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 미사일 미스터리

● 칼럼 2016. 4. 30. 19:47 Posted by SisaHan

최근 한·미 군사연습인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때 북한의 대응을 보며 피식 웃은 적이 있다. 한·미가 대규모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을 하자, 얼마 안 있다 북한은 대규모 상륙과 반상륙방어 연습을 했다. 또 남한이 F-15K, F-16 등의 정밀타격 훈련을 하자, 이번에는 장거리 포병대 타격 연습과 KN-06 지대공미사일 발사로 응대했다. 적의 군사행동에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장군’ ‘멍군’ 하는 게 너무 즉흥적이어서 치기처럼 느껴졌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다. 한·미의 양보를 노린 무력시위라는 분석도 있고, 당대회를 앞둔 대내 결집용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때 북한의 행동을 보며 어쩌면 항공우주 전문가 마르쿠스 실러의 2012년 랜드연구소 보고서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다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실러는 당시 ‘북한 핵 미사일 위협의 특징’이란 보고서에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 미사일이 군사 수단이라기보다 외교협상력 강화 등 전략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 근거로 실러가 제시한 것 중에는 ‘발사 횟수 부족’이 들어 있다. 실러에 따르면, 스커드와 노동, KN-02 등 미사일 대부분이 실전배치 전 1~3번 시험발사를 했고 배치 후 3~8차례 발사했다.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은 한 번도 발사한 적이 없다. 미국과 소련 등이 10여차례 시험발사를 거쳐 신뢰성을 확보한 뒤 실전배치하며 매년 1차례 정도 발사훈련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혹 김정은 제1비서 집권 이후 부쩍 늘어난 미사일 발사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이런 의구심에 “그렇지 않다. 잘 보라”는 항변이 아닐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2014년부터 급격히 늘었다. 매년 10차례 이상 스커드와 노동미사일 등을 쐈고, 올해 들어서도 벌써 5차례나 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한 방송에서 “집권 5년차인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 18년보다 더 많이 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런 행동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면-사실 신뢰성이 확보돼야 상대에 위협이 될 수 있고 그래야 전략적 목적도 달성할 것이다-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지난 15일 처음 발사한 무수단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해 중거리 이상의 미사일 능력에 흠집을 남겼다. 그러나 23일 발사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은 30㎞를 날아 몇 년 안에 실전배치될 가능성을 높였다. 또 북한이 이례적으로 공개한 대기권 재진입 실험, 고체연료 로켓 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용 엔진 분출실험 등은 향후 북한의 미사일이 훨씬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도 일깨웠다.


그래도 실러가 던진 의문은 유효하다. 북한의 국내총생산량(GDP)은 중남미의 코스타리카 수준인데, 이런 나라가 10여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을까. 또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은 80년대 스커드 B를 3년 만에 역설계하면서 시작됐다고들 하는데, 그런 뛰어난 역설계 능력이 왜 다른 분야, 예컨대 차량이나 산업기계, 농기계 등에는 발휘되지 않았을까. 북한의 역설계 능력, 즉 미사일 개발 능력이 과대포장된 건 아닐까. 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는 북한을 “정보기관이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실패한 사례”로 꼽았다. 미사일은 어떨까. 북한이 보여주는 대로 다 믿어야 할까.
< 박병수 -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



[한마당] 착각 자유여행기

● 칼럼 2016. 4. 22. 20:38 Posted by SisaHan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제 잘난 멋으로 산다는 비아냥이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몰라도 착각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기 눈에 보이는대로 분별하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며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는 게 사람이다. 그 게 인간의 특성이고 다양성이다.


그러나 그 개성의 다양성 속에서도 ‘보편’ 이라는 평균선은 존재한다. 그 보편을 무시하고 너무 자신만의 시각과 방식에 매몰될 때 그 사람은 어리석게도 ‘착각의 자유 여행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령 추운 겨울에도 햇살 좋고 히터가 작동하는 자동차 내부는 훈훈하다. 차안의 더운 공기에 몸이 녹아있다 보면 바깥쪽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방심하고 밖에 나오면 매서운 찬공기에 재채기와 감기가 달려든다. 바로 잠깐의 착각이요 착시다. 잠깐이면 괜찮은데, 아예 몸에 밴 경우가 문제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회사라 해도 사장은 의례적인 존대를 받는다. 콧대가 높아진 사장님은 직원이 우습게 보여 멋대로 부리려 한다. 그러니 거대 회사야 오죽할까. 오너들이 운전기사와 직원을 종 부리듯 욕설에 주먹질까지 하는 것은 그런 착각의 자만이 습성화한 때문이다.


