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선관위 덮친 상임위원 논란

 

제20대 대통령선거를 50일 앞둔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선상 투표지를 수신하고 봉함ㆍ출력하는 장비인 실드팩스(SHIELD FAX)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가 상임위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조해주 상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비상임으로 임기를 이어가려다 중앙선관위 직원들의 반발로 결국 사퇴한 것이다. 국민의힘 추천 몫인 문상부 중앙선관위원 후보자도 조 상임위원의 사퇴에 맞춰 후보자 신분에서 물러났다. 중앙선관위는 두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7인 체제’로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조해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연장에 선관위 직원 집단반발

 

조 전 상임위원은 임명 당시인 2019년 1월부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청문회 보이콧과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이는 등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중앙선관위 기획조정실장, 선거실장 등으로 일했던 그가 퇴직 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명선거특보’를 지낸 것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백서에 기록돼있다는 이유였다. 당시 그는 “공명선거특보로 활동한 적이 없고 이름이 올라간 건 행정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의 반발은 계속됐다. 결국 문 대통령은 청문회 없이 선관위원 임명을 강행했고 곧바로 중앙선관위에 상근하며 선거 업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에도 취임했다.

 

그의 상임위원 임기 말에는 ‘알박기 논란’이 불거졌다. 선관위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상임위원을 할 경우 3년 근무하고 사직하는 관례를 깨고 문 대통령이 조 전 위원의 사의를 반려하고 비상임위원으로 나머지 임기를 이어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사의 반려가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를 안정적으로 꾸리기 위한 ‘선의’였다며 ‘알박기 논란’이 불거진 데 유감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조 전 위원의 사의가 반려되자 선관위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지난 20일 중앙선관위 직원 350여명이 조 전 위원에게 사퇴 요구 의견을 전달했고,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사무처장과 상임위원 대표단이 사무총장을 면담하며 사퇴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다음날 조 전 위원은 내부 게시판에 “일부 야당과 언론의 정치적 비난 공격은 견딜 수 있으나 위원회가 짊어져야 할 편향성 시비와 이로 인해 받을 후배님들의 아픔과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위원회 미래는 후배님들에 맡기고 이제 정말 완벽하게 선관위를 떠나련다”는 글을 올리며 떠밀리듯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도 이를 수용했다.

 

조 전 위원이 사퇴하자 국민의힘이 추천한 문상부 중앙선관위원 후보자도 사의를 밝혔다. 문 후보자는 입장문에서 “저는 후배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선관위를 살리기 위해 선관위 위원으로 복귀하고자 했으나, 용기 있는 후배님들 덕분에 선관위가 다시 살아난 지금 이미 그 목적이 달성됐기에 기쁜 마음으로 위원 후보직을 사퇴하고자 한다. 저는 후배님들이 한없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지낸 문씨는 야당 몫 선관위원으로 추천돼 지난해 12월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마쳤지만 본회의에 임명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씨가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관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원으로 가입한 전력을 문제 삼아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된다며 반대했다. 조 전 위원이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명선거특보’를 지냈던 전력을 공격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가입 이력이 있는 문씨로 맞불을 놓았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 24일 청와대에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자리를 이동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 임명 위원이 상임 맡는 게 관례지만…편향성 논란 재연 우려

중앙선관위원이 당장 충원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대선은 ‘선관위원 7인 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청와대는 대통령 몫의 중앙선관위원 임명에 대해 대선이 임박한 데다 인사청문회 등 절차에 시간이 걸린다며 대선 전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을 방침이다. 상임위원도 호선으로 결정될 문제지, 청와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2일 조 상임위원 후임 지명 계획에 대해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셔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청문회 등 임명 절차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고려할 때 후임을 현 시점에서 임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야당 몫 후보자 추천을 미루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겨레>에 “청와대에서 임명을 어떻게 하는지 상황을 본 뒤에 대처할 방침이다. 청와대가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누가 맡을지는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있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3명,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여당·야당·여야 공동 추천 1명씩),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으로 구성되는데, 통상 호선을 통해 대통령이 지명하는 인사가 상임위원을 맡았다. 관례상으로는 문 대통령이 지명한 이승택·정은숙 위원 중 한 명이 상임위원으로 유력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제2의 조해주 사태’를 막아야 한다며 여야 합의로 추천한 조병현 위원을 상임위원으로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선대본 회의에서 “노정희 선관위원장을 포함해 9명 위원 중 8명이 친여 성향 일색인데도 단 1명의 야당 추천위원마저 현재 민주당 반대로 공석인 상태”라며 “문 대통령은 60년 만에 선관위에서 일어난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담보된 새로운 내각을 즉각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20일 17개 시·도 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만나 중립적인 상임위원 선임을 요구했다고 한다.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간부는 24일 <한겨레>에 “어떤 특정 인물이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라, 편향적이라는 비판받을 인물을 임명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대선을 불과 한달여 앞둔 시점에서 중앙선관위가 7인 체제로 운영되고 상임위원 공백 상태가 이어지면 대선 관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원들은 모두 상근이 아니고 상임위원 한명만 상근직인만큼 역할이 막중한데 대선을 앞두고 심판 자리가 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나래 이완 기자

