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젊은 여성들의 반란

● 칼럼 2012. 11. 17. 16:18 Posted by SisaHan
지난 9일치 <한겨레> 1면에는 ‘미국 대선 흔든 여성의 힘’이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늙은 백인 남성들이 퇴조하고, 젊은 여성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간 게 오바마 당선의 배경이라는 내용이다. 
한겨레만 유독 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룬 데에는 편집국장의 이 한마디가 있었다. “내가 딸을 키워보니 여자가 더 우수한 거 같아.”

오래전 김선주 선배(편집인: 바로 그 명칼럼니스트!)한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일본 고지마섬의 원숭이들은 원래 고구마를 흙이 묻은 채 먹었는데, 한 젊은 암컷이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다른 암컷들이 따라 배우더니, 나중에는 섬 전체로 퍼졌다. 그런데도 늙은 수컷들은 끝까지 씻어 먹지 않더라는 것이다. 젊은 암컷의 적응능력과 늙은 수컷의 고집불통을 대비시킨 것이다.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이 세상을 바꾼 사례는 많다. 빅토리아 시대에 젊은 남성들이 식민지를 찾아 떠나다 보니, 영국에는 50만명의 ‘잉여 여성’이 생겨났는데, 그 숫자 때문에 여성 재산권, 여성 참정권, 여성의 대학 입학 같은 법이 만들어졌다. 딸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미국에서는 딸을 둔 하원의원이 낙태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고, 딸이 많을수록 투표 전력이 더 진보성향을 띠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에서는 소속 정당을 바꿀 경우, 아들이 하나 있는 부모 중 3분의 2는 우파 쪽으로 이동한 반면, 딸을 하나 둔 부모 가운데 3분의 2는 좌파 쪽으로 움직였다.(맬컴 포츠 <전쟁 유전자>)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다른 여성과 연대하고 소통하며 사회복지를 지지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아마도 사바나에 살던 선조 여성들이 함께 채집을 하고 자식들을 돌볼 때, 수다를 떨면서 정서적 유대를 형성했던 적응이 유전자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여성이라고 다 평화적이고 진보적인 건 아니다. 이건 어느 외교관한테 들은 얘기인데, 파푸아뉴기니를 가보니 코밑에 수염이 난 원주민 여자들이 제법 되더란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극도로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 약탈을 일삼다 보니, 여자들도 전쟁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수염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애 자체가 전쟁이었고, ‘불통’ 이미지에 갇힌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주창하는 것은 왠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지표는 없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88만원 세대가 다 어렵다지만 특히 여성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 옛날에는 시집이라도 갔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약아서 맞벌이만 찾는다. 설사 어렵게 취직하고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애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직장에서 남자 동기들에게 밀리기 십상이다. 그게 싫으면 ‘독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무슨 구국의 강철대오 같은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엉겁결에 떠밀려 결혼 파업, 출산 파업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여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걸리는 부하는 그 윗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남자들한테 밀리지 않는 교육을 받았고, 학교 다닐 때 성적은 훨씬 좋았기에 그 박탈감이 더 큰 것이다.

일찍이 엥겔스는 ‘인류의 모든 혁명은 여성해방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가장 응축된 젊은 여성들이 먼저 떨치고 일어섰으면 한다. 미국 대선처럼 모두 다 투표장으로 몰려가 낡은 질서를 뒤엎어보라는 것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정치 사회 에디터 >

 
권영세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 며칠 전 참으로 희한한 발언을 했다. 권 본부장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회동 제안 이후 대선 후보 3명의 보도 비중이 형평성을 잃는 등 방송의 편파 및 불공정 보도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권 본부장은 심지어 “세 후보에 대해 3분의 1씩 보도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후보 단일화할 쪽을 50%, 박근혜 후보를 50% 보도하는 게 맞다”는 억지까지 부렸다.
 
권 본부장의 주장은 우선 사실관계부터 명백히 왜곡하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분석을 보면,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지상파 방송 보도는 오히려 새누리당 쪽에 유리한 ‘편파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의 경우 단일화 회동 제안이 나온 5일 저녁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이 소식을 톱뉴스가 아니라 네번째 기사로 처리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만난 날에도 <한국방송>은 두 사람의 회동 뉴스보다 이를 ‘사기극’이라고 비난한 새누리당 소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화방송>은 7일부터는 새누리당의 후보단일화 공격 내용을 먼저 보도한 뒤 그 뒤에 단일화 협상 소식을 전하는 비상식적 편집을 하고 있다. 편파·불공정 보도를 비판할 쪽은 오히려 야권인데 새누리당이 적반하장으로 편파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지금의 지상파 방송 체제가 집권여당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구도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문화방송>은 최근에도 무리하게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를 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고서도 이를 깔아뭉개고 있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해임안 부결이나, 한국방송 사장에 길환영씨를 지명한 것도 모두 친여권 방송 구조를 온존시키려는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방송 3사 보도가 박근혜 후보한테 유독 편파적’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지나가는소도 웃을 일이다.
 
