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집단 유체이탈 국가

● 칼럼 2016. 11. 8. 20:31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박근혜 게이트다. 박 대통령이 범죄의 몸통이고 무능의 정점인 사건이다.
이제 대통령의 선택지는 하야나 식물 둘뿐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소멸돼 정상적인 국정수행은 불가능해졌다. 아바타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니 무슨 말을 하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질 게 뻔하다. 국민의 분노와 허탈이 쓰나미처럼 나라 전체를 덮쳐오는 중이다.
930여일 전에 비슷한 상황을 목도했다. 수백명이 산 채로 수장되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그랬다. 아아, 이게 국가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에 대처하는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조실부모한 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조롱하고 겁박했다. 그때 나는 이 정권은 결국 재앙적 실패로 끝나겠구나 예감했다. 영험한 무당이라서가 아니다.


국가의 대처 자체가 전대미문의 재앙적 상황이었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국정을 수행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한 술 더 떠 외롭고 불쌍한 대통령님을 보호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행태라니. 한참 잘못됐다.
결국 짝퉁 대통령 사건으로 터졌다. 박근혜 게이트는 대통령 개인의 자질 부족이 문제의 다가 아니다. 대통령 선출 검증 시스템도 문제지만 결정적인 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대통령 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걸러주고 보완해줄 시스템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개인적 트라우마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이라는 진단은 맞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라고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할 수 있다. 만델라도 잘 해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서 온 나라가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면 그건 시스템이 부재한 거다. 독재국가라는 방증이다.


박근혜 게이트는 국가 시스템 부재로 인한 재앙의 완결판이다. 그럼에도 국가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했어야 마땅한 사람들 중 누구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반성하는 이가 없다. 당사자인 근혜순실 커플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도 닮은꼴처럼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한다. 권력의 안쪽에서 내내 과실을 따먹던 사람들이 갑자기 금 밖으로 나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혀를 찬다. 여태 이 나라는 박근혜최순실 커플 둘이서만 운영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아우라 운운하던 일부 언론과 종편의 패널들은 진작에 이런 사태를 짐작했다는 듯 있지도 않은 자신의 예지력을 뽐내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박근혜 게이트 해법의 키를 기승전검찰로 몰아가는 데 성공한 검찰은 공정 수사 코스프레를 하면서 피의자의 시차적응까지 배려하는 인간적 면모를 눈치보지 않고 드러낸다. 집단 유체이탈 현상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뒤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계속된다는 게 더 문제다.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와 오작동으로 일어난 일을 수습한다며 가동되는 집권세력과 일부 언론, 검찰들의 집단 유체이탈 현상은 절망스럽다.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그들의 사과 없는 맹활약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식물 대통령은 대통령을 바꾸면 그만이지만 식물 국가 시스템은 파국적 재앙이다. 집단 유체이탈 화법의 흐름을 이번에는 꼭 끊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상 이상의 재앙은 또 닥쳐올 것이다. 신통력이 없어도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 이명수 - ‘치유공간 이웃’ 대표 >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와 ‘교육희망 네트워크’에 이어 1일에는 47개 역사 관련 학회·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정부는 이 준엄한 시대의 목소리를 똑바로 들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박근혜 정부의 일탈적 사고가 야기한 또다른 국기문란 행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현행 역사교과서를 두고 “잘못된 역사를 배우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거나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앞서 여야 대표들과 함께한 청와대 회동에서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어느 부분이 부끄럽다는 것이냐’는 이종걸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질문에 “전체 책을 다 읽어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 뒤에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황당한 언사였다. 공교롭게도 국정화 결정을 하던 시점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있던 이가 바로 최순실씨의 최측근 차은택씨의 외삼촌 김종률씨였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최순실표 역사교과서’라느니 ‘순실왕조실록’이라느니 하는 말들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 관계자는 교과서 제작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진 명단도 밝히지 않은 채 밀실에서 집필 작업을 진행하더니,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발비로 초등 교과서 개발비보다 5배나 많은 돈을 배정하고 집필진 개인의 통장에 교과서 개발비를 직접 꽂아주었다. ‘혼이 없는 비정상’은 다름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 대고 해야 할 말이다. 이 정부에 권고한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남아 있다면 피 같은 세금을 ‘대통령 가족용’ 교과서 집필에 쏟아붓는 짓을 당장 중단하고 흉물이 된 국정 교과서를 지금 바로 폐기하라.


[한마당] 노예 민주주의가 문제다

● 칼럼 2016. 11. 8. 20:28 Posted by SisaHan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최순실 공화국’,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 속에 ‘탄핵’, ‘하야’라는 말이 어린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시국선언과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가히 ‘혁명 전야’의 분위기다.
최순실의 파렴치한 행각은 분명 엽기적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지난 4년 동안 청와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여당, 대기업은 물론 학교와 대학에서도 그의 불법-탈법-초법적 행태가 ‘아무런 저항 없이’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요즘 최순실은 공민왕 시대의 신돈이나 제정 러시아의 라스푸틴에 곧잘 비유된다. 그러나 신돈과 라스푸틴은 ‘왕이 곧 국가’였던 봉건시대의 인물이다. 최순실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에서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순실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가 봉건시대 군주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을 폭로한다.


