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20일부터 내년, 2013년 1월 20일까지 온타리오 미술관(AGO)에서 후리다 카로의 특별전을 한다. 그녀의 남편이자, 스승, 영원한 연인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함께….몇 해전 온타리오 미술관을 증축한 이래 크고 작은 특별전이 있었지만, 금년에 여름에 한 피카소 특별전에 이어 가을, 겨울에 하는 그녀의 특별전이 가장 규모가 큰 셈이다. 그 만큼 그녀가 비중이 있는 화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사실 나는 그녀가 멕시코 출신의 여류화가라는 사실만을 알뿐,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화가였다. 몇 해 전에 그녀의 생애에 관한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지않았다. 그리고 캐나다의 유명한 여류작가, 마가렛 엍트우드의 소설책에 그녀의 자화상, 온몸이 화살에 박혀 피를 흘리는 모습이 있어 조금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곳 저곳에 나온 그녀의 그림을 가끔 본 기억이 났다. 그녀는 초상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림이 왠지…. 여자라기 보다 남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특히 짙은 검은 눈썹하며, 코 밑에 수염이…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끔직한 모습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여자로서 고통받는 모습? 남편의 칼에 찔려, 아니 난자당해 피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상당히 개성이 강한 여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금년 초에 온타리오 미술관에서 올해 하는 가장 큰 행사로 피카소와 그녀의 전시회라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화가이길래, 이런 특별전의 대우를 받는지? 그런 까닭에 그녀의 생애가 그림과 함께 소개된 화집을 한권 구해 보았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어느 화가보다 처절하게 예술을 껴안고 고통하며 싸운 화가였다. 한 마디로 늘 자신과 싸우며, 육체적인, 정신적 고통과 싸우며 그 것을 극복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남편인 디에고와 같이 서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아주 작은 체구였는데, 그녀의 정신, 예술혼만은 불굴의 정신을 가진 강한 여자, 강한 예술가였다. 참고로 그녀는 디에고와 20살 차이의 선생과 제자로 만나 결혼을 했고, 남편의 바람기로 인해 이혼을 했다 다시 결혼을 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수술을 받으며, 그리고 나중에는 침대에 누워 진통제를 먹어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자신의 믿는 사상에 대한 신념이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여류화가와는 어울리지 않게 의식이 강해 공산주의자로 불리웠다. 그녀의 침실에는 모택동, 칼 막스 등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리다만 그림도 스탈린의 초상화였다. 트로츠키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도 나를 놀라게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녀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전후세계의 제3세계의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현실에 실망을 하여 개혁을 바랬던 한명의 이상주의자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여류 예술인들이 그녀를 페미니스트 운동의 우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 사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녀의 많은 그림이, 특히 자화상이 고통받는 자신을, 여자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그렇게 제한해서 보고 싶지 않다. 전후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유럽 중심에서 제3세계로,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에 그녀가 서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여성이라기보다 고통을 극복한 위대한 예술가로 보고 싶다. 평생 애를 낳지 못한 그녀는 누구보다 생명에 대한 애착력이 강했고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Feminist라기 보다 Humanist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그림 중에 가장 인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자화상 중의 하나인데,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짙은 눈썹 위에 남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의 이마에 눈이 하나 더 그려져 있다. 두눈을 뜨고도 모자라 하나 더 눈을 뜨고 세상을 보라는 것인지…. 이번 전시회에 그 작품이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많은 여류 예술인들이 그녀를 페미니스트 운동의 우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 사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녀의 많은 그림이, 특히 자화상이 고통받는 자신을, 여자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그렇게 제한해서 보고 싶지 않다. 전후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유럽 중심에서 제3세계로,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에 그녀가 서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여성이라기보다 고통을 극복한 위대한 예술가로 보고 싶다. 평생 애를 낳지 못한 그녀는 누구보다 생명에 대한 애착력이 강했고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Feminist라기 보다 Humanist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그림 중에 가장 인상을 받은 것은 그녀의 자화상 중의 하나인데,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짙은 눈썹 위에 남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의 이마에 눈이 하나 더 그려져 있다. 두눈을 뜨고도 모자라 하나 더 눈을 뜨고 세상을 보라는 것인지…. 이번 전시회에 그 작품이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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