새해 다섯번 째… 북한 내륙에서 동쪽으로 발사

유엔 안보리, 핵탄두 장착 가능한 탄도미사일만 금지

 

지난해 9월13일치 북한 <노동신문>은 “9월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 장거리 순항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25일 오전 내륙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이달 5일을 시작으로 지난 17일까지 탄도미사일을 네 차례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이날 오전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며 “사거리 등 제원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순항미사일은 속도가 느리고 저고도라서 다양한 정보자산에서 탐지된 자료를 세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때까지 구체적인 제원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미사일은 북한 종심(최전방에서 후방 핵심지역까지의 거리)에서 동쪽으로 발사돼 북한 내륙에서 상당 부분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항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제 핵 비확산체제는 제트엔진을 장착한 순항미사일을 비행체로 간주한다. 로켓을 이용하는 탄도미사일에는 핵탄두를 실을 수 있어 국제 핵 비확산체제는 탄도미사일을 핵탄두 운반체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탄도미사일 발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군 당국은 탄도·순항미사일의 특성과 유엔 안보리 결의 내용을 감안해 탄도미사일은 발사 탐지 직후 기자들에게 바로 공개해왔지만, 순항 미사일은 탐지하더라도 공개하지 않았다. 권혁철 기자

미 본토 병력 8500명에 비상대기령

  유럽 유사시 파병 준비 태세 돌입

  나토, 동유럽 회원국들에 군비 지원

“집단안보 강화, 신속대응군 준비”

 나토-러, 지중해 대규모 훈련도 벌여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합병한 크림반도에서 지난 18일 러시아군 장갑차 행렬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본토 주둔 병력 8500명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그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서유럽 동맹들은 동유럽에 군사장비를 보내고, 지중해에서는 나토와 러시아가 각각 대규모 훈련에 나서는 등 냉전을 방불케 하는 무력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나토의 신속대응군 가동에 대비해 미군 8500명이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안보 상황 악화로 나토의 신속대응군이 가동되면 미국은 여단급 전투부대와 병참, 의료, 항공, 정보, 감시, 정찰, 운송 등의 군사력을 유럽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4만명 규모로 가동되는 나토 신속대응군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지금처럼 규모가 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지중해에서 진행되는 나토의 ‘넵튠 스트라이크 22’ 훈련에 미국의 해리 트루먼 항공모함 전단이 참여한다며 “냉전 종식 후 처음으로 미국 항모 전단이 나토의 작전 통제를 받게 된다”며 “우리(나토)의 동쪽 측면 국가들(동유럽)의 안보를 지원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미국에 있다고 말했다.

 

나토에 속한 서유럽 회원국들은 이날도 동유럽에 대한 군사장비 배치 계획을 쏟아냈다. 덴마크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러시아가 면해 있는 발트해에 프리깃함을 투입하고 리투아니아에는 F-16 전투기 4대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해안을 이루는 흑해에 프리깃함, 불가리아에는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불가리아에 F-35 전투기 2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도 루마니아에 병력을 파견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나토 신속대응군 가동 가능성을 띄우는 미국과 서유럽의 움직임은 나토의 집단안보 시스템을 가동할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전 회원국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며 집단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집단안보 개념의 핵심인 나토 조약 제5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발트 3국과 폴란드에 파견된 4개 나토 전투그룹의 보강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면한 국경에 병력을 집중시키며 시작된 이번 대치는 미-소가 존멸을 놓고 대립하던 냉전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움직임은 동유럽 신규 회원국들을 안심시키고, 러시아에는 집단적 대응 가능성을 경고해 침공 의지를 꺾으려는 이중 목적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유럽 국가 및 나토 수뇌부와의 화상회의를 마친 뒤 “모든 유럽 지도자들과 완벽한 (의견의) 만장일치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서 강경 메시지를 주도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러시아군이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나토의 비상한 대응을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은 미국과 나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 대변인이 나토와의 갈등 심화에 대해 “러시아가 아니라 나토와 미국이 하는 짓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10만6천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전쟁 임박설을 유발한 러시아는 지중해에서 함정 140척과 병력 1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와 나토가 각각 진행하는 지중해 훈련은 전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 상황에서 진행되기에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우크라 위기의 연원…미국, ‘나토 동진 안 한다’ 약속했나?

