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부, 태풍에 생지옥으로

● WORLD 2013. 11. 17. 21:18 Posted by SisaHan


한인 23명 실종
수십만명 피해… 물·음식바닥, 약탈 행위 발포 명령

< 필리핀 타클로반 = 정세라 기자 >
필리핀 중부를 덮친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은 한국 교민 30여명을 포함해 수십만명의 거주민을 죽음의 땅에 가두어버렸다. 선교사 가족으로 중부 레이테주 주도 타클로반에 살던 사공아무개(40)씨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22시간 걸려 지옥탈출, 또 사지로
유엔 관계자들과 목격자들은 타클로반에서 1만여명, 인근 사마르 지역에서 2천300여명이 사망·실종된 것으로 추산한 반면,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최대 2천500명이라고 추정하는 등 피해산정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피해지역은 물과 음식물이 바닥나 생지옥을 방불하고 있다. 통신과 교통은 두절된 상태다. 구조의 손길은 아예 기약이 없다. 사공씨는 아내와 세 자녀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타클로반 교회에 남겨두고 혼자 먼저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외부와 통신이 되는 곳에 먼저 가서 구조를 요청하거나, 이동 수단이라도 물색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적지는 태풍 피해가 심하지 않은 레이테섬 서부 오르모크 항구.
오르모크는 세부섬으로 가는 배편을 운행하는 레이테주 서부의 항구도시다. 평소엔 타클로반에서 차로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는 자전거와 두 발만으로 그 길을 가야 했다.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 하이옌이 할퀴고 간 뒤엔 치안마저 무너졌다. 오르모크로 가는 길은 천길 낭떠러지를 곁에 둔 외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 뿌리 뽑힌 나무, 곳곳의 주검을 맞닥뜨리며 22시간을 걷고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가까스로 외부와 통신이 닿는 오르모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지를 벗어난 그는 12일 외교부 관계자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차량을 구하자마자 곧바로 가족을 구하러 타클로반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주검냄새 진동‥ 국가 재난사태
태풍 하이옌이 위세를 떨쳤던 지난 8일로부터 닷새가 지났지만 타클로반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한 상흔이 여전했다. 구조 치안 활동을 위해 중앙도로 정도만 건물 잔해를 일부 치운 상태였지만 도로 옆에 돼지·소·개 등 가축의 주검이 그대로 뒹굴어 있었고, 완파된 차량도 뒤집어진 채 처박혀 있다. 일부 도로는 여전히 물에 잠긴 상황이다. 현지인들은 네댓살 꼬마부터 어른들까지 지독한 주검 냄새 때문에 마스크나 스카프로 코를 틀어막고 다닌다. 수습되지 않은 주검이 살아남은 동물들에게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날 ‘국가 재난사태’로 선포한 필리핀 정부는 12일 최대 재난지역인 타클로반에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또 약탈 행위가 극심해지자 일부 지역 정부에선 구호물자 수송차량이 무장세력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의료·구호 요원이 자체 판단에 따라 발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재앙이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현지에는 한국 교민 안전을 확보하고 재난을 당한 필리핀 주민을 지원하려는 한국 외교부와 구호지원단체 선발대가 속속 도착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는 현지에서 55명이 연락 두절된 것으로 신고됐으며 이 가운데 32명의 소재가 파악됐다. 대사관은 나머지 23명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캐나다의 유산상속제도

● Biz 칼럼 2013. 11. 17. 21:13 Posted by SisaHan
유언장도 가변성 있다… 한-캐 상속·증여세제 차이도 알아둬야

유산상속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유언장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유언장이 없으면 모든 재산이 국가로 환수된다던가, 유언장이 있으면 모든 재산이 유언장에 있는 대로 상속이 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유언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이 있다면 국가에 환수되는 것이 아니며 유언장을 작성하였더라도 결혼, 재혼이나 이혼 같은 가족관계 변화, 유언장에 있는 내용에 대해 가족 간에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유언장이 무효로 되거나 가족법에 따라 유산이 분배되기도 한다. 
또한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도 사망 전에 불구가 되거나 정신적인 장애자가 되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을 경우에도 가족들이 마음대로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 위임장(Power of Attorney)이 없다면 정부가 재산처분이나 관리에 관여하게 되고, 가족이 원한다면 정부의 감독 하에 재산을 관리하거나 처리할 수 있다.
 
또 상속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상속비용이나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RRSP, 연금 등의 수혜자를 지정하고, 재산의 공동소유권 설정(Joint Ownership), 장례비, 소득세, 법원비용, 가족의 소득보호를 위한 보험계획, 투자, 금융, 세금 등의 기록보관 장소, 사업체의 매매약정서 등 사업상속 계획, 생전 또는 사후 재산과 소득보호와 상속을 위한 Trust계획, 장례방법, 자선기부 등도 유산계획 시 고려해야 한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많든 적든 한국 내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직 한국 내에 자산을 남겨두고 캐나다로 이전을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캐나다 재산을 한국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캐나다는 각기 다른 세법을 가지고 있어 세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커다란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유산계획 시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요망된다.
 
