융 제재만 잇따라 쏟아낼 뿐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오히려 분명히 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들여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충돌에 관여하지 않고 있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려고 유럽에 가는 게 아니고, 우리의 나토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날도 독일에 미군 7000명을 추가로 파병하는 등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증강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유럽의 나토 동맹들이 러시아에 공격당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이미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로 이동시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 회원국들에까지 진격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 경우 “나토 헌장 제5조”를 들어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조항은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안에는 나토 병력이 없고, 앞으로도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 무력 개입에 선을 긋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라는 점이지만, 러시아와 전면적 대결을 꺼리는 유럽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도 걸려있다.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의 전쟁에 개입하는 데 대한 반대 여론도 높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서방이 직접 충돌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경우 “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은 옛 소련 영토로 러시아가 훤하게 파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대를 투입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해온 것은 무기 공급 등 간접적 지원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도 약속했다.
서방은 강력한 응징 카드로 경제·금융 제재를 내세우지만, 이걸로 푸틴 대통령을 당장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미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 모두 인정한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즉각적 효과”가 나고 있다면서도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정말로 느껴질 것이다. 제재가 지속되면 고통이 커지면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계 군사력 22위인 우크라이나는 2위 러시아를 사실상 혼자서 맞서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전 둘째날인 25일 화상연설에서 “우리는 홀로 남겨져 나라를 지키고 있다. 누가 우리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러시아군의 25일 새벽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둘러 보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4일 개전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갑부대는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육박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후 러시아군의 의도에 대해 개전 초 키예프를 신속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제거)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리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서구 정보·군사 당국자들도 러시아군이 키예프에 압도적인 전력을 쏟아 부어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데 동의한다.
벌써, 침공 12시간만에 러시아군 공수특전 병력과 공격용 헬기는 수도 키예프의 25~30㎞ 안에 접근해서 북서 외곽에 자리한 공항을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키예프 서부의 고스토멜과 안토노프 공항을 놓고 공방전을 벌여 재탈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예프를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새벽 키예프에 러시아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여러 발이 떨어져 굉음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서방의 한 정보 당국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러시아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효율적인 불도저 같은 우위를 같고 있다”며 “핵심 변수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전투를 벌여서 푸틴에게 코피를 흘리게 하느냐이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며칠 내 전쟁의 운명을 가를 변수는 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서 진행될 시가전의 양상이다. 미국 등 서구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키예프를 뭉개 버리기보다는 질식시키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즉, 키예프를 포위한 뒤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의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뒤 시가전을 시도하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꺾일 수 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에 노출돼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24일 전경. 키예프/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 러시아군이 일방적 우세를 보일 것임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예측보다 훨씬 빨리 전황이 기운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 격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외부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꼽힌다. 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취약성’이다.
우크라이나를 거대한 시계로 보면, 러시아는 10시 방향에서 12시를 지나 7시 방향까지 세 방면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벤 베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연구원(전 영국 육군 준장)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우크라이나의 이런 지형적 취약성에 대해 “방어자에게 매우 어려운 입지”라고 말했다. 잭 워틀링 영국 왕립연합연구소 연구원도 우크라이나는 다방면에서 위협받아서 그 전력이 아주 “옅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군 전력은 19만명에 달하나, 우크라이나의 전체 정규군 병력은 12만5천명이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을 선포한 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군부대에 미사일 공격과 공습을 가한 뒤 3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북쪽에선 벨라루스 접경, 동쪽에선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 경계, 남쪽으로는 2014년에 강제 합병한 크림 지역을 넘어서 침공했다. 침공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의 첫 방어선은 러시아 군의 정밀 미사일 공격으로 폭격 당했다.
핵심 전선은 북쪽 국경에서 수도 키예프까지 불과 100㎞ 떨어진 북쪽 전선이다. 벨라루스에서 국경을 넘어 침공한 러시아군은 전투기, 공수 특전부대, 헬기를 동원해 키예프 인근 주요 공항들을 공략하고 있다. 목적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이다. 서구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가 키예프를 며칠 내로 점령하려고 “압도적인 전력”을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은 “주요 인구 중심지들을 점령하려는 의도가 확실하다”며 특히 키예프의 정부를 ‘참수’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벽면이 너덜너덜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주민이 절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 공격을 받치기 위해 동부와 남부에서도 동시에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을 포위하려 시도하는 중으로 보인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은 돈바스 내전 때문에 동부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동시 공격을 벌여 이 전력의 발을 잡아두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재 가장 치열한 전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중심 도시인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양상을 결정한 또다른 요소는 제공권이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지상과 흑해 함대에서 100여발의 미사일이 발사돼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러시아의 Kh-31P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의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공격했다. 또, 러시아 공군의 전투기 75대가 발진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공군기지, 대규모 병력 주둔지를 공격했다. 유럽의 한 서방 정보 관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지금 효과적으로 제거됐다”며 “그들은 더 이상 비행하거나 자신들을 보호할 공군력이 없다. 본질적으로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가르게 될 마지막 변수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부 배후지로 전략적 후퇴를 한 뒤 항전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군 주력은 러시아의 포위를 피해 서구와 가까운 서부로 이동한 뒤 러시아의 진공을 저지하며 새 전선을 확보해야 한다. 마이클 코프먼 미 해군분석센터(CNA) 연구원은 “러시아군의 진공에 우리는 놀라서는 안 된다”며 “문제는 우크라이나 군이 저지선을 확보하느냐”라고 지적했다.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뒤 게릴라전을 막으려면 약 6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도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하다.