 

1990년 냉전해체·독일 통일 협상 때

미·독 “나토 동진 않는다” 구두 약속

구속력 있는 서면 약속은 이뤄지지 않아

30년 흐른 지금까지 미-러 분쟁 불씨 돼

 

1991년 8월1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 주변 도로에서 시민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 공산당 강경파 쪽 탱크의 진입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유럽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가 발생한 ‘핵심 원인’은 냉전 해체 이후 끊임 없이 이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이 해체되던 1990년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미국은 당시 소련과 협상에서 나토의 확장 금지에 대한 ‘공식 보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서독의 지도자들은 소련과 협상 과정에서 그런 언급을 했고, 이를 통해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양해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소련은 서구의 선의를 믿었지만, 이는 구속력이 없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나토는 2차대전 직후인 1949년 미국이 소련의 위협에 맞서 유럽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만든 집단안보기구이다.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가 냉전 시기 “소련을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애초 목적인 소련의 위협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유럽에 녹아 들게 하고, 미국을 확실히 유럽에 붙들어 매는 등 여러 면에서 훌륭히 기능했다는 지적이다.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러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 냉전이 종식되며, 독일 통일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독일의 운명을 정할 핵심 변수는 소련의 반응이었다. 서독은 통일을 목표로 주변국들과 적극적으로 타협을 시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권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고르바초프는 냉전 이후 소련의 안전 보장을 위해선 서구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현재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봤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당시 서독 외무장관은 1990년 2월6일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교장관에게 “나토는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의도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일 뒤인 2월9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를 직접 만났다. 베이커는 “최종 결과: 통일 독일은 (정치적으로) 변화된 나토에 고정된다. ’나토의 관할 영역은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말을 직접 메모했다. 회담 뒤 베이커 장관은 곧 소련을 방문하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 비밀 편지를 전했다.

 

이 편지에서 베이커는 자신이 고르바초프에게 한 제안을 밝혔다. “통일 독일이 나토 밖에 있기를 선호하는가, 그래서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토의 관할권이 현재 영역에서 ’한 치도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보장 하에서 통일 독일이 나토와 엮여있기를 원하는가?” 고르바초프는 “나토의 영역 확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이 통일이 되어도 나토가 동독으로 확장되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매파들은 베이커-고르바초프의 타협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나토가 어떻게 한 나라의 반쪽에만 적용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도 이에 동조하는 편지를 써 콜 총리에게 보냈다. 나토가 동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베이커는 ‘나아갈 수 없다’, 부시는 ‘나아갈 수 있다’. 콜에게 미국의 서로 다른 입장이 전달된 것이다.

 

탈냉전시대 협상 파트너였연 헬무트 콜(오른쪽) 전 독일 총리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바르비카에 있는 옐친의 집에서 만나 옐친의 부인 나이나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반갑게 껴안고 있다. 바르비카/AP 연합

 

콜은 모스크바를 설득하기 위해 베이커의 온건한 의견을 따랐다. 그에 따라 “본질적으로 나토는 동독의 현 영토로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없다”고 약속했다. 이 얘기를 들은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기로 한다. 그날 밤 콜은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추운 붉은광장을 밤새 산책했다. 이 과정에 서면합의는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격노했다. 2월24~25일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이뤄진 콜과 회담에서 “빌어먹을! (냉전에서) 우리가 이기고 저들이 졌다. 소련이 패배의 아가리에서 벗어나 승리를 낚아채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시는 이어 서독이 “두둑한 주머니”를 갖고 있으니, “소련이 (동독에서) 나가도록 매수하라”고 말했다. 부시는 ‘소련군이 철수한 뒤 통일 독일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토 회원국으로 남을 것’이라며 독일 통일에 소극적인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등을 달랬다.

 

독일 통일이 시작된데다 소련의 내정까지 불안해지며, 고르바초프는 무력해졌다. 콜은 1990년 7월부터 9월까지 철수하는 소련군에게 총 150억마르크를 제공했다. 또, 동독에 나토 군과 핵무기 배치를 제한한다는 체면치레용 약속도 했다. 이 모든 약속이 상호 신뢰에 기초한 구두 약속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나토 확장에 대한 서면으로 된 어떤 공식 보장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중견 간부가 현지에서 지켜봤다. 그는 “어떻게 소련이 동유럽에서 지위를 잃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탄하며 동독을 떠났다. 새로운 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싹트기 시작했다.

