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와대 압수수색과 법치

● 칼럼 2017. 2. 14. 21:3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법관, “법원이 증거제출명령을 내렸을 때 행정부는 그냥 무시해 버렸죠?” (중략) “당신이 그 사실(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하죠?”/ 대통령 쪽 변호인, “안다면 탄핵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모른다면 탄핵할 수 없습니다.”/ 법관,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법을 지저르는 것을 알면, 탄핵할 수 있지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증거제출명령밖에 없을 땐, 탄핵할 수 없다. 고로 당신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얘깁니다.”/ 법정 안에 폭소가 터졌다.
한국 법관과 박근혜 대통령 쪽 변호사 사이에 오간 얘기가 아니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진, 대법관과 닉슨 대통령 쪽 변호사의 대화다. 권력자의 속성은 어디나 같아서 웬만하면 제 발로 내려오지 않는 모양이다.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는 책을 보면 워터게이트 사건 뒤 닉슨 사임까지의 상황이 지금 한국과 놀랄 만큼 닮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검사가 지방법원으로부터 증거제출명령서를 받았는데도 닉슨이 증거를 내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별검사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는데도 청와대가 여기에 불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불응하는 이유도 닮았다. 닉슨 쪽 이유는 기밀 유지 등 대통령의 의무와 특권이 있으니 증거 제출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110조 1항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2항은 “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어떤 것인지, 지금이 거기에 해당하는지 누가 판단하는가. 청와대의 판단이 틀리면 어떻게 할 건가.


앞의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특별검사가 말했다. “근본 쟁점은 누가 헌법의 해석권자인가입니다. 대통령의 입장이 틀렸다면 누가 틀렸다고 말해줘야 합니까?” 닉슨 쪽은 대통령의 특권에 대한 최종판단 주체가 행정부라고 다툴 태세였다. 그걸 본 대법관들은 모두 닉슨이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데 일찍 동의했다. 대법원 연구관이 이런 의견서를 써서 돌려 읽고 웃고 찢어버렸단다. “행정부의 특권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다릅니다. 왜냐면 닉슨은 사기꾼이고 그 개자식을 누군가가 교도소에 처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특권이 쟁점으로 남았지만 논란 끝에 ‘군사, 외교에 관한 한’, ‘불가피한 경우에’ 등 대통령의 특권을 인정하는 표현이 다 사라지고 논리가 명쾌해졌다. ‘형사사법의 공정한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적법절차의 필요상’ 증거의 제출이 요구된다는 거였다. 최종 판단 주체는 대통령 아닌 법원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결정이었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놓고 법원의 영장이 우선이냐, 청와대의 거부권이 우선이냐 말들이 많다. 그 상태에서 압수수색이 안 되면 결국 최종 판단 주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마는 셈이 된다. 앞의 책은 증거제출명령에 관한 재판이 “법원의 기술적인 조치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헌정체제의 장래가 관련되는 사건”이었다고 썼다.
특검은 압수수색을 해서 청와대로 하여금 수색에 반대하는 준항고를 법원에 내게 하든지, 아니면 압수수색을 방해하는 이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판단을 받든지, 다른 절차를 찾든지, 어떻게든 사법부 판단을 구해야 한다.


< 임 범 - 대중문화평론가 >


[사설] ‘박근혜 호위무사’ 본색 드러내는 새누리당

● 칼럼 2017. 2. 14. 21: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기로 하고 새로운 당명 후보를 압축했다고 한다.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자유한국당’ 등 이라는데, 과연 당명만 바꾼다고 국민 인식이 달라질까 궁금하다. 지난 주말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당명만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이다. 철저하게 반성·사과하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한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걸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인명진)는 5일 회의에서 당명을 9일 전국위원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로고도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인명진 위원장은 “이인제 전 의원, 원유철·안상수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새누리당이 불임 정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했다. 표면적으로는 얼굴 화장을 좀 고치고 대선 후보들도 난립하면서 당이 침체기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보면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지난 ‘11차 탄핵 기각 총궐기대회’엔 새누리당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심지어 김문수 전 지사는 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기각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당당하게 임해달라”고까지 주장했다. 혁신은커녕 대통령의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을 옹호하는 ‘박근혜-최순실 지킴이’로 거듭나려는 모양새다. 민심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고 로고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국민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새누리당은 ‘보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아무리 정치결사의 자유가 있다 해도,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파괴하는 걸 방임한 정당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다시 국민 지지를 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우선 박 대통령과의 관계부터 분명하게 단절해야 한다.


