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대내외 정책 변화가 역동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인민생활 향상, 즉 ‘선경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보수파 군인으로 선군정치의 핵심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그동안 당-정-군으로 분산됐던 경제 정책을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 통일적으로 추진하도록 경제지도체제를 개편한 것이 대표적 예다.
외부 세계를 의식한 발신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엔 로켓 발사의 실패를 즉각 시인하더니, 7월엔 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를 공개했다. 새로 조직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미키 마우스 인형이 등장하고,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은 젊은 여성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모두 국제 사회에 새 체제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과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최근 들어선 미국, 중국, 일본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의 제2인자로 꼽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그제 50여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방문 목적이 나선(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공동관리를 위한 양국 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수행자의 구성이나 방문 일정으로 보아 김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도 옛 일본군 유골 수습을 명분으로 4년 만에 정부 간 대화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과는 4월 로켓 발사 이후에도 계속 대화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
결국, 남북 사이만 불통인 채 북과 다른 나라는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북이 대북 강경정책을 쓰고 있는 남을 따돌리는 탓이 크다. 북은 안팎으로 큰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유독 남에 대해서만 공개적인 비방과 테러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화해·협력 없이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개선이 제약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북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남이라는 점에서 이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 정부도 5.24 조처에 스스로 발목이 묶여 북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남쪽만 왕따가 될 수 있다. 명분론에만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북의 수해에 대한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인도적이고 쉬운 일부터 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곧 대선국면이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이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한마당] 대외정책과 대통령의 자질

● 칼럼 2012. 8. 20. 16:26 Posted by SisaHan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깜짝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뜻을 밝히고, 양국 정상 왕복외교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독도가 우리 땅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일본이 방위백서 등에서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각종 역사적 전거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 있고 지금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도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도에 대해 턱없는 주장이나 펼치는 일본의 행태는 우리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이런 국민적 공분을 배경으로 했을 터이다.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의 행위는 필부의 그것과는 달리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의 깜짝쇼는 그런 점에서 부적절하다.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일본한텐 독도를 분쟁지역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 우익이 설칠 수 있는 장도 열어줬다. 우리가 아닌 일본을 돕는 행위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외국 언론들마저 측근비리와 집권당의 공천헌금 비리 혐의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국내정치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현 정권 대외정책의 파탄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래 우리 안보에 관건적으로 중요한 북한·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한·미·일 가치동맹 추구에 매달렸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보류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등 한-일 군사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던 그가 독도 방문이란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자신의 이런 노력에 아무런 호혜적 조처를 취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불만의 폭발로 볼 수 있다. 가치동맹이란 시대착오적인 대외정책이 실효적 이득을 가져오긴커녕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만 강화시켰음을 자인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은 경제나 복지 등 국내문제에 대한 식견 못지않게 올바른 대외정책 능력도 대통령의 주요한 자질임을 깨우쳐주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마따나 “안보가 불안하고 평화가 정착하지 못한다면 복지국가도 정의도 불가능”한 까닭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대외적 불안정 요인이 큰 시기이다. 북한에선 경험이 부족한 20대의 청년 지도자가 체제의 동요를 막으면서 경제난국을 돌파해야 할 과제를 짊어지고 있고, 중국 역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서 지도자 교체기를 맞고 있다. 일본에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각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차기 대통령은 이런 대외정세의 불안정성에 슬기롭게 대처해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통일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변인은 남북 분단이다. 60년 이상 지속된 분단체제를 극복·해소할 방안에 대한 깊은 천착이 있어야만 올바른 대북정책도 올바른 대외정책도 나올 수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댔던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에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찍이 시민참여형 단계적 통일론인 ‘포용정책 2.0’을 제시했고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국가연합을 과도적 단계가 아닌 통일의 최종 단계로 상정할 수도 있다는 연성복합통일론을 내놓기도 했다.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여야 지도자들 역시 6.15선언에서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국가연합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에서부터 중립화통일론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런 의견들 가운데 대선이란 담금질 과정을 거쳐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북정책 논쟁을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아닌 한반도 주민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경쟁의 장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 권태선 한겨레신문 편집인 >


[1500자 칼럼] 명의와 명 목사

● 칼럼 2012. 8. 14. 15:38 Posted by SisaHan
명 목사란 말이 어색하다. 그러나 명의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붙여보았다. 명의라면 중국의 편작을 따를 자 있을까? 이 달에 읽은 책 ‘신도림 역에서 공자를 만나다.’ 에서 편작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에게 두 형이 있었는데 모두 훌륭했으나 편작이 가장 유명했다. 어느 날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세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대답하기를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은 가장 떨어진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이 가장 유명한가 하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큰형은 병을 치료할 때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병의 원인이 될 요소를 치료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가 사전에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이름이 나지 않았고 둘째 형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를 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가벼운 병을 치료한 줄로 여기기 때문에 이름이 동네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요.
그런데 자신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이미 심각해졌을 때이므로 자신이 경맥에 침을 놓고 피를 빼거나 피부에 약을 붙이는 대수술 과정을 보기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기에 명성이 이렇게 전국에 퍼져나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답했다.
 