 

역사의 패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2014년 러시아 언론 <리아 노보스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당시 베이커와 회담에서 “나토의 군사시설이 전진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군 병력이 독일 통일 뒤에도 동독 영토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또 1999년 이후 많은 나라들이 나토 가입을 결정한 일들은 “1990년에 우리에게 했던 언명과 보장들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부시의 뒤를 이은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애초 나토 확장에 신중한 자세였다. 소련과 국경을 마주한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의 전례 따라 외국군과 핵무기 배치를 금지한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동유럽 국가나 옛 소련 국가들에 적용하려 했다. 그에 따라 ‘평화를 위한 동반자’(PfP) 프로그램을 1994년 만들어 이들 국가를 가입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소련 해체 뒤 경제난 때문에 택시 운전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모스크바 대통령 별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태우고 1956년형 볼가를 운전해 보이던 때의 모습. AFP 연합뉴스

 

워싱턴의 매파들은 이런 조처는 러시아에게 나토 확장에 대한 비토권을 주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도 1차 체첸 내전을 강경 진압해 강경파들에게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워싱턴에서 ‘신봉쇄’라는 개념이 나왔고, 11월 중간선거에서 나토 확장을 공약으로 내 건 공화당이 승리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선거 직후인 12월 나토를 동유럽으로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대하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사임했다.

 

1999년 3월 마침내 폴란드·체코·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다. 한달 뒤인 4월 나토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옛 소련 공화국에 속했던 나라를 포함한 9개국의 가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11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옐친은 “미국은 유럽에 있지 않다. 유럽은 유럽인들이 처리하게 해야 한다”며 나토가 러시아에 근접하는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회담장을 나서며 푸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집권 후 동진해 오는 나토 확장에 맞서기 위해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내전을 일으켰다. 푸틴은 지난 12월23일 연말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우리를 속였다. 단호하고, 뻔뻔하게 나토가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9일 “나토는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그럴 수 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나토 역시 누리집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나토 동맹은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고 이 모든 것은 기록된다. 나토가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한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한 장담이 동맹의 합의나 나토의 공식 조약을 대체할 순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의길 기자

워싱턴디시 검찰 등 4곳서 제기

과태료 부과 · 데이터 회수 요구

구글 “이용자에 통제권 있어” 반박

전문가들 “다른 기술 동원땐 가능”

 

구글 로고.

 

구글이 앱 이용자 위치 무단 추적 혐의로 미국 지방정부 4곳의 검찰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이용자가 앱의 위치정보 기록 기능을 꺼놓은 상태에서도 구글이 다른 기술적 방법을 동원해 계속 이용자 위치를 추적했다는 것이다. 이용자 위치 정보는 사생활을 드러내는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에서 소송 결과가 주목된다.

 

2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이날 미국 워싱턴디시(DC)와 워싱턴·텍사스·인디애나주 검찰총장은 이용자들의 위치를 동의 없이 수집한 혐의로 구글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칼 라신 워싱턴디시 검찰총장은 소장에서 “구글이 지난 2014∼2019년 스마트폰과 웹브라우저의 ‘위치정보 이력’(Location History) 설정을 통해 위치 수집 기능을 꺼놓은 이용자들의 위치를 추적했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위치 정보 기록 설정을 해제하면 이용자들이 어느 장소에 갔는지 저장하지 않겠다’고 안내했지만, 실제로는 위치 정보를 수집·저장해왔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검찰은 구글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불법 수집한 위치 정보 데이터에 대한 회수 조처를 내릴 것을 각 지방법원에 요구했다.

 

지방정부 검찰은 구글이 이용자 위치 추적을 위해 검색엔진·지도·유튜브 등 자사 앱 뿐 아니라 와이파이 접속 정보 등까지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라신 총장은 소장에서 “이용자 기기가 구글 앱의 위치정보 접근을 거부하도록 설정됐더라도, 구글은 이용자 위치를 특정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스마트폰 앱의 이용자 동의 없는 위치 추적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단말기의 지피에스(GPS·위성항법장치) 기능을 끄더라도 블루투스·와이파이 접속 정보 등으로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피에스 외에도 이들(블루투스·와이파이 접속 등) 정보를 동시에 활용하면 이용자가 건물 내 몇 층에 있는지 등 구체적인 위치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어 “운영사가 이용자 의사와 무관하게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스마트폰 전원 자체를 끄는 것 이외에는 이를 차단하기 어렵다”며 “법률적 제재와 이용자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등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고발에 대해 구글은 “틀린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호세 카스타녜다 구글 대변인은 “우리는 항상 자사 제품에 프라이버시 기능을 탑재했으며, (이용자들에게) 위치 정보에 대한 철저한 통제권을 제공해왔다”고 주장했다. 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