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군대위안부나 강제징용자로 피해를 본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고통이 해방 뒤 67년이 흐른 지금까지 씻기지 않은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는 그동안 ‘한-일 과거사 청산’이라는 의제로 종종 이 문제를 쟁점화했지만, 열과 성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에 의해 민간 청구권까지 소멸됐다는 일본 쪽 주장에 사실상 동조해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정부의 그런 수수방관식 태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대법원이 지난 24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배상권을 인정함에 따라, 이젠 정부가 이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까닭이다.
 
당장 눈앞에 드러난 정부의 모습은 참담하고 낯부끄럽다. 강제징용 문제만 해도 뒷짐만 져온 사실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뒤 맥아더 사령부의 지시에 의해 1946년 민간기업들한테서 공탁을 받은 강제징용자 미지급 노임이 대표적이다. 이 미불임금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와 고통이 서린,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나, 아직도 일본내 은행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사이 세월의 더께가 쌓여 무려 6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또 강제징용자들의 개별적인 저축도 일본 은행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우리 정부는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그저 “강제징용의 미불임금 공탁금이나 개인 저축은 한-일 청구권 협상으로 마무리됐다”고 설명할 뿐이다. 
징용 배상을 외면하는 ‘전범기업’에 대한 줏대없는 자세는 분통마저 터지게 한다.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올해 한국전력 자회사들과 수천억원의 납품 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만든 ‘일제 전범기업 입찰 제한 조처’의 적용 대상에서 한전이 제외된 탓이다. 이는 중국 정부와 경제계가 한목소리로 전범기업인 니시마쓰건설을 압박한 것과 사뭇 대조된다. 니시마쓰건설은 중국내 사업을 위해 중국 쪽 요구를 받아들여 2009~2010년 중국인 징용피해자 543명에게 47억여원을 지급했다.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과거사 해결을 위한 조처에 나서야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미불임금이나 개인 저축을 돌려받기 위한 협상에 나서고, 국제법상 큰 무리가 없다면 전범기업의 국내 영업활동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부의 법적·정치적·역사적 책임에는 시효가 없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인간성을 비웃는 학살을 또 자행했다. 그의 친위 민병대 샤비하는 엊그제 시리아의 작은 도시 훌라에 탱크와 야포로 무차별 포격하고, 총과 칼로 닥치는 대로 난사하고 난자했다. 아이들 49명 등 주로 노약자 108명이 희생됐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아이, 수십발 총격에 벌집이 된 아이 등도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의 패권주의적 힘겨루기 속에서 시리아는 21세기 인간성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물리적 개입을 위한 결의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의 일방적 중동 패권을 우려한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뒤 유엔의 중재로 지난 4월 정부와 반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맺어졌지만 정부군과 친위 민병대의 체포, 구금, 학살은 계속됐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이 유혈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 말까지 희생자가 6000여명으로 추산됐지만, 이후 3~4개월 동안 희생자가 3000여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사이 아사드 정권의 만행은 더욱 기승을 부렸던 셈이다.
훌라 학살 직후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주저하던 러시아도 감시단의 보고서를 확인하고는 반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명은 어조가 아무리 강력해도 성명일 뿐 구속력이 없다.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서유럽의 패권적 접근을 우려한다. 리비아처럼 시리아마저 서방으로 넘어가고 이란이 고립될 경우, 서방 세계의 중동과 석유 패권은 물샐틈없다. 물론 러시아도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시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까 주저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민간인 1만여명이 희생되도록 아사드 정권을 방치한 배경엔 이런 패권주의가 작용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훌라 학살이 이런 패권주의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사실이다.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성명에 ‘이번 학살 책임자는 반드시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명시한 것은 그 한 징표다.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축출한 예멘식 모델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시리아 사태는 이제 종파 및 민족 분쟁의 수렁으로 빠질 조짐을 보인다. 보스니아 내전 때와 같은 인종청소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당장 종식돼야 한다. 그러자면 시리아에 민주정부가 수립되도록 미·러와 국제사회는 인도적 견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마당] 이민사 프로젝트 논란

