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 칼럼 2012. 7. 10. 16:27 Posted by SisaHan
아는 친구들 중에 아버님의 사업이 기울어 1980~90년대에 빈손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들이 두어명 있다. 부잣집 도련님이 하루아침에 이국땅에서 가게 점원 또는 빌딩 야간청소부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그러나 20~30여년 지나 그들은 큰 가게를 운영하거나 사업체를 중국, 베트남까지 확장한 사업가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미국이니까, 아버지나 나도 체면 따지지 않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 (시선 많은) 한국에서라면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로 있었을 것”이라며 “미국은 5년만 열심히 일하니 대부분 기반을 잡을 수 있더라”고.
그러나 그 ‘아메리칸드림’의 역사는 20세기로 종말을 고한 것 같다.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여러 한인들을 만났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7명 중 1명이 불법체류자(서류미비자)라고 한다. 그리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무작정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여전히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2008년 촉발된 미 금융위기가 미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지만, ‘아메리칸드림’이 깨지기 시작한 건 이미 그 이전부터였던 것 같다. 70~80년대에 엄청나게 쏟아지던 미국 이민자들도 이제는 매년 그 수가 줄어 한인타운에선 한인들만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이제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열심히 일하면 집 사고, 자동차 사고,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낼 수 있었던 소박한 ‘아메리칸드림’은 이제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이 다시 한인타운으로 유턴해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형태가 늘면서 빛이 바랜다.
최근 퓨리서치 조사를 보면, ‘자식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답한 미국인은 조사 대상자의 47%로 절반이 안 됐다. 미국 경제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인 2009년의 62%보다 더 낮은 수치다. 실질 실직자 2600만명, 국민 8명 중 1명이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품지원)를 받는 곳에서 ‘희망’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정서적으로 빈부격차에 덜 분노하는 나라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화 ‘파 앤 어웨이’를 보면, 어느날 사람들이 주인 없는 넓은 벌판(오클라호마)의 출발선에서 총소리에 달려가 깃발을 꽂으면 그 일대의 넓은 땅이 자기 땅이 되던 서부개척의 역사를 지닌 미국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그런데 미국 센서스 통계를 보면, 1979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인 소득 상위 1%의 소득은 275%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하위 20%의 소득은 18% 늘어나는 데 그칠 정도로 미국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계층 상승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자료를 보면, 점수가 낮은 고소득 가정 학생보다 점수가 높은 저소득 가정 학생이 대학을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상원의원 시절 “아메리칸드림을 재생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금도 그 말을 반복하고, 앞으로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 권태호 - 한겨레 신문 워싱턴 특파원 >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중에는 ‘출생의 비밀’도 있었다. 이 후보가 다른 형제들과 다른 핏줄일 가능성,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혈통’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후보 쪽은 검찰한테 디엔에이 검사까지 받아 해명하는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의혹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부계 혈통을 검사하려면 디엔에이 와이(Y)염색체를, 모계 혈통을 조사하려면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조사해야 하는데 검찰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둥 뒷말이 계속 무성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로 이런 주장에 별로 믿음이 가는 편은 아니다. 지나친 상상력의 발로 아닌가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그 뒤 이 대통령의 ‘친일 행보’를 둘러싼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게 이 핏줄 의혹이다. 그러면서 대중의 집단적 예지력이 무섭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대통령의 친일 행보를 미리 내다본 대중의 예감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핏줄에 대한 의혹 제기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마침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으로 정점을 찍었다.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협정을 체결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미국이 동북아 전략 차원에서 한-일 군사협력을 끊임없이 종용해온 것은 세상이 아는 사실이지만 협정 추진의 속도와 방식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다시 핏줄 의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친일 핏줄 문제를 따지자면 이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과 집단이 많다. 이 땅의 수구언론, 보수세력들의 혈관 속에는 친일의 피가 맥맥이 흐른다. 한-일 정보협정의 비공개 추진 사실이 드러난 직후의 반응부터가 그렇다. 놀랍게도 28일치 아침 <조선일보>에서는 이 기사가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6면의 조그만 상자기사가 고작이었다.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는 ‘북 핵·군사 정보 일본과 공유한다’는 제목이 말해주듯 긍정 일색이었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1면에서 비공개 처리를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은 한술 더 떴다. 대변인 논평을 통해 “반일 감정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부를 두둔했다.
 
