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공석 상태였던 주한미국대사에 필립 골드버그 주콜롬비아 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한-미 관계에 밝은 여러 외교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세밑세초에 골드버그 대사를 새 주한대사 후보로 정해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을 요청했다. ‘아그레망’은 ‘동의’를 뜻하는 프랑스 말로, 대사 파견국 정부가 주재국 정부에 부임 동의를 문의하는 외교 절차다. 미국 백악관은 최근 “주한 미국대사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직업 외교관을 선정하고 있다. 지금 최종 단계에 있으며 조만간 지명자가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0일 뉴스레터로 전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현재 (주한 대사) 내정자가 우리 정부에 통보된 상태”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새 주한미국 대사 지명 사실을 발표하면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부임하게 된다. 다만 상원 인준 절차에 여러 달이 걸리는 탓에 새 대사가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부임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해 1월 전임 해리 해리스가 떠난 뒤 1년 간 공석이었다.
골드버그 대사 내정자는 미국 직업 외교관 중 최고위 등급인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로 경험이 풍부한 전문 외교관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끝낸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을 이끌어내 ‘분쟁 해결 전문가’로 이름이 높은 고 리처드 홀브룩 밑에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의 산파인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외교’를 배웠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이행조정관(2009년 6월~2010년 6월)으로 동북아·한반도 관련 일을 한 적이 있다. 그위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담당 차관보(2010∼2013년)를 지냈고, 전 주한 미국대사이자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성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 앞서 주필리핀 미국대사(2013~2016년)로도 일했다.
한편 주일 미국대사 자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이던 2019년 7월 윌리엄 해거티 당시 대사가 상원 의원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후 공석 2년6개월만인 지난 1월23일 람 이매뉴얼(62) 대사가 부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공식 지명을 받은 지 약 4개월 만인 지난달 18일 상원 인준을 받은 이매뉴얼 대사는 하원 의원 출신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2009~2010)을 거쳐 2011∼2019년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2차례 시장을 지냈다. 이제훈 이완 기자
26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30년간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 마저 일부 극우단체들이 짓밟고 있다.
극우 성향 단체들의 집회 방해 행위로부터 수요시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 이후에도 경찰 대응이 달라진 게 없다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경찰에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은 면담 대신 정의연에 “인권의 권고 사항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 하고 있다.
26일 강경란 정의연 연대운동국장은 <한겨레>에 “인권위 권고 직후 진행된 지난 19일 수요시위에서 경찰의 대응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20일 서울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에게 각각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 권고와 관련해 면담을 요청했으나 사실상 ‘만나지 않겠다’는 답변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종로경찰서는 ‘개별 민원이 많지만 다 들어주지는 않는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고, (우리와 면담하면)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 서장 면담을 사실상 거절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정의연을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인권위에 자유연대 등 극우 성향의 단체들이 소녀상 인근 장소에 집회 신고를 선점하는 등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긴급구제조치를 해달라고 진정했다. 수요시위는 원래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열리지만,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뒤 극우 성향 단체들이 2020년 5월부터 소녀상 앞에 집회 신고를 미리 하고 수요시위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7일 인권위는 경찰에 “수요집회 반대 단체에 집회 시간과 장소를 달리할 것을 적극 권유하라”고 권고했다.
26일 서울경찰청은 정의연의 면담 요청에 대해 서면으로 “국가인권위의 긴급구제 권고를 존중하여, 이행계획 등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조정래 종로경찰서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권위 권고 사항을 검토 중으로 추후 (정의연에) 서면 답변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극우 성향 단체의 집회 장소 선점으로 다음달 23일부터 수요시위는 소녀상과 더 떨어진 곳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요시위가 진행되는 장소도 극우 단체가 미리 신고했기 때문이다. 류지형 정의연 기억교육국 팀장은 “극우 단체들이 소녀상 주변으로 집회 신고를 대부분 미리 해놓은 상황이다. 우리도 대책 마련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요양병원을 불법 개설해 요양급여를 타간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25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밖으로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요양병원 개설 등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76)씨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던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모두 뒤집히면서 최종 판단은 대법원 손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 이름 일부를 따서 요양병원 이름을 짓고, 최씨 큰사위가 병원 행정원장으로 재직한 사실 등 1심에서 유죄 근거가 됐던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그렇더라도 병원 개설·운영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단만 달리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때문에 원칙적으로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원심 판단이 적절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2심 판단이 극명하게 갈린 가운데 항소심 재판장과 최씨 변호인 중 한 명이 대학 동문이면서 사법연수원 동기, 같은 법원에서 내리 5년을 함께 근무했던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예규 등은 이럴 경우 재판장이 사건을 회피하도록 하고 있지만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검찰 역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 사건은 지난해 8월 항소심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1심부터 사건을 맡았던 손경식 변호사가 주로 담당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가 최씨의 보석를 허가한 직후인 지난해 9월24일, 최씨 쪽은 판사 출신인 유남근 변호사 등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 2명을 추가 선임했다. 이들은 선임 뒤 주도적으로 변호인 의견서와 변론요지서, 증거자료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유남근(53) 변호사는 재판장인 서울고법 윤강열(56) 부장판사와 고려대 법대 동문이다. 30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1992년부터 2년간 함께 공부했다. 두 사람은 2012~13년 수원지법에서 함께 근무했다. 2014년 2월 정기인사 때 함께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리를 옮겨 2017년 2월까지 3년 더 근무했다. 유 변호사는 2020년 변호사가 됐다.
