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곳곳에 ‘박근혜 리스크’

● 칼럼 2016. 7. 4. 16:48 Posted by SisaHan

총선 뒤 한 심리학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권력, 후기 구도에 집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기사(김태형 <프레시안> 인터뷰)를 봤다.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큰 유형이라 세상에 방어막을 치고”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간의 여러 심리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신공항’ 논란에도 사과를 끝까지 거부하는 걸 보면 역시 이런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협치할 자세가 안 돼 있으면 ‘정치’ 자체가 소모적 정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3당 체제의 국회 대표연설이 모처럼 정쟁 대신 정책경쟁이 됐다며 박수를 받고 있지만, 문제는 역시 대통령이다.

진행 중인 갈등 사안의 상당수가 대통령 때문에 안 풀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세월호 문제를 보자. 특별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맞서 있는데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 새 장관이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후 대통령을 대면해 세월호관련 얘기를 한적이 한번도 없단다. 논란의 핵심 쟁점은 결국 대통령의 당일 행적인데, 부끄러운 짓 하느라 한눈판 게 아니라면, 대통령과 참모진 모두 사건 발생 직후 안이하게 판단하는 바람에 구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강의 행적이라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진심으로 사죄할 자세만 갖는다면 국회와 특조위 안팎에서 그렇게 맞부딪칠 필요도, 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이유도 없다.


아직도 해법을 못 찾은 누리과정 예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성역시하는 바람에 한정된 예산을 놓고 초등생 형과 유치원생 동생 몫을 놓고 싸움 붙이는 꼴이 됐다. 대통령만 ‘집착’을 버리면 여야 간, 정부-지자체 간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예산 배분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미세먼지 문제처럼 국민 건강을 위협해 대책이 시급한 사안은 ‘집착’하기는커녕 다음 정권에 떠넘겼다.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 값, 화력발전 문제를 장기과제로 넘기면 그때까지 ‘그냥 견디라’는 말밖에 안 된다. 비겁한 책임회피다.


북핵에 대응한답시고 개성공단을 덜컥 폐쇄한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위안부 문제까지 ‘불가역적’으로 일본에 양보하고, 앞으로 사드 배치 부담까지 떠안으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1994년 6월 백악관에선 전쟁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 영변 폭격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 국민은 새카맣게 몰랐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대통령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평화와 안전에 대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고 보수언론조차 반대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국제적 평판 하락은 둘째 치고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커 대통령의 ‘가족사 미화’ 욕심에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3당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에 공감한 데서 보듯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며 집착해온 ‘노동개혁’도 이젠 국회에 맡겨야 한다.


기업 소유주(오너)의 독단적 경영이나 잘못된 판단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을 ‘오너 리스크’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이 곧 ‘대통령 리스크’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협치 대상은 극우에 가까웠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폭식투쟁하는 어버이연합류의 극단적 세력을 활용하려 청와대 행정관까지 붙여주고, 민주와 종북도 구분 못 하는 박승춘류의 군사독재 잔존세력을 임기 내내 끼고 살았다. ‘말은 협치, 행동은 편가르기’식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박근혜 리스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김이택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하면서 ‘브렉시트’가 이 시대의 혼란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의 ‘소련 해체’와도 일맥상통하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의 브렉시트’라는 조합은 ‘1929년 대공황 이후의 파시즘 득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브렉시트의 파장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브렉시트는 진로를 예측할 수 있는, 그래서 지구촌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브렉시트는 일단 영국의 문제다. 이슈 자체가 ‘영국 독립’이라는 선동적인 구호와 연결돼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세계 5위 경제권인 나라가 독립을 말하니 우습지만,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머릿속엔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이 자리 잡고 있다. 옛 기억이 현재와 미래보다 앞서는 현상은 모든 고령자에게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라의 진로를 왜곡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영국은 근대 세계의 주역이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이 합쳐 국민국가의 한 전형을 만들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계화에서 다른 나라보다 늘 한발 앞섰다. 이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경제력에서 미국·중국·일본·독일 등에 현저히 뒤지는 것은 물론 한때 세계가 주목했던 ‘영국적인 것’의 매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브렉시트 소동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근대 영국’의 해체를 내보이는 사건이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21세기 세계에서 영국 모델이 설 자리는 좁다.


