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대선과 정치인의 생얼

● 칼럼 2012. 11. 13. 15:39 Posted by SisaHan
미국 대통령선거가 6일 예정대로 치러짐으로써 10개월에 걸친 선거운동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풍 샌디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미국인들은 앞으로 4년간 자신들을 이끌 지도자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꼽히는 미국의 대선 과정을 취재하며 부러운 점도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연설과 토론 정치가 활성화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3개월간 미국 대선 판세는 크게 두 차례 바뀌었는데, 모두 이와 관련돼 있었다. 
첫 번째는 9월 초 민주당 전당대회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연설이었다.
원래 달변가로 알고 있었지만 클린턴의 연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상대 후보와 자신의 관점을 일반 대중이 알기 쉽게 대비시킨 뒤 상대의 약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물론 사실을 과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위기에 처한 미국의 해법을 50분간 열정적으로 말하는 노정치인에게 열광했다. 그의 연설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오바마의 지지율 급등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10월 초 대통령 후보들이 나선 첫 텔레비전 토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90분간 진행된 토론에서 롬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나름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제시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는 눈을 옆으로 돌리거나 아래로 내리깔면서 자신감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인 오바마 대통령과 대조됐다. 
지난 4년간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오바마에게 불만은 많으나 그렇다고 부자 이미지가 강한 롬니를 대안으로 선택하기에는 미심쩍어했던 유권자들에게 이날 토론은 롬니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계기가 됐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대부분 미디어에 의해 정리되거나 해석이 된 채로 유권자들에게 전달된다. 미디어의 이런 역할은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능이지만, 정치인들의 정견을 유권자들이 직접 듣고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판단을 새롭게 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과 토론 능력도 미국 지도자들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탁월한 대중 연설가 또는 토론가라고 부를 수 있는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외에 다른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정견을 각색 없이 직접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나 방식의 차이를 꼽고 싶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들은 3~4일 일정의 각 정당 전당대회 때 매일 황금시간대에 2시간가량을 할애해 주요 정치인들의 연설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한 것처럼 신진 정치인이 스타로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때이니, 정치인들은 이에 대비할 것이다. 
롬니 후보가 토론회에서 기량을 발휘한 것은 토론 주제를 몇 개로 압축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토론 시간을 대폭 늘린, 이른바 ‘오픈 포맷’을 채택한 것이 한몫했다고 본다. 
우리도 정치 지도자들의 생얼굴(정견)을 날것 그대로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박 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첫 회동을 통해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 이전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해내기로 합의했다. 대선이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두 후보가 단일화의 대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야권 단일화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두 후보는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배석자 없이 1시간15분 정도 만나 모두 7개 항에 합의했다. 후보 등록 전에 단일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지 결정하고 정당혁신과 정권교체를 위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내놓겠다는 게 주요 합의사항이다. 두 후보는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두 후보는 공동선언을 위해 양쪽에서 3명씩으로 실무팀을 꾸려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두 후보의 첫 단일화 회동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의 우려를 씻어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듯 후보 등록 전에 단일후보를 내겠다는 대원칙을 천명한 것은 큰 진전이다. 두 후보는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뜻만 보고 단일화를 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날 회동으로 야권 단일화는 움직일 수 없는 대전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두 후보가 새정치와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양쪽의 지지자들을 크게 모아내는 국민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두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을 통해 국민연대의 구체적인 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두 후보 진영에선 단일화를 전제로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이른바 ‘국민정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고 한다. 대선 전까지 창당 작업을 마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창당의 대원칙을 천명하는 가운데 대선 이후 구체적인 창당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이 정치혁신의 종착점일 수는 없지만 두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개혁을 위해 협력한다는 구체적인 협력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는 방안이다. 신당이든 연대기구든 양쪽 지지자를 묶어 세울 수 있는 협력틀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5~26일로 예정된 후보 등록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딱 20일이 남았을 뿐이다. 세세한 협상 내용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민만 바라보고 단일화에 나선다면 못 해낼 것도 없다. 실무협상도 중요하지만 두 후보가 직접 만나 담판하는 것 이상의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국민들은 단일화의 전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것이다. 두 후보가 어제 밝힌 대로 국민의 뜻만 보고 마음을 비우는 이가 결국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점을 두 후보는 명심하기 바란다.


