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통일할 필요 없다?

● 칼럼 2016. 3. 25. 20:00 Posted by SisaHan

통일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토론토 강연에서 전한 어느 대학생의 통일발표회 최고상 이야기는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들 가슴에 돌맹이를 던지듯 파장을 준다.
최우수상을 탄 그 학생의 발표 제목은 뜻밖에도 ‘통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통일이 소원인 마당에 ‘통일 불필요’ 주장을 하다니, 과연 수상작으로 자격이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학생의 주장과 논리는 단순했다. 흔히 통일을 하면 전쟁을 안해서 좋다든가, 소위 대박을 위해,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군비지출을 줄이기 위해 등등 그런 물질적 경제적 목적에서 통일을 원한다면 차라리 통일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는 단 한가지 이유, “통일은 같은 한민족이니까 해야 하지 안겠느냐”는, 단순명료한 외침으로 감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한 대학생의 관점이라기에는 너무 인간적이고, 애족적인, 진짜 민족사랑의 신선한 통일관이 아닐 수 없다.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물질 만능적인 통일담론에 일침을 가한 역발상이 참 가상하다.


맞는 말이 아닌가. 남북이 원래 같은 민족이니까, 같은 말을 쓰고, 오랜 민족적 전통과 역사를 공유한 한민족이니까, 하루속히 하나 된 통일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무리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피를 나눈 혈족이면 가족이고 한지붕 아래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잇단 핵실험에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를 향해 도발을 하고, 남한과 유엔은 강력한 제재와 군사훈련으로 극한적 대결상태가 된 현 상황에서 ‘같은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는 말은 시의에 동떨어진 한가롭고 공허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 땅에서 남북이 이념으로 갈린 뒤 서로 총질을 해대고 죽이고 죽는 전쟁까지 치른 뒤 60여년 간 남과 북은 서로의 동질성 보다는 이질성을 심화하고 강화해 나갔다. 그 간격은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 해도 쉽게 메워지지 않을 깊고 넓은 상처로 번져있다.


지난 세월 역대 정권들이 남북대화를 한다며 협상과 왕래와 약속도 했지만, 지금껏 도로 제자리의 쳇바퀴 대응을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런가. 우선 하나는 서로간 정권유지와 체제선전의 도구로만 통일전략을 추구해왔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동질성과 민족애를 최우선으로 상대를 감싸안고 포용해 보려 용을 쓴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양측 모두 남북 문제는 권력강화와 국면전환의 용도로 사용해 왔다는 이야기다. 대화를 해도 선거용, 혹은 경제지원 유도용 등에 국한될 뿐이었고, 대립국면에서도 서로 정권보위와 내부단속용으로 상대를 이용할 뿐이었다. 오죽하면 남북정권이 대립적 공존, 혹은 협조적 대결의 전략으로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을까. 경쟁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한 전력들, 선거철 도발을 부탁하는 희극적인 공조체제까지 있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은 어떤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은 말이 같다는 것 외에는 전혀 실감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미운 적이요 원수로 취급된다. 같은 말로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감정표현을 들으면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말이 다른 영어나 일어·중국어·러시아어를 하는 쪽에 사정을 하고 한편이 되어서, 같은 말을 하는 같은 민족을 ‘죽이려’ 드니, 차라리 말이 다르면 평화롭고 연대가 될지 모르겠다.


그 학생의 말대로 우리가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서로를 피붙이로 감싸안는 한민족 의식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인정한다면 설령 망나니짓을 했어도 용서할 수 있고, 품어줄 수가 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 비견해 볼 수도 있다.
권력세습과 유일 독재, 제왕적 전체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념과 사상이 다른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다양성의 민주주의다. 생각이 다르다고 적대하고 원수가 디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체제 불안을 무단독재와 핵개발 등으로 돌파하겠다는 북한 유일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면서 동족으로 끌어안는 것이 지혜로운 평화와 통일과 안보의 길이 아니겠는가.
물론 지금 상황, 지금의 정권철학으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들 2만여명도 끌어안지 못하는 형편에 남북통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같은 나라 안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에 종북이니 좌파니 적대시 하고, 지역차별과 계급·계층차별을 심화시키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즐기는 이들에게 통일이란 말 자체가 사치요 한낱 구호일 뿐임은 자명할 터이니….