브렉시트 소동은 또한 이민·난민 문제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의 최대 이슈는 영국 인구의 13%까지 커진 이민자 문제였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쓴 이언 모리스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민·난민 등 이주 문제는 기아·전염병·국가실패·기후변화와 더불어 역사의 방향과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다섯 기수(또는 묵시록) 가운데 하나다. 과거 게르만족의 이동은 지금 유럽의 토대가 됐고 미국 역시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난해 세계 이민자 수는 2억4400만명으로 2000년보다 41%나 늘었다. 난민도 6530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구촌 이주자들의 다수가 유럽으로 향하는 것은 유럽이 역사의 최전선에 있음을 뜻한다. 유럽이 이들을 받아들여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 못한다면 이들은 거꾸로 유럽을 집어삼킬 수 있다. 브렉시트 지지자처럼 이들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다. 이민·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만이 지구촌의 지도국이 될 수 있으며, 영국은 그 대열에서 이미 탈락했다.


브렉시트는 아울러 세계사의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이라는 역사적 실험은 꾸준히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한 나라·정파·이념·세대 사이의 갈등이 수시로 불거지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이는 유럽 통합이라는 이상의 문제라기보다 유럽이 전성기를 지난 늙은 대륙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전처럼 세계사를 짊어지고 갈 역량이 없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유럽연합이 ‘더 큰 유럽’이 아니라 ‘다른 유럽’ ‘단단한 유럽’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은 타당하다. 지구촌을 이끌던 미국과 유럽 사이의 연대도 매개자인 영국의 이탈에 따라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역시 늙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브렉시트를 노골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약해지는 미국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패권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 분기점이 미국에서 출발한 2008년 경제위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동아시아는 브렉시트 소동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어느 나라든 독선적이어서는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국민국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나라 안팎의 주체들과 협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자를 포함한 인구 문제에 대한 고민은 동아시아 사회의 생존과 발전에도 근본적이다. 우리에게는 통일 문제가 여기에 직접 연관된다.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바라보는 데까지 진전된다면 역사의 큰 흐름은 급격하게 동아시아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때 가서 돌아보면 브렉시트 사태가 한 분수령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 한겨레신문 김지석 논설위원 >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일본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일본 영화라는 과목을 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처음 본 영화가 구로사와(Akira Kurosawa) 감독의 ‘라쇼몬(Rashomon)’이었다. 스토리도 간단해 보이면서, 돈도 들이지 않았고, 출연 배우도 많지 않고, 촬영 장소도 몇 곳 되지 않았는데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이후로 기회가 있으면 그의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 때 본 영화가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의 옛날 흑백영화였고, 당시 이곳 극장에서 상영한 ‘가게무샤’, ‘난’, ‘꿈’등을 보았다. 그는 참 운이 좋은 영화감독, 예술가였다.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을 뿐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김기덕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구로사와 감독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 당시의 일본영화계와 오늘 날의 한국영화계를 부분적으로나마 비교하고 싶기 때문이다.


구로사와의 ‘라쇼몬’은 1951년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일본영화 최초로 상을 받았다. 그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영화계는 난리였다. 그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영화가 가장 좋은 매체라고 알고 있었고, 권위있는 국제 영화제에 입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다른 작품을 보내기로 거의 결정했는데, 때마침 베니스 영화제와 관계가 있는 이태리 여성이 일본에 있어, 그들은 그녀에게 후보작을 보여주었다. 뜻밖에 그녀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선택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고 이상한 작품이기에..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이곳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한 ‘섬’이었다. 그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받아 상영된 작품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멋진 영화였고, 무엇보다도 여태껏 내가 보아온 한국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토론토 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속히 자라는 동안 그의 영화는 계속 초대를 받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섬’으로 시작해서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이 꾸준히 초청받았다. 그처럼 자주 초청 받은 감독도 없으리라. 마치 영화만 만들면 초대받은 것 같다. 영화제는 아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 극장에 상영되어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사마리아’로 2004년에 베를린 영화제, ‘빈집’으로 2004년에 베니스 영화제, 아리랑으로 2011년 칸 영화제,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사실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도 드물지만 짧은 시간에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한 재능있는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려 해도 투자자가 없고, 어렵게 만들어도 국내에서 상영할 극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너무 잠잠해, 한국영화계,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쳐 영화 만들기를 결국 포기하지 않았나 생각 들기도 했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토론토에서 하는 Toronto Korean Film Festival 프로그램을 받았다. 무심히 펼쳐보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Stop’. 그가 가장 최근 2015년에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 ’One on One’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그가 아직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여간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한일합작으로 나와 있고, 일본어에 영어자막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 상영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사실 요즘 한국영화 대단하다. 재미있고 잘 만든다. 툭하면 1000만 관객 돌파한다고 한다.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리하여 대박나기를 바란다. 누가 어떤 영화를 보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틈새에 세계적인 영화제가 인정하는 영화가 숨을 쉴 틈 하나 만들 여유가 우리는 없는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북한고립 외교 허실

