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박근혜 후보의 발목을 잡아온 게 정수장학회 사건이다. 그를 둘러싼 의혹들을 일거에 정리하겠다고 나선 기자회견은 혹 떼려다 더 붙인 꼴로 끝이 났다. 
문제의 출발은 기초사실에 대한 박 후보의 심각한 인식오류에 있다. 그에게 정수장학회 논란은 근거 없는 정치공세이자 흑색선전일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다른 의견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법원의 판결도 아전인수 격으로 정리해버린다. 재산을 되찾겠다며 제소한 유족 쪽이 패소했으니, 김지태씨의 재산헌납에 강압이 없었다고 법원도 인정한 셈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회견 말미에 자신의 발언을 수정할 때도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5.16 쿠데타에 성공한 정치군부는 그 여세를 몰아 서슬 푸르게 김지태씨에게 재산헌납을 강요했다. 그 점은 과거사위원회의 기록에도 명백하고, 판결에서도 분명하다. 박근혜는 사실을 직시하려는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완전히 오도된 사실을 머릿속에 넣다 보니, 어떤 해법의 여지도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자료와 판결을 들여다보면 강압의 면모는 확연하다. 군부는 “살고 싶으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강요했다. 이런저런 혐의를 씌워 김지태씨와 그 부인을 구속하고, 중형으로 겁박했다. 몇 달에 걸친 협박과 강요에 못 이겨 김씨는 옥중에서 기부승낙서에 날인할 수밖에 없었다. 날인한 이틀 뒤, 검사는 구형까지 끝낸 사건에 대해 공소를 취하하고 그를 석방했다. 
이러한 처사는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하여 직권남용, 불법감금, 강요죄를 저지른 것이다. 사람을 잡아 가둔 채 협박하여 재산을 빼앗는 처사는 정확히 인질강도죄에 해당한다. 선원을 억류해놓고 몸값을 강요하는 소말리아 해적과 다를 바 없다. 범죄의 주체가 국가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범죄의 심각성은 개인범죄에 비할 바 아니다. 해적에게 잡혀 있을 때는 국가의 구원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강도질에는 어떤 구원의 가능성도 봉쇄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정황을 알고도 정수장학회와 법무부는 아직도 “김지태씨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증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유족 쪽이 패소한 것은 강압 사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반환받을 방법이 없다고 해서, 가해자의 도의적·정치적 책임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인질강도를 통해 강제로 헌납받은 재산인 줄 뒤늦게라도 알았다면, 반환하는 게 도의적으로 합당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다. 시효가 지났으니 더 이상 논란하지 말자는 건 법률가의 주장일 수는 있어도 정치가의 화법일 수는 없다. 법률적 추궁이 불가능한 일제강점기 조상의 행적까지 비판거리로 삼는 게 정치영역 아닌가 말이다.

박 후보가 판단 근거로 삼은 1심 판결 자체도 문제를 안고 있다. 김지태씨가 강압을 당하긴 했지만, “의사결정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긴 상태에서 증여 의사를 표시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총칼로 위협당하고, 장기형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인데다, 아내까지 구속시키는 막가는 국가권력 앞에 한 개인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행사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절대적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부 의사의 표시는 원천무효라고 보는 게 상식에 맞다. 국가가 인질강도범이 된 기막힌 옛 사건을 재판하면서 현재의 국가가 소멸시효를 원용하여 빠져나가는 것도 참으로 구차스럽다. 
그런데 박 후보는 어쨌든 유족 쪽의 패소 아니냐, 그러니 정수장학회의 역사에 어떤 오점도 없다는 논조로 일관한다. 이런 심각한 착각과 억지를 고수함에는 이를 방치한 주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 많은 측근 법조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 자신이다. 그는 주변의 법률가로부터 조력을 구하려 들지도 않았다. 5.16 군부세력의 극단적 횡포의 산물인 정수장학회 문제를 직시할 의지도, 자세도 갖추지 못했다. 때문에 그를 둘러싼 과거사의 수렁은 자신의 탓이지, 남 탓으로 돌릴 게 아무것도 없다.

< 한인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1500자 칼럼] 후리다 카로 (Frida Kahlo)