마티유 블레그 영국 채텀하우스의 유라시아프로그램 연구원은 앞으로 “2~4일 동안 상황을 판단하면서 진공, 정지, 탈환이 반복되는 진격-중단 작전이 될 것이다”며 “그 다음은 러시아 군의 사망자가 어느 정도이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전쟁은 최대한 전면적인 접근이나, 단순히 돈바스를 확보하려는 기만전략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친러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이 있는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리정권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인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수렁에 빠질 것인가? 향후 며칠이 고비이다. 정의길 기자
러시아, 우크라 침공 3일째…오늘 ‘키예프 대공세’ 할 듯
러시아군, 키예프 북·서부 진입 시도
인근 50㎞까지 근접해 치열한 교전
동부·남부 지역 주요 도시서도 전투
유엔, “난민 최대 400만명” 예상
두쪽, 정전 협상 나설 의지 밝혀
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피난에 나선 가족이 아이를 열차에 태우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3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밤(현지시각) 사이에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의 총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키예프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군은 키예프 북부와 서부 인근에서 이날도 치열한 교전을 계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오늘밤은 어제보다 더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수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밤 적들이 거칠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방어를 무너뜨리려 시도할 것”이라며 “오늘밤 (키예프를) 몰아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는 이날 내내 키예프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러시아는 키예프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인근의 호스토멜(고스토멜) 비행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는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40~80㎞ 떨어진 두 곳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 군이 키예프 북부와 서부에서 수도 인근 50㎞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키예프 외곽에는 러시아 전차, 보병, 공수부대원들이 침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파괴 공작원들은 이미 키예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키예프가 조만간 함락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키예프 시내 정부 기관 주변에서는 무장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시 북부에 있는 발전소 인근에서 3∼5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며 “긴급대응팀이 출동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현지 방송은 발전소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가까워짐에 따라 시내 모든 다리를 보호하고 특별 통제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키예프 북동부 도시 체르니히우와 남부 해안 도시 멜리토폴에서도 교전이 거센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동부 국경 지대의 하르키우 인근 공항에서도 폭발음과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유엔 관리들은 적어도 10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이 피란에 나선 것으로 보이며 피란민은 최대 400만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근 해상에서 선박 두 척이 이날 포격을 당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경유를 운반하던 몰도바 국적 ‘밀레니얼 스피릿’과 오데사 항구에서 곡물을 선적하던 파나마 국적 ‘나무라 퀸’이 포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밀레니얼 스피릿’에는 러시아 국적 승조원 10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2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무라 퀸’의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는 앞서 정전 협상을 위해 대표단을 벨라루스 민스크로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우크라니아 대통령 대변인도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기자
폴란드 · 헝가리 국경으로 몰리는 피란 행렬…“이건 시작일 뿐”
우크라 피난민들 탄 버스·기차 폴란드 도착
400여명은 걸어서 헝가리 국경 넘어
러시아에선 반전 시위…1600명 이상 체포
24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프셰미실의 기차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야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프셰미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각) 한적한 폴란드 남동부 마을인 메디카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이 마을에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백명이 버스와 미니 밴을 타고 도착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피란민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었으며, 버스 운전기사 한 명은 “혼란 그 자체다. 모든 버스가 꽉 찼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이건 시작일뿐이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고도 말했다.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 상당수는 폴란드와 거리가 64㎞ 남짓에 불과해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꼽혔던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온 이들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26살 이바나 카르피네츠는 “폭발음에 일어났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뛰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폴란드 남동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에 도착한 정기 열차에서도 1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내렸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출발한 이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쟁을 피해 왔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500㎞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피란민 행렬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보고, 국경에 임시 대기 시설 8곳 그리고 부상자 수송 특별 열차를 마련했다. 폴란드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우크라이나인 100만여명이 이미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추가로 100만명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2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4일 헝가리 국경 도시 자호니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에 도착한 첫번째 우크라이나인 피란민 중 한명은 아에프페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도망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다. 아내가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게 하고 싶지 않다”며 징집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헝가리 <엠티아이>(MTI) 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인 400여명이 걸어서 헝가리로 들어왔다고도 전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33살 우크라이나 의사는 동료 2명과 함께 헝가리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돌아갈 것”이며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615㎞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에도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5300여명이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러시아 침공 뒤 우크라이나인 10만명이 이미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고 수천여명은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 16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오브이디(OVD)-인포’가 밝혔다. 조기원 기자
25일 중앙선관위가 주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두번째 토론회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인사를 나눈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20일 야권 단일화 제안을 철회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5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이미 다 결렬됐다고 선언했다”며 냉랭하게 반응했다. 반면 단일화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저희도 노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풀어가려는 의지를 보였다.
