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거짓무리를 응징하지 않으면

● 칼럼 2017. 1. 24. 18: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무리 도둑을 업으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자식에게는 “도둑질 하지마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런데, 국내외 한국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주모자와 그 부역자들은 자식들에게도 마치 “나처럼 도둑질 해라”라고 가르치는 것만 같다.
3개월이 넘도록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행각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그만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다. 몰상식한 농단의 행태는 그렇다 치자.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일말의 양심도 정의감도 염치도 없이 한결같은 거짓의 화신들이란 말인가.
엊그제 끝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를 보아도 그렇고,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나, 형사재판의 법정에서도, 그들은 무슨 애국결사체나 모의한 것처럼, 하나같이 “모른다”, “아니다”, “기억이 안난다”라는 공통어를 입에 달고 나와 우겨댄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냈고, 여러 정황이 확실한데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가 새로워질 것이라는 발본색원의 희망에 앞서 국민들 가슴에 자괴감이 날로 깊게 쌓여간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의 한결같이 거짓된, 비겁하고 추한 모습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마디로 한 인간의 품성으로, 나아가 공직자로써 갖춰야 할 최소한의 철학도, 봉사정신이나 양심도 전혀 없이 오직 사리사욕만 가득했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은 아예 무엇이 잘못인지, 뭐가 비정상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 같고, 그와 한통속이 되어 혹은 손발이 되어 권력과 재물을 주무른 동업자와 하수인들 또한 영혼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없는 것만 같다. 지성과 진리의 산실인 대학에서 조차, 뻔한 거짓말로 상아탑의 순수성을 짓밟은 것은 그 백미였다고 할까.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고명하신 스승님들이었다.
처벌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몸부림일 수 있고, 주군을 위한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버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족과 자식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떳떳함을 가장하기 위해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겐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률이 있다. 진실의 증언을 서약하고도 거리낌없이 위증과 거짓을 말하는, 몰양심의 도덕 불감증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눈 하나 깜짝않고 거짓을 말하는 그 자들의 능글맞은 편법과 위선은 알게 모르게 우리들 뇌리에 스며든다. 감수성 예민한 2세 청소년들은 더할 수밖에 없다. 국정을 농단한 법전문가들이 법의 맹점을 악용해 범죄추궁을 피하는 법 기술을 자랑하는 몰꼴에서, 또한 변호사들이 피고인에게 교묘한 위증과 거짓을 교사해 처벌을 피하게 하는 범법행위의 의혹을 보고 배워서, 우리 후손에게 다시 ‘법꾸라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천하 만민이 심증을 굳히고 분노를 삼키는 면전에서 버젓이 모르쇠하는 철면피들이 젊은 2세들에게 직설적으로 사악한 거짓과 면피의 처세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빈번한 부실검증과 고집불통 임명으로 일반화 되고 무감각해진 현실에 더해, 장래 국정 리더쉽과 공복의 도덕적 가치관이 완전 진흙탕을 헤매지 말란 법이 없다.
이제 대통령 탄핵에만 그쳐서는 안될 국가혁신의 정신혁명을 위해서도 저 거짓된 무리들은 철저히 응징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약성서에도 교훈이 있다. 아간이라는 단 한명의 거짓과 범죄로 인하여 반드시 이겨야 할 아이성에서 참패를 당한 가나안 전투 이야기가 있다. 그 아간의 일족을 가혹하게 처단한 후에야 비로소 여호수아는 승전고를 올린다.
우리 현대사에 비견한다면 수많은 ‘아간’들을 징벌하지 않고 유야무야한 업보가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일 수 있다. 친일이 이승만에게 면책 받고, 4.19혁명이 박정희 쿠데타로 사그러든 것, 5.18 민주화운동이 전두환 독재로 짓밟혔으며, 6.10 항쟁은 군부독재 연장으로 귀결된 퇴행의 역사들이 그걸 말해준다. 거짓과 변명과 궤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불의한 세력은 원래 암세포처럼 생명력이 질기다. 이번에도 무기력하게 물러선다면 언제 이런 환골탈태의 호기가 다시 올지 알 수 없다. 결코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거짓세력을 응징해야 한다.


