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엊그제 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말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비하하는 신조어들이란, 바로 요즘 크게 유행하는 ‘헬조선’을 비롯해 ‘삼포시대’니 ‘오포시대’, ‘흙수저-금수저’ 같은, 청년세대들의 한탄이 담긴 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옥’을 뜻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너나없이 입에 올리는 세태에 해외언론들까지 인용해 보도할 정도가 되었으니, 밤낮없이 나라사랑의 애국심에 묻혀 사는 박 대통령이 듣기에는 참 민망하고 국제적인 망신거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들은 네티즌들은 SNS에 수많은 댓글로 “누구 때문인데!” “반성이나 위로나 대안제시도 없이…”라고 비아냥대며 화풀이를 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취업난과 빈부격차 심화, 세계 최고의 자살율, 최저 출산율 등 어느 하나 기쁜 소식이 없는 마당에 대통령만 혼자서 ‘구름 위 천국’에 살고있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헬조선의 이유’ 60가지를 든 한 청년은 OECD 비교치를 들어 복지율 최하위, 아이들 삶의 질 꼴찌, 노인빈곤율 1위, 성평등 순위와 남녀 임금격차, 뻔질난 낙하산 인사 등 다양한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위대한 현대사’에 대해서도 “첫 독재자는 객사, 둘째 독재자는 피살, 셋째 독재자는 학살과 29만원 통뼈로 역사에 기록됐다”며 “요사이는 향수와 자아도취에 빠진 독선적 인물들이 설쳐 국민을 피곤하게 하니 정말 화려한 현대사”라고 비꼰다.
‘제 얼굴에 침뱉기’나 다름없는 자기 나라 비하를 일부러 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탄식해도 올림픽에서 승전보나 금메달을 따내면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일본에 패했다면 ‘무조건’ 분통을 터뜨리는 소박한 국민들이요 열혈 청년들이다.
대통령은 또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나눠 이겨내는 공동체 문화”를 거론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냐”는 직격탄이 날아든다. 바로 며칠 전 청와대 오찬이 과연 ‘어려운 시기 콩 한쪽도 나눠 이겨내는’ 모양새이냐는 것이다. 새 여당 대표를 환대하는 점심식탁이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 찜, 한우갈비’ 등 초호화메뉴 일색이었다는 소식에 장안이 들끓었음을 상기시킨 거다. 들어보지도, 구경도 못한 희귀 고가 먹거리들이 한끼 식탁에 올랐다는 보도에 서민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짜증이 난 것은 당연하다. 이름도 생소한 송로버섯은 이탈리아에서 900g짜리가 1억6천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는 놀라운 소식, 샥스핀은 상어보호를 위해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식재료인데 청와대가 버젓이 요리에 사용했으니 “그거야 말로 국제망신”이라는 비난이 더해졌다.
‘청와궁 호화 오찬’이라고 화제가 된 그 메뉴에 대해 “김영란 법 대상이 안되는가?“라는 힐난부터 “조선시대 임금도 가뭄과 혹서 등으로 백성이 고생할 땐 밥상에 올리는 반찬 가짓수를 줄였다“고 매섭게 역사를 들춰주기도 했다.
폭염에 시달리면서도 전기료 폭탄 때문에 에어콘조차 맘껏 틀지 못하는 국민들, 최저임금도 받지못하고 열정페이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현실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거대기업 퇴출과 구조조정이 거론될 정도로 나라 경제가 기우뚱 대는 작금의 상황인데, 과연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기만 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의 표출이 넘쳐난다. 점심 한끼 검소하게 간단히 대접할 수도 있으련만, 자기 비서출신이 여당대표가 됐다며 기쁨에 겨워 호사가 넘치는 식탁을 차리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대다수 국민이 너무 먼 괴리를 느낀 것이다.
한 교수는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원 깎아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니…고작 몇 천원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탄식했다. 얼마전 교육부 고위관료 신세를 망친 ‘국민은 개 돼지’라는 발언이 절로 떠오르는 것은 비단 어느 한 사람만 일까. 작금의 현실에서 국정 책임자가 국민을 개 돼지 취급하는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에 그쳤느냐 말이다.
3백여 명이 생수장 된 참사를 모르쇠 깔아 뭉개고 진상규명을 방해·차단하면서 유족과 시민들을 떼쓰는 무리들 취급하며 무시하는 일, 피해 할머니들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하면서 완강히 거부하는데 ‘역사적인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라고 어거지를 쓰는 일제 군위안부 문제 대처는 과연 한국정부인지 일본정부인지 구분이 안돼 낯이 뜨겁다. 나라와 국민과 국제관계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은 ‘사드’배치 독단결정은 어떤가,
국민을 졸(卒)로 여기지도, 개 돼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으니, 어찌 “헬조선” 유행을 탓할 수가 있으랴.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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