● 칼럼 2012. 5. 31. 15:56 Posted by SisaHan
이진수 토론토 한인회장은 합리적인 성품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평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가 ‘이민사 편찬 프로젝트’를 나름대로 밀고 나가려다 쏟아지는 비판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서둘러 마련한 첫 공청회 자리에서 그는 “몰라서 용감했던 것 같다”고 여론수렴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시사 한겨레 보도를 언급하며 “지적이 고마웠다. 사실상 지면을 통해 공청회를 한 셈이었다”고 실토했다. 이 회장은 특히 “이번 호엔 무슨 내용이 실렸는지 시사 한겨레를 찾아 식품점을 뒤졌는 데, 정기휴간이라더라”고 솔직히 털어놓아 많은 인사가 참석한 좌중에서 웃음도 나왔다. ‘당황’과 진지함의 속내를 그 답게 꾸밈없이 털어놓은 셈이다. “사실 무관심이 제일 걱정이었다. 여러분의 염려를 유념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에는 박수도 터졌다. 진솔한 그의 비판수용과 궤도수정 뜻을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진수 회장의 전향적인 자세가 앞으로 어떻게 가시화 될지는 두고 봐야한다는 유보적 견해가 많았다. 이미 ‘프로젝트’ 화살이 시위를 떠난 상태에서 다양한 수정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 공청회에서 쏟아진 의견들을 듣기는 했어도 해명에 무게가 실려, 명시적으로 변경된 사항은 나오지 않아서다.
 
사실 한인회의 이민사 편찬작업 윤곽이 드러나면서 여러모로 부실하다는 인상은 누구라도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밀실 작업처럼 알리기를 꺼려하며 몇몇이서 입맛대로 디자인하고, 지인과 관계사 위주로 사람들을 선정한 뒤 연내에 신속히 끝내겠다는 야심 아래 성급히 시행에 들어간 무리한 프로젝트』라는 이구동성의 심증과 공감대가 번졌다. “동포들 수준과 한인사회를 경시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그런데 더욱 답답하고 아쉬웠던 것은, 중요한 사안을 여론 수렴 없이 일방추진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못한 한인회와 이사회의 무신경에 대한 지적이었다. 또 ‘필진으로 선정됐으니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나간 첫 회합에서 일방적 집필통고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다수 필진들이 현장에서 단 한가지도 프로젝트의 ‘외화내빈’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성토였다. 더욱이 그들이 속한 일부 언론 또한, 연이어 분출하는 문제제기에도 모른 척, 꿀먹은 벙어리처럼 모르쇠로 일관한 모습이 한심하다는 비판이었다. “‘필진에 들어갔으니 만사 OK’ 라면 문제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런 식으로는 무리가 아닌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이 프로젝트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나 필진으로써의 양식에 비추어서도 타당한 게 아니냐”는 한 전직 한인회장의 지적이 귀에 생생하다.
한인 밀집지인 미국 LA의 오렌지 카운티 동포들이 몇해 전 한인이민사를 편찬했는데, 고급 양장으로 비싼 돈을 들여 아주 멋진 책자를 만들어 냈지만, 나오자마자 비난에 휩싸이며 ‘쓰레기통 신세’가 돼 버렸다고 했다. 재임 중 이민사 편찬을 모색하며 사례를 알아봤던 이상훈 전 한인회장이 전해준 실화다. “기대를 걸고 재원을 모아줬는데, 몇몇이서 자기들 입맛대로 만든 결과였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한인학자가 캐나다 정당사를 펴냈는데 자료 번역도 잘못하고 검증도 안돼 신민당의 전신이 ‘공산당’이 돼서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 그런 책이 도서관에 비치되고 다른 나라에도 가니 무슨 창피인가. 역사는 객관과 공정을 기하려 노력하는 게 필수다. 역사기록은 어려운 일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진실이 기록되지 않으면 후세까지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필진은 품격있고 공정하며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경복 북한인권협의회장) 
이같은 타산지석의 비판과 충고들은 이민사편찬 작업이 졸속으로 추진 중이라는 시사 한겨레 보도로 널리 알려지면서 사방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특히 한인사회 경륜이 오랜 원로들과 전직 한인회장 등에게는 직접저인 이해가 없지 않아 예민한 문제이기도 했다. 
한인회가 이런 격앙된 분위기의 진화에 나선 것은 늦게나마 천만 다행이다. 서둘러 전직 한인회장들을 초치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쓴소리를 들은 데 이어, 공청회를 개최하는 성의도 보였다. 조직을 보완하고, 제작기간도 신축성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갈등과 말썽의 소지를 방치하기보다 일단 ‘여론청취’의 자세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적된 문제점들을 얼마나 보완하고 개선할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요 현안이다. 보완하겠다는 ‘기구’의 인적구성과 실질적인 운용부터가 그렇다. 
모든 일이 ‘시끄러우니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라면 잠시 문제는 덮일지 몰라도 나중 틀림없이 뒷탈이 나게 되어있다. ‘시끄러움’의 핵심이 지혜를 모아 최선의 작품을 만들자는 것일진대, ‘최선의 작품’, 즉 ‘공동의 선(善)’은 다중의 의지와 양식과 역량의 집산물이기 때문이다.


