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막장 드라마의 재연

● 칼럼 2016. 9. 8. 19:42 Posted by SisaHan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풍경이 점입가경이다.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수사 대상이 되자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정상 직무수행 할 수 없다고 사퇴했는데 같은 수사대상인 우 수석은 또 버티기로 일관한다. 버티기와 물타기란 신종 막장 드라마 소재들이 국민을 아주 짜증나게 한다. 우 수석은 왜 사퇴하지 않는지 자신이 직접 해명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 마이크를 안 잡고 있다. 이 문제 제기됐을 때 1시간씩 격정 토로하던 우 수석은 어떻게 됐나. 너무 정치 노회한 물타기다. 이 뒤에 누가 있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야당 원내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다. 막장 드라마 수준이고 물타기와 버티기라는 지적과 국민이 짜증난다는 표현은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하지만 “뒤에 누가 있는지 답답할 노릇”이라는 마무리는 진짜 답답한 말이다. 영화 ‘내부자들’이 예시를 했는데도, 정말 누가 있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는 그 나름 명분이 있고, 정의감이 흐르고, 재미에 감동도 있었다. 하지만 ’우병우 수석 구하기‘라는 청와대 드라마는 도대체가 명분도, 실리도 없을뿐더러 감동은 커녕 눈덩이처럼 커지는 의혹과 암투와 고집과 공작이 난무해 흉하기 짝이 없는 삼류 저질인 드라마일 것 같다.
뭔가 비리의혹이 제기됐으면 깨끗하게 소명해 떳떳이 흑백을 밝히고, 과오가 있으면 사과하거나 사퇴하면 간단했을 일이다. 그런데 이 무슨 오기와 해코지란 말인가. 폭로한 언론사와 특별감찰관에게 뒤집어 씌우는 역습으로 초점을 흐리는 ‘물타기’와 ‘뭉개기’의 정치공작 악습이 재등장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검증해서 세운 감찰관에게 올가미를 씌우려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껏 누이좋고 매부 좋은 사이이던 보수신문과 돌연 각을 세우며 치부를 들춰내 부패언론으로 추락시킨 밀월깨기 반전도 볼만하다. 의혹의 대상으로 수사를 받는 자가 수사 지휘선상에 버티고 앉아있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오직 권력자와 그 치마끝을 붙들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자의 성역 지키기를 위해 여러 술수를 동원하는 모양새나, 대기업과 검은 유착을 즐기며 권력부침에 편승해 위세를 부려 온 거대신문, 양쪽 다 도덕성과 개념의 수준에서 도토리 키재기나 다름없을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지저분한 막장 대결이요 국민이나 국익은 전혀 안중에 없다.


그러니 국민은 피곤에 지치고 국정은 표류한다. 민생이 아우성인 경제난국에다 미국은 금리를 올리겠다는 예고까지 발하는데, 방만한 추경예산 하나로 땜질하며 생색내려 용을 쓴다. 사드문제로 갈등이 격화되어 가는데, 오불관언 밀어붙이기 일변도다. 북한이 잠수함 미사일까지 쏘며 극으로 내달리자 뗑깡부리는 아이 흉내 내듯 여당은 핵잠수함을 만들겠다고 비핵의 금단마저 넘나든다. 미·일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외교가 방향을 잃고 휘청댄지는 오래다. 끝이 안보인다. ‘레임덕’이 이렇게 빨리 오고, 식물정부를 자초하는 무개념 철학부재의 정도가 이렇게 심할 줄이야. 찜찜한 이 세력은 그동안 ‘둘러메치기’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남북정상 대화록 폭로를 비롯해, 대선의 댓글부대 수사, 국정원 직원 셀프감금 등 그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초원복집 사건이 그랬고, 총리 밀가루 사건 등 역사도 깊다. 전통을 자랑하는 반전술을 이번에도 재빨리 꺼내들었다. ‘개 돼지’ 민중들이 어서 잊어먹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그런 역습과 반전의 결과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본말전도요 엉터리였음이 밝혀진 것이 어디 한 둘인가. 당장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고 정의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이들이 오히려 눈총을 받으며 고생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 무죄 혹은 혐의없음으로 원점에 되돌아오곤 한다. 이미 망가진 뒤여서 분통만을 삭일 수도 있으나,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역사가 기록하여 진실은 살아남는 법이다.


양치기의 외침은 반복할 때마다 곧 실체가 드러나게 되어있다. 아무리 버텨도 해는 기울고 세월은 간다, 바람 빠지는 풍선은 붙잡고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다. 권력의 종점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리석게 지는 해의 그림자 뒤에 추한 모습을 감추려 급급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 부름을 받은 공직자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커녕 개인의 안위에 급급하여 ‘멸공봉사’(滅公奉私)에 눈이 멀어서야 말이 되는가. 이순신의 사즉생(死卽生)을 새길 일이다. 대통령이나 우병우나, 그 힘센 권력과 명석한 두뇌를 개인의 보신과 정권의 성역방어에 쓸 게 아니라 어서 속히 고통 중에 있는 국민과 나라 앞에 승복하는 것이 그나마 개인적으로나 정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모든 면에서 다행일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국공합작이라고?