다시 되뇌인다. 새해는 빛이 어둠을, 참이 거짓을 이기는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모국에도 동포사회에도, 정치와 사회와 종교와 모든 영역에 빛과 참이 가득해지기를 기도한다.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로, 교계의 성직자로, 기업의 CEO로, 단체의 대표들로 직분에 충실해지도록 깊이 새기며 간구하자. 어둠을 밝히고 거짓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양심, 행동하는 시민정신들이 빛과 소금과 진실로 무장하고 대적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외교개탄’

● 칼럼 2017. 1. 24. 18:1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본이 “한국 시민단체가 부산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 중단을 통보했다. 주한일본대사를 소환 귀국시켰다. <엔에이치케이>(NHK) 일요토론에 출연한 아베 신조 총리는 주한일본대사관과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며 “한국이 확실히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성실히 의무를 실행해 10억엔을 이미 출연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 일부는 한국에 10억엔을 지급했는데도 소녀상이 이전되지 않은 것을 꼬집어 마치 ‘입금 사기’인 듯 보도하였다.


일본에서는 입금 사기를 보이스피싱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음에도 10억엔을 먹고 튀었다는 뜻이다. 외교부는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것이 지난해 7월이다. 중국은 그때 이후 점차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한국에 강화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와 연예인의 출연 제한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국행 전세기 운항을 불허했다.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현지기업에 세무조사를 강행했고, 한국산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에 대한 반덤핑 관세 폭 확대를 위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한-중 간 유지되었던 국방장관 핫라인과 군사교류가 모두 중단되었다. 한민구 국방장관의 방중 요청에 중국은 응답하지 않았다. 2011년 이후 해마다 열렸던 국방차관급 전략대화는 무산되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때도 한-중 군사당국 사이 공조나 협력은 없었다.
한때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였다. 지금은 아니다. 국방부는 “박근혜 정부 임기 중 사드 배치 완료”만 외친다.


2016년 7월 이후 남북관계는 교류 제로 시대에 들어섰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교역, 경협, 관광, 교통통신, 사회문화교류, 이산가족, 대북지원이 완전히 중단되어 남북 인적교류 현황란에 “0”만 기록된다. 개성공단 사업자들은 배신감에 고통스럽다.
통일부 관계자의 속은 시커먼 숯검댕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대한반도 정책을 펼지 여전히 미지수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한국을 콕 집어 한-미 동맹 무임승차자라고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의 일자리를 뺏어간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했다. 미국은 상당량의 계산서를 우리에게 내밀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였는가? 박사모의 탄핵 반대 시위에 펄럭이는 성조기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도대체 이게 뭔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에 불신을 완벽히 구축하였다. 동평구(동북아평화협력구상)는 “그게 뭔데? 은평구 동쪽이야?”라는 조롱거리로 남았다. 남북관계는 단절되었고 우리는 북방 대륙과 단절된 섬나라가 되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행불이다.
한-미 동맹 강화만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외쳐댔다. 언제 한-미 동맹이 약화된 적이 있었던가? 강력한 동맹은 왜 북핵문제를 풀지 못했는가? 강화되는 한-미 동맹이 중국에 위협이 된다면 동맹이 우선인지 국익이 우선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 중국과 협력 없이 어떻게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북한인권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세계에 외쳤던 박근혜 정부다. 그런데 왜 일본이 그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합의하였는가? 일본이 조선여성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만행이 바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다. 언제부터 일본이 대한민국 시민사회 활동에 개입하였으며, 왜 그 길을 터주었는가?
어쩌다 우리 외교가 이렇게 되었는가? 개탄스럽다.

