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간 대학 1학년생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스웨덴 온 지 3주가 되었는데, 유모차를 끌며 아이를 달래는 아버지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누군가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볼 때면 저 스스로 얼마나 배제와 혐오에 익숙해졌는지 느끼게 됩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북유럽에 가보지 않았거나 그곳에 가서도 이런 광경을 눈여겨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1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저출산 특위에서 “독일은 출산율이 1.34까지 내려가서 대거 이민을 받았는데 터키에서 400만명이 와서 문을 닫기도 했다”면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선족 이민을 대거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2015년 통계에 이미 외국인 취업자 100만여명 중 절반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고 이민자 가족의 26.5%가 결혼 이민이라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조선족이 있어서 문화 쇼크를 줄일 수 있다”는 식의 망언을 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지 못하는 때부터 시작되었다. 농촌 총각들이 경제적으로 도시 직장인들에게 뒤지지 않아도 열악한 문화적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시집살이까지 감내할 여성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2002년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한창일 때 교육자들은 총각들을 모아놓고 “가부장적 사고를 버리고 적극적이고 예의 바른 자세로 교제에 임하라”고 가르쳤다. 동시에 농업정책과 농촌의 복지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농촌 남성들의 결혼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농촌 총각과 도시 여성 만남을 주선하는 ‘그린커플제’ 같은 행사도 마련했지만 이런 이벤트식 중매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신 결혼알선회사를 통해 조선족,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 처녀들을 ‘사오는’ 식으로 일을 해결하려 했다.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현지를 방문해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대와 맞선을 봐야 하는 수고에다 500만~1천여만원의 비용까지 들이고서도 위장·사기결혼 등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5년이 지나 같은 문제가 도시에서 반복되고 있다. 사실은 도시 총각들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집도 없는 경우가 많아 더욱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현상은 이런 도시 총각들의 수난과 직결된다. 그래서 여자들을 수입해 오겠다고? 저출산 해결은 배제가 아닌 포용의 사회를 만들 때 가능해진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 죽어가는 태아가 0.3%가 되는데 우선 이 아이들부터 살려내자고 말한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환대의 인프라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전액 양육비와 부성휴가 등을 제공하면서 모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1, 2차 세계대전의 참사를 겪은 후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근대화가 진행되면 가족 해체는 불가피하다는 것, 국가가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민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들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체제 전환을 했던 것이다. 독일이 400만 터키 이주민을 받아들인 것은 이런 환대의 인프라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문화주의는 한낱 단어에 불과하고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는 사회, 집권층은 세습적 중산층 보호에 급급한 나라에서 출산 이민을 받아들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많은 이슬람국가(IS) 요원과 글로벌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김 대표님은 적대와 혐오의 감정이 극대화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방안부터 찾으시라. 그리고 지금 ‘헬조선’을 말하며 이 나라를 빠져나가려는 청년들을 붙잡을 묘안을 찾아내기에 골몰하시라. 엄마 혼자 하는 독박 육아가 사라지고 ‘사회적 양육’이 가능해지면 결혼 파업, 출산 태업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저출산은 ‘사회’에 대한 감각의 실종에서 오는 현상이며 매매와 꼼수로 해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 조한혜정 - 연세대 명예교수, 문화인류학자 >



한국정부는 지난 10일 통일부 장관의 ‘정부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처를 발표했다. 이 조처는 법적 근거 없이 취해진 것으로 무효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다는 정부의 성명은 우리 국민이 북한 지역을 방문할 때 필요한 통일부 장관의 방문 승인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집행될 것이다. 개성공단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입주기업 등 투자자한테 자기 소유 재산의 사용·수익을 전면 차단하는 것이므로 재산권을 수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헌법 제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려면 국회가 입법한 근거 법률이 있어야 하고, 이 법률에는 헌법 제23조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처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한 것이므로 헌법 제23조에 위반된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합법적이려면 적어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7조나 제18조에 따라 개성공단 기업한테 이미 승인한 협력사업을 취소하거나 조정을 명령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협력사업 취소나 조정명령은 발동 요건과 청문 등의 절차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번 조처는 이러한 요건과 절차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헌법은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대통령한테 긴급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 제76조에서 규정한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이다. 대통령은 상황이 긴급하다 하더라도 헌법에 정해진 형식과 절차를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법치주의의 요구이다. 헌법 제76조의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은 발동 뒤에 지체 없이 국회의 승인을 얻는 등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는 정부의 이번 조처는 대통령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즉 이른바 “통치행위”이므로 위법성을 따질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법치국가 원리에 비추어 볼 때 통치행위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다.
나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 개성공단을 성공시키려면 투자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며 그러려면 법치주의가 중요하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우리가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면 북한한테 법치주의를 요구할 근거가 없게 된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절차를 지켜야 한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맞서 11일 개성공업지구를 폐쇄하고 우리 기업의 재산을 전면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생산된 제품이라도 가지고 나와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은 입주기업한테는 설상가상이다. 다만 북한이 우리 기업의 재산을 동결한다고만 하고 몰수한다고 하지 않은 것은 이후 채권채무를 정산하기 위한 여지를 둔 것이어서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
사이가 틀어져 별거하게 된 부부가 이혼을 위한 재산분할 협상 과정에서 서로 화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협상이 재개된다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남북 공동번영의 소중한 옥동자인 개성공단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 김광길 - 변호사, 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 >



