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들

● 칼럼 2016. 10. 18. 18:58 Posted by SisaHan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구호가 목구멍에 걸려 차마 나오질 않는다.
나는 그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는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저 거대한 차벽을 누군가는 뚫어주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이 버스와 줄다리기를 한다는 건 얼마나 딱한 일인가’ 체념했고, 실은 두려워서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나는 백남기가 아니고, 백남기일 수도 없는 것이다.
경찰이 마지못해 내놓았다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속에선 총 4번의 살수가 있었다. 세차례에 걸친 경찰의 공격에도 흩어졌던 사람들이 이내 모여드는 것을 보고 나는 조금 울었다. 대포를 쏘아도 달아나지 않는 사람들, 겁을 주어도 겁을 먹지 않는 사람들, 백남기 농민은 그런 사람이었다. 네번째 살수는 정확하게 그를 조준했다.
이튿날 범상치 않은 그의 운동 이력보다 먼저 알려진 것은 그의 딸이 쓴 편지였다. 외국에 살아서 곧바로 달려올 수 없었던 그녀는 ‘사진 속 아버지의 피묻은 얼굴을 닦아주고 싶어 미칠 것 같다’고 썼다. 그녀의 이름은 ‘민주화’. 나는 심장이 폭 꺼지는 것처럼 슬펐다.


그리고 뒤이어 알려진 또다른 이름들. 민주화의 언니 ‘도라지’와 오빠 ‘백두산’. 민중(농민)과 통일을 뜻한다고 했다. 이 아름답고 장엄한 이름 짓기에 나는 목이 메었다. 분단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저 이름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경찰은 도라지와 백두산과 민주화의 아버지를 쏘았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은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전 국민의 조문을 받는 상주가 되었다.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경찰의 손에 넘길 수 없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버지를 지켜내겠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생방송 뉴스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쳐야 하는 장례는 얼마나 끔찍한가. 그러나 그들은 흔들림이 없다. 그것이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며 이 암울한 시대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졌으되 위엄을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백남기 농민의 삶을 본다. 그들은 살아있는 백남기다.
이것은 전쟁이다. 그 전선에 죽은 백남기의 몸과 그의 정신이 깃든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가 있다. 우리가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를 때, 그것은 이 땅에 생명과 평화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싸움으로 확장된다.


그 이름이 갖는 놀라운 위력에 똥물을 끼얹으려는 간악한 심리전이 시작되었다. 공격하면 할수록 공격하는 자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기묘한 진흙탕 싸움에도 저들은 기꺼이 몸을 던진다. 도라지를 짓밟고 백두산을 모욕하고 민주화를 조롱하여 저들이 지키려는 것이 결국 부패한 권력과 자본임을 그 이름들은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백남기 농민이 파종했다는 우리밀로 밥을 해 먹으며 저항하는 한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계엄군에게 붙들려 옥살이를 하면서도 불법적 정부에 애걸하지 않겠다며 항소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 ‘돈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며 한해도 우리밀 농사를 거르지 않았던 사람, 해처럼 빛나던 여인과 함께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를 키워낸 사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세’ 했던 그의 마지막 투쟁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장엄한 존재인가. 나는 백남기는 될 수 없으나 그가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들’의 곁에 한 자리는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떠나는 길, 이제 우리가 그의 울타리가 될 차례이다.


<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


[1500자 칼럼] 보물 찾기

● 칼럼 2016. 10. 11. 18:16 Posted by SisaHan

요즘은 독서와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있다. 백내장으로 시력이 약화되어 금세 눈이 피곤해지고 머리가 아파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신록이 우거진 창 밖 경치를 바라보거나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관심을 끌었던 음식을 만들어 본다. 때로는 숲을 산책하며 호숫가에 나가 지평선을 바라보며, 지친 눈과 혼탁해진 마음에 휴식을 준다. 이렇듯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맑아오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행복감에 젖어 든다. 이토록 소소한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힌두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신들은 지구를 창조하면서 인간에게 행복을 찾아내는 모험을 시키고 싶어서 지구상 어딘가에 행복을 숨겨두자고 한다. 그럼 그것을 어디에 숨겨 놓을지 논쟁이 벌어져 “산 정상에 숨기자. 그러면 못 찾을 거다.” 또 어떤 이는 “바닷속 가장 깊은 곳에 숨기자.”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행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숨기면 아마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결정지었다. 그래서 행복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보물을 스스로 찾는 일, 바로 이것이 행복의 길이라는 메시지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행복의 가치를 오로지 외적 요소인 물질, 성공, 권력에 둔다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라 여겨진다.