캐나다에는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다. 그 대신 캐나다에서는 증여나 상속 시 양도차익이 있다면 소득세를 내야 한다. 즉, 실제로 재산을 처분해서 증여하거나 상속하지 않더라도 증여나 상속 시에는 마치 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간주하여 양도차익이나 수익이 있다면 피상속인이나 증여자는 당해 연도 종합소득세 신고 시에 소득에 포함하여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하는 경우 재산가치의 변동이 없더라도, 즉 재산증식으로 양도차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증여나 상속한 재산에 대해 증여나 상속을 받는 자가 증여나 상속세를 내야 한다. 특히 증여나 상속세는 누진 과세되어 최고세율이 상속재산의 50%나 되기 때문에 한국에 재산을 많이 보유한 캐나다 거주자들은 미리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속자에게 재산뿐만 아니라 세금이라는 커다란 부채도 남겨주기 때문에 재산의 일부를 잘 활용하여 상속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재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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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자 칼럼] 국화꽃 따는 아침

● 칼럼 2013. 11. 17. 21:09 Posted by SisaHan
요즘 들어 불면의 밤이 잦아졌다. 나는 반갑지 않은 이 손님이 찾아드는 시간이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멀리 지리산 피아골 산(産) 백초차를 감히 꿈꾸어 본다. 백여 가지 넘는 산야초가 어울려서 빚어 낸 차는 쓴맛, 달큰한 맛, 새큼한 맛이 차례로 감돌아 정신을 맑게 한다는데, 어차피 깨어있는 밤이니 더 맑아져도 상관이 없겠다. 다만 그 차를 마시는 동안은 백여 가지 이름 모를 산야초의 살랑거림으로 불면의 밤이 짧아지리라는 상상도 은근히 해 본다. 
 
지난 여름 끝머리에 지인이 보내 준 책 꾸러미에서 산야초에 대한 책을 먼저 뽑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문학 서적은 뒷전으로 하고 지리산 산야초 이야기에 한동안 정신을 빼앗겼었다. 자연과 합일을 이룬 한 지리산 붙박이가 들려주는 차(茶) 이야기는 까다로운 다도 운운하며 멀리했던 다기를 가까이 하게 했고, 손수 산야초 차를 만들어 보고 싶은 유혹이 들게도 했다. 

가을엔 감국, 구절초, 국화, 구기자차 류가 으뜸이라기에 뜰 안에서 왕성하게 자리 잡은 국화 무더기에 눈길을 자주 보냈다. 초가을부터 봉긋봉긋 올라오는 꽃봉오리를 보며 마음은 이미 국화차에 잠겨버렸다. 놈들이 개화를 하면 넉넉히 말려서 가을 노래 부르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리라는 흑심을 품고서다. 
어느 쾌청한 날 아침, 이슬 머금은 꽃이 향기가 짙다는 지침을 상기하며 국화꽃이 벙글거리는 화단에 들었다. 하지만 해맑게 피어오른 꽃송이들 곁에 서니 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무심한 마음일 땐 그토록 곱던 꽃이 따려는 순간엔 수 백, 수 천, 적의에 찬 눈빛으로 조여 오는 듯했다. 말 못하는 식물에도 인간이 감당 못할 기가 있음을 그때야 알았다. 잔뜩 기에 눌린 나는, 손품은 좀 들어도 덜어낸 티가 덜 나는 자잘한 토종이 그래도 낫다고 자위하며 몇 줌 따서 도망치듯 나왔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수없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사실을 잊은 채 내 욕심만 채우려고 했으니, 참으로 미안했다. 
 
계절 탓인지 부질없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무심결에 이는 바람에 이유를 묻고, 그냥 스쳐가는 인연에도 의미를 찾게 된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양 가볍게 흘려보낸 것들을 되새김질 하며 창밖을 보다가 기울어가는 황국에서 눈이 멎었다. 초롱초롱한 꽃망울로 꾸짖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된 서리 몇 번 다녀가고 나니 허물어지는 낌새가 역력했다. 나는 가볍게 걸쳤던 몽상가의 옷을 벗어던지고 비닐봉지 하나 챙겨서 뒤란으로 나섰다.
느슨해진 화단에서 가을 향을 딴다. 황국, 백국이 엇비슷하게 누워서 얼른 데려가 달라고 재촉 하는 듯하다. 푸근한 마음으로 한 무더기 끌어안고 얼굴을 들이민다. 농익은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수수하면서도 친숙한 향, 그럼에도 끝 모를 깊이로 이끄는 국향이다. 
 
어느 원주민 부족은 십일월을 일컬어‘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고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때가 오리라는, 자연의 순환 이치를 통찰한 사람들의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다. 

풋풋함 대신 평온함이 배가되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아침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