● 칼럼 2012. 10. 22. 18:18 Posted by SisaHan
오는 10월 20일부터 내년, 2013년 1월 20일까지 온타리오 미술관(AGO)에서 후리다 카로의 특별전을 한다. 그녀의 남편이자, 스승, 영원한 연인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함께….몇 해전 온타리오 미술관을 증축한 이래 크고 작은 특별전이 있었지만, 금년에 여름에 한 피카소 특별전에 이어 가을, 겨울에 하는 그녀의 특별전이 가장 규모가 큰 셈이다. 그 만큼 그녀가 비중이 있는 화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사실 나는 그녀가 멕시코 출신의 여류화가라는 사실만을 알뿐,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화가였다. 몇 해 전에 그녀의 생애에 관한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지않았다. 그리고 캐나다의 유명한 여류작가, 마가렛 엍트우드의 소설책에 그녀의 자화상, 온몸이 화살에 박혀 피를 흘리는 모습이 있어 조금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곳 저곳에 나온 그녀의 그림을 가끔 본 기억이 났다. 그녀는 초상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림이 왠지…. 여자라기 보다 남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특히 짙은 검은 눈썹하며, 코 밑에 수염이…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끔직한 모습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여자로서 고통받는 모습? 남편의 칼에 찔려, 아니 난자당해 피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상당히 개성이 강한 여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금년 초에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올해 하는 가장 큰 행사로 피카소와 그녀의 전시회라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화가이길래, 이런 특별전의 대우를 받는지? 그런 까닭에 그녀의 생애가 그림과 함께 소개된 화집을 한권 구해 보았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어느 화가보다 처절하게 예술을 껴안고 고통하며 싸운 화가였다. 한 마디로 늘 자신과 싸우며, 육체적인, 정신적 고통과 싸우며 그 것을 극복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남편인 디에고와 같이 서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아주 작은 체구였는데, 그녀의 정신, 예술혼만은 불굴의 정신을 가진 강한 여자, 강한 예술가였다. 참고로 그녀는 디에고와 20살 차이의 선생과 제자로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의 바람기로 인해 이혼을 했다 다시 결혼을 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수술을 받으며, 그리고 나중에는 침대에 누워 진통제를 먹어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자신의 믿는 사상에 대한 신념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여류화가와는 어울리지 않게 의식이 강해 공산주의자로 불리웠다. 그녀의 침실에는 모택동, 칼 막스 등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리다만 그림도 스탈린의 초상화였다. 트로츠키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도 나를 놀라게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녀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전후세계의 제3세계의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현실에 실망을 하여 개혁을 바랬던 한명의 이상주의자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여류 예술인들이 그녀를 페미니스트 운동의 우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 사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녀의 많은 그림이, 특히 자화상이 고통받는 자신을, 여자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그렇게 제한해서 보고 싶지 않다. 전후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유럽 중심에서 제3세계로,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에 그녀가 서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여성이라기보다 고통을 극복한 위대한 예술가로 보고 싶다. 평생 애를 낳지 못한 그녀는 누구보다 생명에 대한 애착력이 강했고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Feminist라기 보다 Humanist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그림 중에 가장 인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자화상 중의 하나인데,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짙은 눈썹 위에 남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의 이마에 눈이 하나 더 그려져 있다. 두눈을 뜨고도 모자라 하나 더 눈을 뜨고 세상을 보라는 것인지…. 이번 전시회에 그 작품이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빚고 있는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계획에 대해 어제 “정수장학회 문제는 저도 관계가 없다”며 “저나 야당이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후보는 지분 매각 대금을 부산·경남 지역의 복지 확대용으로 쓰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라며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박 후보의 이런 주장은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정수장학회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힘으로 빼앗은 일종의 ‘정치적 장물’로 박 후보는 이 재단의 이사장까지 지냈다. 정수장학회 쪽의 지분 매각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를 떠나 박 후보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과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대금의 선심성 사용 계획 역시 당사자들이 스스로 “정치적 임팩트” 운운한 데서도 드러났듯이 박 후보의 선거 지원 목적을 갖고 있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하고 정치에 개입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편법으로 지원하려는 계획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두둔하고 나섰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외쳐온 새로운 선거풍토 조성 등의 구호가 무색하기만 하다.
박 후보의 언론관이 무엇인지도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의 민영화는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중대한 사안이다. 부산일보의 민간 매각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론기관은 몇몇 사람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호주머니 속의 공깃돌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런 가공할 계획이 밀실에서 몰래 추진된 사실에 대해 박 후보가 아무런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농간에 주도적으로 나선 김재철 사장은 오래전에 퇴진시키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본 척 만 척 했다. 지금의 김재철 사장 체제가 대선 국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 사장이 꼼수를 벌일 공간을 마련해준 책임에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새누리당 쪽은 이번 사안을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영토주권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선거용 정치공세”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맞불 작전으로 정수장학회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를 적당히 회피하고 넘어가려는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박 후보가 직시했으면 한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어제 강원도 22사단에서 벌어진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김 장관은 귀순 사건을 분석해본 결과, 명백한 경계작전의 실패와 상황보고 체계상의 부실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또 적시에 정확하게 사실을 알려주지 못해 혼선을 빚게 한 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군의 총체적 부실을 자인한 것이다.
그는 이어 ‘밑에는 관대하고 위에는 엄격한’ 징계 방침을 밝혔다. 위관급 이하는 열악한 경계작전의 여건 속에서도 정상적인 근무를 했음이 확인돼 문책 대상에서 제외하고, 부실한 지휘 및 상황 관리를 한 것으로 확인된 상급 제대 주요 직위자들에겐 엄격한 규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사단의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을 보직해임하고, 합참의 작전본부장을 비롯한 합참의 작전 라인을 대거 징계위에 회부했다. 군 역사상 경계 실패를 이유로 나온 최대 규모의 문책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군의 징계는 하위 직급엔 엄격하고 상위 직급엔 관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점에서 상급자를 엄벌하기로 한 이번 방침은 획기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현장에서의 ‘경계 실패’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내무반 창문을 두드릴 때까지 철책이 뚫린 것도 모른 하위 병사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 어떤 이유로 위관급 이하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정상 근무를 했다’고 판단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이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번 징계는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처벌이고 상하 역차별이란 소리를 들을 만하다.
군은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계 병력을 보충하고, 5사단에서 시범운영중인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2015년까지 모든 전방 사단에 구축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돈과 인력으로 경계의 구멍을 메우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기강이 해이해진 상황에선 아무리 물량공세를 펴도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더구나 현재 5사단에서 운영중인 경계시스템에 대해 효과 대비 비용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판이다.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군은 눈치보기 징계나 공허한 물량공세가 아니라, 강군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그 첫출발은 군 지휘부가 현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만 신경 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대책은 여전히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