이 땅의 평범한 백성들은 한-일 군사협력이라는 말만 들어도 일단 주먹부터 불끈 쥔다. 그것이 보편적 정서다. 국익과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음 문제다. 게다가 정부의 밀실처리가 들통난 상황에서는 흥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럼에도 아무런 분노도, 수치도, 의아스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 놀라운 무감각의 원천은 어디인가. 일본과의 군사협정이 안보에 불가결한 요소라는 믿음이 너무 굳센 탓인가.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 노무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였다. 임기 말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심초사하는 목표는 한-일 군사협력 성사다. 그것이 두 사람의 본질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수세력이 참여정부 말기 때 자주 쓰던 단어가 ‘대못질’이었는데 이 대통령은 지금 그 대못질의 망치를 높이 들었다. 이 위험천만한 못질이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스스로 한-일 정보협정 밀실 추진의 절차상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 안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나의 책임’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엊그제 일어난 일도 책임을 지지 않고 뒤꽁무니를 빼는 사람들이 바로 이 정부 사람들이다. 하물며 미래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 이들에게 어떤 책임을 기대할 것인가.
 
이제 많은 사람의 시선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한테 향한다. 이 협정의 향방에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 의원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국회가 개원했으니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며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협정에 대해 찬성인가 반대인가라는 본질적 문제는 의문부호 상태로 남겨두었다. 박 의원의 핏줄은 어디에 맞닿아 있을까.

<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


여행은 내게 참으로 귀한 시간을 마련해준다.
전혀 다른 삶 속에 풍덩 빠져 자맥질함으로써 잠들었던 오감이 깨어나고 미지근하던 체온이 올라가며 둔중하던 심장은 빠르게 고동친다. 미지의 세계에서 낯설고도 우발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크고 작은 가슴 떨림은 그런 의미에서 말 못할 희열이다.
몇 번을 미루고 벼르다가 떠난 여행이었다. 미국 동북부에 걸쳐있는 몇 개의 주를 돌아오는 여정에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를 향하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술렁임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H.D. 소로의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지역을 여행하면 꼭 들러보리라 마음 먹고 있던 월든 호수. 자연을 통해 세상과 인생을 관조하게 된다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의 책 <월든>을 만났다. 소로 스스로 자신을 ‘자연관찰자’라 불렀듯이 매일 달라지는 호수의 물빛과 하늘의 변화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들으며 소박하게 꾸려가던 삶의 원형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만일 내가 젊어서 그 책을 읽었더라도 뇌리에 이처럼 깊게 새겨졌을까.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하여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25년 동안 30여 권의 일기를 썼고, 강연이나 글을 쓸 때 자신의 일기에서 자료를 얻었다고 했다. 나 역시 대부분 글의 소재를 일기에서 얻고 있다는 그 작은 유사함만으로도 그에게 갑작스러운 친근감을 느꼈고, 아주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던 작가와 공유하는 ‘어떤 것’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콩코드에 다가가며, 호숫가에 두 평 남짓한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자연친화적 삶을 실천한 <월든> 속의 그를 상상 속에 한껏 부풀려서 그려보았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호숫가 숲길을 걷고 싶었다. 160여 년 전에 그가 심었을 호두나무와 소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싶고 고요 속에 즐겨 들었다는 티티새의 노랫소리도 들어보고 싶었다. 
문명을 잠시 내려놓고 육체 노동을 이끌어주던 그의 정직한 두 손을, 더 없이 간소한 생활 속에서도 넉넉하던 그의 가슴과 숨결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입으로는 소박한 삶을 동경한다 하면서도 막상 거추장스러운 겉옷 하나 벗어놓지 못하고 사는 내 삶의 모습이 추레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월든>을 읽고 이곳 호숫가를 찾았다는 법정스님 생각이 났다. 소로의 삶을 먼발치에서라도 마주치고 싶다는 갈망에 스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콩코드 박물관에는 시대를 함께한 에머슨 시인과 작가 호손이, 육신을 버린 영혼만으로도 우정을 지킬 수 있음을 과시하듯 소로 곁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당대의 콩코드를 주름잡던 그들의 입김이 구석구석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소로를 보러 갔다가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만나고 나니 행운의 호위를 받기나 하는 것처럼 흐뭇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큰 바위의 얼굴>과 <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호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고독 속에 살다간 호손의 생애를 염두에 둔 탓에 내게만 그리 보였던 것일까. 에머슨이 냉혹해 보인 것 또한 소로의 탁월함은 인정하면서도 칭찬을 아끼던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의구심과, 영적인 스승이면서도 제자인 소로와 묘한 경쟁 관계였다는 이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개입한 나의 선입견 탓이었으리라. 
이번 여행 역시 내게 많은 사색거리를 안겨주었다. 여행은 사람이든 풍경이든 낯선 것들과의 만남 이외에도 그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 방황을 통한 사색이 있어 소중할 것이다. 길들여져 익숙해진 곳에서는 건성으로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라는 낯선 시선을 택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것들을 자신만의 글이나 사진으로 간직하려 드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길 떠남’이란 몸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함께 떠나는 것이다. 길 위에서 영혼의 떨림을 경험한 후 작은 흔적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 역시 글의 힘에 기대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데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작은 손가방 하나는 늘 곁에 챙겨둔다. 여행은 내게 무엇일까. 익숙함이 그리워 돌아온 이곳을, 낯섦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 아닐까.