● 칼럼 2016. 6. 28. 19:07 Posted by SisaHan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미-중 관계가 1960년대 중-소 관계처럼 갈등-분쟁-충돌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중-소 갈등은 50년대 중반 이념분쟁으로 시작됐지만 본질은 사회주의권 내 패권 싸움이었다. 6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건 결국 영토분쟁-군사충돌로 이어졌다. 현재 심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도 본질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패권 싸움이다.

북핵 문제로 시작된 미-중 갈등 전선은 한반도에서 남중국해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아시아의 주인 자리를 되찾겠다는 뜻인 ‘중화부흥’을 선언한 중국은 산호초였던 난사(남사)군도를 개발해 비행장까지 건설하였다. 이건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그동안 미국이 행사해오던 제해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자 일본과 필리핀은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섬들 때문에 일찌감치 미국 편에 섰다. 지난달 말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과 베트남에 대한 미국 무기 금수조치 해제로 베트남도 이제 군사적으로 미국과 한배를 탔다.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정책에 입각해, 동북아에서 북핵 문제를 구실로 미-일-한 3각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했다. 동남아에서는 남중국해 문제를 구실로 미-일-필리핀-베트남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미국 중심의 대중 압박에 대해 최근 중국이 실력행사를 시작했다. 지난 9일 새벽 중국 군함들이 중-일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열도 접속수역을 항행했다. 일본이 해상관활권 침범이라며 즉각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시간대에 러시아 군함도 같은 수역을 항해했다. 동중국해에서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대결하는 형국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힘겨루기가 군사충돌로 번질 때 그 무대는 매번 한반도였다. 청일전쟁이 그랬고 러일전쟁이 그랬다. 6.25 한국전쟁도 처음에는 남북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미-중 전쟁으로 번졌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군사력이 막강해지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갈등은 반도국가인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한반도에서 다시 불꽃이 튈 가능성이 충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불꽃은 평양에서 먼저 튀어 동북아의 산불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걱정을 안 하는 것 같다. 강대국들의 대외정책 관련, 중요한 의미가 있는 주요 7개국(G7) 회의가 아주 가까운 히로시마에서 열리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에 머나먼 아프리카로 갔다. 옵서버 자격으로라도 G7 회의에 참석해서 참가국들, 특히 미·일이 우리의 안보 상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미-중 관계와 동아시아 관련해서 어떤 꿍꿍이를 하는지 현장에서 참모들과 함께 지켜봤어야 한다.

아프리카의 북한 ‘절친’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고 북한이 아파하면서 핵을 포기할까? 우간다는 북한에 도움을 주기보다 받는 나라다. 그런 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북한보다 얼마나 더 주기로 약속했을까. 우간다-북한 협력관계 단절 여부 관련 발표가 오락가락했던 일이 그런 의문을 자아낸다. 아무튼 지원한 만큼 이득이 돌아올지는 의문이다. 쿠바 문제도 마찬가지다. 쿠바도 북한의 ‘절친’이지만, 우리가 쿠바와 수교한들 무슨 대수인가. 기껏해야 동시수교 정도에 그칠 것이고, 쿠바가 북핵 관련 대북제재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금은 미-중 갈등이 장차 한반도에 전쟁을 몰고 올지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입각해 양국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때다. 지금은 북한 압박한답시고 머나먼 곳까지 가서 북한고립 외교나 하고 돌아다닐 때가 아니다. 핵·경제 병진노선 비판이나 하고 북한의 선행동이나 요구할 것도 아니다. 관·학 협의체라도 만들어 우리가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평양발 불꽃이 동북아 산불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북한을 관리해 나갈 묘수를 찾아야 한다. 나라를 살리는 힘은 편견과 원칙이 아니라 통찰력과 상상력에서 나오는 법이다.

< 정세현 - 전 통일부 장관, 평화협력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