< 김종천 편집인 >



내우외환이다. 위기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와 분노 조절장애가 추동하는 대통령의 사감이 국정에 깊숙이 투영되면서 나라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 밖이 시끄러우면 안이라도 진정시키고 안이 소란하면 밖이라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이 국정 운영의 기본이련만, 그러기는커녕 안팎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밖에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도발로 소동이고, 안에선 집권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의 배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민심이 흉흉하다.


문제는 위기의 상당 부분이 대통령의 걸러지지 않은 사감에 의해 촉발되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관훈토론에서 대통령의 오락가락 경제인식과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며 경제난으로 나라가 결딴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그보다도 먼저 사감을 앞세우는 대통령의 절제력 잃은 리더십이 나라를 망칠 것 같아 걱정이다.
표면적으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유승민·진영·이재오 등 ‘대통령의 배신자들’을 제거한 주범으로 꼽히지만, 병풍 뒤에 대통령이 있고 이 위원장은 그의 뜻을 대리 집행하는 ‘망나니’에 불과하다는 걸 간파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중국의 전통 병법인 삼십육계 중 하나인 ‘차도살인’(남의 칼을 빌려 적을 해치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할 만하다.


차도살인 전법을 쓰더라도 합당한 명분과 논리가 있고 수긍할 만한 절차에 의한 것이면, 그리 놀랍진 않을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에 반대하고, 당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이 어찌 당 정체성에 어긋나고, 국회의원의 품위를 해치며, 편안한 지역에서 다선을 누린 공천 배제 조건에 해당하는가. 공천 학살의 핵심 대상인 유승민 의원을 쳐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알아서 탈당해 달라고 공개 요구하는 치사함은 또 무엇인가.
이 모든 행태가 박근혜 정권이 민주·공화의 원리가 아니라 지도자의 사감에 기초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보복의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정은 정권의 숙청극과 본질에서 차이가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의 격한 감정이 짙게 묻어 있는 정책이 즐비하다. 중국이 북한 압박에 미온적인 자세라고 해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파트너’라고 공개적으로 직격탄을 날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의 전략경쟁을 유발할 게 뻔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무모하게 밀어붙이며, 남북협력의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하기로 한 것이 지도자의 화끈한 성정을 보여줄 수는 있겠으나, 상대가 있고 강제력 발동이 어려운 국제정치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이성적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삼십육계 중 ‘기회가 있을 때 벌떼처럼 공격하라’는 진화타겁의 병법을 연상시키지만, 이것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태를 주동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초강력 유엔 제재 결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벌써 우리나라와 관련국 사이에 제재 목표에 대한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체제 붕괴를 내걸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제재와 평화협정의 병행을 강조하고, 미국은 비핵화 협상 유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선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반대를 공언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와 정부의 추가 독자 제재는 박 정권이 애초 내걸었던 3대 외교·안보정책인 대북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모두 무화시켰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쏟아낸 감정적인 정책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나라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다지만, 국민은 대통령 걱정에 피가 마르고 있다. 폭발 직전이다.
< 오태규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실장 >



바닥을 향한 질주, 거대 여야의 공천 과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87년 이후, 아니 그 전까지 포함해도 이번 선거처럼 ‘정책’이 선거판에서 사라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거대 여야 두 당의 공천은 거의 국민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수준이다. 청년들에게 투표하지 않아도 좋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변화의 진원지가 되어야 할 더불어민주당이 심각하다. 긴급 구원투수 김종인이 내놓은 더민주의 지역구, 비례대표 후보들을 보면 ‘중도 확장’의 기대감보다는 야당성을 포기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다.