● 칼럼 2016. 9. 8. 19:40 Posted by SisaHan

지난여름 내내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함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을 연일 보도한 것이 업계에선 꽤 흥미로운 일이었나 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취재원들로부터 두 신문의 보도를 ‘국공합작’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실소가 터져나왔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 내용을 확인한 결과 보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과거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연합전술에 비유된 것이다. 우 수석의 권력이 제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제국주의 열강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때가 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두 언론사가 ‘합작’까지 할까. 참으로 시답잖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우 수석에 대한 기사는 다른 고위 공직자에게 적용했던 기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름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하려고 애썼던 보도가 정략적 산물로 비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찜찜했다.


우 수석이 진경준 전 검사장의 도움으로 처가의 골칫거리였던 서울 강남역 땅을 넥슨에 처분할 수 있었고, 그 고마움 때문에 진 전 검사장의 넥슨 비상장 주식을 눈감아줬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이라면 대단한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과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이 사익에 눈이 멀어 본연의 업무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명백한 직무유기로 자질 논란을 넘어 실정법 위반까지 따져봐야 할 사안이었다. 우 수석이 서슬 퍼런 권력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기록적인 폭염도 잊은 채 연일 우 수석 관련 보도를 이어가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첫 보도를 한 조선일보가 언제부턴가 그 횟수를 눈에 띄게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루탄 가스가 한바탕 터지고 난 뒤 얼떨결에 시위대 앞에 서게 된 황당함이라고나 할까. ‘동지’는 간데없고 홀로 깃발을 들고 외롭게 ‘구호’를 외치는 날이 계속됐다. 우 수석한테서 형사고소와 함께 거액의 민사소송까지 당한 그 신문의 처지를 고려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폭로’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조선일보의 대표적 논객 가운데 한 사람인 송희영 전 주필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옛 경영진과 유착 관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조선일보의 우 수석 관련 보도가 송 주필에 대한 검찰 수사와 연관이 있다는 내용의 찌라시도 나돌았다.


김 의원의 폭로는 정치 공작의 냄새가 진동하지만, 언론이 그동안 쌓아온 ‘업보’의 대가인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조선일보의 우 수석 관련 보도는 경쟁사가 인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빛이 바랠 위기에 처했다. 언론이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해도 진정성이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겨레 취재에서 진 전 검사장이 우 수석 쪽과 넥슨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 수석이 배우자의 재산을 허위로 신고하고, 가족회사를 설립해 생활비를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등 다른 비리 의혹들이 속속 드러났다. 검사들 중 상당수가 “언론 보도 내용이 왜 근거가 있는지 수사 경험이 많은 우 수석 스스로가 잘 알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우 수석과 청와대는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며 버티고 있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정략적 의도가 담긴 정치 공세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우 수석 관련 보도는 정치 문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
< 이춘재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


[한마당] 말기적 ‘전조현상’

● 칼럼 2016. 8. 30. 19:50 Posted by SisaHan

화산이 터지거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예고성(?)으로 일어나는 징후들을 ‘전조현상’이라고 한다.
화산 폭발 전에는 지하 마그마가 차츰 상승하는 데 따라 지온도 올라가고 소규모 지진이 잦아진다. 또한 화산기체 방출량이 많아지며 지형이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지진의 경우에는 동물들의 이상한 현상들이 알려져 있다. 동물원의 짐승들이 우리를 뛰쳐나가고 두꺼비가 떼지어 이동하기도 하며 겨울잠을 자던 곰과 뱀 등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는 사례도 전해진다.
얼마 전 부산과 울산에서는 정체모를 악취를 맡은 시민들이 지진의 전조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출하며 신고 전화가 빗발쳐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재해에 앞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불안과 경각심을 주어 사전 대피하도록 유도하는 잇점이 있다. 그래서 전조현상을 연구하고 예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다. 전조현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여 화산과 지진이 일기 전에 사람들이 재빨리 피신할 수 있게만 한다면, 자연 재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전조현상을 무시하고 방심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요즘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보면 혹시 말기적 전조증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불안이 커지곤 한다. 뭔가 폭발할 것만 같은 심각한 긴장국면 때문이다. 고발당한 피의자들에 대통령이 둘러싸여 그들을 보호하느라 고생한다는 실감있는 지적도 나온다. 옛날에는 대나무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숨어서 외쳤다지만, 이젠 여기저기서 아예 대놓고 아집과 오기를 들먹이며 “대통령 귀는 불통 귀”라고 힐난하는 양상이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감찰하라고 임명받은 감찰관이 수석비서관을 감찰한 게 무슨 잘못일까,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제 손으로 앉힌 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이라고 단정해 검찰에 수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의혹의 민정수석을 경질하라는 비등한 여론에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들의 식물정부 만들기 공작”이라는 황당한 반박을 내놨다. 그 의혹의 당사자는 철판으로 심장을 감싼 것인지, 들끓는 민심을 외면한 채 꿋꿋이 버티고 앉아있다. 그러니 마치 화산이나 지진을 예고하는 ‘전조현상’같은 불안감이 청와대 안팎에 감도는 것은 어느 한사람만의 불길한 예감일까.


