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 참가자들이 수료 봉사자들과 함께 민경석 목사 인도로 무릎꿇고 회개하며 죄와 잘못들을 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다.

토론토 아버지학교 23기
감동과 은혜 가운데 진행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으로 올해 첫번째 열린 토론토 제23기 아버지학교가 지난 14일과 15일 오후 수정교회(담임 주권태 목사)에서 개강, 전반부 10시간 프로그램을 감동과 은혜 속에 진행했다. 후반부는 이번 주말 22일(토)과 다음 주 29일(토) 오후 5시~10시 속개된다.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 토론토 운영위원회(위원장 조충호 디모데장로교회 장로) 주관으로 열린 이번 강좌에는 14개 교회에서 30명의 일반성도와 불신자 등이 참석, 진행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모인 수료자 30여명과 함께 정해진 프로그램과 간증, 강사의 강의, 조별 나눔 및 찬양과 기도 등으로 진행됐다. 이번 강좌에는 수료자의 장인과 은퇴장로 등 2명의 72세 고령 참가자에서 28세 젊은 아빠까지 참가했고, 영어권 성도들도 1개 테이블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틀간 선배 수강자의 인도를 따라 간증과 강사의 말씀, 조별 테이블 나눔 등을 통해 자신과 가정을 돌아보며 서로 상처를 감싸 안고 ‘아버지와 남성 회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강의는 첫날 유충식 목사(중앙교회 담임)가 남성회복 운동과 아버지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아버지의 영향력’을 들려줬다. 유 목사는 “가정 회복의 중심인 아버지 영향은 3~4대까지 이어진다”면서 “저주는 끊고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 가족을 결속·사랑·인도·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기도로 축복을 간구하라”고 조언했다. 둘째 날은 민경석 목사(한울교회 담임)가 ‘아버지의 남성’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남성이 파괴되어 가는 남성문화들의 폐해를 들고 “그로인해 아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자녀들에게서 한숨이 나오게 하지는 않았는지 묵상해보자, 나는 과연 어진 왕·부드러운 전사·참된 스승·다정한 친구였는지, 폭군·비겁자·위선자·배신자는 아니었는지 돌아보자”며 회복을 위한 성결운동을 역설, 가정과 사회에서의 책임과 사랑을 다하는 남성성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조별 나눔으로 지나온 부정적 발자취를 되짚으며 민 목사 인도로 죄와 상처와 잘못 등을 적어 불태우는 ‘태우기’ 의식도 진행했다. 또 아버지와 자녀, 아내에게 편지쓰기, 아내와 자녀가 사랑스런 20가지 이유 쓰기와 포옹하기·데이트하기·축복기도 등 숙제를 통해 가족사랑을 되짚어보는 자성의 시간이 됐다.
 
아버지학교는 22일 오후 강좌를 재개, 준비된 순서와 함께 고영민 목사(이글스필드교회 담임)가 ’아버지의 영성’ 강의를 하며, 29일에는 아내초청 및 세족식 등과 장성환 목사(런던 한인교회 담임)의 ‘아버지의 사명’ 강의 등 프로그램을 마치고 파송식으로 23기를 마무리 한다.
 
< 문의: 647-907-0021, 905-482-9676, www.gcfather.org >


최근 들어 대한민국 ‘건국’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부 인사와 언론이 중심이 되어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건국이 사라졌다’거나 ‘건국을 부정한다’며, 연일 교육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에 ‘건국’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라며, 정부 주도하에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고, 이를 계기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도 하였다. 이로 인해 ‘건국’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일어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각종 사업을 추진하였고, 또 일부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하였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득력 있는 근거나 논리를 마련하지 못한 채 고교 교과서와 교육부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라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선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과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한국 민족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는 두 번 수립되었다. 1919년 4월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임시정부를 수립한 일이 있고, 1948년 8월15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정부를 수립한 일이 있다. 이 둘 중에서 1948년을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면,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왜 그렇게 볼 수 없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고 한 일이 없는데, 왜 1948년에 ‘건국’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납득하도록 해야 한다. 제헌국회에서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정부를 수립하고, 그 근거를 제헌헌법 전문에 밝혀 놓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한 것이다. 기미삼일운동은 1919년에 일어났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당사자인 제헌국회가 “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건립”되었다고 하였는데, 왜 1948년에 건국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똑같은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1919년과 1948년의 ‘대한민국’을 왜 서로 다른 존재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9월1일 <관보> 제1호를 발행하면서, 발행일자를 ‘대한민국 30년 9월1일’이라 표기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한민국’은 연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부터 국호인 ‘대한민국’을 연호로 사용하였고,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 1945년을 ‘대한민국 27년’이라고 하였다.
연호는 국가가 바뀌면 달리 쓴다. 같은 국가에서도 황제만 바뀌어도 새로운 연호를 사용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예를 들 것도 없다. 대한제국에서도 고종이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지만, 순종은 황제로 즉위하면서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1919년부터 계산하여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인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면 관계로 세 가지 예만 들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이 세 가지 문제에서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근거와 논리 없이 주장하고, 그 주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면 모두 비난하는 것은 지식인이나 언론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국민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답게 주장이나 논쟁에도 국격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


납치 추정 빼곤 갈수록 오리무중

● WORLD 2014. 3. 23. 15:02 Posted by SisaHan

인도양에서 실종기 수색중인 해상초계기 P-8A 포세이돈의 미국 해군들.

