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 마스코트의 이름이 ‘풀레코(Fuleco)’로 정해졌다. ‘풀레코’는 포르투갈어로 ‘축구(futebol)’와 ‘생태환경(ecologia)’을 합친 말이다.
‘풀레코’는 내년 6월 ‘미니 월드컵’ 형태로 열리는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부터 사용된다. 브라질 언론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인터넷 투표에서 이같이 결정됐다고 25일 보도했다.
 

170만 명이 참가한 인터넷 투표에서 ‘풀레코’는 48%를 얻어 31%와 21%에 그친 ‘아미주비(Amijubi: 우정+환희)’와 ‘주제코(Zuzeco: 파란색+생태환경)’를 제쳤다. 한편 공인구 제공사 아디다스가 지난 8월15일~9월2일 시행한 인터넷 투표에서 2014월드컵 공인구 명칭은 브라질 사람을 뜻하는 ‘브라주카’(Brazuca)로 정해졌다.


사람의 몸은 ‘세균의 덩어리’

● 건강 Life 2012. 12. 9. 18:54 Posted by SisaHan

몸무게의 2Kg, 무려 100조 마리

내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까. 아무리 청결하게 몸을 씻는다 해도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수보다 10배 많은 약 100조 마리의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가 우리 몸에 터 잡고 산다. 
그 무게를 다 합치면 1~2㎏에 이른다. 이들 미생물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건강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7년부터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를 세계 80개 연구소와 함께 벌이고 있다. 5년간 약 2000억원을 들인 이 사업의 목적은 사람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 몸의 미생물은 1만종에 이른다. 생물다양성을 연구하기 위해 아마존의 열대우림에 갈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을 탐험해야 할 판이다. 
현재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큰창자로 세균 수가 무려 4000종이었다. 이어 음식물을 씹는 이에 1300종, 코 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피부에 800종, 여성의 질에서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입속에만 적어도 5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연구로 인체는 수많은 미생물이 사는 생태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팔꿈치와 입속 등 부위마다 분포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며 사람마다 살아가는 미생물의 종류도 차이가 난다. 음식과 나이에 따라서도 미생물이 달라진다. 새롭게 드러난 미생물의 영향도 놀랍다.
 
최근 미국 연구진은 임신한 여성의 질에는 임신 전과 현저히 다른 미생물 집단이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롭게 주도권을 쥐는 미생물은 위장에서 흔히 젖을 소화하는 효소를 분비하는 박테리아였다.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이 박테리아의 세례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 덕분에 모유를 소화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 예는 새끼에게 자신의 배설물부터 먹이는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토끼의 똥 속에는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용한 세균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에 어미 토끼는 이것을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소화기능을 전달한다. 당연히 이런 세균 전달은 제왕절개를 통한 출산에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그 부작용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 아이다호 대학의 과학자들은 모유 속에서 무려 600종의 세균과 함께 아기는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올리고당이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이 당분은 바로 세균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유는 아기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세균도 먹여 살리는 것이다. 
피부에 사는 어떤 세균은 보습 효과를 낸다. 이 세균은 피부 세포가 분비하는 왁스질의 분비물을 먹고 사는데, 수분 층을 만들어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시킨다. 쥐 실험에서 드러난 ‘비만 세균’이 사람에게도 있는지도 관심거리다. 
이런 연구결과는 우리 몸의 세균은 결코 퇴치가 아니라 공존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과 유익한 미생물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깨져 병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유기농업과 비슷하다. 
우리 몸은 나와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공존하는 커다란 또 하나의 유기체인 셈이다.


안철수 출마에서 사퇴까지

안철수 후보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선거일을 딱 3개월 앞두고 시작된 그의 대선행보는 66일째인 23일, 후보 사퇴로 막을 내렸다. 
그의 첫 대선전략은 제3후보였다. 국민들은 그를 야권후보로 봤지만, 안 후보 본인은 새 정치와 정치쇄신을 구호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기존 정당과는 동일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야권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줬다. 그는 단일화에 관한 질문에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고, 국민이 그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논의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런 전략 탓인지 안 후보의 첫 대선행보는 문재인 후보와는 뚜렷하게 달랐다. 출마 선언 이튿날 국립묘지를 찾은 안 후보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3명의 대통령 묘역을 다 참배했다. 문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찾은 것과 비교됐다.
 
안 후보의 출마로 3자구도로 정립되면서 선거판은 요동쳤다. 9월21~22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9.7% 대 44.6%로 5%포인트 차로 이겼다. 두 주 전에는 오히려 박 후보가 안 후보를 6.5%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안 후보는 9월이 지나기 전에 첫번째 벽에 부딪쳤다. 사당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의혹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는 9월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정치쇄신을 내세운 안 후보가 두번째 부딪친 걸림돌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정치쇄신안이었다. 그는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 국회의원 수 100명 축소와 국고보조금 축소 등을 야심차게 제시했지만, 이 안은 보수 쪽보다는 오히려 진보진영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100명 수를 명시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를 든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이후였다. 
9월 중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문 후보가 갈수록 지지율이 오른 데 비해 안 후보의 지지율은 조금씩 내려갔다. 그는 10월5~6일 <한겨레> 조사에서 야권후보 지지도에서 38.7%를 얻어 49.8%를 얻은 문 후보에게 뒤졌다. 문 후보와의 경쟁에서 처음으로 역전됐다. 
안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 경쟁에서 관건인 호남 공략에 나섰다. 그는 문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남지역을 방문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그의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특히 호남의 여론이 안 후보에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안 후보는 11월5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야권 단일화를 위한 두 후보 회동을 제의했다. 문 후보가 수용함에 따라 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두 사람이 만나 “후보 등록 전에 단일화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가능한 한 늦추는 듯 보였다. ‘새정치 공동선언’을 끝내고 룰 협상을 하자는 안 후보의 의견에 따라 양쪽 실무진이 공동선언 협의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늦어졌다. 야권 지지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안 후보는 공동선언과 룰 협상을 함께 하자고 제의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일화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협상은 하루 만인 14일 논의가 중단됐다. 민주당 쪽의 발언 등을 문제 삼은 안 후보의 제동 때문이었다. 
닷새의 중단 끝에 두 후보가 18일 만난 뒤 19일부터 다시 룰 협상에 들어갔지만, 시기상 경선 등 여론조사 외에는 어렵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방안을 놓고도 문항 설계를 둘러싼 대립이 계속됐다. 문 후보는 지지도나 적합도로 할 것을 제의했지만, 안 후보 쪽은 양자 가상대결을 고수했다. 이런 와중에 21일 단일화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렸다. 안 후보로서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기회였다. 하지만 안 후보는 토론에서도 문 후보에게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 후보는 23일 오후 후보 등록을 위한 범죄경력증명서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직접 떼는 등 등록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막판에 후보 양보라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 김종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