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10명 중 9명이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며, 10명 중 7명은 법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렇지 않다고, 오해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 참담함과 무력감이 든다. 성인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조사를 한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까? 대기업 회장이나 정치인들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형량을 적게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사면된다. 경제발전에 공헌을 했다거나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청소년들은 숱하게 보고 자랐다. 
청소년 10명 중 6명은 ‘나를 때리면 나도 때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답했다. 정당방위의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나보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이라면? 나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법이란 있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법을 가장 안 지키는 집단으로 청소년의 79%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5%가 법조인을 꼽았다. 법을 가장 안 지키는 집단으로 법을 만드는 자들과 법을 집행하는 자들을 꼽다니! 청소년의 눈은 너무 정확해서 징그럽고,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든다. 
십대부터 노년층까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들 안고 있는 고민이 있다면 바로 ‘돈’일 것이다. 청소년들은 돈이 많든 적든 돈 때문에 걱정하고 짜증내고 억울해하는 어른들을 보고 자랐고, 재력과 힘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선거철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준다. 죽은 경제가 백설공주처럼 되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키스 한 방으로! 하지만 백설공주가 살아난다고 해서 일곱 난쟁이의 삶이 윤택해지진 않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건 백설공주와 왕자뿐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 말이다.
위장전입 하나만으로도 국가 고위직에서 물러나던 시대는 지나갔다. 현 정권 정치인들의 불법과 탈법을 보고 많은 이들이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버젓이 권력을 휘둘렀다. 앞서 언급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청소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돈과 권력을 얻으려면 법을 어길 수밖에 없고, 돈과 권력을 얻은 뒤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사회. 청소년이 파악하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이 한창 수사 중이다. 그는 대통령의 멘토이자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검찰은 그의 죄를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밝혀낼 것이며, 그에게 어떤 벌을 내릴 것인가. 관련 인물을 어느 선까지 추적할 것이며, 만약 최 전 위원장이 형을 받게 된다면 얼마 만에 사면될까. 그리고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얼마나 믿을 것인가. 수사 대상은 고위 공직자였던 자이고, 수사를 하는 자는 법조인이다. 청소년이, 법을 가장 안 지키는 대상으로 꼽은 자들 말이다. 
돈과 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90%의 청소년들은 곧 성인이 될 것이고, 그들 중에서 법조인도, 공무원도, 일반 직장인도 나올 것이다. 
그들 역시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며, 유권자가 될 것이다. 한번 새겨진 인식이 뒤바뀌기란 쉽지 않고, 사회는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청소년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희들은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에 영향을 주는 사회를 정당하고 옳은 사회라 생각하느냐고. 아니라는 대답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짐작 혹은 희망해 본다.

< 최진영 소설가 >


[한마당] 지도자의 자격과 공공의식

● 칼럼 2012. 4. 27. 17:57 Posted by SisaHan
김문수 경기지사가 엊그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새누리당에선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도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고, 민주통합당에서도 문재인 국회의원 당선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속속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여기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재야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까지 감안한다면, 올해 대선 후보군은 벌써 1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사람들은 적어도 나라 전체를 염두에 두고 비전을 가꿔왔을 터이니. 하지만 후보군 가운데 정말 우리의 삶을 맡겨도 좋겠다는 확신을 주는 이는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앞으로 검증과정에서 나라를 이끌 훌륭한 경륜을 갖춘 분이 드러나길 바랄 뿐이다.
대통령책임제 나라에서 대통령을 잘 뽑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올해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떤 점에선 여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새 대통령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이 지난 4년간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뒷설거지하는 일을 넘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평화·복지·공정에 바탕한 새로운 ‘2013 체제’를 만들어갈 책무를 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질은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적 품성,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결능력,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소통능력 등 다양한 자질과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선에 나선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자질을 갖추는 것에 더해 정치에 관한 공자의 말씀을 경청해봤으면 좋겠다. 공자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자공에게 “먹을 것을 충족시키고, 군사를 충분히 갖추며,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 가운데 부득이 뭔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가장 먼저 버릴 것은 군사이고 그다음은 먹을 것이며 마지막까지 저버려선 안 될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고 했다. 국방정책이나 경제정책 등 개별 정책을 잘하는 능력이 있어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의 믿음을 얻는 일은 그다지 녹록한 일이 아닌 듯하다. 정부 수립 이래 역대 대통령을 돌아봐도 그들 가운데 누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승만·박정희는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여러 차례 약속을 뒤엎었고, 전두환은 민주·정의 등 정권의 속성에 반하는 기치를 내세움으로써 국민을 우롱했다. 그 이후의 대통령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민의 믿음을 온전히 얻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족도 그 중요한 원인 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 역대 대통령의 상당수는 그것을 사적 이익에 동원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 대표적 예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고소영’이니 ‘만사형통’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되고,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단죄를 받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것,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에 자신의 특보를 앉힌 것이나, 자신한테 비판적인 민간인을 사찰하는 데 공무원을 동원한 것은 그의 공공의식 결여의 증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대통령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인 문대성·김형태 씨를 보자. 그들의 공공의식 수준은 국회의원이란 공적 책임을 맡겠다면서 복사 수준의 표절을 하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제수 성폭행 미수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제시돼도 이를 부인하며, 오로지 ‘박근혜 위원장과 새누리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탈당한다고 할 정도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공직추구자의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차기 대통령에겐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만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


