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 노벨과학상 연속 수상에서 배워야 할 것

● 칼럼 2016. 10. 11. 18:1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3일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이력은 눈부시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처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래로 지금까지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문학상과 평화상을 합치면 25명에 이른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로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 노벨상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섰다.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것은 일차로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오랜 관심과 투자 덕분이다. 그 기원을 따지면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지 정부는 일찍부터 과학 선진국에 유학생을 파견했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1901년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오르기도 했다. 이어 1917년 이화학연구소를 세운 뒤로 30여년 만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일본이 기초과학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자기만의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일본을 기초과학 강국으로 만든 또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뽑힌 오스미 교수도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신념으로 ‘세포의 분해’라는 낯선 분야에 몰두한 것이 수상의 영예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우리 사회가 만약 노벨상을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을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가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기초과학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는 조급한 투자로는 노벨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노벨상 이전에 국력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다.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가능성 있는 인재들이 기초학문 분야를 외면하고 지금처럼 의대로만, 그것도 성형외과 같은 돈벌이하기 좋은 곳으로만 몰리는 것은 커다란 낭비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고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탓이다. 이런 근시안적인 분위기에서는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는 큰 업적이 나올 수 없다. 국가의 장기적인 관심과 함께 사회 분위기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한마당] 초심, 어머니의 초심

● 칼럼 2016. 9. 29. 19:1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관학교를 갓 나와 임관한 초임장교는 군인정신이 철철 넘쳐난다. 그에게 적당히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자세부터가 거의 부동이다. 그런데 중위, 대위가 되면 여유가 생기고 요령이 늘어 능글 맞아진다. 적당히 타협도 하고 자세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좋게 얘기하면 군대생활에 이력이 붙으면서 잘 적응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훈련소를 막 나온 신병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행동에 절도가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밥그릇수가 불어나고 후임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내 ‘나사’가 풀리고 군기도 흐물흐물 해진다. 그게 산전수전 다 겪어 제대를 앞둔 군대 말년이 되면 언제 신병훈련소를 다녀왔는지, ‘올챙이’ 시절은 까마득히 잊고는 ‘올챙이’들을 부리고 괴롭히며 손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시법연수원을 나와 재조 법관으로 임용된 초임 판·검사들도 처음의 근무태도나 정신상태는 훈련소를 막 나온 군인들과 다를 바가 없이 소명의식이 뚜렷하다. 배우고 익힌대로 법전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 변호사나 사건 관계인을 만나는 것도 무서무서 꺼려한다. 그런데 한해 두해 해가 가면 세상 돌아가는 인정사정도 감안하게 되고, 정치인들의 입발린 감언이설에도 은근슬쩍 넘어가 주곤 한다.


어디 군인이나 법관들 뿐인가. 크고 작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도, 동호인이나 봉사단체에 발을 디딘 회원이나 임원도, 헌신과 봉사의 직분을 수여받은 공직과 성직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항상 그 자세와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일하며 섬기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렵다.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 사이도 갈라서는 변심이 비일비재할 진대, 이기주의의 경쟁터인 세상에선 오죽하랴. 그 것은 사람들의 놀라운 현실 적응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각이 무뎌지는 반복의 효과이기도 하며, 어쩌면 철학과 소신의 부재에도 기인할 것이다.
신학교를 갓 나온 전도사들, 목사안수를 받으며 성직의 반열에 오르는 기쁨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감격하며 눈물 흘리던 목회자들도, 영혼구원의 막중한 사명에 내 한몸 바쳐 가시밭길 마다않으리 다졌던 초심은 현실 앞에 차츰 멀어져 간다. 비포장 오솔길 보다 이왕이면 번화한 융단 길을 찾게 되고, 길 잃은 한 마리 가엾은 양 보다는 주위를 맴도는 살찌고 윤기 흐르는 양떼들에게 더 애착이 간다. 고되고 가난한 산골 목자로 남기보다 배부르고 안락한 큰 물에서 추앙받는 목사님으로 변해가는 것을 자신의 성장과 부흥·발전으로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헌법을 지키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일념으로 헌신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했던 대통령 가운데 그 약속을 초지일관(初志一貫)한 인물을 몇이나 찾아 볼 수 있는가. 취임 때의 초심을 잃지않은 그 분이야말로 위인이고 나라의 영웅이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로 남을 터이지만…. 언제 약속했느냐는 듯 공약을 내팽개치고, 짐이 언제 국민을 위하며 섬기겠다고 표를 구걸했느냐는 태도로 군림하며 찍어 누르고 귀 막아 외면하고 제멋대로인, 아예 정반대의 길을 가는 막무가내 변신 대통령이 버젓이, 오히려 큰소리를 쳐서 국민들을 심한 스트레스로 내모는 실정이 아니던가.
“원래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고 죄인들이며 간사하다”는, 사람들 스스로의 낯뜨거운 자기 평가가 말해주듯 인간본성에서 ‘처음과 끝이 같다’는 ‘시종여일’(始終如一)의 DNA는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변심과 변신이 자연스런 인간습성으로 나타는 것이고 그걸 스스로 합리화하느라 지혜롭게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사자성어도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변화와 변신, 좋은 일이다. 그것이 진·선·미(眞·善·美)로의 바뀜이라면 백번 천번 환영할 일이다.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워지고 더 진실해지고 선하고 의로워지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많은 이웃과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 대부분은 거짓과 사악함과 추한 모습들로, 그 것이 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고 여기며 기를 쓰고 바뀌어 가는 게 세상사요 인간사가 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변치않고 초심을 지키는 이는 아마도 전무후무 유일하게 예수님 뿐일 것 같다. 하지만 또 한 분이 계시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세상의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 아닐까. 자식이 미워도 고와도, 어릴 때도 장성한 어른이어도, 반항하며 딴 길로 달아나 속을 썩였어도, 그저 내 자식 사랑은 처음이나 끝이나 변하는 어머니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면서 왜 어머니의 ‘처음처럼’은 배우고 익혀서 깊이 새겨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잇단 경주 지진, 안전지대라 생각말라

