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각 교단들 100주년 총회

● 교회소식 2015. 9. 18. 17:09 Posted by SisaHan

예장 합동·통합, 기장 등 새 다짐… 대신·백석은 교단통합

선교130주년이며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 기독교의 장자교단들이 100주년 총회를 개최했다.

예장 합동은 제100회 총회를 9월14일 대구 반야월교회(담임 이승희 목사)에서 총대 1,465명(목사 734명, 장로 731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 18일까지 각종 안건들을 처리한다.
총회에서 직전 부총회장이었던 박무용 목사(대구수성노회 황금교회)가 총대들의 박수 속에 총회장에 추대됐다. 부총회장은 투표 끝에 김선규 목사(평양제일노회 성현교회)가 당선됐다.
박무용 신임 총회장은 “역사적인 제100회 총회를 맞아 숭고한 신앙의 전통을 돌아보며, 당면한 여러 과제 앞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개혁주의 신앙 확립에 힘쓰고, 정책 중심의 총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미자립교회 지원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당선 소감을 전했다.

예장 통합 제100회 총회가 역시 14일 청주상당교회(담임 정삼수 목사)에서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고후 5:18-21, 창 33:1-4)!’를 주제로 개막,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개회예배에서 총회장에 선출될 부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고후 5:18-21, 창 33:1-4)’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채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을 사랑하사 제100회 총회를 은혜 가운데 개회하도록 허락하셨다”며 “특히 금년은 광복 70주년,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이 같이 뜻깊은 해에 100회 총회를 맞이하니 그 의미가 더욱 크다. 1912년 총회 창립 이래 교단을 하나님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고 전했다.
임원 선거에서 부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총회장을 승계 했으며, 목사부총회장에는 이성희 목사(연동교회)가 선출됐다.

한국기독교장로회도 제100회 총회를 14일~17일 강원도 원주 영강교회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를 주제로 열었다. 기장 교단은 100회 총회를 기념해 모든 예배와 행사를 ‘광야’라는 컨셉트에 맞춰 진행했다. 총회장 황용대 목사는 ‘기억하는가? 기장의 발걸음을!’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잃으면서 타락하기 시작했고, 신약에서 예수님의 성만찬을 통해 예수를 통한 새로운 세계를 약속 받았다”며 “이번 총회는 기억을 강조하고 기장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인하는 총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회 임원선거는 새 총회장으로 최부옥 목사(서울동노회 양무리교회)를 선출됐다. 목사부총회장에는 권오륜 발음교회 목사가 선출됐다.

한편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과 백석이 통합해 한 교단이 됐다. 두 교단은 14일 수원과학대학에서 ‘통합 총회’를 열고, 통합총회장에 장종현 목사를 추대했다. ‘믿음으로 하나되어 사랑하는 총회’(창 2:24~25)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총회에는 양측 합쳐 1,330명의 총대가 등록·참석했으며, 통합된 교단의 규모는 8천 교회 이상이라고 주최측은 밝혔다. 통합된 교단의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로 하고, 제1부총회장 이종승 목사(백석), 제2부총회장 유충국 목사(대신), 제3부총회장 이주훈 목사(백석), 제4부총회장 박근상 목사(대신),등을 추대했다. 다음 회기부터는 백석-대신 측에서 차례로 1년씩 총회장을 맡기로 했다.



KAPC 캐나다노회 제64회 가을 정기노회에 참석한 목사 등 총대들.



“본 보이며 낮아져 섬기자”
KAPC 가을노회 열린한마음 전상규 목사 청빙 등 회무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캐나다노회(노회장 송영인 코너스톤교회 담임목사)가 제64회 2015 가을 정기노회를 9월14일 오후 빌라델비아 장로교회(담임 김경진 목사)에서 열었다.
노회는 이날 먼저 개회예배를 드리고 성찬예식을 가진 뒤 회무처리에 들어갔다.


최기정 부노회장(예본교회 담임목사) 사회로 드린 예배는 이경석 장로부노회장(빌라델비아장로교회)의 기도에 이어 송영인 목사가 ‘본을 보였노라’(눅 13: 1~`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송 목사는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다.”고 강조하고 “주 예수님이 오시는 날까지 담대하게 주님을 따라가며 본을 보이고, 좀 더 낮아져서 섬기는 믿음의 종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을 전했다. 예배는 김경진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진 성찬예식은 지근혁 목사(온세상장로교회 담임)의 집례로 김혁기 목사(사랑의 교회 담임)가 기도하고 지 목사가 ‘성찬식의 결단’(고전 11: 23~29)이라는 제목의 권면의 말씀을 전한 뒤 이경석 장로와 허헌 장로(가든교회)가 분병과 분잔을 하여 진행됐다. 성찬식은 최영철 목사(안디옥교회 담임)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회무에서는 열린한마음교회 새 담임목사로 결정된 전상규 목사 청빙을 허락하고 새로남교회의 ‘그레이스 힐 교회’(담임 지광이 목사)로의 교명변경을 허락했다. 또 김용원 전도사(소망교회)의 목사안수건도 통과됐다.


