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올림픽 이후 ‘정치’의 제1과제

● 칼럼 2012. 8. 20. 16:5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런던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도 자리에 누우면 가끔씩 박주영의 감각적인 드리블, 양학선의 그림 같은 착지 장면이 아른거릴 때가 있다. 장미란, 손연재의 눈물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보다 더 전이긴 하지만 개막행사 2부, 병상 위에서 뛰어놀던 영국 아이들 모습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부에선 좌파 올림픽이라 비난했다지만 무상의료제도(NHS)에 대한 영국의 자부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영국 복지제도는 지식인사회의 정책 개발과, 정치권의 타협을 몰아붙인 대중들의 힘이 결합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전문가들의 복지국가 청사진이 자유당 사회개혁가 윌리엄 베버리지 주도로 1942년 발간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담겼고, 그 핵심이 무상의료였다. 수십만부나 팔릴 정도로 보고서가 대중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는데도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 처칠의 보수당은 이를 외면했다가 총선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보수당과 영국의사협회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건 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복지사회에 대한 기대를 폭발시킨 유권자들이었다. 이후 1979년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선 뒤 89년부터 일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무상의료의 큰 틀은 흔들림이 없었다.

좀 다른 얘기지만, 핀란드의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바탕이 됐다. 1966년 제1당이 된 사회민주당은 인민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꾸렸고 다른 정당까지 가세해 범정파적으로 ‘교육개혁’을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으나 ‘평등과 협동’ 원칙은 손대지 않았다. 초당적으로 교육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합의한 뒤 세부 설계는 국가교육청장을 비롯한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교사 출신의 에르키 아호는 1972년부터 1991년까지 20년간 국가교육청장을 연임하며 오늘날 세계 제1로 평가받는 핀란드 교육개혁을 완성해냈다.

올림픽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도 ‘양학선2’ 같은 남부럽잖은 정책이 나올 때가 됐다.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와 복지, 경제민주화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게 교육문제다. 우리 교육은 ‘위기’에서 ‘붕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사교육비는 살인적 수준으로 치솟고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그런데도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등’에서 ‘경쟁’으로 냉·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학생들만 실험실 모르모트처럼 피해를 보고 있다. 백낙청 교수가 이미 갈파했듯이 2013년 체제에서 가장 달라져야 할 것도 교육이다. 이제는 혁명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고 초당적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정파를 넘어 교육개혁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는 10년 이상 됐고, 여야와 진보·보수단체 모두 사실 비슷한 얘기를 해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교조와 한국교총 모두 국가교육위나 교육개혁국민회의 등 이름만 달랐지 초당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진보교육감들의 교육혁신 선언에 이어 최근 교육개혁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초당적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 교육계획위원회를 두어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계획을 세우자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의 제안은 검토할 만하다.

교육혁명의 초석을 놓는 데는 이번 국회가 적기다. 대통령 선거 뒤엔 임기 안에 실적을 내려는 욕심 때문에 장기적 계획도, 초당적 접근도 어렵다. 여야가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힘은 유권자들만이 갖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움직일 때다.
 
< 김이택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사설] ‘독도 강공몰이’만이 능사 아니다

● 칼럼 2012. 8. 20. 16:5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의 대응이 거세다.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독도를 다루는 전담조직 설치, 한-일 정상회담 보류 등 일본 정부가 검토중이라는 초강경 조처들이 연일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공세적 대응은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화하려는 의도여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자는 주장에는 자가당착의 요소도 있다. 센카쿠열도 등 자신들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에 대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행을 반대하면서 독도를 두고서는 국제 재판을 들먹이는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얌체 짓이다.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국제 재판에 넘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본의 이런 강경대응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본 대응을 고려한 치밀한 전략전술이 우리 정부에 마련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독도 문제는 ‘조용한 외교’만이 해결책의 전부는 아니다. 정치적 승부수를 동원한 고차원적 방정식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가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놓은 흔적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내 재판과 달리 강제적인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우리한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무대응이 상책이다’ ‘일본이야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는 따위는 전략이랄 것도 없다. 정부의 대비책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긁어 부스럼 만들기에 불과할 뿐이다.