말레이 실종기 수색… 위성신호 실낱단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MH370편이 실종된 지 일주일인 15일 ‘납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실종기를 누가 납치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등 ‘근본적인 물음’엔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왜 못 찾나? : 사건 당일인 8일 오전 말레이시아 공군 레이더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포착됐을 때, 공군이 이를 추적하지 않은 것은 통탄할 대목이다. 이 비행물체는 나중에 실종된 MH370편으로 추정됐는데, 공군은 자국 영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비행물체를 포착하고도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와 인근 국가들은 테러에 취약한 넓은 영공을 관리해야 하는데도 항공방어망의 수준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사고 초기에 실종기를 추적하지 못한 것이 ‘미스터리’의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사건 자체가 너무 난해하다는 지적도 많다. 실종기 수색에 참여한 미국 해군 제7함대의 대변인 윌리엄 마크스 중령은 이번 실종을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규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실종기엔 여객기 수색에 활용되는 4가지가 모두 없다고 짚었다. 보통 여객기가 사라지면 주레이더와 보조레이더, 운항정보 교신시스템(ACARS)의 자동송신시스템, 조종사의 구두 보고를 활용해 찾는다. 지상의 주레이더는 비행기에 무선신호를 쏘아 반사되는 신호를 감지하고, 기내의 보조레이더는 항공기의 식별번호와 고도 신호를 발신한다. 자동송신시스템은 항공기와 지상 기지의 교신을 돕는다. 하지만 MH370편은 주레이더 탐지 영역을 벗어났다. 보조레이더와 자동송신시스템은 꺼져 있었다. 구두 보고도 없었다.
 
현재 의지할 곳은 2만2200마일 상공의 정지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서 포착한 데이터뿐이다. 국제해사위성기구(인마르샛)는 정지궤도에 인공위성 10대를 운영하고 있다. 위성 한대당 지구의 3분의 1을 커버하는데, 10대의 관할 지역이 겹쳐 신뢰도가 올라간다. MH370편은 인도양 상공의 위성과 한시간에 한번씩 통신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데이터로는 비행지속시간 및 위성과 여객기 사이의 각도만 알 수 있을 뿐, 위치를 특정할 수는 없다. MH370편의 마지막 각도는 40도였다. 이를 근거로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에서 타이 북부를 잇는 북부항로나 인도네시아와 인도양 남부를 연결하는 남부항로 등 2개 항로 가운데 한곳에서 신호가 발신됐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인마르샛 전문가들이 수색을 돕고 있다. 하지만 제7함대의 마크스 중령은 “뉴욕과 캘리포니아 사이에서 사람 한명을 찾는 것과 같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누구 짓인가? : MH370편이 8일 0시41분 이륙한 뒤 새벽 1시7분께 조종석의 보조레이더가 꺼졌다. 이후 1시19분께 “아무런 문제 없다. 잘자라”(올 라이트, 굿 나이트)라는 구두 메시지가 전달됐다. 1시21분 마지막 데이터 송신을 끝으로 자동송신시스템이 꺼졌다. 누군가 고의로 비행기를 납치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아맛 자우하리 야햐 말레이시아항공 최고경영자는 17일 “최초 조사 결과 (교신 내용을) 말한 것은 기본적으로 부기장이었다”고 밝혔다. 보조레이더가 꺼진 뒤 이상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게 파릭 압둘 하밋(27) 부기장이었다면, 그가 비행기 납치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당국은 자하리 아맛 샤(53) 기장의 ‘반정부 성향’을 근거로 기장 쪽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샤 기장이 야당인 국민정의당의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의 지지자이고, 여객기 실종 전날 안와르 이브라힘의 항소심 재판도 방청했다는 게 그 근거다.
하지만 샤 기장과 하밋 부기장을 아는 이들은 두 사람의 범행 가능성을 일축한다. 한 동료 조종사는 “샤는 비행기를 파괴하는 것 같은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밋 부기장은 조종사인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예정이었다. 미국의 항공기 사고 전문가인 조지 바이벨은 “아시아의 국제선 조종사들은 조종실 문을 잠그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노린 항공기 납치범의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 전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