내 주위에는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인들이 여럿 있다. 그들 중 S씨는 운전을 좋아해서 잠이 안 오는 밤이나 심심한 낮이면 아무 곳이나 슬며시 다녀오는 습관이 있다. 때로는 온타리오 작은 시골마을을 벗어나 퀘벡이나 뉴욕까지도 바람처럼 갔다가 돌아온다. 그만큼 떠나는 준비가 복잡하지 않다는 의미다. 언제든지 생각날 때마다 간편하게 나서며, 구태여 비싼 호텔방도 필요치 않아 자동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다. 그래도 최고의 즐거움과 행복감에 빠져있다. 일상의 행복에 푹 젖어 살아가는 그는 푸른 잔디 깔린 공원에서 책을 읽는 여유로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달콤함, 말 없는 바다와 마주하는 정겨움, 한적한 시골길을 운전하는 호젓함,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아늑함.. 등등 행복으로 채워주는 소박한 요소들을 진정 좋아하고 맘껏 즐긴다.

헌데, 옆에서 그의 말을 듣는 우리까지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행복 바이러스는 농도가 다를지라도,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감염시킬 능력이 있다 한다. 내가 행복하면 내 옆 사람도 행복해지고, 내 옆 사람이 행복하면 그 옆의 옆 사람까지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서로간에 행복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밀접한 관계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가능하면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할 이유와 내가 행복해야 할 명분도 바로 여기에 있지 싶다.
 
젊은 날의 나는 행복을 찾아 나설 때마다 깊은 수렁에 빠졌었다. 무조건 하고 싶은 일과 누리고 싶은 것을 움켜쥐려고만 했으니, 이민 삶의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제 60대 후반에 들어서니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졌다. 철이 들었나 보다. 행복의 조건을 더 이상 거창한 것에서 찾지 않는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를 누리는 감사, 창 밖에 펼쳐진 우거진 숲과 뭉게구름을 품은 가을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기쁨, 활기찬 창 밖 세상을 미소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언제든지 친지들과 마주할 수 있는 즐거움, 귀여운 손주들을 떠올리며 얻는 충만… 등등, 바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을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얻어가고 있다. 또한 행복은 목적이 아닌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깨우침에 있다.
기실 우리는 불확실한 내일이란 명목 아래 적절한 때를 놓치며 살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이즘 내 소중한 일과의 하나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위해 내 안 어딘가에 숨겨진 일상의 보물을 찾는 일이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3일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이력은 눈부시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처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래로 지금까지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문학상과 평화상을 합치면 25명에 이른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로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 노벨상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섰다.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것은 일차로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오랜 관심과 투자 덕분이다. 그 기원을 따지면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지 정부는 일찍부터 과학 선진국에 유학생을 파견했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1901년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오르기도 했다. 이어 1917년 이화학연구소를 세운 뒤로 30여년 만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일본이 기초과학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지원과 노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자기만의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일본을 기초과학 강국으로 만든 또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뽑힌 오스미 교수도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신념으로 ‘세포의 분해’라는 낯선 분야에 몰두한 것이 수상의 영예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우리 사회가 만약 노벨상을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을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가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기초과학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는 조급한 투자로는 노벨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노벨상 이전에 국력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다.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가능성 있는 인재들이 기초학문 분야를 외면하고 지금처럼 의대로만, 그것도 성형외과 같은 돈벌이하기 좋은 곳으로만 몰리는 것은 커다란 낭비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고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탓이다. 이런 근시안적인 분위기에서는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는 큰 업적이 나올 수 없다. 국가의 장기적인 관심과 함께 사회 분위기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한마당] 초심, 어머니의 초심