[1500자 칼럼] 2017년의 새해를 맞으면서

● 칼럼 2017. 1. 24. 18:1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금년은 내게 있어 참으로 의미가 있는 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금년 5월의 마지막 주일을 기점으로 은퇴를 결정하였기에 나의 목회를 돌아보면서 회고에 회고를 거듭할 수 있게 된다.

1969년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학교에 들어갔고 그해부터 주경신학자로 유명하신 박윤선 목사님의 개척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섬기면서 목회를 배우고 훈련받으며 1974년에 만 27세로 목사 안수를 받고 1975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런던에서 제일장로교회를 개척한 뒤 토론토에서 빌라델비아 장로교회를 개척하고 섬기기까지 그 세월은 교육전도사부터 따지면 48년에 이르고 목사 안수 이후부터는 43년의 세월이니 길다면 길다고 하겠다.
우리 교단에서는 정년제가 없기에 어느 시점까지 목회를 계속할 수도 있겠으나 같은 목사를 40년에 이르도록 섬겨주신 성도와 교회를 생각할 때 이제는 은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목사가 은퇴의 시점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목회에 대한 어떤 열정도 없어지는데 어찌 자신의 자리만 고집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말씀에 크게 동의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던 것이다. 그 세월을 돌아볼 때 느끼는 결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는 고백과 참으로 멀고도 긴 여정을 끝내는구나 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30대의 젊디 젊은 목사가 목회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실수와 연약함이 있었겠는가. 어디에 하나 익숙하고 능란한 목회의 모습이 있었겠는가? 목사가 젊을 때 실수를 하면 젊어서 그렇겠거니 하면서 참아주셨고 나이가 들면서 실수를 할 때는 어쩌다 하는 실수처럼 봐주신 성도들이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말이 쉬워서 한 교회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만 그 세월 속에서 목사를 이해해주고 참아주신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고 나에게 그런 큰 감동을 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만 유별나게 주신 복은 아닌가 할 정도의 자랑이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런 복이 하필이면 내게만 있겠는가? 모든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목회자들에게 동일하게 있을 수 있음을 나는 체험했고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목회자가 어떤 헌신을 하며 어떤 자세로 섬기는가 하는 점과 함께 아울러 성도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목회자를 어떤 목회자로 세워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에 있어 오늘의 내가 되고 온전히 은퇴하게 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고 나의 헌신이나 수고 이전에 나를 세워준 성도들의 사랑이 컸던 것이다.

아, 하나님의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성도들의 그런 큰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하겠는가? 이제 은퇴하고 나면 아무런 힘(?)도 없는 초라한 목사에 불과할 텐데 무엇으로 그 은혜와 사랑에 보답한다고 나서겠는가?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말처럼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은퇴 후에 은혜를 갚겠다 생각하지 말고 현역에 있을 때 더욱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보람된 목회자의 삶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거짓무리를 응징하지 않으면