한-일 관계의 급속한 냉각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역량 등을 감안할 때 임기내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과거사 문제 등 두 나라 사이 각종 현안이 더욱 난마처럼 꼬여버린 상태에서 이 대통령은 차기 정부한테 모든 짐을 떠넘기고 떠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공몰이로는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고 해법도 도출되지 않는다. 관계 악화의 장기화는 두 나라 모두 득보다 실이 많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사설] 대북정책 전환의 마지막 기회 놓치지 말라

● 칼럼 2012. 8. 20. 16:5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북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대내외 정책 변화가 역동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인민생활 향상, 즉 ‘선경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보수파 군인으로 선군정치의 핵심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그동안 당-정-군으로 분산됐던 경제 정책을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 통일적으로 추진하도록 경제지도체제를 개편한 것이 대표적 예다.
외부 세계를 의식한 발신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엔 로켓 발사의 실패를 즉각 시인하더니, 7월엔 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를 공개했다. 새로 조직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미키 마우스 인형이 등장하고,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은 젊은 여성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모두 국제 사회에 새 체제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과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최근 들어선 미국, 중국, 일본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의 제2인자로 꼽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그제 50여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방문 목적이 나선(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공동관리를 위한 양국 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수행자의 구성이나 방문 일정으로 보아 김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도 옛 일본군 유골 수습을 명분으로 4년 만에 정부 간 대화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과는 4월 로켓 발사 이후에도 계속 대화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
결국, 남북 사이만 불통인 채 북과 다른 나라는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북이 대북 강경정책을 쓰고 있는 남을 따돌리는 탓이 크다. 북은 안팎으로 큰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유독 남에 대해서만 공개적인 비방과 테러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화해·협력 없이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개선이 제약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북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남이라는 점에서 이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 정부도 5.24 조처에 스스로 발목이 묶여 북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남쪽만 왕따가 될 수 있다. 명분론에만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북의 수해에 대한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인도적이고 쉬운 일부터 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곧 대선국면이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이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한마당] 대외정책과 대통령의 자질

● 칼럼 2012. 8. 20. 16:2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깜짝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뜻을 밝히고, 양국 정상 왕복외교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독도가 우리 땅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일본이 방위백서 등에서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각종 역사적 전거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 있고 지금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도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도에 대해 턱없는 주장이나 펼치는 일본의 행태는 우리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이런 국민적 공분을 배경으로 했을 터이다.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의 행위는 필부의 그것과는 달리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의 깜짝쇼는 그런 점에서 부적절하다.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일본한텐 독도를 분쟁지역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 우익이 설칠 수 있는 장도 열어줬다. 우리가 아닌 일본을 돕는 행위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외국 언론들마저 측근비리와 집권당의 공천헌금 비리 혐의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국내정치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현 정권 대외정책의 파탄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이래 우리 안보에 관건적으로 중요한 북한·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한·미·일 가치동맹 추구에 매달렸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보류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등 한-일 군사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던 그가 독도 방문이란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자신의 이런 노력에 아무런 호혜적 조처를 취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불만의 폭발로 볼 수 있다. 가치동맹이란 시대착오적인 대외정책이 실효적 이득을 가져오긴커녕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만 강화시켰음을 자인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은 경제나 복지 등 국내문제에 대한 식견 못지않게 올바른 대외정책 능력도 대통령의 주요한 자질임을 깨우쳐주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마따나 “안보가 불안하고 평화가 정착하지 못한다면 복지국가도 정의도 불가능”한 까닭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대외적 불안정 요인이 큰 시기이다. 북한에선 경험이 부족한 20대의 청년 지도자가 체제의 동요를 막으면서 경제난국을 돌파해야 할 과제를 짊어지고 있고, 중국 역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서 지도자 교체기를 맞고 있다. 일본에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각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차기 대통령은 이런 대외정세의 불안정성에 슬기롭게 대처해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통일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변인은 남북 분단이다. 60년 이상 지속된 분단체제를 극복·해소할 방안에 대한 깊은 천착이 있어야만 올바른 대북정책도 올바른 대외정책도 나올 수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댔던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에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찍이 시민참여형 단계적 통일론인 ‘포용정책 2.0’을 제시했고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국가연합을 과도적 단계가 아닌 통일의 최종 단계로 상정할 수도 있다는 연성복합통일론을 내놓기도 했다.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여야 지도자들 역시 6.15선언에서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국가연합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에서부터 중립화통일론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런 의견들 가운데 대선이란 담금질 과정을 거쳐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북정책 논쟁을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아닌 한반도 주민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경쟁의 장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

< 권태선 한겨레신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