편작의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의 말에 수긍을 하는 것은 진정한 명의는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세를 따지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의 뿌리를 알고 미리 예방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적어도 병의 상태가 초기에 이르렀다 생각하면 빨리 조처해주는 것이 훌륭한 명의가 아니겠는가? 편작이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의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도 귀중하지만 근본을 미리미리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명의라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영혼을 치료하는 명의는 누구인가? 앞에서 어색하게 써놓은 명 목사는 누굴까? 오늘날 속칭 대형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일까? 사자후를 토하면서 강단에서 명설교로 또는 대부흥사로 이름을 날리는 저들이 명 목사일까?
 
가만 살펴 보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부끄럽지만 편작처럼 나타난 증세를 가지고 치료의 방법을 제시하고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면 안 된다 하고 부르짖는 목사들이 아닐까? 그들도 결코 잘못되거나 훌륭하지 못한 목사는 아니다. 저들도 편작처럼 필요한 목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어떤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시키며 또한 설교의 시간이 치료의 목적보다 병의 근원을 아예 뿌리 채 뽑겠다는 의욕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성도들을 훈련시킨다면 얼마나 훌륭한 영적 명의가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아직 미련하여 그 근본적인 치료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나타난 현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냥 침을 발라주거나 고약으로 때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수술도 필요하고 때로는 독한 약도 먹여야 하겠지만 목회자들은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보호하는 일이나 혹은 작은 일이 생겼을 때라도 미리미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몸을 보완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그런 일에 더 큰 관심을 쏟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목회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치료를 잘 해주는 명의가 되었는가?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떤가? 나는 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있는가? 하는 일에 관심을 쏟으니 세상적으로 명의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글쎄?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지금 한국 정계에 ‘안철수 현상’은 마치 외계인의 습격과 같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익숙한 관념들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이다. 현실의 권력질서를 뒤흔드는 무서운 힘으로 엄습해오고 있다. 
이 외계인은 안철수 원장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수많은 시민들이다. 이들에게 정치인과 정당들은 외계인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인간의 말을 하고 심지어 인간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에 살면서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 참다못한 인간들은 정치를 습격했다. 그들이 외계인이 되어 정치를 덮쳤다. 저비용 고효율의 한국판 점령운동이다. 
이처럼 정치와 시민이 서로에게 외계인이라는 것은 둘 사이에 쌍방적인 낯섦과 소외의 협곡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정당과 시민의 간극, 정당일체감의 약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많은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 저변에는 탈산업화, 개인주의화, 정보화, 네트워크화 등의 거대한 사회변동의 흐름이 있다. 시민들은 더 많은 주권, 더 투명한 권력, 더 친근한 정치를 원하고 있고,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정치현실과 충돌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각 나라의 전통과 제도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욕구가 정당정치로 부드럽게 반영된다. 반면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제, 소선거구제 등의 제도 구조로 인해 구석구석 승자독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경직된 체제다. 이런 환경에서 소수정당들은 득표율 부족으로 자연소멸하거나,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자폐적 단체로 고립됐다. 
현재의 주어진 제도적 조건에선 양대 정당이 변화의 욕구를 반영해야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다수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세상은 광속으로 변하고 있는데, 정치는 박정희·전두환 세력과 김대중·노무현 세력의 대결을 반복했다. 안철수 현상은 이제 역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집단적 소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이 정당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겼다는 단순한 해석은 지난 몇년간의 의미심장한 변화들을 놓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정당정치의 종언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본격적인 정당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시민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권력에 눈을 떴다. 정치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시민권력이 정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이제껏 시민들이 선거정치에 이토록 열렬히 참여한 적이 없다.
 
민주당 역시 정당정치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 한국 사회의 경제적 균열구조를 반영하는 일련의 정책노선들을 대폭 수용했다. 인적으로도 그동안 당 외부에 있던 유능한 정책통들을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으로 대거 영입했다. 차세대 정치계급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패러다임 이동의 결정적 문턱을 아직 넘지 못했다. 
안철수는 계승과 혁신이 함께 가는 이행을 위한 선택이다. 안철수가 운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안철수의 운명을 선택한다. 지금 안철수 원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2040세대’가 원하는 것은 성인도, 초인도, 의인도 아니다. 낡은 판을 흔들어 새 시대에 문을 열어줄 통로다. 그 문을 넘어 외계인들이 정치와 만날 때, 정치와 시민은 더 이상 서로에게 외계인이 아니다. 정당정치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정당정치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를 위한 문턱을 넘는 것이다.

< 신진욱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