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말기적 ‘전조현상’

● 칼럼 2016. 8. 30. 19:5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화산이 터지거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예고성(?)으로 일어나는 징후들을 ‘전조현상’이라고 한다.
화산 폭발 전에는 지하 마그마가 차츰 상승하는 데 따라 지온도 올라가고 소규모 지진이 잦아진다. 또한 화산기체 방출량이 많아지며 지형이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지진의 경우에는 동물들의 이상한 현상들이 알려져 있다. 동물원의 짐승들이 우리를 뛰쳐나가고 두꺼비가 떼지어 이동하기도 하며 겨울잠을 자던 곰과 뱀 등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는 사례도 전해진다.
얼마 전 부산과 울산에서는 정체모를 악취를 맡은 시민들이 지진의 전조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출하며 신고 전화가 빗발쳐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재해에 앞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불안과 경각심을 주어 사전 대피하도록 유도하는 잇점이 있다. 그래서 전조현상을 연구하고 예보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다. 전조현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여 화산과 지진이 일기 전에 사람들이 재빨리 피신할 수 있게만 한다면, 자연 재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전조현상을 무시하고 방심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요즘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보면 혹시 말기적 전조증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불안이 커지곤 한다. 뭔가 폭발할 것만 같은 심각한 긴장국면 때문이다. 고발당한 피의자들에 대통령이 둘러싸여 그들을 보호하느라 고생한다는 실감있는 지적도 나온다. 옛날에는 대나무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숨어서 외쳤다지만, 이젠 여기저기서 아예 대놓고 아집과 오기를 들먹이며 “대통령 귀는 불통 귀”라고 힐난하는 양상이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감찰하라고 임명받은 감찰관이 수석비서관을 감찰한 게 무슨 잘못일까,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제 손으로 앉힌 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이라고 단정해 검찰에 수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의혹의 민정수석을 경질하라는 비등한 여론에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들의 식물정부 만들기 공작”이라는 황당한 반박을 내놨다. 그 의혹의 당사자는 철판으로 심장을 감싼 것인지, 들끓는 민심을 외면한 채 꿋꿋이 버티고 앉아있다. 그러니 마치 화산이나 지진을 예고하는 ‘전조현상’같은 불안감이 청와대 안팎에 감도는 것은 어느 한사람만의 불길한 예감일까.


뭔가 터질 것만 같은 조짐은 민심에 정면 대결을 마다않는 독선과 불통, 그리고 자신만이 옳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 때문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天心), 곧 ‘하늘의 마음’이라 했다. 권력은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다는 말도 있는데, 하늘의 뜻인 민심을 묵살하고 깔아뭉개는 어리석고 적대적인 응대를 하고 나선 격이다. 민심의 풍랑에 침몰위기의 조각배처럼 종국으로 치닫는 무모함의 질주를 보는 것만 같아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일개 수석비서관을 감싸겠다고 대통령이 팔을 걷어 부치면서 국정 컨트롤 타워가 흔들리고 검찰마저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나라 꼴은 엉망이 되든 말든 비서관 구하기에 나선 대통령의 집착과 무능이 하늘을, 민심을 찌르고 후빈다.
지난해 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정확한 표현으로 대통령과 세태를 꼬집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그처럼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와 어지럽고 도리도 땅에 떨어진 세상의 불의함’, 바로 오늘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도자의 바른 정치를 설파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이며 “스스로 솔선하여 올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는가?”(子帥以正 孰敢不正) 라고 정도(正道)의 정치를 설명했다. 공자는 또 정치를 “식량과 군대를 넉넉히 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것”(足食足兵 民信之矣) 이라고 강조한 뒤 그 중에 차례로 버리도 좋은 것을 묻자 “첫째는 군대, 두 번째는 식량”(子帥以正 孰敢不正)이라고 말했다.. 모두 버려도 백성의 신뢰는 버려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이유를 공자는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게 되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국가존립의 필수요소로 신뢰를 꼽았다.
풍랑이 거세면 난파를 대비하는 게 상식이다. 민심의 바다에서 거칠게 요동하는 전조현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다.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예감아래 스스로의 과오를 살펴 속죄의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민심을 거슬러 대적하는 지도자의 말로는 거의가 불행했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일본왕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 칼럼 2016. 8. 30. 19: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최근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일본인은 다름 아닌 아키히토 일왕일 것이다. 일왕이 지난 8일 공식적으로 밝힌 ‘생전 퇴위’ 의사와 일본의 71번째 패전일 추모식 때 언급한 “깊은 반성”이라는 단어가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강력한 울림을 남겼기 때문이다.
일왕은 지난 7월10일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정족수를 확보한 직후인 7월13일 궁내청 관계자에게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 이 소식은 NHK 방송 등 일본 언론을 통해 신속히 전해졌고, 모든 일본인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일왕의 생전 퇴위 의사 표명은 아베 신조 총리가 ‘필생의 과업’이라고 해온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것일까? 정확한 이유야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일왕은 평화헌법을 소중히 생각해온 분이시니 아주 조금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기고 있다.