대학부터 사법연수원, 수원지법·서울중앙지법 등 두 사람 인연이 최소 7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조계에서는 공정성 시비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윤 부장판사가 이 사건을 회피하거나 법원이 재배당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은 2016년 재판부와 변호인이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으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고교 동문 △대학(원) 동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시기 재판부 또는 같은 업무부서 근무 △기타 업무상 연고나 지연·학연 등이 있는 경우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역시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재판장이 개인적인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으며, 법원 역시 이 경우 재배당을 하도록 했다. 형사소송법도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법관 역시 이런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6년 국정농단 관련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차은택씨 사건은 재판장과 변호인 중 한명이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로, 2019년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은 재판장과 변호인이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각각 재배당된 바 있다.
게다가 윤강열 부장판사는 윤석열 후보와도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국민 주목도가 높은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배당 논의를 하든 회피 신청을 하든 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어야 한다. 재판부가 사실에 입각한 재판을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외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사법부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시각에서 공정한 재판을 했다고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해당 변호인이 선임되기 전 이미 공판준비기일과 1회 공판기일을 진행한 상태였다. 기일을 한 차례 진행한 뒤에는 재배당을 하지 않는 것이 내부 지침이다. 기일이 진행된 뒤 연고 관계를 이유로 재배당을 하게 되면, 일부 변호인들이 재배당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재배당 또는 회피 신청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수사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공소유지를 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항소심 재판 진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유남근 변호사는 정작 취재진이 몰린 선고일 당일에는 법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손현수 기자
[한겨레 사설] ‘재판부 회피’ 원칙 안 지킨 윤석열 후보 장모 2심 재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여원을 편취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5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최씨 이름 일부를 따서 요양병원 이름을 짓고 최씨의 큰사위가 병원 행정원장으로 재직한 사실 등 1심에서 유죄 근거가 됐던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고도 “그렇더라도 병원 개설·운영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단만 달리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관계는 그대로인데 재판부 판단에 따라 1·2심 판결이 정반대로 갈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심 재판장과 최씨 변호인 사이에 상당한 학연 및 업무상 연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관계가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한 흠결이 아닐 수 없다.
2심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5부 윤강열 부장판사는 최씨 변호인 중 한명인 유남근 변호사와 고려대 법대 동문에 사법연수원 동기다. 더욱이 판사 출신인 유 변호사와 윤 부장판사는 2012~13년 수원지법, 2014~1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가량 함께 근무한 사이다. 최씨 변호는 지난해 8월 2심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1심에 이어 손경식 변호사가 주로 맡았는데, 2심 재판부가 최씨의 보석을 허가한 직후인 지난해 9월 유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됐다. 또 윤강열 부장판사는 윤석열 후보와도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이런 경우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법관 스스로 재판에서 손을 떼는 ‘회피’나 검찰·피고인이 법관 교체를 요구하는 ‘기피’ 제도가 마련돼 있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법관 역시 이런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서울고법은 2016년 재판부와 변호인이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으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고교 동문, 대학(원) 동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시기 재판부 또는 같은 업무 부서 근무 등 구체적 기준까지 만들었다. 실제로 변호인이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재판부가 바뀐 사례들이 있다.
최씨 재판장인 윤강열 부장판사와 변호인인 유남근 변호사의 관계는 법원이 정한 회피 기준에 여러 건 해당되는데도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재판부 스스로 회피하지 않았고, 검찰도 기피 신청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사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공소 유지를 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이번처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정치적 파장이 큰 재판이라면 평소보다 철저하게 회피·기피 원칙을 적용했어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1·2심 판단이 극명히 달라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어야 했다. ‘재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공정하게 보여야만 한다’는 오랜 법 원칙에 비춰 이번 재판은 되돌아볼 대목이 적지 않다.
“뭉개고 봐주고”…김학의 수사 9년 ‘별장 성폭행’ 단죄 없었다
2013년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뒤 검찰 두차례 무혐의 결론
경찰 내부 “수사방해·봐주기” 비판…27일 고법 파기환송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수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 판결로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파기환송심 판단이 27일 나온다. 2013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가 ‘별장 성폭행’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형사 처벌 절차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검찰의 노골적인 뭉개기·봐주기 수사로 그를 둘러싼 의혹의 진상 규명과 단죄는 사실상 실패로 일단락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는 27일 오후 2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김 전 차관의 혐의는 크게 3가지다.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1억3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 △2006∼2007년에는 강원도 원주 별장과 오피스텔 등에서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혐의 △2003∼2011년 사업가 최아무개씨에게 4900여만원을 받은 혐의 등이다.