[1500자 칼럼] 처음처럼

● 칼럼 2016. 2. 12. 21:22 Posted by SisaHan

얼마 전에 한국의 인터넷 상에는 한국의 한 교수의 죽음이 크게 떠돈 적이 있었다.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 생의 가치와 의미를 가르친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신영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관련된 글을 올렸다. 마치 모두 그의 제자였고 독자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7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캐나다로 떠나온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아무리 떠나온지 오래 되었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그의 유명한 책,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제목이라도 들었음직 한데…. 더우기 ‘처음처럼’이란 수필집을 썼고, 그 책 제목을 서민들이 주로 마시는 소주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준 사람이고, 글씨마저 직접 써준 분이라는 데 관심이 갔다. 나도 이곳 캐나다에서 몇 해 전에 한국식당에서 ‘처음처럼’을 마셨고 제목과 글씨체가 참 특이하면서 사람을 끈다고 생각했다.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이전에 ‘초심으로 돌아간다.’ 는 말이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품었던 뜻이나 마음을 잃어버리고 현실과의 타협과 적응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퇴색해가고 타락해가는 느낌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 가졌던 좋은 인상은 어디로 가고 알수록 두려워 질 때가 많다.


그의 약력을 보고 또 놀랐다.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년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것이었다. 서울대 상대 졸업생으로 육사와 숙명여대에 재직 중이었다.
그 때가 유신정권 때였다. 참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데모도 심했고, 그리고 간첩단 사건 같은 엄청난 사건도 많이 터지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학에 진입할 때였다. 그때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가끔 친구 중에 유신헌법과 ‘귀신헌법’을 말했지만 전혀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으로 빠진 친구 때문에, 정부(정보부)에서 발표하는 간첩단 사건, 내란음모 같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신영복 선생님은 27살에 감옥에 들어가 20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무기징역이었으니 끝이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자신 자살하지 않은 이유를 하루 한번 들어오는 신문지 크기의 햇빛 때문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는 자신이 빼앗긴, 또는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옥이 자신의 ‘인생대학’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처음에 구형 받은대로 사형을 당했더라면 얼마나 큰 비극이었고 우리에게 손실인가 생각해보았다. 88년에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감옥에서의 산책’이란 책은 물론 ‘처음처럼’이라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소주는 이 세상에서 빛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나는 처음에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이 되었다 해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통혁당이었다. 그 차이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두 사건에는 많은 대학생들과 지식인이 연루되었고 고문으로 폐인이 되거나 나중에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다. 시인 천상병도 그중 하나다. 인혁당에 관해서는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지 하루도 안돼 사형을 당한 8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김형태 변호사의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이라는 책에서 읽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다. 50년 전에 사형당한 사람들에게 무죄선고가 무슨 소용있으며 그 지난 50년 동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진실을 밝히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혹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가? 신영복, 그는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통일혁명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통일혁명당은 그가 체포된 후에 생겼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남북이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되는 어두운 시대의 비극이라 생각한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이제는 있을 수도 없다. 삼가 신영복 선생님과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뒤늦게 빕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처음처럼….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샌더스 돌풍과 지도자론