온 나라가 ‘엔(N)포 시대’니 ‘헬(Hell) 조선’이니 아우성을 치고 경제가 위험하다고 빨간불이 깜박여도, 주변을 에워싼 충성파들이 “잘 돼 갑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아부의 장막을 둘러친 권력자는 어찌될까. 당연히 눈과 귀가 무지개 빛 환상과 환청에만 매몰돼 자아도취가 심화될 뿐이다. 지난 20대 총선은 그런 착각과 착시의 실상을 웅변해 주었다. 비단 최고 권력자만 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을 부르는 수많은 요소들의 우물에 갇혀 ‘착시여행’에 몰입했다가 실상이 드러나자 충격에 휩싸였다. 야당이 갈라지고, 여론조사가 큰 차를 보이고, 대형 신문들과 방송, 종편들이 불어대고, 북풍이 거세게 몰아부치고, 그래서 결과는 뻔하니 멋대로 해보자는 오만의 객기로 칼질을 해대고, 대통령은 법을 무시하며 선거구를 누비고…, 그런데 위대한 국민들은, 그리고 하늘의 오묘한 섭리는 그 착각의 꺼풀을 사정없이 벗겨내고 마치 천지개벽처럼 적나라한 실체를 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실체가 드러나다 보니 착각의 중병에 걸려 거만스러웠던 객체들도 수없이 밝혀졌다. 홍수가 휩쓸고 간 논바닥에 자갈이 쌓이고, 미꾸라지들이 흙탕물에서 팔딱이는 것 같이. 하루 아침에 여당이 자갈밭처럼 지리멸렬해졌다. 권력 호위무사로 설치던 거물들은 풀이 죽거나 미꾸라지 신세가 됐다. 정권 나팔수 같던 언론들이 갑자기 주인을 향해 짖는 미친 개처럼 표변했다. 권력의 충견노릇을 하던 기관과 인물들은 선거 망치고 나라망친 주적들로 지탄대상이 돼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권력자의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비단 권력과 집권 쪽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승리가 나 때문이니, 내 전략이 먹혔느니 서로 공신반열을 주장한다. 패권이니 거부감이니 정체성이니 ‘프레임 언어’가 난무해 헷갈리게 한다. 셀프공천에서 이제는 셀프 추대론까지 나온다. 작은 지역당 신세에 말끝마다 정권교체를 장담하더니 자신들이 사실상 1당이라고 어거지를 쓴다. 정말 ‘착각은 자유’다. 이제 그들의 착각병이 심해지고 바야흐로 착시여행에 몰입해 가는 것만 같다.
하나님을 믿는 목회자가 주일에 예배당을 닫고 성도들에게는 기독정당 선거운동에 나서라고 독려했다. 어느 유명 목사는 예배시간에 그 정당 선거홍보 영상을 상영하며 꼭 찍어야 한다고 설교를 했다. 그런데 전국 득표율 3%도 안돼 헛발질만 한 꼴이 됐다. 명철한 영안(靈眼)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기는 커녕 성도들의 할렐루야 환호에만 도취해 정치야망에 빠진 종교권력자들의 착각이다.


마침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폭력시위 운운하며 강압하던 엄청난 경찰병력이 선거 참패 때문인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폭력이 난무했는가. 평화집회가 축제와도 같이 열려 경찰의 착각을 입증했다. 돈을 받고 동원된다는 어버이부대도 감쪽 같이 모습을 감췄다. 모국에서는 그렇게 사라졌는데, 어인일인지 토론토에는 그런 족속이 나타나 얼쩡거렸다. 그리곤 뭐가 부끄러운지 사진찍지 말라고 욕설을 퍼부어댄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반박하려 공공장소에 공적집회로 나온 애국적 영웅심리는 어디로 갔나. 기자에게 사진찍지 말라고 악쓰는 그들의 수준에도 아마 창피를 아는 일말의 감각은 있음이다. 혼란스런 착각이다. 착각은 정말 도처에 난무한다.


