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가운데 삶의 질을 높이며 살려는 끝없는 욕망, 그리고 보람을 추구하며 살고자 함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간의 괴리로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우리들의 고민이며 현주소이기도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마슬로우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피라밋모양의 다이어그램으로 잘 설명해 놓았다. 먹고 입고 자는 육체적인 욕구, 안전과 안정감에 대한 욕구,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 그리고 다음 두 단계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자기실현의 욕구다. 생리적인 욕구나 안전에의 욕구는 지극히 본능적으로 동물들과 별 차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최고봉은 보람과 자아실현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보람되게 사는 데서 찾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를 원한다. 마슬로우는 자아실현의 내용엔 잠재적 능력 및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개인의 본질이 갖고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발휘함에 있음이오 자아실현이란 질병·신경증·정신병 또는 인간능력의 상실 또는 감퇴가 가장 적게 존재하는 상태를 유지됨이 있어야한다 했다.
아는 것이 머리에 속한 것이라면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은 가슴에 속한다.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는 불과 18인치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나 때론 천리 길도 더 될 만큼 멀기 만하다.
천리 길도 더 된다는 것은 말은 많으나 행위의 결실이 적어 덜컥거리는 빈 수레 소리같이 요란스럽다는 말이다.
인간 두뇌의 조화로 인간사가 펼쳐지고 있으나 행동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요 그 마음은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음이 두뇌 속에 존재하는지는 아리송하나 희로애락의 현장은 가슴에 있음을 경험한다. 기쁨과 감격적인 순간이 벅찬 가슴으로 표출된다. 가슴 속에 심장이 있고 심장 박동은 감정 표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인정해달라는 아우성은 끊임없다. 인관관계 문제의 도화선은 많은 경우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평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을 인정해주는 것, 남을 배려해 주는 마음, 이런 사회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주기보다 받기를 원하며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이란 것을 깨우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때론 자기희생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실천하지 못한다.
보람은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고 그 자체로서 만족을 느낄 때다.
아는 것, 지식의 축적은 혼자 할 수 있으나 행하는 것은 상대가 있고 더불어 하는 작업이다. 수혜자와 공급자 양자구도적인 입장에 처할 때 수혜자가 되기보다 공급자의 임장에 서있기를 소원한다. 공급자는 군림 또는 지배자의 입지를 세울 수 있으나 수혜자는 자칫 비굴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질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면 모순된 발상일까?. 나를 보람있게 해주는 일은 진정 어떤 것일까? 내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로 인하여 단 한 사람의 이웃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을까!
진정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을까도 자문해본다.
인간 본성 가운데 선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좋은 가치관 형성…등이 있음은 분명 구원의 심볼이다. 이른 새벽, 오늘도 보람 있는 삶을 위하여 마음을 들여다 본다.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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