토론은커녕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장관들, 대통령의 수족에 불과한 청와대 인사들, 대통령의 ‘상머슴’을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 권력자의 한마디에 즉각 수십억원을 갖다 바치는 재벌들, 부당한 압력에 무릎 꿇고 이득을 취하는 교수들-이들의 행태는 주인 앞에서 설설 기는 노예의 모습 그 자체다. 민주공화국에서 ‘지도층 인사’란 자들이 사실은 하나같이 권력의 노예였던 것이다.
장관, 재벌, 정치인, 교수 등 ‘지도층 노예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조직에선 절대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윗사람에게 노예로 행세하듯, 아랫사람에게는 잔인한 주인으로 군림한다. 이들의 지배를 받는 공무원, 노동자, 당원, 학생들은 노예처럼 행동하기를 강요받는다. 권력에 굴종하는 노예근성은 다시 굴종을 강요하는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성격’의 인간형이다. 물론 이들은 앞에선 노예인 척하면서 뒤에선 담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궁리만 하는 노회한 무리들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선거를 치르고, 법치를 외친다 해도, 그건 허울뿐이다. 권위주의와 노예근성에 의해 굴러가는 사회는 ‘노예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지배자들이 펼치는 철면피한 거짓말 퍼레이드는 그들이 국민을 노예로 얕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거짓말은 노예를 대하는 주인의 전형적인 버릇이다. 국민을 노예, 심지어 ‘개돼지’로 보는 그들에게 거짓말쯤이야 무슨 대수겠는가. 노예에게 하는 거짓말은 양심의 가책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노예 민주주의’ 사회에선 선거도 민주주의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그건 기실 노예들이 4년 혹은 5년에 한번씩 투표를 통해 새 주인을 뽑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문제는 최순실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이번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체적 민주주의로, ‘노예 민주주의’에서 ‘주권자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최순실 사태로 개헌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제 국민이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오로지 대통령 뽑는 절차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민의 권리 신장은 도외시한다면, 이는 국민의 노예 상태를 영속시키려는 기득권의 책략으로밖에 볼 수 없다. 모든 개헌 논의의 초점은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


[한마당] 하야도 무리가 아니다

● 칼럼 2016. 11. 1. 19:22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공직자가 아니라 ‘자연인’일 뿐인 ‘40년 지기’ 최순실에게 연설문 수정을 맡기는가 하면 안보와 직결된 국가 기밀을 알려주고 청와대나 정부 주요 부처의 인사에 개입하도록 한 한국 헌정사상 최악의 국정 농단 사건이 폭로되며 대다수 국민들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세계적인 나라망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직에 취임한 이래 박대통령은 ‘독선, 무능, 불통, 아집’ 같은 수식어가 늘 따라 다녔다. 게다가 편집증이라고 해야 마땅할 정도로 ‘비선 측근’과만 교류와 대화를 하는 생활 ‘관습’은 야당이나 그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생산적 논의와 협의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집단이나 개인이면 국회든 시민단체든 민주•진보 진영 인사들이든 누구든 간에 적대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최순실 파일’을 보면 박 대통령이 최순실을 단순히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아예 대통령직을 넘겨주었다고 볼 정도로, 그 어떤 나라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탈이 드러난다.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 제1부속실장 정호성(‘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 거의 날마다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강남구 논현동 최순실의 개인 사무실로 ‘배달’했다고 한다.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은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이었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증언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의 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은 인터뷰에서 “국정 운영은 말로 하는 것이고 대통령 연설문은 그 정점”이라며 최순실이 연설문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직을 스스로 최순실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국민들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대통령’이라고 불러야겠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파일’ 보도 뒤 20시간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25일 오후에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회견장에 나와 90여초 동안 사과문을 읽고 나서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떠난 장면을 녹화로 내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최순실 파일’에 입력된 2백여 가지 항목들을 완전히 부정하는 말이다. 그리고 초대 비서실장 허태열을 김기춘으로 교체한 것이 취임 6개월 뒤인데 ‘보좌체제가 완비’되지 않은 시기에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는 주장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그 어떤 국민이 이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받아들일까.


최순실은 대북 관련 기밀들도 입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 인사에 개입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식 축하행사 기획사 선정을 주도하는 등 실질적으로 취임식을 총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순실 파일’이 공개된 이후 SNS의 실시간검색어에서는 ‘탄핵’과 ‘하야’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에서도 박근혜 책임론과 특검 요구가 거세다. 그가 24일 국회에서 거창하게 제안한 ‘임기 내 개헌 주도론’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정치적 파산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여소야대 체제의 세 야당은 탄핵소추안을 협의해야 할 것이다. ‘최순실 파일’ 말고도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 행방불명’, 국회에서 논의나 의결을 거치지도 않은 채 독단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한 일, 당사자들과 국회의 동의도 없이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를 일화 10억엔을 받고 없던 일로 해버린 사실, 성능이 검증되지도 않은 사드를 배치하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벌들에게 출자를 강요하다시피 해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최순실이 실질적으로 사유화한 데 대해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비호한 사실 등등….


여기서 결론적으로 강조하려는 점은 나라와 국민,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국정마비를 끝내고 박 대통령은 하루라도 빨리 사퇴를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라가 들끓고 우레처럼 울리는 ‘탄핵’과 ‘하야’의 함성에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다수의 주권자들이 강하게 요구하면 떠날 때를 바로 알고 떠나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북풍’ 같은 데 의지하거나 어떤 사건을 터뜨려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기에 미몽(迷夢)으로 끝나고 말리라.
<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