사건은 2013년 3월 김 전 차관의 ‘원주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은 의혹이 제기된 다음 날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달 20일 경찰 수사팀이 이 사건을 내사에서 정식 수사로 전환하자, 다음 날인 21일 김 전 차관은 전격 사퇴했다. 별장 동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그해 7월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특수강간 혐의 등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피해자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진술을 번복해 진술의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 검찰이 든 이유였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사실상 수사 방해에 이은 봐주기 수사”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신청한 김 전 차관에 대한 통신사실조회 4차례, 압수수색영장 신청 2차례, 출국금지 요청 2차례를 모두 반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원주 별장 등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한 이아무개씨가 2014년 김 전 차관 등을 다시 고소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12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는 김 전 차관에 대해 또다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김 전 차관을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이씨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피고소인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는 2018년 4월 이후 다시 찾아왔다. 당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 전 차관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권고하면서다. 김 전 차관은 이듬해 3월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타이로 출국을 시도했으나, 법무부의 긴급 출국금지 조처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검찰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수사를 벌인 검찰은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2019년 6월4일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이어진 재판에서 1심은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게 면소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별장 성폭행’ 의혹은 공소시효 만료로 유·무죄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진상 규명과 단죄의 시기를 놓친 것이다. 2심 역시 김 전 차관이 2006~2008년 윤씨에게 3천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별장 등에서 13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은 1심과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면소 판결했다. 다만, 사업가 최씨에게 받은 4900만원 가운데 4300만원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에 벌금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윤씨와 관련한 성접대 의혹과 뇌물수수 혐의는 원심 판단에 따라 무죄와 면소를 확정했다. 그런데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최씨 관련 뇌물 혐의는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파기했다. 최씨가 재판 전에 검사를 만난 뒤 법정에서 진술을 변경한 점을 문제 삼아, 검사가 최씨를 회유·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검찰이 최씨를 회유하거나 압박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 “증인을 상대로 한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지난달 최씨를 증인으로 불러 비공개로 검찰의 회유 등이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최씨가 법정에서 한 증언의 신빙성을 법원이 인정하는지에 따라 김 전 차관의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환기시킨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검찰이 제때, 제대로만 수사했다면 진상 규명과 그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검찰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보인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 내에서는 김 전 차관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한 일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없다. 이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진 이도 없다.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2020년 10월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성의 목소리는 없다. 우리 검찰로서는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며 반성을 촉구하는 뜻을 밝힌 글을 올린 것이 사실상 전부다.
다만, 김 전 차관의 기습 출국을 막은 조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정유미 광주고검 검사가 지난해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 운운하며 물타기 하고 있다. 내가 몸담은 20년간 검찰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적은 글이 대표적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해 불법 긴급 출국금지를 한 의혹이 제기된 이들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수원지검 수사팀(부장 이정섭)은 지난해 4월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검사는 2019년 3월 당시 긴급 출금 대상이 아닌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을 강행하며, 신청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는다. 차 전 본부장은 이 검사가 보낸 요청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승인한 혐의와 법무부 출입국본부 직원들에게 김 전 차관의 개인 정보를 177차례 무단으로 조회하게 하고 이를 보고받은 혐의를 받는다. 수사팀은 지난해 5월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서울고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손현수 강재구 기자
진보성향의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NCCK) 총무 이홍정 목사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권력층에 만연한 무속적 신앙에 의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누구든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총무는 ‘대선 국면에서 무속에 의존하는 국가 지도자를 두고 교회 안에서 온도차가 있다’는 말에 “정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명해 지지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면서도 “무속 논의가 길게 이어지며 나름의 파장을 이어가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특정 후보 지지나 비판,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저희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무는 대선 후보에 대한 평가는 교회협의 5가지 공적 가치인 ‘생명 안전’ ‘주권 재민’ ‘한반도 평화’ ‘사회 평등’ ‘생태 정의’ 등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개신교계 연합기관 통합 작업인 ‘한국교회연합운동’과 관련해서는 “교회협의 참여와 소통이 부족했다”며 “몇몇 단위의 즉흥적인 협력이 진행돼 내부에서도 대화와 협력을 위한 창구를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현 정부와 여권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거대 여당이 형성되고 법안을 발의해 집권 기간에 이 문제를 책임있게 처리할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총무는 교회협이 출간을 준비해온 ‘성소수자 목회 매뉴얼’과 관련해 “조만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매뉴얼이 발간된다”며 “첫 시안이 너무 성소수자들의 교회, ‘무지개 교회’ 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를 보완했고, 매우 만족스러운 초안이 나왔다”고 밝혔다. 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