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난장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돌고 있다. ‘어느 나라나 똑같아요’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www.youtube.com/embed/4CYqw4s6XF8?rel=0)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한 여성의 젖가슴을 은근슬쩍 만지는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 영상에는 돈, 술, 여자, 지퍼, 까만 세단, 그리고 지루해 못 살겠다는 표정으로 졸고 있다가 삽시간에 몸싸움을 벌이는 날렵한 국회의원들이 등장한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정치 막장 드라마를 보여주는 이 영상은 정치란 ‘맷집 센’ 이들의 게임이라는 것, 온갖 무시와 모욕을 거뜬히 견디는 특이한 권력적 인간들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섣불리 나설 게임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일본의 친구는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그나마 선택을 고민할 후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선거가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국민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만들기를 하는 ‘정치꾼’들과 이참에 돈을 벌어보려는 장사꾼들만 극성을 부리고 있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킹메이커>라는 영화가 보여주듯이 대통령 후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과 비슷하다. 연기를 잘하고 감독과 연출자를 잘 만나면 된다. 실세는 돈, 조직, 두뇌를 가진 ‘보이지 않는 손’이다.

물론 이 가운데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국민들이 있다. 대통령 후보들과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협상하고 후보가 당선된 뒤 약속한 것을 받아내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보가 종종 진정한 대안을 향하기보다 전리품을 나눠먹으려는 집단이익주의로 흘러 다수 국민의 등을 돌리게 한다. 그래서 선거는 외면당하고 정치 난봉꾼들만 신명을 내는 스펙터클한 쇼로 전락해버린다.
선거는 힘겨루기의 장이 아니다. 인류사회의 정치는 중지를 모으고 합의에 도달하는 기술이자 예술이었다. 정치가 특이체질 인간들의 힘겨룸의 장이 된 것은 정치가 교착상태에 빠져버린 최근의 일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몸을 맡긴 채 모두가 투자자와 소비자, 투기자가 되어야 했던 상황, 국민국가 단위가 독자적으로 할 일이 줄어든 문명전환의 혼란기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인 것이다.
지금 인류는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세계 수준에서,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생활 차원에서 일고 있는 무수한 위기를 함께 타개하는 일이다. 이는 현재의 갈등과 반목, 대립의 상황을 직시하고 중지를 모아 그 ‘너머’로 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잡다한 기득권 조직이 지지부진하게 끌어가는 현 체제를 바꾸어내고, 정치를 그 본래의 자리, 곧 합의에 이르는 기술이자 예술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보여주는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이를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어느 후보도 이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풀 사람은 실은 현재의 정치판에서 멀찍이 떨어져 팔짱끼고 있는 국민들 자신이다.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노년과 장년 세대가 자신들의 공이 인정되지 않음에 분노와 상실감을 드러내는 것, 정당한 일이다. 또한 이전 세대가 채택한 불균형 발전의 결과로 엄청난 국가부채와 자연 고갈, 그리고 환경오염의 위험부담을 떠안게 된 ‘빈털터리 청년 세대’가 분노하지 않고 은둔하는 것, 역시 이해 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가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진 다양한 국민들이 소통하고 역지사지하는 장이 될 수는 없을까? 성인이 된 자녀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대대로 이어지는 전통과 삶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청년들이 나선다면 분명 지각변동은 일어날 것이다.
우리 자신 역시 언제든 ‘권력지향적 괴물’이 될 위험이 다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성숙한 시민들이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약속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해내야 할 일이다. 하늘이 드높아가는 가을, 나라의 주인으로 소통과 상생의 싱싱한 축제판을 열어가 보자.

