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정치’를 향한 세 후보의 경쟁을 기대한다

● 칼럼 2012. 10. 2. 18: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올해 대선을 관통하는 핵심 열쇳말은 ‘새로운 정치’다. 정치 개혁의 깃발을 전면에 펄럭이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 때문만이 아니다. 안 후보가 대선 출마의 변으로 ‘새로운 정치’를 들고나온 것은 기존 정당의 후보들을 ‘낡은 정치’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치적 포석의 성격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치 문외한인 그를 대선 주자로 이끌어낸 가장 큰 동력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인 점 또한 분명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앞다투어 정치 쇄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국민적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세 후보가 내세운 새로운 정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과 현실성을 갖추고 유권자들한테 다가올 것인지다. 새 정치 실현의 첫번째 리트머스시험지는 올해 대선의 선거전 양상이 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검증을 가장한 상대방 흠집 내기, 흑색선전, 의혹 부풀리기 등 구태의연한 선거 풍토가 되풀이돼서는 정치권은 새로운 정치를 운위할 자격이 없다.  새로운 정치는 선거운동의 변화 차원을 떠나 정치의 관행과 제도, 문화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사람은 바로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는 정당에 기대지 않는 선거운동,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 등을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으로 제시했다. 이런 항목은 새로운 정치의 한 요소는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새 정치를 실현할 정치조직 구성의 문제, 책임정치 구현 방안 등 ‘구호로서의 새 정치’가 아니라 ‘프로그램으로서의 새 정치’를 선보여야 할 책무를 안 후보는 안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정치 쇄신의 깃발을 내걸고 승리했으나 총선 이후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난맥상,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 의혹에 대한 대처 방식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일인지배의 정치, 궁정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안철수 교수 대선 불출마 협박’ 사건 등에서 보인 박 후보의 태도도 새로운 정치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한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경우 낡은 정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할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당내 패권주의와 계파정치 등의 타파 요구는 이미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강하게 분출됐다. 시민사회의 열정과 요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폐쇄적 정당 구조,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설득력있는 정책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당의 무능력 등에 대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낡은 정치와의 결별과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창출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새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에 누가 더 잘 부응하느냐는 바로 대선 승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세 후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선거의 수준, 나아가 한국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길 기대한다.

[사설] 새겨들어야 할 전 대법원장의 유신 강의

● 칼럼 2012. 10. 2. 18:3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대학 강연에서 법관으로서 겪었던 유신시대의 아픈 과거를 생생히 증언했다. 사법부 수장까지 지낸 이 전 대법원장의 육성 증언은 유신이 그 잘잘못을 역사가 판단하도록 남겨둘 과거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냉철한 판단과 평가를 요구하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고려대 강연에서 1972년 유신을 위한 계엄 선포 직후의 코미디 같은 사법부 풍경을 소개했다. 마리화나 사건, 폭력 사건, 윤락녀 단속과 같은 일반 형사사건들이 하루 사이에 계엄사건으로 둔갑하면서 집행유예 판결에서 징역 3~5년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판정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계엄사건’으로 딱지를 붙이자 검사와 판사들이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폭압적인 정치권력 앞에서 헌법이고 법치주의고 다 소용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아픈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유신헌법은 1인 독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헌법이란 이름으로, 헌법에 기초한 걸로 해서 6년간의 1인 독재가 시작된 게 유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신을 독일 나치의 일당독재와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에 대해선 “긴급조치 사건 내내 피고인들은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모두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우리 사법 역사의 큰 오점으로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깨어있는 법률가, 저항하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법률가들이 법대로 나라가 통치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비판세력이 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나 독일에서 법률가들이 사회의 건전한 비판세력이 된 적이 없다는 게 법률가들의 비애”라고 말했다. 그는 “법률가가 역사를 모르면 얼마든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악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선진국”이라며 “저항하는 깨어있는 국민이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말했다.

이 전 대법원장의 강의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유신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거의 일을 역사가 판단할 일이라고 묻어두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 과거의 사건은 항시 현재를 사는 이들이 평가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그 존재 의의를 갖는다. 유신에 대한 평가를 흐지부지 묻어두고서 우리 사회가 성숙한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한마당] 정치의 교사와 반면교사

● 칼럼 2012. 10. 2. 17: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안철수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뉴스를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저이가 다시 한번 삶의 길을 바꾸는구나, 저 결정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저이가 의사의 길을 버리고 컴퓨터백신 전문가가 되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게 얼마인가. 저이는 등장만으로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 과연 우리는 저이를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문재인씨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는 걸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도 일어납니다. 고마움과 안타까움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정치인들의 얼굴과 판이한 맑은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움, 정치 아닌 길을 가려 했던 사람들을 정치판에 나서게 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작년 가을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지요.
그러나 저는 역시 제 즐거움을 큰 안타까움에 우선시키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탁한 정치판에 등장한 맑은 얼굴들이 참 반갑습니다. 그들의 등장이 반가운 만큼 그들을 등장하게 한 현실을 초래한 정치인들,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감사합니다.