뭔가 터질 것만 같은 조짐은 민심에 정면 대결을 마다않는 독선과 불통, 그리고 자신만이 옳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때문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天心), 곧 ‘하늘의 마음’이라 했다. 권력은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다는 말도 있는데, 하늘의 뜻인 민심을 묵살하고 깔아뭉개는 어리석고 적대적인 응대를 하고 나선 격이다. 민심의 풍랑에 침몰위기의 조각배처럼 종국으로 치닫는 무모함의 질주를 보는 것만 같아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일개 수석비서관을 감싸겠다고 대통령이 팔을 걷어 부치면서 국정 컨트롤 타워가 흔들리고 검찰마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나라 꼴은 엉망이 되든 말든 비서관 구하기에 나선 대통령의 집착과 무능이 하늘을, 민심을 찌르고 후빈다.
지난해 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정확한 표현으로 대통령과 세태를 꼬집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그처럼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와 어지럽고 도리도 땅에 떨어진 세상의 불의함’, 바로 오늘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도자의 바른 정치를 설파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이며 “스스로 솔선하여 올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는가?”(子帥以正 孰敢不正) 라고 정도(正道)의 정치를 설명했다. 공자는 또 정치를 “식량과 군대를 넉넉히 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것”(足食足兵 民信之矣) 이라고 강조한 뒤 그 중에 차례로 버리도 좋은 것을 묻자 “첫째는 군대, 두 번째는 식량”(子帥以正 孰敢不正)이라고 말했다.. 모두 버려도 백성의 신뢰는 버려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이유를 공자는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국가존립의 필수요소로 신뢰를 꼽았다.
풍랑이 거세면 난파를 대비하는 게 상식이다. 민심의 바다에서 거칠게 요동하는 전조현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예감아래 스스로의 과오를 살펴 속죄의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민심을 거슬러 대적하는 지도자의 말로는 거의가 불행했다.


< 김종천 편집인 >


최근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일본인은 다름 아닌 아키히토 일왕일 것이다. 일왕이 지난 8일 공식적으로 밝힌 ‘생전 퇴위’ 의사와 일본의 71번째 패전일 추모식 때 언급한 “깊은 반성”이라는 단어가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강력한 울림을 남겼기 때문이다.
일왕은 지난 7월10일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정족수를 확보한 직후인 7월13일 궁내청 관계자에게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 이 소식은 NHK 방송 등 일본 언론을 통해 신속히 전해졌고, 모든 일본인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일왕의 생전 퇴위 의사 표명은 아베 신조 총리가 ‘필생의 과업’이라고 해온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것일까? 정확한 이유야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일왕은 평화헌법을 소중히 생각해온 분이시니 아주 조금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기고 있다.


‘역시 일본인들은 비겁하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질문을 금기로 여기는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천황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심리나 결국 비극으로 치닫고 만 일본의 근현대사를 올바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1880년대 일본인들이 마주한 가장 큰 고민은 일왕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헌법이라는 근대국가의 성문법 틀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왕이 일본을 통치하는 근거는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헌법 초안 작성자인 사법성 관료 이노우에 고와시(1844~1895)는 일본의 건국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인 진무천황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일왕가 혈통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제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정해졌다. 일본이 헌법을 통해 신의 후손이 만세일계로 다스려온 신국으로 규정된 것이다. 일본 군부는 이후 일왕의 초월적인 권위를 활용해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일으켰고 이에 저항하는 정치인들은 쿠데타를 통해 암살했다. 그 결과가 끔찍한 전쟁과 비참한 패전이었다.


패전 이후 일왕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일본을 통치하는 ‘원수’에서 실제 권한을 갖지 못한 채 일본 국민들을 통합하는 ‘상징 천황’의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와 함께 일본 사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금기’로 삼는다는 합의를 이루게 된다. 일왕의 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그 뒤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지며, 지난 전쟁 때와 같이 국가 전체가 한 방향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일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추도사 속에 ‘깊은 반성’이라는 한두 단어를 넣는 정도이며, 일본인들은 그에 대한 일왕의 절실한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짐짓 모른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필요한 것은 ‘현명한 군주’보다는 ‘영향력이 없는 군주’일 것이며,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군주 자체가 없는 공화국일지 모른다.
이런 기묘한 일본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현재 일본에서 천황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본의 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갖는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의 주권자는 일왕인가 국민인가. 헌법은 분명 주권자는 국민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생각이지 ‘자애로운’ 일왕의 마음이 아니다.


< 길윤형 - 한겨레신문 도쿄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