노회는 이날 밤 폐회예배를 드리고 마쳤다. 노회장 송영인 목사 인도로 드린 폐회예배는 김덕원 목사(꽃동산교회 담임)가 기도한 뒤 송 목사가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 1~4)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서인구 목사(소망교회 담임) 축도로 예배와 노회가 마무리 됐다.


< 문의: 519-690-2531 >



[평신도 글마당] 인간과 종교

● 교회소식 2015. 9. 11. 13:05 Posted by SisaHan

하늘과 땅 그리고 만물을 지으신 이가 반드시 있으니 이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창:1:1, 2:1). 하나님께서는 특히 인간에게만 자신의 영을 호흡으로 불어 넣어 주셔서 창조하셨다. 따라서 식물은 육만 있고 동물은 육과 혼을 지녔고 인간만이 육과 영혼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 때문에 세상에서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하고 영적 동물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을 만든 창조주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의 능력과 이념 및 사상을 믿고 삶의 근간으로 삼아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종교는 무엇인가 살펴보면 각 종교는 피조물인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마다 인간이 주님으로 되어 있다. 단지 기독교만이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본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최초 인간 아담 하와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됨으로써 영생에서 사망에 이르자 그때부터 인간은 죽음을 무서워하였다. 생로병사로 죽어가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력함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어떤 초인간적인 능력의 신관(神觀)을 추구하며 마침내 사후에 내세의 구원의 소망까지도 갖게 됨으로써 종교의 발생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의 발생 과정을 보면 그 당시의 문화, 생활여건, 발생지역 각 종족에 따른 훌륭한 지도자의 탄생 등으로 종교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종교마다 신관과 구원관 심지어 이념과 사상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현재 주요 종교 일람표를 보면 18개의 종교가 제한된 지역에서 각각 발생하였다. 그러나 종교는 전파가 생명인데 18개 중 모르는 종교가 대부분이다. 단 기독교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종교는 언제나 그 존재론적 면에서 초월적인 실재론에 입각한 신관을 갖는 신앙과 체험에서 그 중심 내용의 특징과 본성은 사랑의 체험으로 이는 초월적 절대자인 실재자로부터 주어지는 사랑에 의하여 구원을 받으므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모든 종교의 사명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권선징악, 또한 인간을 사랑하는 이념과 사상이 있어 근본 진리는 동일 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마다 이념과 사상, 교리와 의식, 구원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이 발생하고 또
한 근본 진리에서 벗어나는 등 종교간 교파간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어 갔는가? 오늘날에도 기독교와 마호메트교 사이의 투쟁, 마호메트교 안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교파간의 싸움으로 인간 서로가 죽이고 죽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에게 피조물들은 절대 순종해야 할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다.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를지라도 모든 인간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 상에서 죽게 하시고 3일만에 부활로 승천하게 하셨다. 또한 다시 보내시어 백보좌 심판에서 모든 인간에 대해 영생과 영벌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백보좌 심판대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이 땅에서 행하였던 행실이 낱낱이 기록된 책이고 하나는 구원 받는 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책이다. 이 책들의 내용과 심판의 기준은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만이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끝으로 세상의 어느 종교의 교주(敎主)가 천지만물을 만들었으며 또한 주검에서 부활한 적이 있었는가? 하물며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사후의 영의 나라를 창조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3)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



몬트리올에서 자주 보는 사인 중의 하나가 ’Detour’라는 사인입니다. 몬트리올엔 겨울철과 공사철 두 철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길이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사인이지요.
바쁜 중에 만날 때면 괜히 애꿎은 공사장 근로자들과 시청 직원들을 욕하기도 합니다. 불편하기도 하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요.
그러나 그 사인이 없어서 그 길로 바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을 겁니다. 제가 아는 분은 이 사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 답니다. 그리고 보니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위한 길이고 사는 길이었네요.좀 불편하기는 해도요.


