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남북관계와 관련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 3일 수해지원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북쪽이 일주일 만에 조건부 수용 뜻을 밝히고 나왔다. 남북 사이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남쪽이 인도적 문제로 손을 내밀고 북쪽이 뿌리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은 홍수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도움뿐 아니라 상호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북쪽은 그제 남쪽의 수해지원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면서 지원 품목과 수량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바로 직전,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협의를 하자는 남쪽의 제안을 5·24 조처의 철회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며 사실상 거부한 것과는 사뭇 다른 자세다. 북쪽이 이산가족 상봉보다 수해지원에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사람이 많이 오가는 인적 교류보다 물자만 받는 수해지원이 정치적 부담이 작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물론 7, 8월의 연이은 폭우와 태풍으로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봐 외부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이기도 하다. 북은 지난 8, 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적십자 회의에서도 홍수 피해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북이 남의 제안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 지원 품목과 수량을 알려달라고 토를 단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부에서는 남쪽이 제시하는 품목과 수량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라고 비난하지만, 지난해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 북에 수해가 났을 때도 역시 우리 정부는 50억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했고, 북은 식량과 시멘트 등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런 품목은 군용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며 초코파이와 영유아용 과자 등을 보내겠다고 고집하고 북이 이를 거부한 일이 있다. 마치 물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커피를 주겠다고 우긴 꼴이다.
정부는 이번엔 지난해 초코파이 파동을 교훈 삼아 북쪽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통크게 지원하기 바란다. 다른 나라에도 ‘한 손 아닌 두 손으로 하는’ 원조를 하라고 하면서 동포에 대한 인도지원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한마당] 1997 대선의 교훈

● 칼럼 2012. 9. 17. 09:37 Posted by SisaHan
1997년 대선 네거티브의 정점은 이른바 DJ 비자금 사건이었다.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쪽은 김대중의 수백억원 차명계좌 보유설을 제기했다. 
DJ는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을 은밀히 만났다.(대선 직전 제1야당 후보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극비 회동은 졸고 <김대중 집권 비사>에서 취재원과의 약속에 따라 모두 익명 처리됐다.) 
“검찰이 나를 수사하면 제2의 광주사태가 일어나요. 80년 전두환 때는 군부가 나서서 막았지만 이번엔 군도 나서지 못할 거요.” 디제이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하라며 협박조로 했던 말이다. 
역대 대선마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캐는 네거티브가 극성을 부리지만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입장에선 안철수를 거꾸러뜨리면 대선은 절반 이상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풋내기 정치인 정준길이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다 급기야 안철수를 주저앉힐 요량으로 친구 변호사한테 협박인지 종용인지를 한 것도 이런 유혹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교적 오랜 세월 검증을 받아온 박근혜와 달리 안철수는 검증 포인트가 무궁무진하다.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약점도 많을 법하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후보가 검증 공세에 곤욕을 치른 데서 보듯, 신인일수록 검증에 취약하다. 피할 수 없다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네거티브 공세에는 변명만 하고 있다간 어느새 빈털터리가 되기 십상이다. 금태섭 변호사가 정보기관 개입설 등으로 맞짱을 뜬 걸 두고 안철수가 기존의 정치를 답습했다고 하지만 안철수는 기존 정치를 더 배울 필요가 있다. 
대선 막판 검증이나 네거티브가 검찰 손아귀로 넘어가면서 선거 향방의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은 한국 정치의 독특한 다이내믹이다.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단면이기도 하다. 92년 대선 땐 검찰이 제3후보인 정주영을 때려잡으면서 YS가 낙승했고, 97년 대선 때는 YS가 검찰의 DJ 비자금 수사를 막으면서 DJ가 승기를 이어갔다. 2007년엔 검찰이 확실히 이명박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대선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장악한 가운데 치러진다는 점에서 97년 대선과 그 지형이 흡사하다. 
97년 10월 DJ가 김광일을 만난 지 얼마 안 돼 검찰은 이회창에게 굴욕을 안긴다. 그의 국회 대표연설 와중에 비자금 수사 중단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YS의 마음이 이회창에서 이인제로 넘어간 탓이기도 했지만, DJ는 협박이든 회유든 모든 걸 동원해 검찰을 중립화함으로써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얼마 전 한 종편에 출연한 인사가 산업은행 뇌물사건과 관련해 안철수의 공소시효가 완료됐는지 애매하다며 시민단체의 고발을 은근히 부추기는 걸 봤다.
 