이쪽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이 내일 저 당으로 가고, 또 저 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명도 없이 그를 덥석 받아들이니 여-야가 분간이 잘 안 되고 왜 정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거대 야당의 제대로 된 대여 공세가 없으니 무당파가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 3년 박근혜 정권의 심판의 장이 되거나, 여당의 폭주를 막아야 할 야당의 공천이 감동을 주지 못하면, 결국 조직과 돈을 가진 여당만 웃을 것이다.


국민들이 거의 망가진 더민주를 포기하지 않고 야권연대를 기대하는 이유는 이 막장 정권을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더민주가 김종인을 ‘모셔올’ 때는 안정감, 관록의 이미지, 경제정당의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켜 친여 성향의 부동층을 끌어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공학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럴듯한 대안이다.

그러나 지난 한국 정치사를 보건대 현재의 선거제도, 극히 불리한 언론 환경, 지역 기반이 없는 야당으로서는 정치에 좌절하고 실망한 무당파의 가슴에 불을 붙이지 않고서는 정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고, 설사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강고한 관료 집단, 재벌이라는 큰 벽이 떡 버티고 있어서 애초의 공약을 접기 십상이다. 필리버스터, 청년 비례 선출 등 오랜만에 타오를 조짐을 보인 불씨마저 꺼버린 김종인의 ‘정치 셈법’과 그가 추천했던 비례후보의 면면은 야권 성향 사람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이번 선거가 지난 민주화 28년의 역사를 완전히 땅에 묻는 ‘죽음의 굿판’이 되거나, 65년 야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돌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실 ‘제2의 민주화운동’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 정립과 새 주체의 형성이 없이는, 그리고 힘 있는 진보정당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이 난국을 벗어날 길이 없다. ‘낡은 것’이 사라지지 않고, ‘새것’을 가로막아온 ‘정당 아닌 정당들’의 정치 독점, 더민주의 기능 상실이 원인이다. 국내외의 극히 절박하고 시급한 의제가 토론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는 이런 선거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중도당으로 변신한 더민주가 총선에서 선방을 한들 그게 과연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까? 김종인의 ‘노동’이 빠진 경제민주화, ‘북한궤멸론’은 완전히 70년대 식이다.


분위기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선거가 후보 개인에 대한 인기투표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하고, 정치 변화의 작은 실마리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 차원에서 시민, 청년단체 주선으로 다양한 방식의 정치마당을 열어야 한다. 정의당, 녹색당 등 소수정당들과 지역의 여러 단체, 그리고 소상공인과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지역 민회(民會)를 만들어 이 정권을 심판하는 토론장을 열었으면 좋겠다. 한 선거구에서 1천명 정도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참여해서 주거, 일자리, 복지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정당 및 각 당 후보를 검증하는 일은 너무 늦었나? 중요한 것은 주민이 후보 검증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야권연대의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시민 정치 모임의 단초라도 만드는 것이다.
총선 결과가 어찌되든 선거 후 우리 정치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새 정치 주체를 만들려는 맹아적인 노력이라도 해야만 최악을 막고 희망의 씨앗을 피울 수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노래, 이제 그만 부르고 싶다.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



[1500자 칼럼] 코레아노와 에니켕

● 칼럼 2016. 3. 18. 20:16 Posted by SisaHan

여행의 즐거움이란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감동을 얻는 일에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고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나며 마음 훈훈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뛰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나의 쿠바 여행은 만족스럽다. 때마침 같은 호텔에 머문 큰빛교회 시니어팀의 선교활동을 잠시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1년 전부터 쿠바에 선교의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꾸어 온 Y님의 특별한 배려로 가능했다. 기실 80-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정으로 그곳까지 온 크리스천들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뜨거운 감동이 아닌가. 아울러 안이한 내 신앙생활에 도전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선교팀을 따라 맨 처음 방문한 곳이 바로 마탄자스(Matanzas)에서 4km 떨어진 외딴 마을 엘 보우(El Bow)였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잡초만 무성한 벌판에서 그 시대를 대변하듯 외롭게 서있는 <한인 기념비>를 만났다.


