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종군위안부로서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걸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진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
국가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이하 성노예) 동원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일부다. 당시 일본 정부는 1년8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성노예 모집 등에 국가가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쪽은 말로는 마지못해 이 담화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훼손하는 언동을 해왔다. 2007년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 때 미국 의회에서 성노예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정권 차원에서 이를 무마하려다 망신을 당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내각의 각료들이 한꺼번에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나섰다. 노다 총리는 그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각료들이 고노 담화에 대해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자민당 정권이라면 모를까, 야당 시절 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전시 성적 강제 피해자 문제해결 촉진법안’을 냈던 민주당 정권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모순이다. 더구나 성노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유엔이나 미국·유럽의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확인된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정부는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1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대일배상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당시 생존 할머니는 235명 중 69명이었다. 그로부터 8명이 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은 헌재 결정 이후 이 문제를 다루자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이미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거부하면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정치 타결을 꾀해왔다.
고노 담화의 내용과 정신을 부인하는 노다 정권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한일협정 3조에 규정된 대로 일본에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한 분쟁 해결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 쪽이 응하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정공법으로 대응해 그들의 몰역사적이고 비인도적인 모습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9기 이사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인 김재우 8기 이사장이 연임됐다. 김 이사장은 문화방송의 공정성 훼손을 방치한 잘못은 차치하고 논문 표절과 공금 유용 의혹 등 도덕적으로 흠결덩어리였다. 그런 탓에 연임이 가능하겠느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보란듯이 그를 방문진 수장으로 다시 앉혔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내팽개친 임기말 ‘측근 인사’ ‘오기 인사’의 극치다. 그 뻔뻔함에 분노보다 허탈감이 앞선다.

김 이사장의 연임으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문화방송의 공정성 회복이 요원해졌다는 사실이다. 그의 연임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문화방송의 김재철 사장 체제를 12월 대선 때까지 끌고 가겠다는 명시적인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 8기 위원장 시절에 김 사장을 노골적으로 비호했던 그가 이제 와서 새삼스레 김 사장의 책임을 묻고 나설 리는 만무하다. 방문진은 김 이사장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가 결론날 때까지 ‘조건부 연임’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소낙비를 피해가려는 얕은 술수에 불과하다. 김 사장 퇴진을 통해 문화방송을 정상화시킬 마음이 있다면 현시점에서 김 이사장을 연임시킬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김 이사장 연임을 묵인·방조한 새누리당,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태도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정치권력이 여론을 제 입맛대로 유도·조작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있는지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다. 그런 점에서 박 후보가 그동안 문화방송의 공정성 상실을 줄곧 외면해온 것은 그의 민주주의적 소양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불공정 문화방송’이 대선 가도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살 소지가 있다. 여권의 일인자나 다름없는 박 후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김 이사장의 연임을 밀어붙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재우 이사장과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이제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여야는 지난 6월 문화방송 파업사태와 관련해 ‘8월 초 구성되는 방문진 새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합리적 경영판단과 법 상식, 순리에 따라 처리되도록 협조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는 김 사장을 물러나게 한다는 사실상의 약속이다. 아울러 여야는 국회 문방위 차원의 언론청문회 개최에도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하루빨리 이 약속들을 이행해 공당으로서 최소한의 면모를 지키기 바란다.


[한마당] 경제민주화에 앞서 할 일

● 칼럼 2012. 9. 2. 16:54 Posted by SisaHan
요즘 한국 정치시장에서는 경제민주화 미인 콘테스트가 한창이다. 여당은 지난 총선 때 경제민주화로 화장해서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생각하니 내용이야 있든 없든 이번 대선에도 당연히 ‘어게인’ 경제민주화이고, 야당은 지난 총선에서 바보같이 여당에 빼앗긴 의제와 표를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반격을 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가 강하다 보니 유권자들의 표를 좇는 경제민주화 경쟁이 여야 간에 뜨거울 수밖에 없다. 진짜다 가짜다, 성형이다 자연미인이다, 진정성이 있다 없다, 네가 하는 그건 아니고 내가 하는 이게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 아니다 그건 해서는 안 된다 등등.
어쨌든 대통령 후보란 사람들이 죄다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한다. 여야가 경제민주화라고 내거는 구체적인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 박근혜표 경제민주화가 될지, 민주당표 경제민주화가 될지, 아니면 안철수표 경제민주화가 될지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가 나겠지만, 그래도 무슨 표 경제민주화가 됐든 경제민주화가 되기는 될 것 같다고 해야 하겠다. 누구표 경제민주화가 될지 모르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 같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 경제민주화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못지않게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제민주화는 기득권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근본 취지만을 본다면 사회 내에 고착된 부당하고 불공정한 기득권을 혁파하여 그동안 소외되었던 집단에 제 목소리를 찾아주고, 정당한 권리를 되돌려주는 일이다. 우리 사회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바꿈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촉진하여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여야 간에 경제민주화를 놓고 표 싸움에만 열중하다 보니 누가, 어떻게 기득권을 깰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관료, 언론, 사법의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보수화된 우리나라의 관료·언론·사법집단은 그 행태를 보건대 공기로서의 지위를 망각하는가 하면 스스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득권 집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재벌과 유착하여 우리 사회 내에 강력한 권력 카르텔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를 보이곤 하였다. 스스로 기득권을 쌓고, 그것을 지키기에 급급한 이들 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우리 경제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 경제민주화를 수행하리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를 집행하고 조력해야 할 일을 등한히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가로막는 일도 많이 있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관료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는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는 “6개월이면 새 정부도 우리가 장악한다”고 공공연히 호언장담하던 관료집단에 의해 장악되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부도 관료집단에 포획되기는 매일반이다. 정권 출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호기롭게 전봇대를 뽑을 때까지만 해도 관료집단은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질타의 대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1의 개혁 대상은 관료집단이라며 공개적으로 강한 관료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관료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어젠다에서 이내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다음 정부라고 크게 다르랴.
강한 생존력을 보이며 정권을 넘나드는 많은 고위관료들의 행태, 관료들 간의 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져진 관료집단의 집단 자생력과 자기보호 본능을 보았다. 정권의 비판과 비호를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넘나드는 보수언론의 행태도 보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재벌들의 잘못도 용서해줄 준비가 된 수구 검사와 판사도 보았다. 이들을 개혁하지 않고서 경제민주화는 성공할 수 없다.
여든 야든 진정 경제민주화를 할 생각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관료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도 말하라. 국민들도 관료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을 요구하라.