‘역시 일본인들은 비겁하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질문을 금기로 여기는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천황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심리나 결국 비극으로 치닫고 만 일본의 근현대사를 올바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1880년대 일본인들이 마주한 가장 큰 고민은 일왕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헌법이라는 근대국가의 성문법 틀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왕이 일본을 통치하는 근거는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헌법 초안 작성자인 사법성 관료 이노우에 고와시(1844~1895)는 일본의 건국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인 진무천황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일왕가 혈통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제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정해졌다. 일본이 헌법을 통해 신의 후손이 만세일계로 다스려온 신국으로 규정된 것이다. 일본 군부는 이후 일왕의 초월적인 권위를 활용해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일으켰고 이에 저항하는 정치인들은 쿠데타를 통해 암살했다. 그 결과가 끔찍한 전쟁과 비참한 패전이었다.


패전 이후 일왕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일본을 통치하는 ‘원수’에서 실제 권한을 갖지 못한 채 일본 국민들을 통합하는 ‘상징 천황’의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와 함께 일본 사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금기’로 삼는다는 합의를 이루게 된다. 일왕의 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그 뒤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지며, 지난 전쟁 때와 같이 국가 전체가 한 방향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일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추도사 속에 ‘깊은 반성’이라는 한두 단어를 넣는 정도이며, 일본인들은 그에 대한 일왕의 절실한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짐짓 모른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필요한 것은 ‘현명한 군주’보다는 ‘영향력이 없는 군주’일 것이며,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군주 자체가 없는 공화국일지 모른다.
이런 기묘한 일본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현재 일본에서 천황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본의 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갖는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의 주권자는 일왕인가 국민인가. 헌법은 분명 주권자는 국민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생각이지 ‘자애로운’ 일왕의 마음이 아니다.


< 길윤형 - 한겨레신문 도쿄특파원 >


[1500자 칼럼] 헌신하는 자들

● 칼럼 2016. 8. 23. 20:0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선교를 보낼 때나 갈 때나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긍지를 가지면서 가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가보면 자신들이 그들을 보면서 감동을 하고 얻는 게 더 많다.

금년 캄보디아 선교에서 원주민에게서 얻은 감동이나 은혜보다 함께 사역했던 팀을 통해 받은 게 컸다. 이번 우리 교회와 함께 한 사역자 가운데 수도 프놈펜에 있는 헤브론 병원의 의사 내외(부인은 약사)의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두 내외는 우리 교회 집사님의 사촌 동생으로 우리 팀을 도우기 위해 오신 신실한 집사님으로 내과 전문의였다. 헤브론 병원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장이신 장로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워진 자선 병원으로 캄보디아인에게 무료로 치료해 주기에 재정적으로 크게 열악하여 모든 의사들이 모든 면에서 자원 봉사하여도 재정 자립도는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수술 가운데 심장 수술도 많은데 한국에서 전문의들이 한 번씩 몰아서 수술해 주고 가는데 그것도 자원 봉사라고 했다.
두 내외는 한국에서 내과 병원과 약국을 아래 윗층에서 경영하고 있었는데 과거 하나님께 서원한 바가 있어 병원과 약국을 다 정리하고 1년을 예정하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모든 게 열악하여 약사인 부인 집사님은 병원의 경리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사업이 그렇지만 병원이나 약국을 정리하면 그동안 관계했던 모든 환자나 손님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다시 시작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무료로 진료해주고 한국에서 지원받은 약을 처방해 주면서 하루에 거의 300명의 환자를 보노라 모든 의사들이 육체적으로 지친다. 그렇다고 퇴근 후에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험 지역이어서 저녁에 외출도 쉽지 않으니 속칭 문화생활로 즐길 수도 없다. 음악회나 영화관 출입도 쉽지 않지만 환자를 보노라 특별히 시간을 내어 백화점 같은 곳으로 쇼핑할 여유 여가도 없다.
나는 두 분을 보며 나의 헌신은 보잘 것 없다는 생각하면서 두 분에 대한 감사를 표했더니 두 분은 자신보다 더 헌신적인 분을 소개했다. 그 분은 미국에 거주하는 심장 수술에 함께 하시는 간호사인데 헤브론 병원에서 수술이 있을 때마다 두 달 또는 석달에 한 번씩 건너와 수술을 도와주고 돌아 가신다는 것이다. 물론 항공료나 그 모든 비용을 자신이 감당하시면서. 그렇게 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병원의 스케줄을 다른 간호사와 바꾸어 가면서 밤낮으로 일한 뒤 와야 하니 그런 수고와 헌신이 어디 있겠는가.