새누리당이 뜬금없이 편파방송론을 들고나온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방송사들을 다그쳐 선거 관련 뉴스를 아예 ‘친박근혜 일색’으로 도배하겠다는 목적에서다. 새누리당의 비뚤어진 잣대로는 방송 보도가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마저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단순한 푸념 정도로 끝나지 않고 실제 ‘보도지침’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들이 새누리당의 위세에 눌려 박근혜 후보 쪽에 더욱 기운 편파·불공정 방송으로 치닫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유권자들이 방송사들의 선거 보도를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


재벌의 순환출자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박 후보가 지난 8일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해 “신규 출자는 규제하고 기존 출자분은 자율에 맡긴다”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안에서도 재벌에 보호막을 쳐주는, 기존의 재벌 보호정책이란 비판이 일었다.
박 후보 발언은 최근 캠프 내부에서 박 후보에게 보고된 ‘기존 출자분도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공약 초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최근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동시에 성장을 추구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강조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과 맥이 닿아 있다. 대선이 4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 단일화에 맞서 보수층 표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에서 한발 빼는 셈이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박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신경전이 위험 수위에 이른 것은 그런 까닭이다. 박 후보는 어제 선대위 회의에서 “기존 순환출자 유지는 내가 경선후보 시절부터 누차 얘기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김 위원장과 결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 주변에 경제민주화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며 재계의 로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박 후보가 집토끼 잡는다고 성장 얘기를 자꾸 꺼내면 확장을 못 하고 대선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했다.
 
박 후보가 선거전략상 경제민주화 구호를 뒷전으로 밀어놓는다면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 행복을 위한 3개 핵심 과제 중 경제민주화 실현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지난 4월 총선 때도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제1당을 차지했다. 이제 와서 경제민주화로 얻을 표는 웬만큼 확보했으니 그만하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보수층을 잡기 위해 재벌에 보호막을 쳐준다면, 이제 경제민주화 구호를 대선 슬로건에서 제외하는 게 옳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박 후보의 애매모호한 줄타기는 한두번이 아니다. 과거사 문제를 두고 사과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 결국은 속 빈 강정이 되어가고 있다. 박 후보는 이제 경제민주화, 즉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유권자에게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다.

 

[한마당] 대통령의 염치와 법치

● 칼럼 2012. 11. 17. 16:10 Posted by SisaHan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둘러싼 특별검사의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특검의 의지는 뚜렷하지만, 청와대 쪽의 수사 방해가 암초로 작용했다. 피의자 쪽이 수사에 소극적이거나 회피적일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대통령이라면 차원이 다르다. 
특검은 청와대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았지만, 경호처의 사실상의 거부 탓으로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쪽은 형사소송법 제110조(군사상 비밀압수), 제111조(공무상 비밀과 압수)를 들어 압수수색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곡동 비리가 무슨 “군사상” 혹은 “공무상”의 비밀일 수가 없다. 공권력의 사적 남용은 애초에 군사상 목적도 아니고 공무도 아니다. 또한 이 조항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압수수색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 헌법상 법관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달리 말해 법관의 영장이 있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바람이 들이치는 오두막도 영장이 없이는 들이닥칠 수 없지만, 영장이 있으면 왕궁이든 요새든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법관의 영장을 저지하는 공권력은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영장을 손쉽게 무력화해버리는 것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반헌법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취임선서대로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은 영장주의를 “엄숙히” 지켜가야 할 무한책무를 진다.
 
더욱 문제는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신청을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다. 특검의 짧은 활동기간에 주요 당사자들은 외유를 나가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의혹의 중심에 선 대통령은 정식으로 조사도 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수사기간 연장 신청을 거부한 것은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수사 방해에 다름 아니다. 거부 사유 중 압권은 “수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청와대 공보수석의 발표다. 이런 말로써 변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세는 실로 놀랍기까지 하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적 정리로 볼 때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염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둘러싸고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엄청난 망신살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응했고, 수사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특별검사의 수사를 끝으로 그는 성추문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의 무제한 수사를 보장했다. 국민검사라는 애칭이 생겨날 정도로 가열찬 수사의 결과 그는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다. 이처럼 대통령이라면 자기를 향한 수사의 칼날을 납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특검의 활동 기한이 끝난다고 모든 의혹이 덮어지는 것도 아니다. 현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불과 3개월 남짓이다.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도 더하여 사실상 수사 방해까지 했다는 의혹이 남아 있으면, 퇴임 후엔 수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밀어닥칠 수 있다. 그때엔 특검이 아니어도 검찰이 나설 것이다. 지금의 검찰이야 알고도 덮어버렸다는 정치적 편향성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사라진 가까운 장래에 수사 재개의 가능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대통령은 법 앞에 어떤 특권을 인정받는 지위에 있지 않다. 재직 중 형사 기소를 받지 않는다는 불소추 특권만 가질 뿐이다. 그 특권은 대통령이 재직 중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대통령에겐 국민의 법 준수를 선도할 책무가 있다. 법질서 수호를 누구보다 자주 언급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자신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고, 최단기의 수사 이외의 추가 수사를 거부하면서 국민에겐 법 준수를 말할 때 그 영이 제대로 서겠는가. 대통령의 권한이 아무리 크더라도, 자신을 향한 수사를 막기 위해 쓰일 수 있는 권한은 하나도 없다.

<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