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목사, 또 코란 불태워

● 교회소식 2012. 5. 5. 09:53 Posted by SisaHan
물의를 빚어 온 미국의 극단주의 목회자인 테리 존스(Jones) 목사가 또다시 코란을 불태워 현지와 세계 교계의 비판에 직면했다.

존스 목사는 이번에는 이란 정부가 현지인인 유세프 나다르카니(Nadarkhani) 목사를 구금하고 있는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지난 4월 28일 오후 자신이 이끄는 단체 도브 월드 아웃리치 센터(Dove World Outreach Center, 플로리다 주 게인스빌 소재) 앞에서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란과 마호메트의 초상을 소각했다.
존스 목사가 코란 소각을 감행할 때마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폭력을 동반한 반기독교·반미 시위가 일어나 현지 기독교인들은 물론 서구 기관과 단체가 피해를 입었다.


[1500자 칼럼] 피카소(Picasso)

● 칼럼 2012. 5. 5. 09:51 Posted by SisaHan
4월 28일(토),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하는 피카소 특별전을 갔다 왔다. 원래 전시 기간은 5월 1일 부터 8월 26일 까지인데, 회원들을 위해 특별히 문을 연 날이었다. 먼저 이 글은 전문가로서의 글이 아니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전시회에 대한 소개의 글임을 밝혀둔다. 사실 피카소처럼 잘 알려진 화가(예술가)는 없다. 그와 동시에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화가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 단편적으로 본 몇 점의 그림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심한 말로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을 그리지만, 그가 워낙 유명해서 그림이 비싸게 팔린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 자신도 그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보다 파괴하지 않나 생각했다. 사실 내 그림 감상 수준이라는 것이 아름답고 따뜻하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수준 밖에 되지 못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사실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빈센트 반 고호를 좋아했는데, 그 와는 반대되는 삶을 산 피카소를 은근히 싫어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가 어떤 과정을거쳐 왔으며, 그가 부분적인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작품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예술가란, 화가이든 작가이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고 부닥칠 수 있는 극한상황까지 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고는 그를 한 예술가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창작이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피카소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몇 해전 오타와의 미술관에서 그의 특별전을 했을 때였다. 친구 따라 우연히 간 전시회였고 그 때만 해도 피카소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때도 꽤 많은 작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가 그린 소들의 그림이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여러 점의 소를 한 곳에 모아 전시했는데,깜작 놀란 것은 처음에 그린 소일수록 정말 소 같았다. 마치 투우처럼 날카로운 뿔을내세운 것이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갈수록 선이 줄어들어 마지막에 그린 것은 어린애가 장난으로 선 몇 개 그려놓은 것이었다. 사실 보통사람의 눈에는 초기에 그린 소가 진짜 소같고 그리고 사실적으로 잘 그린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가 이 모든 과정을 걸쳐 초현실적인 소같지 않은 소에 도달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 소 그림이 있었지만 단 두 점만 있는 것이 아쉬웠다. 작품들을 그의 시대별로 구분해서 전시해 놓아 그의 작품의 변천사를 쉽게 알아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초기 작품이라할 청색시대(Blue Period)의 작품이 적었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도예 작품이 없었던 점도. 피카소가 정말 부러운 것은 거의 70여년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술 전 분야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조각, 도예, 발레 벽화까지…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파리의 피카소 박물관 소장품답게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고, 작품도 다양했다. 그 작품들을 언급하기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인상적인 작품들은 그의 여인들의 초상화였다. 첫, 공식적인 부인인 러시아의 발레리나 올가의 초상화로 시작하여, 도라 마, 그리고 마지막 여인이자 부인이었던 재크린 로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한국전쟁의 학살(The Massacre in Korea)’이었다. 전시 작품중 가장 큰 작품이어 한 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기계나 로봇같은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앞에 무방비로 서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온타리오 미술관에서는 1964년에 피카소의 특별전을 한 이래 이번이 두 번째로 하는 전시회라고 한다. 그림을 애호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가볼만한 전시회라고 생각한다. 한 화가의 작품이 어떻게 변했냐를 보는 이상으로 미술세계가 나아가서는 에술세계가 20세기에 들어 어떻게 변했는 가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남북관계가 이토록 나빠진 적은 없었다. 지난 20년래 최악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통중봉북’이라는 말로 북한을 더욱 자극했다. 북한 농지개혁 발언은 생뚱맞기 그지없다. 북을 압도하는 남의 군사력 발언도 국방장관이라면 몰라도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특히 ‘통중봉북’은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쯤 되면 대통령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첫째, 북한이 국제공조의 압박 속에서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북-중 간의 관계가 깊고 열려 있기 때문이다. ‘통중봉북’은 북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것이다. 북이 경기를 일으키는 흡수통일이란 말보다 더 직설적으로 위협하는 표현이다.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둘째, ‘통중’이란 표현은 중국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또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중국과 수교한 지 이미 20년이다. ‘통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새삼 그걸 강조하는 건 이때까지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왔다는 것인가? 하기야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강조한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적·시대착오적 외교정책이었으니, 중국은 ‘통중’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에게 냉전적 한-미-일 동맹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인가를 묻고 싶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요새 흔히 하는 말로 일종의 ‘꼼수’로 볼 것이다. 
셋째, 통중을 강조하는 건 워싱턴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임기 말에 다급하니까 중국과도 가까이 지내려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통중이 봉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이해해 줄 수 있다. 문제는 그 실효성이다. 이미 여러번 미국은 중국이야말로 북한에 대해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지렛대를 갖고 있는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워싱턴도 제대로 못했는데 서울이 독자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역작용을 염려할 것이다.
 
넷째, ‘봉북’이라는 발상의 위험성이다. 북의 ‘통미봉남’에 맞불을 놓겠다는 것인데, 통미봉남을 비웃음거리로 삼아온 게 누군가? 게다가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실제로 봉북 정책을 취했는데, 임기 말에 와서 새삼스럽게 그것을 봉북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그간 자기들이 뭘 하는지도 몰랐다는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비장의 수단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개성공단마저 폐쇄하겠다는 것이라면 누가 더 손해를 보게 될까? 
마지막으로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강경발언이 남북간 ‘적대적 의존관계’를 더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강경발언은 역설적으로 북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준다. 미국과 북한은 베이징에서 어렵사리 2.29 합의를 이뤘다. 그건 북한 외무성의 성과였다. 
그런데 ‘태양절’을 맞은 4월13일 ‘은하 3호’ 로켓이 발사됐다. 북의 강경 군부는 그 합의를 식은 죽 먹듯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한 셈이다. 실험에 성공하면 군부는 입지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설령 실패해도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김정은 체제를 유지시키는 힘이 여전히 군부에 있음을 보여줄 또 다른 기회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구실’만 있으면 핵실험도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강경발언에 앞장서고 있으니, 북한 군부는 얼씨구 좋다는 식으로 더욱 강경한 선택을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라는 말도 그렇지만 대통령이 극단적 발언을 하면 장차관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침묵이야말로 금과 같은 가치가 있고 역사적인 무게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음 대통령은 제발 평화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기에 그만큼 입이 무거운 분이 되었으면 한다.

< 한완상 - 전 부총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