하나님도 때론 길을 돌리십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 앞의 길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7,18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detour 사인을 두셨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땅을 경유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빠른 길로 가면 좋겠지만 그 길에는 길목마다 그 지역 나라의 주둔군이 배치되어 있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갈 수 있기에 하나님은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늦기는 해도, 돌아가는 수고가 있기는 해도 돌아갔기에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빠른 길을 찾습니다. 빠른 응답을 기다립니다. 빠른 복을 사모합니다. 그것이 형통함이고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그러면 의심하고 실망하고 불신하고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가는 길도, 더디더라도, 그 길 또한 주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알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빠른 길은 오히려 해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혹 하나님의 도움으로 빠른 길도 통과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기도 응답이 빨리왔으면 하지요? 그러나 늦어져도, 더뎌도, 너무 초조해 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앞길도, 필요도 잘 아십니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를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지요?
그러면 응답뿐만이 아니라 응답의 때도 맡기세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더딘 길도 주님이 동행하는 길임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13:21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걸음을 인도하시고 계시네요.
몬트리올과 토론토의 detour는 우리가 알아서 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생명의 길 가다 만나는Detour는 주님이 친히 인도하십니다. 참으로 감사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혹 가던 갈 한복판에 크게 자리잡은 Detour 사인 보고 계신가요? 아니면 투덜대며 벌써 돌아가는 길로 접어 들었나요? 서로 원망하기 보단 크게 감사하면서, 목청 높여 찬양하며 드라이브 하면 어떨까요?
그 길도 하나님이 열어주신 은혜의 길이거든요.
오늘도 막다른 길 앞에서 씩씩 대고 있을 주님의 자녀 모두에게 평안을 기원합니다.

< 김진식 목사 - 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평신도 글마당] 낚시

● 교회소식 2015. 8. 28. 13:29 Posted by SisaHan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해들어 낚시를 자주 다녀왔습니다. 낚시를 하다보니 낚시에서도 느끼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몇마리 잡았어요?”하고 묻습니다. 마리 수에 따라 “와!”, 아니면 “애걔!”라는 대꾸를 하십니다. 그러나 마리 수와 관계없이 수없이 여러 번 미끼를 갈아 끼우고 던지기를 반복하였기에, 그 열정(?)은 칭찬 받을만한 것 입니다. 놓친 물고기가 크다고 하는데, 정말 대부분 놓친 고기가 클 확률도 높습니다. 고기가 커서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호수에 낚시 하나 던져 놓고, 거기에 물고기가 걸려들기를 원하는 낚시꾼의 마음이 허황돼 보이기도 합니다. 곧은 낚싯바늘을 강물에 던져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은 누구나 다 아시는 인물입니다. 강태공 만큼은 아니지만 낚시는 기다림 입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달린 미끼를 먹을 때의 챤스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쩌면 얄팍한 인간의 마음 같기도 하지만, 배울 점과 느끼는 감정은 참 많습니다.
낚시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고기를 잡을 것인가에 따라서, 낚싯대를 골라야 합니다. 낚싯줄도 그 굵기가 수없이 많고, 낚싯바늘도 크기가 아주 다양합니다. 미끼의 종류도 수 없이 많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려면, 상비약도 챙겨야 하고, 음식과 빈봉투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낚시터에서는 몫이 좋은 곳이 따로 있습니다. 장소와, 때도 중요 합니다.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습니다. 노력과 정성을 다 하지 못하고 수고의 대가를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낚시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낚시를 하면서 어부의 마음도 읽게 됩니다. 생선은 우리가 기르는 것이 아니요 창조주께서 기르십니다. 스스로 자라는 생물을 노력과 기술과 정성을 합하여 취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배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이미 낚시에 도통(?) 하신 것 같습니다. 물고기와의 밀고 당기는 씨름은 경력에 따라 더욱 숙달되게 됩니다. 낚싯대를 잡고 있는 손으로 전해 오는 감각으로 물고기가 크다, 작다를 판단합니다. 너무 큰 고기는 억지로 끌어 올릴 수 없습니다. 낚싯줄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줄을 풀어주기도 하며 살살 달래어서 끌어 와야 합니다. 다 잡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뜰채 바로 앞에서 줄을 끊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서툴렀고, 준비가 완전하지 못하였고, 때와 장소를 구분하기에 서툴렀습니다. 끈기와 인내도 부족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뚫고 낚시터에 도착하면 동이 틉니다. 그러면 좋은 몫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아침의 고요함과 떠오르는 여명의 아침은,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공짜입니다. 수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왔습니다만, 차마 아버지의 귀한 선물을 사진에 담기엔 역부족 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공짜로 주셨지만, 수고와 노력이 없다면, 부지런하지 못하다면,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다면, 그 은혜에 감동을 받았다면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겠습니다. 여기에도 낚시의 이론이 성립됩니다. 끈기, 인내, 때와 장소, 부지런함과 정성, 그리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입니다. 요즘, 아내가 낚시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함께하니 기쁨이 열 배 입니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