안 후보는 이날 서울 마포구 <에스비에스>(SBS) 상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권력 구조 개편 관련 시간 총량제 토론 시간에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에게 “안 후보와 국민의힘 간 단일화 얘기가 있었는데, 양당 단일화가 아직 열려 있는 것이냐”며 질문을 받고 “이미 다 결렬됐다고 선언했다”고 잘라 말했다.
심 후보가 몇초간 답변을 이어가길 기다렸지만, 안 후보는 다른 이야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심 후보는 이어 윤 후보를 향해 “더 추진될 가능성이 없느냐”고 물었고, 윤 후보는 “저희도 노력하고 있다”는 말뿐 추가적 입장을 내진 않았다. 안 후보와 윤 후보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끼어들어 “선거에서 꼭 단일화를 해서 우격다짐으로 눌러 앉힌 다음에 조건을 걸어 같이 한다는 것은 저는 안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라며 안 후보 편을 들었다. 이어 “결선투표제가 그걸 보장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가치와 공감하는 세력들끼리 통합 정부를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안 후보의) 국민통합 내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안 후보가 전날 민주당이 내놓은 정치개혁안에 동참해줄 것을 은근하게 요청했다. 안 후보는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진 않은 채, 윤 후보를 향해 “제가 윤 후보께 제안했던 것은 경선하자는 말씀을 드렸었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이 없으시면 이미 끝난 일”이라며 “분명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안 후보는 이보다 앞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윤 후보를 향해 “저나 윤 후보가 당선된다면 180석 거대 야당의 여소야대 정국이 된다”면서 “여기에 극복할 복안이 있으시냐”고 질문을 던졌다.
윤 후보가 이에 대해 “과거 김대중 정부 때도 79석으로 집권해 거대 야당을 상대했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통령이든 의회든 헌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며 “헌법 가치에 대해 모두가 진정성 있게 공유한다면 얼마든지 협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서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안 후보는 윤 후보가 정치 신인이라는 점을 겨냥한 듯 “국회의원 경험이 없으셔서 우려 목소리를 지금 대신해드리면 헌법 정신은 좋다. 그런데 실제로 국회 현장에서 서로 일어나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는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민통합 내각을 주장했다”면서 “여든 야든 또는 정치권에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외부 전문가들까지도 다 기용하면 국민 신망을 받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는 180석 야당이라도 반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주장했다. 또 거듭 윤 후보를 향해 “헌법 정신에 따라서 이것을 하자는 것은 이상적이고 실제론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윤 후보는 “저도 대통령의 초법적 권한을 만드는 민정수석실을 없애겠다고 말씀드렸다. 청와대 기능을 대폭 축소해 민관합동위원회 위주로 어젠다를 발굴하고 관리 점검 방식으로 가겠다고 했다. 당연히 전문가와 진영에 관계없이 유능한 분들도 통합 정부를 꾸려서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김미나 기자
투표용지 인쇄 코앞…이번 주말 단일화 협상 분수령
지지율 초박빙 상황에 당내 위기감
26일 윤석열 수도권-안철수 서울 유세로 동선 겹칠 가능성
단일화 2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투표용지 인쇄일(28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단일화 논의를 위한 만남을 직접 제안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지율 초박빙 상황에 대한 당내 위기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야권 단일화 협상을 놓고 안 후보에게 만남을 제안할 시점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한겨레>에 “윤 후보의 의지도 상당하고, 주위에서 계속 조언 중이다. 중앙선관위 주관 2차 토론회를 끝내고 이번 주말에 안 후보와 직접 만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주위에 물밑 접촉 대신 직접 단일화 문제를 챙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후보의 유세 동선이 겹치는 오는 26일에 두 후보가 만날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윤 후보는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 안 후보는 서울 유세를 계획하고 있다. 이후 윤 후보는 27일에 열정열차를 타고 경북 지역 유세에 나선다. 선대본부 관계자는 “필요하면 일부 유세 일정을 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안 후보를 만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단일화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투표용지 인쇄일인 28일 전까지 단일화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이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지율도 출렁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나’를 물은 결과(표본 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38% 윤 후보 37%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이 후보가 지난주와 견줘 4%포인트 상승한 반면, 윤 후보는 4%포인트 하락했다. 갑작스런 지지율 하락세에 단일화에 대한 당내 절박함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안 후보에게 연이은 러브콜을 보낸 데 이어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에게도 정책연대를 제안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단일화 결렬이 지지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음이 급하다”며 “윤 후보도 절실한 상황이라 단일화 협상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전직 지역위원장 40여명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단일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조건 없이 절대 다수 국민이 원하는 정권심판과 정권교체를 위해 안 후보가 통 큰 단일화의 대의에 나서 줄 것”을 주문했다.
국민의당은 두 후보의 공감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분위기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두 후보 사이의 접촉이 우선”이라며 “단일화가 진행되기 위해선 윤 후보가 더 자세를 낮추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핵심관계자도 “안 후보는 명분과 진정성을 기반으로 정치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후보간의 직접 대화가 진작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