< 최종건 -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


"나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아마 들어서 알고계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이 말은 언론의 중요성과 막중한 사명을 웅변해주는 고전으로 통합니다. 설령 정부는 없을지라도 신문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제퍼슨의 역사적인 그 언급에, 여러분은 동의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9월22일 한겨레신문은 최순실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엽니다. 한겨레가 연속 보도를 이어가던 한달 뒤 JTBC가 ‘테블릿PC’를 제보받아 보도하며 게이트는 크게 확산됩니다. 첫 보도 이후 3개월여, 나라 안팎은 국정농단 진상규명의 와중에 엄청난 화병을 앓고 있습니다. 연 1천만 명이 넘는 국내외 동포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와 규탄 함성을 외쳤습니다. 마침내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가결에 이어 헌법재판소에 운명을 맡기게 됐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천지에 진동했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나라가 망가지고 국민이 고통받는 참담한 현실 앞에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도 “잘못 뽑은 과오를 반성한다”고 선언합니다. 오죽하면 그의 든든한 배경이던 고향마저 등을 돌렸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5%를 밑돌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70%이상이 탄핵을 찬성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지도자를 잘못 세운 데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도자를 잘못 뽑은 걸까요? 박근혜라는 인물의 실상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평가분석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지난 대선 때 그에게 표를 주었을까요? 무려 40년 이상 됐다는 박근혜-최순실의 관계,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 온 최태민 일가의 권력농단 사실들이 숨김없이 알려졌다면, 오늘날의 이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리가 없습니다.
이번 거대한 국정농단 게이트의 실마리는 그동안 몇 차례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정윤회 ‘십상시’ 문건이 불거졌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문건내용의 사실여부는 덮어두고 유출한 것이 국기문란이라고 역공하고 호도하는 것을 거대 공영방송과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이 대서특필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에 몰린 한 경찰관이 자살하고, 문건을 보도한 신문사는 세무조사 압박에 사장이 해임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사건의 본질인 문건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져갔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TV조선이라는 종편이 우병우의 전횡과 미르재단 강제 모금의혹을 보도합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선일보의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화풀이 보도”라며 ‘부패 기득권세력’이라고 공박하고 신문사 주필의 부정한 향응사실을 폭로하자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그렇게 또 국정농단의 단초들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습니다.


한겨레의 용기있는 추적보도와 JTBC의 후속폭로가 없었다면, 박-최 게이트는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했다고 하니 아마 임기말까지 덮어뒀다면, 국정 시스템과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권력이 사유화되어 나라가 회복불능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까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합니다.
고려 말 신돈의 왕정농단 이래 한국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다는 박-최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키워드가 된 언론-, 참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천일이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눈물로 지새는 유족들과 함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1천만 명의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엄청난 참사의 원인규명을 방해하고 유족 모욕을 조장한 불의한 정권은 그들이 장악한 언론을 나팔수로 활용했습니다. 진실을 쫓는 언론은 블랙리스트에 올려 핍박했습니다. ‘영혼없는 언론’들은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진실을 덮고,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선전도구가 됐습니다. 법원에서 무죄로 증명했는데도 광우병 쇠고기 보도를 매도하고 지금까지도 그 실상을 오도합니다.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NLL(북방한계선) 파문, 국정원 댓글 사건 등등 권력에 아부하며 실체적 진실은 외면한 채 오직 정권 홍보에만 열심을 다한 ‘무골(無骨)’ 언론들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거짓 속에서 허상을 보며 살아오다가 결국 국정농단의 태풍을 만난 것입니다.


이제야 그 실체를 알게 된 국민들이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도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면피하려는 그 ‘영혼없는’ 일당들은 참 가련합니다. 그들에 영합하여 여전히 열화같은 질타 속에서도 어둠과 거짓의 세력에 미련을 보이는 골수 ‘무영혼’의 언론들 행태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사회적 흉기’라고나 해야 맞을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햇볕이 들지않는 음습한 곳은 곰팡이가 일고 썩어가게 마련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곳에 믿음과 생명과 정의가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언론은, 신문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며 거짓을 비추는 거울이요 참된 사회적 공기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시사 한겨레가 걸어 온 길에도 눈물의 흔적이 선연합니다. 이민 동포사회라고 해서 어둠의 세력이 그 촉수와 냄새를 거둬들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사 한겨레가 12년, 20년을 내다볼 수 있도록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의 사랑을 확인하며, 이 곳에 참된 언로의 지형을 개척했다는 보람과 자부도 감히 느끼게 됩니다. 어둠이 걷힐수록 시사 한겨레를 향한 기대와 응원도 커지리라는 믿음과 함께 새로운 의지를 다져봅니다.
시사 한겨레는 꿋꿋이 그리고 묵묵히 여러분 옆을 지키겠습니다. 변함없는 애독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더욱 큰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 김종천(金鍾天) 발행인 겸 편집인 >


