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월 4일, 5일 토론토의 에어 캐나다 센타에서 레오나드 코헨의 공연이 있다. 나는 그의 공연 소식을 오래 전에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몇 살인데…. 그는 1934년 몬트리올 태생이다. 그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55년에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렇다면 지금 78세라는데, 거의 80이 되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젊은 록 스타들처럼 대형 체육관(아이스 하키 경기장, 몇 만명이 들어가는)에서 콘서트를 그것도 이틀에 걸쳐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게 오랫 동안 무대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축복받은 음악가, 나아가서는 예술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언젠가 오래 전에 한 문학잡지에서 한 인터뷰가 생각난다. 꽤 오래 전, 그가 가수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 일인데, 그는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그것으로 먹고 살 수(?)있어 행복하다고….

나는 올해 초, 우연히 다운타운의 옥빌을 지나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인, Famous Blue Raincoat를 어느 나이든 가수가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다가갔을 때, 그것이 며칠 뒤에 메시홀에서 있을 캐나다의 유명한 음악상을 레나드 코헨이 받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자리가 코헨이 노래 부르던 자리라고 했다. 지금은 돈 많은 사람들의 쇼핑을 위한, 그리고 외식을 위한 거리가 60년대 에는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이던 곳이라고 나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 공원은 나도 학교 다닐 때 가끔 가곤했던 ‘헤밍웨이’술집 건너편에 있었다.

코헨은 아마 캐나다 남자 가수로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자야 셀린 디온이나, 앤 머리 등 몇 명있지만. 남자 가수는 비교적 드문 편이다. 요즘 저스틴 비버가 뜨고 있지만… 그의 굵직한 저음으로 마치 중얼대듯 부르는 노래가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것으로 안다. 어떤 신문에선가는 그를 ‘음유시인’으로 부르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가수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 그리고 소설가로 처음 접했다. 영문학을 공부할 때, 캐나다 소설을 공부하면서, 그의 두번째 소설, ‘Beautiful Loser(아름다운 패자)’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은 그 당시 나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어 읽다가 중간에서 포기했다. 캐나다의 소설문학사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캐나다 시인을 읽는 과정에서, ‘캐나다 대표시인 15인선’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가 마가렡 에트우드와 어빙 레이톤을 포함한, 15명의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소설과는 달리 시는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요란스럽게 꾸미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함께 나누어 가지며 공존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어 좋았다. 혹자는 그를 불교도라고 단정을 내리지만, 그의 시나 노래를 들으면 그가 유태인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사상이 깊이 배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시나 노래에 나오는 소재나 이미지가 Biblical Image(성경 속에 나오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도 시대적인 예언자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 그런 까닭에 그는 소설가에서 시인으로, 시인에서 가수로 변신하지 않았나 생각든다. 그의 ‘시선집’은 발행당시 최고의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총독상을 받았다.

코헨은 가수로서 다른 노래만 부르는 가수와는 달리 작사, 작곡에 기타 연주까지 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그가 몇 해 전 런던 공연 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중절 모자를 쓰고, 눈을 지긋이 감고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13살 때, 기타를 배웠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시인….그가 정식 가수로 데뷰한 것은 1967년에 발표한 Suzanne이라는 노래였는데, 그 노래는 쥬디 콜린스가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노래 할렐루야도 많은 여가수들이 불러 유명하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기고] 엘리야(Elijah) 공연을 보고나서