● 칼럼 2016. 9. 29. 19:14 Posted by SisaHan

사관학교를 갓 나와 임관한 초임장교는 군인정신이 철철 넘쳐난다. 그에게 적당히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자세부터가 거의 부동이다. 그런데 중위, 대위가 되면 여유가 생기고 요령이 늘어 능글 맞아진다. 적당히 타협도 하고 자세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좋게 얘기하면 군대생활에 이력이 붙으면서 잘 적응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훈련소를 막 나온 신병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행동에 절도가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밥그릇수가 불어나고 후임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내 ‘나사’가 풀리고 군기도 흐물흐물 해진다. 그게 산전수전 다 겪어 제대를 앞둔 군대 말년이 되면 언제 신병훈련소를 다녀왔는지, ‘올챙이’ 시절은 까마득히 잊고는 ‘올챙이’들을 부리고 괴롭히며 손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시법연수원을 나와 재조 법관으로 임용된 초임 판·검사들도 처음의 근무태도나 정신상태는 훈련소를 막 나온 군인들과 다를 바가 없이 소명의식이 뚜렷하다. 배우고 익힌대로 법전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 변호사나 사건 관계인을 만나는 것도 무서무서 꺼려한다. 그런데 한해 두해 해가 가면 세상 돌아가는 인정사정도 감안하게 되고, 정치인들의 입발린 감언이설에도 은근슬쩍 넘어가 주곤 한다.


어디 군인이나 법관들 뿐인가. 크고 작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도, 동호인이나 봉사단체에 발을 디딘 회원이나 임원도, 헌신과 봉사의 직분을 수여받은 공직과 성직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항상 그 자세와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일하며 섬기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렵다.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 사이도 갈라서는 변심이 비일비재할 진대, 이기주의의 경쟁터인 세상에선 오죽하랴. 그 것은 사람들의 놀라운 현실 적응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각이 무뎌지는 반복의 효과이기도 하며, 어쩌면 철학과 소신의 부재에도 기인할 것이다.
신학교를 갓 나온 전도사들, 목사안수를 받으며 성직의 반열에 오르는 기쁨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감격하며 눈물 흘리던 목회자들도, 영혼구원의 막중한 사명에 내 한몸 바쳐 가시밭길 마다않으리 다졌던 초심은 현실 앞에 차츰 멀어져 간다. 비포장 오솔길 보다 이왕이면 번화한 융단 길을 찾게 되고, 길 잃은 한 마리 가엾은 양 보다는 주위를 맴도는 살찌고 윤기 흐르는 양떼들에게 더 애착이 간다. 고되고 가난한 산골 목자로 남기보다 배부르고 안락한 큰 물에서 추앙받는 목사님으로 변해가는 것을 자신의 성장과 부흥·발전으로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헌법을 지키며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일념으로 헌신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했던 대통령 가운데 그 약속을 초지일관(初志一貫)한 인물을 몇이나 찾아 볼 수 있는가. 취임 때의 초심을 잃지않은 그 분이야말로 위인이고 나라의 영웅이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로 남을 터이지만…. 언제 약속했느냐는 듯 공약을 내팽개치고, 짐이 언제 국민을 위하며 섬기겠다고 표를 구걸했느냐는 태도로 군림하며 찍어 누르고 귀 막아 외면하고 제멋대로인, 아예 정반대의 길을 가는 막무가내 변신 대통령이 버젓이, 오히려 큰소리를 쳐서 국민들을 심한 스트레스로 내모는 실정이 아니던가.
“원래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고 죄인들이며 간사하다”는, 사람들 스스로의 낯뜨거운 자기 평가가 말해주듯 인간본성에서 ‘처음과 끝이 같다’는 ‘시종여일’(始終如一)의 DNA는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변심과 변신이 자연스런 인간습성으로 나타는 것이고 그걸 스스로 합리화하느라 지혜롭게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사자성어도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변화와 변신, 좋은 일이다. 그것이 진·선·미(眞·善·美)로의 바뀜이라면 백번 천번 환영할 일이다.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워지고 더 진실해지고 선하고 의로워지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많은 이웃과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 대부분은 거짓과 사악함과 추한 모습들로, 그 것이 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고 여기며 기를 쓰고 바뀌어 가는 게 세상사요 인간사가 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변치않고 초심을 지키는 이는 아마도 전무후무 유일하게 예수님 뿐일 것 같다. 하지만 또 한 분이 계시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세상의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 아닐까. 자식이 미워도 고와도, 어릴 때도 장성한 어른이어도, 반항하며 딴 길로 달아나 속을 썩였어도, 그저 내 자식 사랑은 처음이나 끝이나 변하는 어머니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면서 왜 어머니의 ‘처음처럼’은 배우고 익혀서 깊이 새겨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