[1500자 칼럼] 돌아누운 민들레 꽃대

● 칼럼 2012. 5. 20. 18:45 Posted by SisaHan
읽던 책 한 권을 끼고 집을 나섰다. 커피숍까지 산책 삼아 걷고 있는데 산책길 옆의 잔디를 깎고 있어 멀리까지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 짧게 밀어버린 초록 잔디 군데군데에 용케도 살아남은 노란 민들레 꽃들이 한숨 돌리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가면 슬쩍 누운 척하다가 다시 일어서는 민들레의 생존 전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민들레 꽃이 올 봄에는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겨울이 춥지 않은 덕에 작년에 퍼뜨린 홀씨를 성공적으로 키워내어 의기양양해진 민들레가 지천으로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도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꼬마 전등을 깔아놓은 것처럼 대지를 환하게 밝혀 한때 장관을 이루었었다. 노란 불이 꺼지면서 골프공만한 하얀 홀씨들이 줄기마다 하나씩 가뿐히 올라 앉아 있어 또 한동안은 세상이 온통 골프연습장 같았다. 그러다가 봄 바람이 지날 때면 스스로를 시들게 하던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는 듯 이미 가벼워진 몸에서 솜털마저 낱낱이 훑어내어 날려보내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한차례 지나가는 봄비치고는 우악스러운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러고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갠 하늘은 순수한 어린아이 눈동자처럼 맑았다. 산책길 좌우로 넓게 펼쳐진 잔디가 비에 씻긴 말끔한 얼굴로 햇빛을 받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문득 저게 뭘까 싶어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저것. 초록 잔디에 불그스름한 빨대를 빼곡하게 꽂아놓은 것 같은 저것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언뜻 분간하지 못하다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로 졸지에 홀씨를 잃고 줄기만 앙상하게 꽂혀있는 민들레 꽃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늘, 더 이상 버티고 살아있어야 할 의미를 지니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하얀 햇살을 받아 몸을 뒤튼 채 줄기들이 잔디에 아무렇게나 돌아누워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몸부림을 목격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민들레 참상의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진지하고도 심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홀씨를 널리 퍼뜨려야 하는 번식의 임무를 순리대로 마치지 못한 민들레가 생존의 의미를 잃고 저리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듯, 사람 역시 어느 순간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생을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울 때까지는 자식이 생명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야 할 충분한 의미가 되어주고 부양의 의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한눈 팔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성가시켜 떠나 보낸 후에는 아내나 남편이 기대고 있을 자신의 어깨를 치울 수 없다는 것이 존재의 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혼자 남겨질 경우 나머지 생을 의연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삶의 버팀목이 될 무엇인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육신과 정신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베갯머리에 묻어있는 꿈 조각을 붙들고 살기 보다는 의식을 확장 시켜 나갈 무엇인가가 필요하리라는 의미이다.
 
어찌됐든 가냘픈 몸피로 척박한 환경에서 불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생명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은 놀랄만하다. 그러나 민들레 또한 한시적인 생명이거늘 예기치 못한 일로 순리를 거역하는 상황에서 담담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젖으면 자신도 젖는다는 이치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소낙비에 홀씨를 갑자기 잃어버린 그들, 만일 그들이 제 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면 적어도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저항하는 몸부림은 없지 않았을까. 
노랗게 익은 희망의 빛을 밝히며 생을 살아낸 민들레의 전성기를 추억하며 걷다가 햇빛을 받아 잠시나마 다시 꼿꼿하게 몸을 일으킨 줄기 몇 가닥에 마음이 잡힌다. 꺼지기 직전에 반짝 강한 빛을 발하는 촛불 같아서였을까.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