[사설] 북한, 대선 개입 언동 중단해야

● 칼럼 2012. 11. 13. 15:37 Posted by SisaHan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외곽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3일 “남조선 각 계층은 새누리당의 재집권 기도를 절대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대선을 계기로 정권교체를 기어이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평통은 서기국 보도를 통해 “새누리당은 민족의 재앙거리이고 온갖 불행의 화근”이고 “보수 골동품의 집합체인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남조선 사회와 북남관계는 이명박 정권 때와 똑같이 될 뿐 아니라 유신독재가 부활하며, 초래될 것은 파쇼적 탄압과 전쟁뿐”이라고도 했다. 부적절하고 노골적인 선거개입이자 내정간섭이다. 북은 이런 언동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남쪽 정부가 나라의 발전과 안정, 통일을 염두에 두고 북의 체제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북쪽이 남쪽의 대선 동향을 주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쪽 유권자를 대상으로 ‘누가 되면 안 되고 누가 돼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이다. 분석과 전망을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건 명확한 내정간섭이다. 상호 체제 인정 및 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남북화해)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북은 6.15선언과 10.4공동선언을 중시하듯이, 7.4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국제법이나 남북 합의보다 더 중요한 건, 북의 이런 언동이 전혀 그들이 바라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역효과만 낼 뿐이란 점을 북은 알아야 한다. 실제 그동안 남쪽의 주요한 선거를 앞두고 몇 차례 ‘북풍’ 또는 ‘북풍 공작’이 있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유권자의 판단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나왔다. 2000년 4월 총선과 2007년 대선 직전에 각각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었으나 야당이 승리했고,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히 이뤄진 천안함 사건 발표도 역풍을 불러왔다. 남이건 북이건 북풍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체가 시대착오이며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새누리당은 조평통의 성명에 대해 북이 ‘남한 내 제 식구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내용의 반박 논평을 냈다. 북을 비판하는 듯하면서 야당 후보에 대한 색깔공세에 이용하는 나쁜 수법이다. 이런 행위야말로 남남분열을 노리는 북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북의 대선 개입을 막는 최선의 길은 여야 모두 화살을 엉뚱한 데로 돌리지 말고 북의 잘못된 행동을 함께 비판하는 것이다.


[한마당] 나눔의 미학

● 칼럼 2012. 11. 10. 19:56 Posted by SisaHan
‘나눔’은 아름다운 단어다. 나눔은 배려, 성찰, 소통 등과 함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단어가 ‘먹다’와 만나면 갑자기 불결한 언어가 되고 만다. ‘먹다’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추하게 만들어버리는 치명적 마성을 지니고 있다. 음식물의 섭취는 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인데도 실제 현실에서 먹는다는 말은 그다지 아름답게 쓰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다른 단어들까지 오염시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단어다.

‘나눠 먹기’는 정치권에 들어오면 더욱 불결해진다. 권력의 나눠 먹기는 탐욕, 음모, 편법, 비겁함 등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이미 나눠 먹기에 대한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채 본격화하기도 전부터 새누리당은 이들을 향해 “권력을 나눠 먹으려 혈안이 돼 있다”며 핏대를 올린다.

후보 단일화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후보 단일화=나눠먹기’라고 규정하는 것도 성급하지만, 본질적으로 나눠 먹기라는 게 그처럼 매도해야 할 ‘절대악’인지도 참으로 의문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나누어지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권력이다. 이런 대단한 권력을 나누는 데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일이다. 민주주의 역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눠지기를 거부하는 권력을 기어코 나누려는 인간 분투의 기록이다.

나눠 먹기보다 훨씬 위험한 것은 오히려 ‘혼자 먹기’다. 권력 독식의 위험성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져온 권위주의 체제뿐 아니라 지금의 이명박 정권에서도 질릴 만큼 목도했다. 그들 본인과 친인척, 측근들의 왕성한 먹성은 그냥 ‘먹다’가 아니라 ‘해먹다’라는 표현이 더 합당하다.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앞세운 한 전직 대통령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먹다 앞에 ‘따’라는 한 음절을 더 붙여야 온전한 의미가 살아난다.

따라서 권력 나눠 먹기는 무작정 비난만 할 대상이 아니다. ‘권력의 분점’은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 고무 격려해야 할 미덕일 수도 있다. 특히 권력을 혼자 먹으려는 쪽은 감히 나눠 먹기를 욕할 자격이 없다.

나눠 먹기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도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권력 나눔의 예가 매우 희소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안철수-문재인 후보의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공동정부니 역할분담이니 하는 말은 무성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동안의 흐름을 보면 후보 단일화 문제마저 승자 독식의 논리에 매몰돼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문-안 두 후보가 진정 후보 단일화를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의 나눠 먹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해서는 안 된다. 비판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보란듯이 제대로 된 나눠 먹기를 해보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여기서도 충실히 작동해야 한다. 80~90%를 자신이 차지하고 상대방에게는 10~20%만 주겠다는 이기적 태도로는 제대로 된 나눠 먹기를 할 수 없다. 각자의 정치적 욕망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얼마나 적절히 조화시키느냐가 나누기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둘째, 둘만의 나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나눔의 원칙과 의미뿐 아니라 나눔이 구체적으로 국리민복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나눔이 가져올 정치사회적 발전의 미래상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나눔의 과실을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혼자 먹기’에 대해서는 별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면서도 ‘나눠 먹기’에 대해서는 손가락질을 하는 모순된 심리의 밑바탕을 허물지 않고서는 나눔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한다.
셋째, 이번 기회에 나눔의 제도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표상되는 권력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문제는 이제 당면한 시대적 과제로 대두했다. 두 사람의 나눔이 이런 논의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앞으로 다음과 같은 평범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경구를 떠올리기 바란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
 
< 한겨레신문 김종구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