● 칼럼 2016. 2. 12. 21:21 Posted by SisaHan

지구촌이 주목하는 미국 대선레이스에서 초반 돌풍의 주역 가운데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단연 돋보인다. 지지율 0%의 무명인사에서 단숨에 50% 이상까지 뛰어 올라 거물 힐러리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놀라운 파워맨이 됐다.
샌더스 후보가 얼마나 부러웠으면 한국의 야권에서도 다투어 ‘샌더스 마케팅’에 나설까. 더불어민주당은 새로 영입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경제민주화 소신을 들어 샌더스 같다고 비유했다. 이에 질세라, 당을 뛰쳐나가 국민의당을 만든 안철수 대표도 샌더스처럼 주먹 쥔 팔을 뻗으며 자신이 바로 ‘한국의 샌더스’라고 연설했다. 이에 한 정치평론 교수는 “언제 샌더스가 힐러리 물러나라고 외치다 민주당을 탈당했는가. 우클릭해 새누리당과 발을 맞추면서 진보적인 샌더스와 같을 수 있는가. 지지율 0%에서 50%로 올라가는 샌더스와 50%에서 0%로 내려가는 상황이 같은가”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개그’라고 비아냥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수준 낮은 한국정치의 희극들이다.


유력 주자인 힐러리 여사를 위협하며 일약 세계적 인물이 된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고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으로까지 승승장구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세계최강국 미국의 정치권을 뒤흔든 것 만으로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거부감을 가져 온 미국사회에서 당당한 사회주의자로 인기를 얻고있는 것 또한 기적같은 일이다.
그는 ‘가진 자들만의 세상’으로 질주하는 기성 정치와 사회·경제적 폐해들을 낱낱이 들춰내 혁신적인 비전으로 고단하고 지친 미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동시에 그는 국제사회에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맹목적인 추종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샌더스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인권운동가였던 그는 1986년 버몬트 주의 벌링턴시장 선거에 도전해 겨우 10표 차로 힘겹게 당선되며 정치인이 됐다. 그리고 4선 시장을 역임하면서 폐촌이 되어가던 벌렁턴시를 협동조합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유명한 자연친화적 모델도시로 만들어 전국각지 공무원들의 견학이 끊이지않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몬트 주의원으로 2006년 상원에 진출, 본격적인 ‘사회 민주주의자’로서의 활약을 벌인다.


그를 널리 알린 것은 2012년 12월10일 의회단상에 올라 무려 8시간37분에 걸친 필리버스터 연설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감세 연장’법안을 공화당과 합의하자 이에 대한 반대논리를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연설을 장장 8시간이 넘게 계속한 것이다.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세금혜택을 주어 이미 심각한 지경인 국가부채를 악화시키는 일이 제게는 비양심적인, 너무도 비양심적인 일”이라고 시작한 그의 연설은 모두 자리를 떠 텅빈 의사당에서 홀로 외친 절규였다. 가난한 서민들의 편지 열 두 사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쓸쓸히 마친 그의 연설은 그러나 2년 뒤 부자감세법 폐지의 결실을 맺었고, 수많은 지지자를 불러 모으며 오늘의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일대 전기가 됐다.
미국이 역시 선진국인 것은,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선거 시스템과 검증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진짜 보석같은 인물을 배출한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포장술에 능한 보좌진과 어용 친위언론에 가리워 위선적인 불량지도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현실과는 다르다. 오죽하면 써준 원고가 없으면 버벅거리고,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를 뽑을까. 미국 정치에 신선하고 파격적인 바람을 몰고 온 샌더스가 부상한 것도 훌륭한 시스템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샌더스는 사실 그만한 내공을 쌓아 온 인물이었다.
우선 샌더스는 시골의 시장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녀 온 서민과 빈민층 위주의 정책소신, 즉 1%가 아닌 99%를 위해 일한다는 초심과 열정을 잃지않은 정치인이다. 그 것은 부유한 자와 가진 자들의 반대편에서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긍휼과 측은지심을 지닌 따뜻한 사람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가식이 없이 솔직하다. 그 자신 서민으로 살며 어울려 살아왔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애용하는 그의 사진들은 그가 외양만을 내세우는 ‘바리새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살아온 삶과 이력을 통해 소신과 철학을 입증해 주었고,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사회의 온갖 추하고 그늘진 현상에 메스를 가하며 변혁을 선도할 지도자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샌더스의 도전은 한낱 도전으로 멈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국면의 미국 정치 한복판에 몰아친 75세 노정객 샌더스 돌풍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지도자를 어떻게, 어떤 인물을 고르고 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