[1500자 칼럼] 책 읽는 사람들

● 칼럼 2012. 4. 23. 09:01 Posted by SisaHan
책은 왜 읽어야하나? 그리고 왜 읽고 싶을까?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 가운데 어떻게 좋은 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곳엔 한국의 교보문고 같은 큰 책방도 없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좋은 책 소개를 쉽게 접할 수 있으나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그리 쉽지않다.
차분히 앉아 책 읽을 시간 마련하기 조차 힘든만큼 먹고살기에 바쁜 이민생활 속에서 독서는 차라리 사치 아닌가? 끝도 없는 핑계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책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아리 모임 같은 것이 우리주변에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인YMCA 또는 커뮤니티센터 또는 문화센터 등에서 진행되는 각종 강의듣기, 책읽기, 글공부하는 소식이 참 반갑기만 하다. 정신적인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증이 얼마나 큰지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모임들에서도 반짝이는 눈동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엔 끝없이 배우고 싶어하는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이 담겨져 있다. 책 읽는 사람들의 공토분모는 겉치장보다 속치장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요,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책 속에서 찾아보려는 나름대로의 고매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지적인 만족도 채워주지만 감성적인 대리만족도 얻는다. 책 속에서 삶의 경륜을, 인생사에서 풀어나가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종종 그 해답을 책속에서 찾게되는 경험도 한다. 방향감각이 무디어 헤매일 때도 책은 길 안내 표지판이 되어 주기도 한다. 깨달음의 이치를, 공감의 희열을, 마음 치료사의 역할도 책 속에서 찾는다. 보화를 캐내며 한편의 글을 창출해내려는 고통 후에는 자기성취감의 희열도 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의 양식을 한권의 책 속에서도 얻을 수 있음에도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이런 본보기가 있다. 한권의 좋은 책을 선정하여 내가 출석하는 교회 북 클럽에선 첫 번의 시도로 티머시 켈러의 <살아있는 신-The Reason for God)>을 읽기로 했다. 리더의 지도를 받으며 10회에 걸친 토론회가 끝난 후 두 번째로 선정된 스캇 팩의 <거짓의 사람들>을 바탕으로 독후감에 이어 다섯 번에 걸친 열띤 토론회가 끝났다. 두 권의 책 모두가 결코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나 글을 씹으며 읽고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거짓의 사람들> 저자 스캇 팩은 ‘이 책을 위험한 책이다’라고 쓰고 있다. 어떤 책이길래 저자 자신이 그의 머리말에서 이런 경고부터 했을까. 추천의 말 가운데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거짓의 정체를 밝히는 책’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읽는 이에 따라 위험한 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 읽기 시작했다. 또한 자칫 인간성에 내재 되어있는 악마성을 자신에게 보다 내 이웃에게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무기로 쓰여 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해준다. 자신의 거짓된 정체를 뜻밖에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자기 파괴 역활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악을 직접 들여다 봐야 치유를 꿈 꿀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요 정신분석가다. 인간 속에 내재되어있는 환자들의 사례를 들어 ‘악마와 계약을 맺은 남자’ ‘악의 심리학을 찾아서‘ ’일상생활에 숨어있는 악’ 등 7장에 걸쳐 그간 치료했던 환자들의 사례를 들어 인간 깊이 박혀있는 거짓의 정체를 밝혀주고 있다. 극단적인 사례들도 있으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들 자신을 분석해 보는 진지한 순간들이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마음으로 열렸다. 자신 속에 숨어있는 악마성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스토리를 따라 읽는 즐거움도 있었고 전혀 알 수 없는 병든 인간의 정신세계를 간접 경험케 해주는 아찔함과 황당스럼도 있었으나 한 계단을 뛰어넘어 성숙의 길로 가는 희망도 보여주었다. 병든 인간의 마음치료는 관심과 배려, 이해와 사랑이 치유의 명약이라는 결론은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처절하고 끝없는 인내심의 요청을 감내해야 하는가도 가르쳐주고 있다. 
  