[칼럼] 권력보다 권리를 키우는 개헌

● 칼럼 2017. 1. 10. 19:3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개헌은 시대정신이다. 촛불이 제7공화국의 문을 두드렸다. 이때다 싶어 적폐의 주범들도 개헌몰이에 나선다. 87년 6·29를 복제한다. 헌법이 “대통령=부패” 등식의 주범인 양 떠벌린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과 그 주변 비리의 정범은 헌법이 아니다. 중앙 패권적 행정권력과 재벌 중심의 시장권력, 그리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검찰의 부패와 언론의 무능이 주범이다.

개헌몰이로 물타기를 하려는 자들에게 87년처럼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몰이에 휘둘리지 않는 광장 주도의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촛불이 가닥을 잡아야 한다. 우선 ①‘개헌의 방향과 틀’을 짜면서, 동시에 ②‘개헌의 종류와 범위’를 논해야 한다. 나아가 ③‘개헌의 주체와 절차’를 점검하고 ④‘개헌의 시기와 시간’도 점검해야 한다. 촛불의 뜻을 따르는 대통령 후보라면 지체 없이 네 가지 문제에 대한 명시적 입장을 밝히고 광장에서 공증을 받아야 한다.

①개헌의 방향은 권력구조 개편과 권리체계 개혁으로 나뉜다. 권력구조 개편은 단임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중임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선호하는 중임제는 단임제보다 부패를 더 키우고, 더 감출 수 있다. 의원내각제는 일본처럼 나눠먹기 권력 세습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과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니 인기투표하듯 결정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왕처럼, 국회의원이 귀족처럼 행세하는 권력구조 틀을 깨야 한다. 중앙패권에서 지역자치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분권형 권력구조의 새판을 짜야 한다. 여기서 ‘헌법=권리체계’라는 민주적 법치의 본질이 드러난다. 권리체계로서 헌법은 두 기둥, 인권과 주권으로 세워진다. 인권과 주권의 담지자는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현행 헌법은 두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통일하고 있다. 이 경우 국적이 다른 사람과 뭇 소수자들이 인권의 발신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세계시민과 함께할 나라를 만들려면 기본권 체계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②권리체계 개혁은 기회균등을 넘어 국민의 실제적 주권행사를 보장하는 생활균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개혁입법과 사회적 결사체의 주권을 키우는 선거법 개정을 기초로 헌법 전면개정을 단행해야 한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일부개정으로 제7공화국을 열겠다는 정치인은 제 몫에 목을 맨 자들이다.


③개헌의 핵심은 주체다. 지금까지 9번의 개헌 중에서 3차(2공화국)와 9차(6공화국)를 제외하면 모두 대통령이 주관했다. 국회가 주도했던 3차와 9차 때도 국민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이번에야말로 국민이 명실상부한 개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참여형 개헌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그러니 대권 후보들은 국회와 국민이 함께 시민의회를 만들어 개헌을 추진하자는 제안에 응답해야 한다.


④개헌을 위한 국회특위가 만들어졌다. 87년 이후 30년 만이다. 잘된 일이지만 촛불 몰래 자기들 구미에 맞는 개헌에 착수하지 못하도록 감찰해야 한다. 개헌안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다. 이것들을 모으고 다듬으면 곧바로 개헌이 가능하다는 선전은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기능주의적 발상이다. 대선 전과 후를 선택하라는 여론몰이는 이들의 수작이다. 지금은 선택할 때가 아니라 논의할 때다. 결정할 때가 아니라 사유할 때다.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제7공화국을 그리며.


< 박구용 - 전남대교수, 시민자유대학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