● 칼럼 2016. 9. 29. 19: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주일 전 규모 5.8의 큰 지진이 일어난 경북 경주에서 19일 밤 규모 4.5의 지진이 또 일어났다. 국민안전처 누리집(홈페이지)은 이번에도 곧바로 먹통이 됐다. 지진이 예측하기 어려운 재해라고는 하나, 정부의 지진 대처가 얼마나 어설픈 수준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경주 지진’은 규모나 여진 횟수에서나 현세대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가 결코 아님을 일깨웠다. 재산 피해를 보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들을 보듬고, 지금부터라도 지진 대비를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과거 기록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규모 7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앞으로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진에 대해 알리고, 일어날 경우 대처 요령을 잘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일본과 같이 지진이 도달하기 전에 경보를 알리는 수준까지는 못하더라도, 지진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관련 정보를 전파하는 체계는 제대로 갖춰야 한다. 지진에 대한 사전 대비는 강화하는 정도에 비례해 큰 비용이 든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있는 시설부터 안전 조처를 강화하고 대상을 순차로 확대해나가야 한다.
핵발전소는 지진에 뒤따르는 위험성이 가장 큰 시설물이다. 고리, 월성 핵발전소의 전면 가동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그동안 밀어붙이기 식으로 핵발전 확대를 추진해온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 과정에서도 주변 지역의 활동성 단층만 영향을 분석하고, 활성 단층은 아예 무시했다. 공청회도 여는 둥 마는 둥 했다. 건설을 일단 보류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핵발전 정책의 방향을 새로 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활성 단층에 대한 정밀 조사는 최대한 신속히 착수해야 한다.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양산단층을 비롯해 많은 활성 단층이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고리 1~4호기 원전을 지었을 만큼 우리는 지진에 무방비로 지내왔다. 옛 소방방재청은 2009년 20억원을 들여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에 대한 지질조사를 대충 한 뒤 발표하려 했다가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 자문그룹의 지적을 받고 폐기했다고 한다. 활성 단층 조사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 만큼 서둘러야 한다.


[칼럼] 뭐가 두려워 ‘최순실 스캔들’ 증인채택 막나

● 칼럼 2016. 9. 29. 19:1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통령의 ‘비선 측근’이 케이스포츠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한겨레> 보도를 청와대가 부인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대변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행사에 참여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오만한 모습이다.

국민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에 사실이 아니라면 뭐가 아닌지 밝힐 생각은 않고 무작정 깔아뭉개는 건 정치권력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뿐더러 의혹만 키우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 기간에 열린 한불 융합요리 행사에 미르가 참여했다는데, 도대체 어떤 경위로 참여한 것인지는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청와대가 이런 식이니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국회에서 이 의혹을 다루는 국정감사에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모금과 관련한 모든 증인의 채택에 반대했다고 한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치공세에 불과하고 기업의 자율적 모금은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라는 게 반대 이유라는데, 말이 되질 않는다. 대통령의 ‘비선 측근’이 재단 이사장 임명에 개입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다. ‘권력형 비리 의혹’의 실체를 파헤쳐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건 국회의 당연한 의무다. 바로 이것을 하라고 국정감사라는 제도를 둔 것이다.


국회는 이번 국감에서 창립총회 회의록마저 위조한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 설립승인서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초고속으로 내준 경위와 전경련이 기업들의 모금에 앞장선 이유, 그리고 이 과정에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이를 위해선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승철 부회장 등 전경련 간부들과, 모금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그리고 ‘비선 측근’으로 지목된 최순실씨 등이 반드시 국회에 나와야 할 것이다.
재계 인사들의 국회 출석이 경제에 부담을 준다고 하는데 진정 기업을 괴롭히는 건 근본도 없는 재단에 수백억원을 내도록 압박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명분 없는 증인채택 반대 논리를 즉각 거둬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