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중국해에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겉으로는 중국과 일본,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영토분쟁이지만, 그 배후엔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결이 도사리고 있다. 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미-중의 갈등·대립이 아니라 화해·협력이 절실한 우리나라로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일본 이름 센카쿠 열도) 국유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즉각 성명을 내 “일본의 일방적인 조처는 불법이고 무효”라며 “단호하게 주권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중국해의 황옌다오(필리핀 이름 스카버러 섬)를 둘러싼 중-필리핀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의 관영매체와 필리핀 대변인이 서로 귀찮은 ‘모기’와 ‘조심하라’와 같은 막말을 교환한 데 이어 갈등 수역 부근에서 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필리핀이 지난 2일부터 미국과 민다나오해에서 합동훈련을 하자, 중국도 어제부터 5일간 저장성 부근 해역에서 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필리핀을 동시에 겨냥한 무력시위다. 이런 갈등의 표면 뒤에서 미-중 신경전도 치열하다. 아세안지역포럼을 앞두고 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그제 중국의 코앞인 몽골에서 정치개혁 없는 중국의 성장전략에 직격탄을 날렸다. 순방 일정도 일본-몽골-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순으로 짜, 중국 포위 의도를 노골화했다. 특히 중국의 입김이 강한 라오스 방문은 존 덜레스 전 국무장관이 1955년 입헌군주제 체제의 라오스를 방문한 이래 57년 만이다.
 
미-중 갈등과 지역 긴장의 고조는 우리나라에 전혀 득 될 게 없다. 미국의 압박 속에서 진행된 한-일 군사협정 소동이나 일본의 우경화·재무장화 움직임도 그런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갈등하는 두 거인 사이에서 균형자·조정자 노릇을 하긴 어렵다 해도 그를 완화하고 완충하는 게 우리 국익에 맞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입체적이고 균형있는 외교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한마당] ‘화장발’과 ‘생얼’

● 칼럼 2012. 7. 16. 09:05 Posted by SisaHan
말과 구호의 성찬이 차려지고 있다. 모두가 사회적 약자를 위하겠다고 한다.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니, 진보정당의 의제가 민주당의 정책이 되고, 민주당의 정책이 급기야 여당 후보의 구호로 등장한다. 정당들과 후보들의 놀라운 변신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듯한 공약과 구호가 얼마나 표를 얻기 위한 속임수가 될 수 있는지 이명박 정권을 겪고 나서 이미 확실히 알았다. 이명박 자신이 말했듯이 “선거 때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화장한 얼굴, 가면 쓴 얼굴에 속아 넘어가고, 장밋빛 공약과 구호에 흔들린다. 

지도자의 ‘생얼’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옛날부터 동서의 성인들이 말해온 것들이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 아니라 과거의 행동, 특히 젊은 시절의 행동을 봐야 한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젊은 시절에 거의 결정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니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행동보다 더 좋은 참고자료가 없다. 
둘째,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서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봐야 한다. 명백히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국민 모두’를 말하는 것은 대체로 허구다. 셋째, 그 당사자를 보기보다는 가까이에 누가 있는지를 봐야 하고, 누가 주로 그를 지지하는지를 봐야 한다. 친구나 측근이 바로 그 사람을 말해주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과거 젊은 시절에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웠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런데 후보자들이 공익 운운한다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말로만 보면 과거 공안사건 담당한 판검사들만큼 국가, 공익을 많이 떠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고시공부의 동기가 대체로 그러하지만, 재임 중에도 권력의 요구에 충실하였고, 퇴임한 뒤에도 온갖 전관예우의 단물을 다 누리지 않았는가? 한국에서 공익을 추구하자면 힘있는 세력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큰 위험과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 정도의 자기희생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익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쓴 적이 있는지, 실제 약자를 대변하는 일을 했는지를 보면 된다.

70년대식 국가안보관을 가진 박근혜 여당 대선후보가 이제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니 그것을 내걸고 ‘미래세력’임을 자임하려 한다. 나는 여기서 부친이 강탈한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서 10년 동안 재직하면서 많은 연봉을 챙긴 일은 거론하지 않겠다. 
그는 과거 한나라당 대표로서 수많은 경제개혁 사안이 국회에서 크게 논란이 될 때 그 중심에 있었고, 또 이명박 정권 내내 가장 영향력 있는 여당의원으로 있었다. 당대표로서 그리고 2007년 여권 대선후보로서 그는 직접 조세감면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고, ‘규제 제로’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규제 법안을 무산시킬 때 여당의 다른 계파 지도자인 그는 비판 한마디 한 적이 없고, 재벌의 중소기업 지배,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한 대기업 봐주기가 그렇게 문제가 될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지금 그의 최측근에는 ‘줄-푸-세’를 주창했던 전문가, 삼성의 고문 등 경제민주화의 정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그가 노동자나 빈민의 처지에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그냥 선거 구호로 내세울 정도의 호락호락한 가치와 정책이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그것을 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지금 미주에 세워진 4천여 교회, 한국 6만여 교회 그리고 미국 40만 교회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론의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전투적인 교회의 용맹스런 모습을 상실하고 패배의식이 짙어진 연약한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영원한 불구자가 된 것처럼 힘을 못쓰고, 망한 기업처럼 영광이 떠나고, 날개 부러진 새처럼 날아갈 생각조차 포기한 무력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든 교파를 포함해서 지상교회의 80%는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교회 운영 자체에 급급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교회를 세우신 근본적인 목적을 다시 재조명해 보아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28장, 막16장, 눅24장, 요20:2절 이하, 사도행전 1장에 나타난 주님의 지상명령을 제대로 수행하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신앙고백이 분명한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에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최대의 위기는 교회의 변질입니다. 교회가 복음 전파의 사명과 능력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어둠과 부패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설교가 복음적인 것 보다는 사회적인 이슈를 주로 다루는 복음을 상실한 교회론이 근본적인 사회 몰락의 원인이 됩니다.
이제 큰빛교회 창립 28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 서서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합니다. 주께서는 친히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고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침투하지 못한다 하셨기 때문 입니다. 교회는 원수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패배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바라보면 항상 실망스럽지만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인 우리들은 거룩한 신부의 영성을 속히 회복해야 합니다. 제자훈련을 아무리 해도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교회에서 봉사와 선교에 약한 이유는 너무 훈련에 집착하다 보니까 실제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거룩함과 순결함을 잃으면 사용받지 못합니다. 목회자가 수 십년 설교를 했어도 후에 남는 것은 목회자의 삶인 것처럼 차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면서 내릴 수 밖에 없는 결론은 우리들이 먼저 예수님의 삶을 본 받는 데 힘쓰는 것 입니다.
우리들이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면 사람들은 복음을 겸손히 듣게 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힘쓸 것은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을 더 열심히 바라보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 입니다.

< 임현수 목사 - 토론토 큰빛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