이쯤에서 헌신을 선교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전인적인 그리고 만사에 대한 올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말로 올인이 아니라 삶과 생활을 올인할 때 진정한 선교도 봉사도 헌신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헌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고 물었더니 모든 것이 다 필요하다고 했다. 부엌일이나 청소 설거지 컴퓨터 등 모든 것에서 필요한 것 뿐이었다. 이제는 은퇴를 앞 둔 목사로서 아쉬운 것은 우리 교회나 또 다른 어떤 교회가 이 헤브론 병원만을 대상으로 선교팀을 구성하여 가서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전인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전인적인 선교를 원하는 사람들의 훈련장으로 더욱 적합하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단기선교나 모든 선교에 협력하는 분들의 수고는 대단하다. 평생을 목회로 살겠다는 목회자도 그러하지만 평신도 선교사로 이리 헌신하는 자들을 볼 때 어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헬조선’을 어찌 탓할소냐

● 칼럼 2016. 8. 23. 19:5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이 엊그제 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말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비하하는 신조어들이란, 바로 요즘 크게 유행하는 ‘헬조선’을 비롯해 ‘삼포시대’니 ‘오포시대’, ‘흙수저-금수저’ 같은, 청년세대들의 한탄이 담긴 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옥’을 뜻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너나없이 입에 올리는 세태에 해외언론들까지 인용해 보도할 정도가 되었으니, 밤낮없이 나라사랑의 애국심에 묻혀 사는 박 대통령이 듣기에는 참 민망하고 국제적인 망신거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들은 네티즌들은 SNS에 수많은 댓글로 “누구 때문인데!” “반성이나 위로나 대안제시도 없이…”라고 비아냥대며 화풀이를 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취업난과 빈부격차 심화, 세계 최고의 자살율, 최저 출산율 등 어느 하나 기쁜 소식이 없는 마당에 대통령만 혼자서 ‘구름 위 천국’에 살고있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헬조선의 이유’ 60가지를 든 한 청년은 OECD 비교치를 들어 복지율 최하위, 아이들 삶의 질 꼴찌, 노인빈곤율 1위, 성평등 순위와 남녀 임금격차, 뻔질난 낙하산 인사 등 다양한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위대한 현대사’에 대해서도 “첫 독재자는 객사, 둘째 독재자는 피살, 셋째 독재자는 학살과 29만원 통뼈로 역사에 기록됐다”며 “요사이는 향수와 자아도취에 빠진 독선적 인물들이 설쳐 국민을 피곤하게 하니 정말 화려한 현대사”라고 비꼰다.
‘제 얼굴에 침뱉기’나 다름없는 자기 나라 비하를 일부러 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탄식해도 올림픽에서 승전보나 금메달을 따내면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일본에 패했다면 ‘무조건’ 분통을 터뜨리는 소박한 국민들이요 열혈 청년들이다.


대통령은 또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나눠 이겨내는 공동체 문화”를 거론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냐”는 직격탄이 날아든다. 바로 며칠 전 청와대 오찬이 과연 ‘어려운 시기 콩 한쪽도 나눠 이겨내는’ 모양새이냐는 것이다. 새 여당 대표를 환대하는 점심식탁이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 찜, 한우갈비’ 등 초호화메뉴 일색이었다는 소식에 장안이 들끓었음을 상기시킨 거다. 들어보지도, 구경도 못한 희귀 고가 먹거리들이 한끼 식탁에 올랐다는 보도에 서민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짜증이 난 것은 당연하다. 이름도 생소한 송로버섯은 이탈리아에서 900g짜리가 1억6천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는 놀라운 소식, 샥스핀은 상어보호를 위해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식재료인데 청와대가 버젓이 요리에 사용했으니 “그거야 말로 국제망신”이라는 비난이 더해졌다.
‘청와궁 호화 오찬’이라고 화제가 된 그 메뉴에 대해 “김영란 법 대상이 안되는가?“라는 힐난부터 “조선시대 임금도 가뭄과 혹서 등으로 백성이 고생할 땐 밥상에 올리는 반찬 가짓수를 줄였다“고 매섭게 역사를 들춰주기도 했다.


폭염에 시달리면서도 전기료 폭탄 때문에 에어콘조차 맘껏 틀지 못하는 국민들, 최저임금도 받지못하고 열정페이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현실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거대기업 퇴출과 구조조정이 거론될 정도로 나라 경제가 기우뚱 대는 작금의 상황인데, 과연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기만 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의 표출이 넘쳐난다. 점심 한끼 검소하게 간단히 대접할 수도 있으련만, 자기 비서출신이 여당대표가 됐다며 기쁨에 겨워 호사가 넘치는 식탁을 차리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대다수 국민이 너무 먼 괴리를 느낀 것이다.
한 교수는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원 깎아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니…고작 몇 천원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탄식했다. 얼마전 교육부 고위관료 신세를 망친 ‘국민은 개 돼지’라는 발언이 절로 떠오르는 것은 비단 어느 한 사람만 일까. 작금의 현실에서 국정 책임자가 국민을 개 돼지 취급하는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에 그쳤느냐 말이다.


3백여 명이 생수장 된 참사를 모르쇠 깔아 뭉개고 진상규명을 방해·차단하면서 유족과 시민들을 떼쓰는 무리들 취급하며 무시하는 일, 피해 할머니들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하면서 완강히 거부하는데 ‘역사적인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라고 어거지를 쓰는 일제 군위안부 문제 대처는 과연 한국정부인지 일본정부인지 구분이 안돼 낯이 뜨겁다. 나라와 국민과 국제관계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은 ‘사드’배치 독단결정은 어떤가,
국민을 졸(卒)로 여기지도, 개 돼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으니, 어찌 “헬조선” 유행을 탓할 수가 있으랴.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