안철수가 야권에서 대선행 티켓을 거머쥘 경우 안철수를 거꾸러뜨리고 싶은 사람들은 검찰을 어떻게든 끌어들여 산업은행 뇌물사건을 재수사하게 하고 싶을 것이다. 문재인·손학규·김두관 등 다른 야권 후보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에서의 검찰 행태로 보면 검찰이 대선판에 끼어들어 분탕질을 할 여지는 다분하다. 
15년 전의 일이라 새삼스럽긴 하지만 97년 대선의 교훈은 이렇다. 야당 후보는 어떻게든 대선 국면에서 권력기관과 일대 전투를 벌여야 한다. 
야당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는 대체로 여당에 장악된 권력기관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DJ 비자금 사건 당시 자료의 출처는 청와대였다. 야당 후보는 네거티브를 확대재생산하고 자신을 옭아매 사지에 몰아넣을지도 모를 권력기관을 어떻게든 무력화·중립화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 한겨레신문 백기철 논설위원 >


[1500자 칼럼] 김기덕과 TIFF

● 칼럼 2012. 9. 3. 19:11 Posted by SisaHan
이번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에 또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초대 받았다고 한다. 내가 이 영화제에서 처음 본 그의 영화는 십여년 전에 본 <섬>이었다. 그 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던 이 영화는 나에게는 실로 충격적이 었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그 때까지 가끔 토론토영화제에 초대 됐던 한국영화와는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영상미학이 뛰어났고, 내용도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개인의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붙잡으려 몸부림치지만 저마다 섬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 이후에도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빈집>, <시간>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보았다. 그가 영화를 만들 때마다 거의 매번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대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그처럼 자주 초대 받는 감독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다른 유명 영화제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인데,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했다. 그 이유는 미국과 가까워 미국에 진출하기 전의 쇼케이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다가, 세계적인 유명 배우들조차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비교적 오기 편리한 토론토로 자주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영화제와 상관없이 토론토의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이곳 영화전문 기자가 쓴 글을 읽었다. 토론토 스타지 문화면 한 면에 크게 난 기사였다. 기사는 여지껏 북미에서 상영한 한국영화 중에 최대의 관중을 동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훌룡한 감독이 정작 자신의 나라에선 왜 철저하게 무시 당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은 이번에 칸느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수상했다. 그는 이미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음은 물론 각종 영화제에 끊임없이 초대를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초대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그의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없고,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극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역시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대받아 내가 보았던, <시간>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 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란이 있었던 일은, 이유야 어쨌든 나로서는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돈을 적게 들이고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작년에 만든 <풍산개>는 2억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 대작이라고 만드는 영화들이 100억, 200억, 또는 300억을 들여 만드는 것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는 또 영화를 빨리 만들기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위의 천대를 무릅쓰고 악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이는 세계 어느 영화 감독도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해외 영화계에서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영화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가 제자의 배신으로 인해 거의 폐인이 되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극한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보았다. 다행히 작년에 개봉된 <풍산개>가 한국내에서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아울러 금년에 칸느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도... 내가 김기덕 감독이 걱정되는 것은, 한국에서 그와 그의 영화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지연, 혈연, 학연 등으로 꽉 짜여진 한국이라는 유기체적인 조직사회에서 그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 이단아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는 흔한 대학교의 연극영화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충무로라는 특수사회 출신도 아니다. 특별한 연줄도 배경도 없기에 겪어야 하는 일일까?
 
그가 아무리 해외에서 상을 받고 유명 영화제에 초청을 밭아도 국내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외면을 당해야 한다면..…한국 영화와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가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밖에서 모르면서 하는, 혼자하는 걱정일까?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다

● 칼럼 2012. 9. 3. 19:09 Posted by SisaHan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단연 미래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확실성에 비해 미래는 불확실하니 어떤 사람의 미래를 점치는 근거는 그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사람은 변하는 것 아니냐, 어제까지 악행을 저지르다가도 내일부터 선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참으로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노력하는 사람만 변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 월요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그날 기자회견에서 5.16 쿠데타와 유신과 관련해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고 말하고, 장준하 선생 타살 조사에 대해서는 “조사할 게 더 있다고 하면 해야 되겠지만 저는 우리 정치권이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박 의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닐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중 가장 과거지향적인 분이 “과거로 가려면 한이 없다,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니 말입니다. 
박 의원의 말에서 일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저 하나가 아닐 겁니다. 지난 세기 초 한국인을 상대로 저지른 잔인무도한 식민지배에 대해 진실하게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하면, 일본 정부는 또 과거 타령이냐고, 이제 과거 얘기 그만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는 말은 가해자가 하면 안 되는 말입니다. 그건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죄할 때 피해자가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5.16 쿠데타, 유신, 장준하 선생 얘기 같은 과거사를 자꾸 들먹이는 건 박 의원이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아버지 편을 들기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지난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여 5년 전 ‘구국의 혁명’이라 했던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발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5.16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그의 속내를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든, 그가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적 아바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박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되니 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후 줄곧 남성 대통령만 나왔으니 이제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되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여성 대통령을 바랍니다. 아무개의 딸이라는 최초의 정체에 갇혀 나이가 들어서도 ‘딸’로만 살려는 여성이나 권력가 집안에 태어나 권력 없는 삶의 비애를 짐작도 못하는 여성 말고, 남성과 동등하게 이지적이며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험을 쌓은, 미래지향적인 여성, 아니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는 과거에 출발한 기차의 목적지입니다. 엉뚱한 길로 간 기차가 제 목적지로 가려면 잘못 갔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과거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잘못을 막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해원을 돕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김흥숙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