● 칼럼 2012. 11. 25. 15:46 Posted by SisaHan
지난주 토요일 저녁 토론토 아트쎈터에서 있었던 토론토 한인합창단 (이사장: 송완일)의 멘델스존 오라토리오 ‘엘리야’ 공연은 필자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음악회였다. ‘엘리야’는 5년전 한인합창단이 같은 장소에서 한번 연주했던 곡 이다. 그 당시에 필자는 한인합창단 단원으로서 이 곡을 무대에서 불렀다. 합창단원으로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청중의 한사람으로서 똑같은 곡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노래를 하는 합창단원들은 전체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청중에게는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합창단원으로서 노래를 했던 바로 그곡을 청중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지극히 드물게 온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엘리야와 같은 대곡의 경우에는 더구나 그렇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특별한 음악감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음악 평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음악 평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지난 30여년 동안에 걸쳐 대학 합창단원으로서, 컴뮤니티 합창단원으로서,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해서 영국 윈체스터와 요크 대성당 등을 돌아다니며 원정공연을 한 경력이 있다고 해서, 대학교에서 음악학점 몇점을 땄다고 해서, 음악 평론의 자격을 소지하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이다. 이 글은 단지 인상적인 음악 감상의 기회를 갖게된 데에 대한 소감일 뿐이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이번 한인합창단의 엘리야 공연은 성공적인 높은 수준의 연주 였다. 미국으로부터 초빙된 명성있는 솔로이스트들 (박숙형, 신혜정, 진철민, 김기봉)은 물론이고 ‘신포니아 토론토’교항악단도 이 곡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한치의 부족함이 없이 합창을 뒷받침 해주었다. 보이 소프라노(김륜)의 청아하면서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신비스러운 목소리는 작곡가가 의도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것 같았다. 합창 그 자체는 지휘자 김훈모 박사의 음악에 도취된 몸과 마음을 바친 지휘 스타일과 일체가 되어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 요구되는 낭만파 시대의 이 어려운 곡을 환상의 극치로 끌어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대에 서서 합창단원으로서 노래하는 대신 청중의 일원이 되어 이 아름다운 음악에 도취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멘델스존의 ‘엘리야’는 헨델의 ‘메시아’와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함께 3대 오라토리오 중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낭만파 시대에 작곡된 엘리야는 메시아나 천지창조같은 바로크나 클래식 시대의 음악과는 달리 그 곡이 웅장하며 섬세하기 때문에 대형 프로 교향악단과의 협연 없이는 그 진수를 보여줄 수 없는 곡이다. 따라서 엘리야 같은 대형 오라토리오를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합창단은 극히 드물다. 토론토에 크고 작은 수많은 대학 합창단과 지역사회 합창단이 있으나 이곡을 제대로 할 수있는 합창단은 토론토 한인합창단과 멘델스존 합창단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형 프로 교향악단을 고용하는데 만해도 수만불의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음악적인 수준과 재정능력을 겸비한 합창단은 그리 많지않다. 미국에서 온 솔로이스트들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수준과 능력을 갖춘 한인합창단을 가지게 된 것은 토론토 한인사회의 행운이라는 것이다. 뉴욕이나 LA에서도 이러한 수준의 한인 합창단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미국의 다른 한인합창단과 협연하는 기회와 토론토 한인합창단과 협연하는 기회가 겹치게 되면 주저하지 않고 토론토를 택할 것이라고. 수준이 높은 합창단과 협연하고 싶은 예술가 다운 생각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 수준의 합창단이면 자기들이 관여하고 있는 시카고의 한인합창단과 합세하여 합창곡 대곡중의 대곡인 베르디의 ‘레퀴엠’도 공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구체적인 구상을 해보기로 하였다. 이 곡을 하기위해서는 최소 80여명의 합창단원들과 대형 프로 교향악단을 필요로 한다. 이 일이 성사되어 토론토 한인사회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베르디 레퀴엠 공연을 선사할 수 있게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회가 오면 필자도 다시 무대에 서서 이 곡을 열창할 것임을 이 지면을 통해 약속한다.
이번 엘리야 공연은 임마뉴엘 토론토 한인연합교회 정성민 목사님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하는 기도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 기도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이글을 마친다.

(윗부분 생략)
선지자 엘리야 처럼 하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소리를 노래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멀리서 초대 손님으로 오신 분들,
박숙형, 신혜정, 진철민, 김기봉님,
그들의 영을 주관하시고 마음껏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 음악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당신이 살아 있음을 경험하게 하소서.
무대 위에서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당신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아래 생략) 

< 유종수 - 전 알고마대 교수 >

 

[사설] 새정치 공동선언, 말보다 실천

● 칼럼 2012. 11. 25. 15:44 Posted by SisaHan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새정치 공동선언도 발표했다. 두 후보 쪽이 “새정치 선언은 개혁의 시작”이라고 말했듯 정치개혁은 이제 첫 발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두 후보는 새정치 선언에서 경제민주화 등 5대 국정 현안에 대한 여야정 국정협의회 상설화, 좋은 일자리를 위한 노사정 협약,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인사제청과 해임건의권 보장,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 공천권을 국민에게 완전히 환원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두 후보의 새정치 선언을 지난 6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내놓은 정치쇄신안과 비교하면 박 후보가 상향식 공천을 위해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여야 동시 국민참여 경선을 제안했고, 두 후보는 국회의원 공천권을 국민에게 완전히 환원하겠다는 선에서 화답했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보장, 국회 윤리위와 선거구획정위의 외부인사 구성 등도 양쪽이 같다. 이 사항들은 대선 뒤 한시라도 빨리 입법을 서두르면 될 일이다. 박 후보가 검찰 개혁 방안으로 상설특검제를 제시한 데 대해 두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제안했다. 박 후보가 4년 중임제 개헌을 언급했지만 두 후보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두 후보가 여야정 국정협의회 등 협치 방안을 내놓은 반면 박 후보는 대통령의 정기국회 연설 정례화 정도를 내놓는 데 그쳤다.
 
두 후보가 새정치 실천을 위한 방안으로 정권교체와 국민연대를 제시했지만 추상적인 수준일 뿐 국민연대의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은 미흡한 점이다. 진보정당 등에서는 두 후보의 비례대표 확대 주장에서 더 나아가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논란이 됐던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지역구를 줄이는 과정에서 의원 정수를 조정한다’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합의문 발표 뒤에도 이 문장이 의원 정수 축소를 의미하는지를 놓고 양쪽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은 합의라기보다는 봉합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새정치, 정치개혁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과제다.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된다 해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추진하기란 녹록지 않다.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