정치는 친구와 같습니다. 좋은 정치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선하고 고상한 점을 끌어내고, 나쁜 정치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하고 천박한 점을 드러냅니다. 요즘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성폭행 사건들과 ‘묻지마 살인’은 우리가 나쁜 친구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이 스승’이라고, 자신이 해내야 할 ‘시대의 숙제’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합니다. 한용운 시인을 흉내 내자면 ‘스승은 스승만이 스승이 아니고 가르치는 이는 다 스승’입니다. 스승은 크게 ‘교사’와 ‘반면교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참 반면교사들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반면교사는 알아보는 사람에겐 ‘교사’이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겐 ‘미워하며 닮게 되는 나쁜 본보기’입니다.
현실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이 반면교사를 알아보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 저 사람처럼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식의 우회적 깨달음을 주는 반면교사보다, ‘맞아, 저이처럼 사는 게 옳아!’ 하는 직접적 가르침을 주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정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치를 해본 사람들과 평생 정치만 해온 사람들이 지금, 잘하고 있습니까?’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씨에게선 과거가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그의 몰이해, 그의 측근들이 보여주는 비리, 너무도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박 후보는 사업가에게 금품을 요구했던 송영선 전 의원을 제명하는 당의 정치쇄신특위와 윤리위 연석회의에서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왜 이렇게 확산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고 합니다. 송 전 의원이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 녹취까지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를 제명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화요일, 박 후보가 성남의 가천대학교에서 연설을 할 때 학생들을 학점으로 위협하며 참석을 종용한 교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수들과 송영선·홍사덕씨 등의 행태가 박 후보 지지자들이 사는 법을 보여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안철수씨와 문재인씨에게선 과거보다 미래가 보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그들이 지향하는 ‘새로움’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 관성과 혁신의 싸움, 닮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들과 닮고 싶은 ‘교사’들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투표하는지가 투표하는 이가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주겠지요, 과거인지 미래인지.

< 김흥숙 시인 >

[1500자 칼럼] 가을비 내리던 날

● 칼럼 2012. 9. 24. 19: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가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봄비에는 생장의 희망이 있어 온화하지만 가을비에는 소멸을 앞둔 종식의 아쉬움이 있어 냉랭할 수밖에 없나 보다. 따끈한 기억으로 달래보라는 듯 오래된 기억의 실타래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진다. 
남편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 근무할 때였다.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던 남편이지만 비 오는 날에는 작업이 없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에게 ‘비 오는 날’이란 일찍 퇴근하는 아빠와 ‘외식하는 날’과의 동의어가 되었고 내게는 저녁 준비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외식이래야 특별할 것도 없는 칼국수였지만 바지락칼국수, 사골칼국수, 버섯칼국수 등 여남은 종류 앞에서 한 가지만 택하는 일이 쉽지 않은지 어떤 국수집으로 갈까 하며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는 그들이 빚어낸 소박한 외식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곤 했다.
 
칼국수 집의 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김치였다. 남편은 매콤한 겉절이를 좋아했다. 무엇이든 아빠를 따라 하고 싶어하던 아들은 매워서 헉헉거리면서도 물에 씻은 김치 조각을 늘 곁들여 먹었다. 나는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김치의 빨간 색만 보아도 지레 겁이 나서 먹을 엄두를 못 내었는데, 눈치껏 물에 씻어 먹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겼다. 붉은 물이 대접에 남아있어도 어린 아들에게 미룰 수 있는 기회를 살짝 활용했다고나 할까. 
물에 씻은 김치는 비록 붉은색은 버렸지만 제 본래의 맛과 냄새는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얀 배추조각을 입에 넣고 조용조용 씹다 보면 매캐한 붉은 맛과 원재료의 고유한 맛들이 섬세하게 살아나며 혀가 아렸다. 각 양념이 지녔던 독특한 맛을 찾아내는 일은 마치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할 때처럼 의외였다. 아린 혀는 뜨거운 국숫발을 번번이 밀쳐내어 거친 숨을 두어 번 들이쉰 후에야 몇 가닥씩 맛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백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백김치는 색깔은 하얘도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았다 뿐이지 색이 하얗다고 해서 아무 맛도 없는 건 아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웅숭깊은 속은 쉽게 드러나지 않듯이, 백김치 또한 찬찬히 음미할 때라야 단순한 흰색 너머에 감추어진 깊은 맛을 인지할 수 있다. 김치가 되기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빠짐없이 기억하려는 듯 무와 마늘, 생강 맛은 물론 달착지근한 배와 대추와 밤 맛까지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김치 양념 중에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 고추의 강한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소소한 맛들이 주눅들거나 개성을 잃지 않는다. 고추가 풍기는 매큼한 가을 햇볕 냄새는 없어도 백김치 역시 온 우주의 도움을 받았음을 담백한 고유의 맛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오묘한 맛을 상상하며 큰 맘 먹고 백김치를 담근 적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요란한 실패였다. 요리책을 펴놓고 수선을 떨며 머리로 담갔던 첫 백김치의 맛은 제 얼굴 색만큼이나 창백했다. 넣을 건 다 넣었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많은 재료들의 맛은 온데간데 없고 배추와 소금 맛밖에 나지 않아 그 후로는 백김치를 담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짠 음식을 먹은 뒤에 찾아오는 갈증처럼, 한번 실패한 백김치로 인한 마음의 가뭄을 해갈시키지 못한 채 꿈으로 남았다. 
고국에서의 오래 묵은 기억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는 날은 비행기 몸체가 상공에서 기류변동을 만났을 때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리다가도, 활주로에 안착할 때와 같은 안도감으로 마무리될 만큼 이국에서 살았다. 가을비로 연상된 칼국수, 그리고 혀를 따갑게 쏘던 김치에 대한 추억 덕분에 말린 나물처럼 바스락거리던 타국의 삶이 촉촉해진 느낌이다. 하얀 김치의 이미지에는, 그게 원래 백김치든 씻어서 하얗게 된 김치든 마모되지 않은 우리 식구의 빛나는 젊음과 사랑이 배어있다. 바람과 비가 한 차례씩 다녀가며, 잡다한 흔적과 지우지 못한 기억을 건드리는 가을이다.

<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