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도 “내년 개최는 망상”… 과연 열릴 수 있나
붕 떠버린 ‘부흥올림픽’… 여전히 개최 여부 안갯속
코로나19로 1년 미뤘지만 아베 총리는 취소 가능성 시사
의료 전문가들 대부분 부정적 전망, 경제적 부담도 커
“올림픽 예산으로 방역부터” 커지는 개최 반대 목소리
지난달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20 도쿄올림픽 1년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곳곳에서 개최 반대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이 2013년 ‘부흥올림픽’을 내세우며 대회 유치권을 따낸 지 7년 만의 일이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연기하는 대신 대회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2021년에 열리지만, 명칭을 ‘2020 도쿄올림픽’으로 유지하기로 했고, 대회 일정도 2020년 7월24일·8월25일(패럴림픽) 예정이었던 것을 2021년 7월23일·8월24일로 미뤘다. 기존 일정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연기 결정으로부터 1달이 지난 지금, 도쿄올림픽 개최는 다시 안갯속이다. “취소는 없다”던 아베 총리마저 의회에 나와 도쿄올림픽 취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2020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최근 상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아베 총리는 무슨 말을 했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 참의원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올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개최할 수 없다”고 밝혔다.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장기전도 각오해야 한다.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로 대회를 개최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면 대회를 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발언이 나온 맥락은?
최근 일본에서는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코로나19 관련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매일 수백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선 ‘올림픽이 아니라 경제 회복과 방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닛칸스포츠>는 25일 칼럼에서 “하루빨리 도쿄올림픽 준비를 중단하고 올림픽 관련 예산을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칼럼을 통해 “도쿄올림픽 개최는 망상에 가깝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인기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또한 “상황이 변했으니 현실적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대회 연기에 돈을 쏟아붓고도 무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당장 중단하는 것보다 훨씬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장이 28일 닛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코로나19가 2021년까지 종식되지 않는다면 도쿄올림픽은 취소된다”고 밝히며 ‘차라리 지금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전문가들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일본의사회 요코쿠라 요시타케 회장은 28일 “유효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내년) 올림픽 개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백신 개발에 12∼18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개막까지 1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기타무라 요시히로 나가노 보건 의료대학 특임 교수는 26일 라디오 방송에서 2021년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묻자 “0%”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감염자 감소, 시민들의 자가 격리, 의료 보건 역량 증가 등이 없는 한 비상사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일본 내 코로나19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올림픽은 전 세계가 참여하는 국제 행사이기 때문이다. 참가 선수만 1만명이 넘는다. 이와타 겐타로 고베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외신 기자들과 만나 “일본은 내년 여름까지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모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경제적 피해는?
올림픽 연기가 결정된 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연기로 생기는) 추가 비용이 수천억엔(수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포츠 경제학자 마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학 명예교수는 도쿄올림픽 1년 연기로 발생하는 손실액이 6408억엔(약 7조3984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민간 경제도 도쿄올림픽에 맞춰있던 숙박 예약 등이 줄줄이 취소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마저 올림픽 연기로 인한 추가 비용 대부분을 일본 쪽이 부담하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이피(AP)통신>은 이에 대해 “결국 비용을 부담하는 건 일본 납세자”라고 지적했다. 만약 내년에도 코로나19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조원에 이르는 연기 비용을 지불하고도 대회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그래서, 개막은?
아직은 내년 도쿄올림픽 개막에 대해 확언할 순 없다. 다만 일본 내부에서 취소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도쿄올림픽은 추진 때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 방사능 문제를 은폐한다는 의혹부터 코로나19 확진자 검사에 소홀하다는 비판까지,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은 1940년 2차 대전으로 일본이 유치한 도쿄올림픽이 취소되고, 1980년엔 미소 냉전 대결로 반쪽이 된 모스크바올림픽을 떠올리며 40년 주기의 ‘올림픽 잔혹사’까지 꺼내고 있다. 일본의 ‘부흥올림픽’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이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