 ‘여기 엘보로에 1921년 이민으로 온 대부분이 쿠바 유일의 전통한민촌을 이루어 살면서 에니켕 수확에 힘쓰는 한편 고국의 역사와 언어를 가르치는 한국학교를 세우고 교회와 한인회를 설립하여 우리의 전통문화 계몽을 의해 노력했다. 이들 후예들이 이 귀중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으며,…’
가슴이 울컥하며 목젖이 뜨거워졌다. 이곳이 쿠바 한인선조들의 첫 정착지인 에니켕(henequen) 농장이었다. 지금은 오직 돌같이 딱딱한 몇 그루가 남아 기념비의 수문장인양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다가 부주의로 그 줄기 끝 뾰족한 부분에 내 왼쪽 다리를 찔렸는데 엄청 아팠다. 금세 피멍이 들 정도로 단단한 줄기를 온종일 뙤약볕에서 잘라야 했다니 얼마나 심한 중노동이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 쿠바에 한인들이 정착했을까? 1905년에 한국인 1천 33명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있는 에니켕농장 노동자로 집단이주를 했다. 그들의 고용계약을 끝났을 때는 이미 한국과 일본이 합병(1910년)되어 돌아갈 나라를 잃고 그 땅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1921년에 이르러 그들 중 274명이 멕시코 ‘에니켕 지옥’으로부터 사탕수수밭을 찾아 쿠바로 정착지를 옮긴다. 바로 이들이 쿠바한인(코레아노) 1세다. 그러나 쿠바에서도 설탕값 폭락으로 인한 여파로 사탕수수밭 대신 에니켕 농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용설란이라 부르는 선인장 에니켕은 ‘해먹’이나 배의 닻줄을 만드는 천연섬유로 칼로 잘라내기 힘들만큼 억세고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 몸에 상처내기 십상이라 현지인이 가장 꺼리는 노동에 속했다.


세찬 바다 바람과 열대지방의 이글거리는 태양빛 밑에서 자라는 대형선인장의 특성이지 싶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망국의 한과 설움을 달래며 한인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한인회를 조직하여 우리문화 계승에 힘썼다 한다. 조국애를 발휘하여 매일 식구수대로 쌀 한 숟가락씩을 따로 모아서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까지 보냈다니 이 얼마나 눈물겨운 애국심이 아닌가. 나도 이민 1세인지라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낯선 땅에서 그들이 겪었을 외로움과 고달픔이 아픔으로 전해온다. 더군다나 노예 같은 밑바닥 삶에 인종차별까지 당했다니 어찌 자유국가로 이민 온 우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쿠바혁명 이후부터 사회주의 국가로 변하면서 교육과 의료부분의 불평등은 사라졌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근래에는 전문직을 가진 코레아노들이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도 대를 잇는 가난에서 전혀 헤어나지 못한 실정이라 들었다.


코레아노 후예들이 참석하는 현지 교회들을 방문했을 때다. 비록 우리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그들이지만 서로 얼굴을 비비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니 한국인의 따사한 숨결이 느껴졌다.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쓴 코레아노 3세 노인이 기타를 치며 우리말로 ‘만남’과 ‘애국가’를 2절까지 불렀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을 적시고 말았다. 모국을 그리는 절절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흔들었던 것이다. 아마 이들이야말로 모국으로부터 철저하게 잊혀진 해외동포들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경제대국을 이룬 오늘의 한국이 서둘러 이들에게 조국방문의 기회와 풍부한 물자를 지원해 줄 수는 없을까.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인지라 그 길이 용이하진 않으리라. 단지 내 어린 시절 교회 선교사로부터 구호물자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그들에게도 깊은 관심과 온정의 손길이 하루빨리 펼쳐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아직까지도 코레아노와 에니켕이 내 마음 속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풍요를 누리면서도 상대적 빈곤을 느껴온 내 자신이 사뭇 부끄럽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