< 김영수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


[기고] 자녀교육과 환경

● 칼럼 2012. 7. 2. 17:56 Posted by SisaHan
벌써 오래전 부터 환경이 자녀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옛날 한석봉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몇번씩 이사를 다녔으며 .캐나다로 이주한 많은 젊은 부모님들의 이민 목적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머리를 싸매고 자기 자식들을 소위 말하는 일류학교로 보내려고 노력함도 바로 좋은 교육적인 환경 속에서 자식들이 교육을 받기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한 환경을 큰 차원에서 논한다면 물론 국가, 사회, 교육제도, 일류학교 등등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교육,특히 자녀들이 어렸을 때 교육에 미치는 환경이란 바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어떤 부모 밑에서 자녀가 태어났는지, 또 부모가 자녀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투자(시간, 마음, 열정 등)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서 어떠한 가정환경을 자녀들에게 주고있는지가 자녀교육의 중요한 요인(Factor)이 되는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토론토로 이주해 온 한 친구의 자녀교육 실례를 간단히 소개한다 이 가정에는 딸만 4명인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매주 동네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며 책을 접하게 했고, 이 딸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전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주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가 두번째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이주했을 적에도 오바마가 혹시라도 영어를 잊을까 봐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벽마다 학교가기 전 거의 두신간씩 독서를 시켰다고 한다. 이와같은 적극적인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이 훗날 오바마가 하버드 법대 대학생 시절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 저널 리뷰커미티의 총회장으로 당선되게 한 힘이 아닌가 싶다.
최근 토론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쁜 소식을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약 3년전 보다 실질적인 자녀들의 지도자 훈련을 위해 세계 청소년지도자 그룹Global Youth Leaders (GYL) 이라는 단체를 대학후배인 김창곤씨와 함께 창설을 했다. 짧은 기간을 통해 여러분들 특히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학생들의 참여로 인해 GYL은 잘 성장해가고 있다. 그들은 국내에서의 활동은 물론 국외에서까지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자마이카에 있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두번씩이나 방문하여 고아들과 양로원의 노인들을 위로 했었고 2년 전 필리핀을 방문하여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모금을 해서 보내주는 일을 했으며 또한 올 7월에는 제 2차로 같은 목적으로 다시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한국 등 국제대회에도 참석하여 캐나다를 대표하기도 하면서 장차 차세대 리더로서의 리더쉽 훈련을 하고 있다.
 
그 결실로 GYL 의 초대회장은 미국에서 제일 좋은 비지니스 대학인 뉴욕의 Business school에 입학이 되었고 2대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식때 주 총독상을 받고 워터루 대학교 건축학과 및 미국의 여러 명문대의 건축학과 에 입학이 되었는데 워터루 대학으로 가기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더 기쁜 소식은 이 학생은 온타리오 건축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장학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우리 자식들이 GYL에서 좋은 훈련을 받고 값진 경험을 한 덕분이라고 감사를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동안 이 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잘 시켜왔고 그분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의 결실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자녀교육과 가정환경은 중요하지만, 자녀들이 성장해 감에따라 환경이라는 범위가 꼭 가정이나 학교에서 머물지 않는것 같다. 특히 요즘같이 하이테크 시절에는 환경의 범위를 어떻게 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어떻든, 자녀교육과 관련된 중요한 환경중 하나는 바로 독서(Reading)가 되겠다.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지식을 얻는 것은 물론 새로운 비전과 가치관 더 나아가서 큰 포부를 갖게된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계속 성장해 가는 것이고 또한 우리 모두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만큼 독서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다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최근에 읽은 책 ‘Great Leaders Grow’ (Ken Blanchard, Mark Miller 공저)을 소개한다. 이 책은 쉽게 쓰여져 있어 이해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중학생부터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자녀들이 장차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더 배우고 싶은 분은 이 책을 꼭 읽도록 권하고 싶다.
 
< 조성준 - 토론토 시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