< 조한혜정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올해 대선을 관통하는 핵심 열쇳말은 ‘새로운 정치’다. 정치 개혁의 깃발을 전면에 펄럭이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 때문만이 아니다. 안 후보가 대선 출마의 변으로 ‘새로운 정치’를 들고나온 것은 기존 정당의 후보들을 ‘낡은 정치’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치적 포석의 성격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치 문외한인 그를 대선 주자로 이끌어낸 가장 큰 동력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인 점 또한 분명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앞다투어 정치 쇄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국민적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세 후보가 내세운 새로운 정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과 현실성을 갖추고 유권자들한테 다가올 것인지다. 새 정치 실현의 첫번째 리트머스시험지는 올해 대선의 선거전 양상이 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검증을 가장한 상대방 흠집 내기, 흑색선전, 의혹 부풀리기 등 구태의연한 선거 풍토가 되풀이돼서는 정치권은 새로운 정치를 운위할 자격이 없다.  새로운 정치는 선거운동의 변화 차원을 떠나 정치의 관행과 제도, 문화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사람은 바로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는 정당에 기대지 않는 선거운동,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 등을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으로 제시했다. 이런 항목은 새로운 정치의 한 요소는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새 정치를 실현할 정치조직 구성의 문제, 책임정치 구현 방안 등 ‘구호로서의 새 정치’가 아니라 ‘프로그램으로서의 새 정치’를 선보여야 할 책무를 안 후보는 안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정치 쇄신의 깃발을 내걸고 승리했으나 총선 이후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난맥상,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 의혹에 대한 대처 방식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일인지배의 정치, 궁정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안철수 교수 대선 불출마 협박’ 사건 등에서 보인 박 후보의 태도도 새로운 정치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경우 낡은 정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할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당내 패권주의와 계파정치 등의 타파 요구는 이미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강하게 분출됐다. 시민사회의 열정과 요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폐쇄적 정당 구조,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설득력있는 정책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당의 무능력 등에 대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낡은 정치와의 결별과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창출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새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에 누가 더 잘 부응하느냐는 바로 대선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세 후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선거의 수준, 나아가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길 기대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대학 강연에서 법관으로서 겪었던 유신시대의 아픈 과거를 생생히 증언했다. 사법부 수장까지 지낸 이 전 대법원장의 육성 증언은 유신이 그 잘잘못을 역사가 판단하도록 남겨둘 과거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냉철한 판단과 평가를 요구하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고려대 강연에서 1972년 유신을 위한 계엄 선포 직후의 코미디 같은 사법부 풍경을 소개했다. 마리화나 사건, 폭력 사건, 윤락녀 단속과 같은 일반 형사사건들이 하루 사이에 계엄사건으로 둔갑하면서 집행유예 판결에서 징역 3~5년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판정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계엄사건’으로 딱지를 붙이자 검사와 판사들이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폭압적인 정치권력 앞에서 헌법이고 법치주의고 다 소용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아픈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유신헌법은 1인 독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헌법이란 이름으로, 헌법에 기초한 걸로 해서 6년간의 1인 독재가 시작된 게 유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신을 독일 나치의 일당독재와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에 대해선 “긴급조치 사건 내내 피고인들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모두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우리 사법 역사의 큰 오점으로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깨어있는 법률가, 저항하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법률가들이 법대로 나라가 통치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비판세력이 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나 독일에서 법률가들이 사회의 건전한 비판세력이 된 적이 없다는 게 법률가들의 비애”라고 말했다. 그는 “법률가가 역사를 모르면 얼마든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악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선진국”이라며 “저항하는 깨어있는 국민이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말했다.

이 전 대법원장의 강의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유신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거의 일을 역사가 판단할 일이라고 묻어두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 과거의 사건은 항시 현재를 사는 이들이 평가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그 존재 의의를 갖는다. 유신에 대한 평가를 흐지부지 묻어두고서 우리 사회가 성숙한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한마당] 정치의 교사와 반면교사

● 칼럼 2012. 10. 2. 17:48 Posted by SisaHan
안철수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뉴스를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저이가 다시 한번 삶의 길을 바꾸는구나, 저 결정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저이가 의사의 길을 버리고 컴퓨터백신 전문가가 되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게 얼마인가. 저이는 등장만으로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 과연 우리는 저이를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문재인씨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는 걸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도 일어납니다. 고마움과 안타까움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정치인들의 얼굴과 판이한 맑은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움, 정치 아닌 길을 가려 했던 사람들을 정치판에 나서게 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작년 가을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지요.
그러나 저는 역시 제 즐거움을 큰 안타까움에 우선시키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탁한 정치판에 등장한 맑은 얼굴들이 참 반갑습니다. 그들의 등장이 반가운 만큼 그들을 등장하게 한 현실을 초래한 정치인들,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감사합니다.

정치는 친구와 같습니다. 좋은 정치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선하고 고상한 점을 끌어내고, 나쁜 정치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하고 천박한 점을 드러냅니다. 요즘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성폭행 사건들과 ‘묻지마 살인’은 우리가 나쁜 친구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이 스승’이라고, 자신이 해내야 할 ‘시대의 숙제’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합니다. 한용운 시인을 흉내 내자면 ‘스승은 스승만이 스승이 아니고 가르치는 이는 다 스승’입니다. 스승은 크게 ‘교사’와 ‘반면교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참 반면교사들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반면교사는 알아보는 사람에겐 ‘교사’이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겐 ‘미워하며 닮게 되는 나쁜 본보기’입니다.
현실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이 반면교사를 알아보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 저 사람처럼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식의 우회적 깨달음을 주는 반면교사보다, ‘맞아, 저이처럼 사는 게 옳아!’ 하는 직접적 가르침을 주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정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치를 해본 사람들과 평생 정치만 해온 사람들이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씨에게선 과거가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그의 몰이해, 그의 측근들이 보여주는 비리, 너무도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박 후보는 사업가에게 금품을 요구했던 송영선 전 의원을 제명하는 당의 정치쇄신특위와 윤리위 연석회의에서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왜 이렇게 확산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고 합니다. 송 전 의원이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 녹취까지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를 제명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화요일, 박 후보가 성남의 가천대학교에서 연설을 할 때 학생들을 학점으로 위협하며 참석을 종용한 교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수들과 송영선·홍사덕씨 등의 행태가 박 후보 지지자들이 사는 법을 보여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안철수씨와 문재인씨에게선 과거보다 미래가 보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그들이 지향하는 ‘새로움’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관성과 혁신의 싸움, 닮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들과 닮고 싶은 ‘교사’들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투표하는지가 투표하는 이가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주겠지요, 과거인지 미래인지.

< 김흥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