● 칼럼 2017. 1. 24. 18: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무리 도둑을 업으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자식에게는 “도둑질 하지마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런데, 국내외 한국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주모자와 그 부역자들은 자식들에게도 마치 “나처럼 도둑질 해라”라고 가르치는 것만 같다.
3개월이 넘도록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행각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그만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다. 몰상식한 농단의 행태는 그렇다 치자.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일말의 양심도 정의감도 염치도 없이 한결같은 거짓의 화신들이란 말인가.
엊그제 끝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를 보아도 그렇고,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나, 형사재판의 법정에서도, 그들은 무슨 애국결사체나 모의한 것처럼, 하나같이 “모른다”, “아니다”, “기억이 안난다”라는 공통어를 입에 달고 나와 우겨댄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냈고, 여러 정황이 확실한데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가 새로워질 것이라는 발본색원의 희망에 앞서 국민들 가슴에 자괴감이 날로 깊게 쌓여간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의 한결같이 거짓된, 비겁하고 추한 모습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마디로 한 인간의 품성으로, 나아가 공직자로써 갖춰야 할 최소한의 철학도, 봉사정신이나 양심도 전혀 없이 오직 사리사욕만 가득했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은 아예 무엇이 잘못인지, 뭐가 비정상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 같고, 그와 한통속이 되어 혹은 손발이 되어 권력과 재물을 주무른 동업자와 하수인들 또한 영혼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없는 것만 같다. 지성과 진리의 산실인 대학에서 조차, 뻔한 거짓말로 상아탑의 순수성을 짓밟은 것은 그 백미였다고 할까.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고명하신 스승님들이었다.
처벌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몸부림일 수 있고, 주군을 위한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버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족과 자식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떳떳함을 가장하기 위해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겐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률이 있다. 진실의 증언을 서약하고도 거리낌없이 위증과 거짓을 말하는, 몰양심의 도덕 불감증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눈 하나 깜짝않고 거짓을 말하는 그 자들의 능글맞은 편법과 위선은 알게 모르게 우리들 뇌리에 스며든다. 감수성 예민한 2세 청소년들은 더할 수밖에 없다. 국정을 농단한 법전문가들이 법의 맹점을 악용해 범죄추궁을 피하는 법 기술을 자랑하는 몰꼴에서, 또한 변호사들이 피고인에게 교묘한 위증과 거짓을 교사해 처벌을 피하게 하는 범법행위의 의혹을 보고 배워서, 우리 후손에게 다시 ‘법꾸라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천하 만민이 심증을 굳히고 분노를 삼키는 면전에서 버젓이 모르쇠하는 철면피들이 젊은 2세들에게 직설적으로 사악한 거짓과 면피의 처세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빈번한 부실검증과 고집불통 임명으로 일반화 되고 무감각해진 현실에 더해, 장래 국정 리더쉽과 공복의 도덕적 가치관이 완전 진흙탕을 헤매지 말란 법이 없다.
이제 대통령 탄핵에만 그쳐서는 안될 국가혁신의 정신혁명을 위해서도 저 거짓된 무리들은 철저히 응징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약성서에도 교훈이 있다. 아간이라는 단 한명의 거짓과 범죄로 인하여 반드시 이겨야 할 아이성에서 참패를 당한 가나안 전투 이야기가 있다. 그 아간의 일족을 가혹하게 처단한 후에야 비로소 여호수아는 승전고를 올린다.
우리 현대사에 비견한다면 수많은 ‘아간’들을 징벌하지 않고 유야무야한 업보가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일 수 있다. 친일이 이승만에게 면책 받고, 4.19혁명이 박정희 쿠데타로 사그러든 것, 5.18 민주화운동이 전두환 독재로 짓밟혔으며, 6.10 항쟁은 군부독재 연장으로 귀결된 퇴행의 역사들이 그걸 말해준다. 거짓과 변명과 궤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불의한 세력은 원래 암세포처럼 생명력이 질기다. 이번에도 무기력하게 물러선다면 언제 이런 환골탈태의 호기가 다시 올지 알 수 없다. 결코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거짓세력을 응징해야 한다.


다시 되뇌인다. 새해는 빛이 어둠을, 참이 거짓을 이기는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모국에도 동포사회에도, 정치와 사회와 종교와 모든 영역에 빛과 참이 가득해지기를 기도한다.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로, 교계의 성직자로, 기업의 CEO로, 단체의 대표들로 직분에 충실해지도록 깊이 새기며 간구하자. 어둠을 밝히고 거짓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양심, 행동하는 시민정신들이 빛과 소금과 진실로 무장하고 대적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