두 권의 책 중에 <거짓의 사람들>을 그 예로 소개했지만 이런 방식의 북 클럽 독서회가 성공리에 이루어졌던 것은 적극적인 참여의식과 한권의 책이라도 깊이있게 읽고 토론하고 나누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다시 만나는 경험 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음엔 어떤 책이 선정되어 읽게 될까 궁금하다.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동포사회를 안타깝게 했던 온주 실협 선거가 끝났다. 그동안 깊게 패인 감정의 골과 적대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양측이 법원감독이라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선거 후 깨끗이 승복하고 정상화의 길을 걷는 모습은 일단 다행스럽다. 선거 기간에도 서로 불법시비에 채증(採證)을 밝혀 혹여 선거 후 다시 후폭풍이 일지않을까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일부 신문의 특정 후보 밀어주기와 상대후보 폄하라는 지나친 편파보도에 다른 후보들이 반발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이한’ 상황도 벌어졌기에, 실협 뿐만 아니라 동포 언론계에도 후유증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됐던 게 사실이다. 타 후보들은 물론 많은 한인 동포들도 너무 노골적인 신문의 편향을 걱정하는 소리를 전해와 같은 언론으로 솔직히 민망하고 언짢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이번 실협 선거에서 보인 그 신문의 보도행태는 묘하게도 모국의 지난 4.11 총선에서 보여준 일부 신문과 방송의 정도(正道)를 벗어난 ‘친여 편향-야권 죽이기’ 보도행태와 너무 닮았다는 데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며 아름답게 아우르고 보살펴야 할 언론이 마치 피고와 원고를 다루는 판사나 검사처럼 사안에 직접 개입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쥐고 흔드는 모양새는 글자 그대로 ‘작태’라는 말을 듣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언론의 원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금도(襟度)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여당의 과반 확보로 선거가 끝나니 마치 자기들 잔치가 벌어졌던 것 마냥 승리감에 도취된 보도를 양산해내는 이른바 ‘조·중·동’의 금도를 팽개친 모습은 그야말로 ‘조폭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신문들이기에 더더욱 국격과 ‘언격(言格)’을 논할랴치면 수준이하의 낯뜨거움을 절감할 수 밖에 없다.         
선거 후 쏟아지는 승-패인 분석들은 거의 여당에 후하고 야당에는 혹독하다. 야권에 대한 기대치가 컸고 그만큼 상실감도 크기에 그럴 수 있다지만, 정말 야당이 그렇게 뒤집어 쓸 정도로 잘못만을 저질렀던 것일까.
 
선거정국의 흐름과 역학을 한번 찬찬히 따져본다면, 이번 총선의 승패를 가른 최대 요인은 첫째 언론, 둘째 강고한 지역구도, 셋째 물타기와 궤변의 엎어치기 전략…, 그리고 박근혜 영향력과 김용민 파문 등은 그 다음 변수들이었다는 감이 든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김용민 막발’이 승패를 가른 최대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막말 그 자체 보다는 그런 파문을 최대이슈로 만든 언론들의 행태가 승패를 갈랐다고 봐야한다. 뒤집어 말하면 여권이 ‘기를 쓰고 밀어부친’ 언론장악의 덕을 톡톡히 누린 선거판이었다.  
“표절-성폭행 문제와 막말문제가 대립할 때, 전통 미디어는 한쪽은 덮고 막말 파문은 마치 국가가 뒤집어지는 일인 양 포장하고 확대했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맞는 말이다. 선거 와중에 터진 개별 이슈는 많았다. 8년 전 내뱉었다는 김용민의 막말 말고도, 제수 성폭행 의혹이 터진 김형태, 박사학위 논문 이중 표절의 문대성, 친일발언의 하태경, 불법사찰 의혹의 기무사 수장 출신 등…문제후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 중 김용민만 야당이었고, 집중포화를 받은 것도 그 뿐이었다. 김형태·문대성 모두 보수언론들은 크게 다루지 않았고, 그들은 당선됐다.
 
신문시장의 5할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조중동’은 선거기간 내내 보수결집과 거야(巨野)불안감 조성에 나서는 등 여당 편향으로 일관했다. 영향력이 큰 KBS·MBC·연합뉴스 기자들의 공정보도를 외친 파업이 공교롭게도 선거기간 지속되면서 간부중심으로 만든 뉴스들 역시 여당 홍보에 치중했다. 
언론파업이 야당에는 악재였던 것이다. 당연히 선거 캠페인 기사의 ‘여대야소, 여후야박(與厚野薄)’이 이어졌다. 엄밀히 따져보면 공천에서 잘잘못은 여-야 오십보 백보였다. 일사불란한 일인체제의 효율성이 좋아 보일터이나, 민주적 리더쉽은 논박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똑같은 실수에 한쪽은 감싸주고 한쪽은 침소봉대 되곤했다. 
그래서 정부에 장악된 언론들이 이번 여당 승리의 공신들이었다는 분석은 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그들의 자아 도취가 얼마나 갈까. 신뢰를 잃은 언론은 존재 의미가 없다. 벌써 언론시장에서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게 그걸 말해준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