< 김종천 편집인 >



우리 사회에서 박정희의 성장 신화는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총선에서 여당이 크게 패배한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사실 박정희의 신화는 문민정부 이후 경제가 제대로 풀려나가지 않을 때, 민주적 절차가 소모적이라고 느낄 때마다 국민들의 기억의 창고에서 불려나왔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 이명박이나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 모두 그 신화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과연 ‘기적’의 역사는 반복되었는가? 이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한국은 저성장,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노인 빈곤, 청년 실업이 만성화된 국가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과 자원외교에 수십조원을 날렸다. 지난 8년을 거치면서 1천조원 이상의 가계부채와 700조원이 넘는 국가채무가 쌓였다. 박근혜 정권 3년 동안의 국가채무는 노무현 정부 5년의 9배에 달한다. 박근혜 정권은 개성공단 폐쇄로 수많은 중소기업가들과 그곳에 고용된 사람들을 파산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으며 500만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원래 박정희의 지도력이라는 ‘신화’도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60~70년대 성장에서 박정희의 공로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민주화·다원화된 지금 세상에 대통령이 군 지휘관 방식으로 국가경제를 이끌 수 있다는 것도 난센스다. 21세기 지구화 시대에,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가 조립가공의 단계를 넘어선 단계에, 대기업 밀어주기 성장전략이 먹힐 수도 없고, 1인당 소득을 국가발전의 지표로 삼는 것도 촌스러운 이야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를 마치 주문처럼 외면서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도 재벌 대기업 편향적 정책을 폈다. 지난 3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공개 일정 468회 중, 기업가들을 16번 만날 동안 노동계 대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정권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노동개혁’ 법안 등을 보면 사회를 망가뜨리고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고, 국가가 대기업의 민원 해결사처럼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대선 당시 공약집의 16%를 차지하던 ‘복지’라는 용어는 당선 직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경제 활성화’가 경제민주화 자리를 대신했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최악의 산재 국가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가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이 상황에서 ‘경제발전’과 ‘국민행복’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우리가 기억할 만한 복지·노동·교육 정책은 전혀 없었고,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가 미래지향적인 산업정책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저출산 고령화의 대처, 지식 경제를 위한 사회정책 마련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며,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구시대의 막내’라고 토로했던 시점에 한국은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의 목표와 전략을 완전히 새롭게 세웠어야 했고, 복지를 위한 조세 개혁과 미래지향적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과 노동시장 정책을 세웠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대선 당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나 복지라도 차분하게 추진했더라면 경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아마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등으로 초래된 국민들의 국가불신을 치유하는 데도 국가채무 이상의 갈등해결 비용이 소모될지 모른다.


‘탄핵’에 버금가는 박근혜 정권 총선 패배는 이제 국민들도 성장 신화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성장’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늦기는 했지만 복지, 조세 개혁, 경제민주화, 교육 혁신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북방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두 야당은 20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모든 경제사회 관련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권교체, 대권 운운하지 말고 새 국가 패러다임을 각각 제시하고서 경쟁해야 한다.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교수 >



여당이 압승하리라던 20대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놀라운 이변의 배후에는 20대 청년 세대가 있었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몰려가 정치지형을 바꾸어놓았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많은 지역에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려 13%나 치솟은 20대의 높은 투표율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이 움직이면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청년들은 온몸으로 체험했다. 20대 총선이 우리 사회에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것이다. 청년들이 맛본 정치적 승리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을 강화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불리던 20대가 대거 투표소로 달려간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마저 포기해야 하는 처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삶의 벼랑에 몰린 자가 보내는 절박한 구조 요청이다.


20대의 ‘선거반란’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 자각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아직 희망적 전망을 내놓기엔 이르다. 청년 세대의 절망적 분노가 곧장 정치적 각성이나 조직적 행동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청년 세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공론장인 대학이 완전히 탈정치화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은 줄곧 민주화의 선봉장이었다. 4·19, 5·18, 6·10으로 이어지는 민주혁명의 구심점은 언제나 대학이었고, 암울한 군사독재 시대에 유일한 정치적 공론장 구실을 한 것도 대학이었다.
이런 대학이 정작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에는 급격히 탈정치화되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고, 정치적 공론장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했다. 대학의 탈정치화야말로 민주화의 최대 역설이다. 독재가 민주주의자를 길러낸 반면, 민주화가 민주주의자 양성을 중단시킨 것이다. 민주화 시대에 대학에선 민주적 의식을 가지고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며,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어떻게 이런 기이한 일이 생겨난 것일까.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투쟁한 사람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이라는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과거 운동권이 보인 권위주의적 행태와 권력 지향적 처신이 대중들의 지탄을 받기 시작하면서 대학에서도 ‘정치’, ‘지식인’, ‘운동권’이라는 말이 졸지에 ‘욕’이나 ‘낙인’처럼 되어버렸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노골화된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대학을 일개 기업으로 전락시켰다. 그 결과 대학은 정치의 무풍지대로 퇴락해버린 것이다.
독일 대학에 갈 때마다, 대학식당에 뿌려진 수많은 전단지를 볼 때마다, 한국 대학의 현실이 겹쳐 보여 가슴 아팠다. 난민, 핵발전소, 기본소득, 최저임금, 극우주의, 유럽통합, 전쟁, 테러 등 현안 문제들이나, 자본주의 종언, 에너지 전환, 생명 윤리 등 거시적인 이론적 문제들까지 실로 다양한 정치적 주제들을 놓고 학생들이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다. 취업정보와 기업홍보 전단으로 도배질된 한국 대학의 모습이 떠올라 울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헬조선’의 현실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역사의 질서다. 우리가 만든 질서이기에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 질서를 지배하는 자들의 거짓과 폭력과 야만과 파렴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능과 무위와 무력과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무릇 모든 해방은 자기해방이다. 청년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자는 바로 청년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청년 세대는 자신을 해방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번 총선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 김누리 - 중앙대 교수, 독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