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민 총리’ 팔메 암살범 34년만에 찾았지만…

● WORLD 2020. 6. 11. 04: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스웨덴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 총리올로프 팔메.

      

검찰, 용의자 20년 전 사망해 사건 종결

새 증거 제시 안해용의자 전처 등은 부인

 

스웨덴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 총리올로프 팔메를 저격한 암살범이 34년 만에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이 지목한 범인은 이미 20년 전 사망한 인물이라, 팔메의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돼왔던 수많은 음모론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팔메 암살 사건 수사를 맡았던 크리스터 페테르손 주임검사는 10(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팔메 전 총리를 암살한 것은 한 보험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스티그 엥스트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페테르손 검사는 용의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기소할 수 없다며 사건 종결을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검찰이 밝힌 용의자 엥스트롬은 1986228일 팔메 암살 사건 당시 주요 용의자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인물로, 2000년 이미 사망했다. 엥스트롬은 사격클럽 회원으로, 팔메와 그의 정책에 반감을 가졌고,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목격자들은 엥스트롬과 인상착의가 같은 인물이 현장에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현장에 같이 있던 팔메의 아내 리스베스가 다른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을 비롯해, 다른 목격자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진술이 엇갈렸다. 엥스트롬은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지만 팔메를 소생시키기 위한 시도를 했고,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함께 추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엥스트롬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며, 관련 없는 인물로 분류했다.

팔메는 두 차례 총리직을 역임하며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스웨덴 복지 체계를 확장한 인물로,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이다. 그는 19862월 아내와 함께 스톡홀름 극장을 떠나 귀가하던 중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용의자는 당시 팔메 총리의 뒤에서 총을 쏜 뒤 도주했다. 이와 관련해 1만명 이상이 조사를 받고 134명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수사당국은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이에 팔메의 좌파적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던 스웨덴 군 등 우파 세력은 물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터키의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첩보기관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돼왔다.

<로이터> 통신은 검찰의 팔메 암살범 지목에도 좀처럼 음모론은 잦아들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검찰이 이날 엥스트롬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도 새로운 증거 등 수사 진전 상황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게다가 엥스트롬의 전처가 지난 2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겁이 많아 살해를 저지를 위인이 못 된다고 밝히는 등 반론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 이정애 기자 >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 회고록 출판 기념회서 밝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1945616만주국 싼장성 자무쓰시’(현 중국 헤이룽장성 자무쓰시)에서 태어났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지 두달 만에 광복을 맞아 아버지의 고향 전라북도 장수로 귀향했다. 일제강점기의 끄트머리에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과 오랜 분단의 세월을 헤쳐온 그의 삶은 곡절 많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서른셋의 서울대 외교학과 박사학위 과정 학생이던 197711월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보좌관(4)으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북한 자료도 맘껏 보고 월급도 챙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그는 그뒤로 40년이 넘도록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운명이다.

북한과 마주한그 긴 세월 속에서 가장 슬픈 기억과 기쁜 기억을 물었다. 10일 오전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진행된 그의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북한과 마주한 40>(대담자 박인규·창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1994725~27일로 예정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78)으로 무산됐을 때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으로 잠도 자지 않고 회담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때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쪽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주며 군사적 도발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관리할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다. “김영삼 대통령한테 입력한 개념은 분단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조마조마하게 사는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북쪽이 군사적으로 대남 적대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가 어려운 북쪽의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06·15 공동선언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가장 큰 슬픔은 가장 큰 기쁨의 다른 얼굴이다. 삶의 역설이다. 그가 가장 희망적인 날로 기억하는 건, 2000410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613~15일 평양) 발표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기회를 잃고 우리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나하고 한탄을 했는데, 6년이 지나지 않아 그날이 왔다.” 그는 이 대목에서 환하게 웃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그는 다양한 자리에서 북한을 상대했다. 남북관계가 대결로 점철된 냉전기에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이후 탈냉전기를 관통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을 잇는 길을 맨 앞에서 열어갔다.

687쪽에 이르는 벽돌책인 회고록은 정세현 특유의 입담과 통찰력이 잘 버무려진 생생한 사례와 기록으로 가득하다. 그의 부친은 해방된 조국에서 한의원을 개업했고, 그 덕에 어려서부터 한학에 익숙했다. 70년 분단 사상 최대 인적교류의 장이던 금강산관광사업의 별칭인 햇볕정책의 옥동자는 그의 작명이다. 그는 통일부 장·차관 시절 숱한 출입기자들의 아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가까워질수록 미국의 간섭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그는 회고록 서문에 적었다. 한국 외교의 전제처럼 인식되는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탄생과 관련한 그의 전언은 서늘하다. “김영삼 정부 때 핵문제로 미국과 엇박자가 심했다. 그때 미국이 한국을 묶어놓으려고 꺼낸 게 한미공조라는 말이다. 공조를 이유로 사사건건 쥐어박으니 그 기가 센 김영삼 대통령도 결국 미국 하자는 데로 끌려가더라.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 실행됐으면 한반도가 어찌 됐겠나?”

그가 새삼스레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본질을 상기시킨 건, 20189·19 남북군사합의 뒤 미국이 꺼내든 한미 워킹그룹한국 외교부가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아들인데 대한 짙은 아쉬움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한미워킹그룹은 제재를 빌미로 남북의 자율적 협력을 가로막는 미국의 덫이다.

출판사 창비는 정세현의 회고록을 학자의 머리, 행정가의 눈, 시민의 가슴으로 북한을 바라본 평생의 기록이라 표현했다. 과장은 없다. 그는 40년 넘게 북한과 마주한 고위공직자일뿐더러,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기대를 거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 이제훈 기자 >

독일 베를린에 전시된 전직 미군의 사진.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22, 백악관에 감축 반대 서한

시위에 군동원트럼프 시도와 겹쳐, 보수 주류 불만 팽배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조처에 집권당인 공화당 내부에서 반대가 거세지고 있다. 이 조처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에 현역 군을 동원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부가 반발한 사건과 겹쳐, 트럼프와 미국 보수 주류들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맥 손베리 의원 등 공화당 하원의원 22명은 9일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주독일 미군 감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서한에는 군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 26명 중 4명을 빼고 모두 서명했다. 의원들은 이 서한에서 우리는 그런 조처들이 미국의 안보이익을 현저히 해칠뿐 아니라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해 우리를 해롭게 할 것으로 믿는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앞서 백악관은 오는 9월까지 독일에서 미군 병력을 적어도 9000명 감축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 5일 보도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이 서명한 이 지시는 또 국방부에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의 상한을 25000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독일 주둔 미군의 상한은 52000(현재 인원은 34500)이어서, 궁극적으로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조처다.

미국 관리들은 이 조처가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규정하는 국방비 지출 수준을 충족하지 못한데 대한 징벌이라고 말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 인사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올해 미국이 주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불참키로 한 결정한데 대한 트럼프의 보복이라고 판단해 더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과 나토를 이끄는 최대 국가인 독일과 미국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서 집단안보를 강화하려고 기울여온 중요한 노력들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은 이 조처가 트럼프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며, 트럼프와의 직접적 갈등을 피하면서 감축 결정을 되돌릴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인호프 위원장은 <폴리티코>와의 회견에서 이는 오브라이언에게서 나왔고 그가 서명했다며 오브라이언 보좌관을 비난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오브라이언의 결정을) 따라가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나는 그가 시작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점만은 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는 주독 미군 감축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5<로이터> 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을 9500명 감축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이 경우 현재 34500명인 주독 미군이 25천명으로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이번 작업을 수개월 간 해왔고, 이 지시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서명한 각서'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 정의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