<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


[1500자 칼럼] 눈물과 다이애나 효과

● 칼럼 2012. 8. 27. 15:57 Posted by SisaHan
슬픔에는 눈물이 명약이라 했다. 웃음이 파도라면 눈물은 해일이란 말도 있다.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단다.
헨리 나운(Henry Nouen)은 “눈물은 유해적인 호르몬을 몸 밖으로 배출하여 건강에 이롭게 하고 평상심을 회복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1997년 교통사고로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사망했을 때 영국 내 우울증 환자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영국시민 대다수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린 까닭이라고 한다. 이를 전문가들은 ‘다이애나효과’라 부른다. 
삼성그릅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사망 전 24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쓰여진 신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 파트 원 ‘생명의 몸살’을 읽으면서 얻은 눈물이야기다. 

15년 전(1997년) 성인장애인 공동체가 세워진 다음해 두 번째 여름캠프 때였다. 
라이스 레이크 골든 비치 3박 4일간 우리는 장애인과 가족, 봉사자가 한 덩어리 되어 여름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캠프 둘째 날 오후 숙소로 돌아오고 있는 내 귀에 처절한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 따라 문을 열고 보니 남편과 P씨 두 남자는 서로 손을 잡고 그리도 설게 울고 있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P씨는 질병으로 이민 생활 한 중턱에서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가슴이 뭉클해 오며 그 분들을 바라보는 내 눈 속의 뜨거운 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그런데 실컷 울고 난 후 그분들의 표정은 차라리 맑기만 했다. 이 두 분의 교분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통을 이겨낸 그분들의 삶의 모습은 평화로움이다.

여성은 남성들보다 감정표현이 자유롭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이 남성들에게는 약한 자의 태도요 부끄러운 일이란 통념이 있다. 우는 일은 다분히 여성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여자들은 잘 운다. 여성의 눈물 앞에 남성들의 마음도 약해진다. 
분명 눈물은 기쁠 때 보다 슬플 때, 평안할 때 보다 고통스러울 때, 공평스러울 때 보다 억울함을 당할 때 울면서 나온다. 눈물은 다분히 삶의 극한상황과 연관이 있다. 이런 가운데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한다. 감동과 고마움의 눈물은 또 다른 차원의 눈물이다. 

런던 올림픽이 한창일 때, 한 검객이 털컥 주저앉아 눈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바로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 정진선이 그 주인공이다. 보도에 의하면 감정이 그토록 복받쳐 오름은 지난달 담석 수술을 받았던 아버지와 펜싱의 재미를 알게 해준 양달식 화성시청 감독, 그리고 주말도 없이 함께 훈련에 매진한 이상기 코치 때문이었다고 한다. 12년 만에 동메달을 따낸 그 순간 이분들의 얼굴이 스쳐가며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었다. 
출전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 눈 깜짝할 시간보다 짧은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고 탈락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박태환 선수 실격 선언 이후 뒤바뀐 은메달 획득의 스토리도 온 국민을 실망의 순간에서 환호의 순간으로 바뀌게 한 명장면 중의 한 장면이다.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눈물의 교감을 유감없이 들어내 주고 있다. 
인정없는 사람을 피도 눈물 한방울도 없는 인간이라 말한다. 
고통스럽고 억을하고 답답한 일 가슴에 묻어두면 병이 생긴다. 절제된 감정표현은 아름답다.
때론 웃음보다 눈물이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한데 묶어주는 힘이 있다. 눈물은 감정을 순화시키는 힘이 있기에 울어야 할 때 우는 모습도 치유의 힘을 가지고 다가서기도 한다.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