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옛날 옛적에

● 칼럼 2012. 12. 4. 21:22 Posted by SisaHan
첫 손녀를 본 지 어언 일 년이 지났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말 할 수 없는 기쁨아래 곧 할머니가 된다는 황당함도 스멀거렸다. 오십 후반의 첫 손자는 그렇게 이른 편도 아니었건만 초가을 어디쯤으로 착각하고 있던 내 인생의 계절이 갑자기 겨울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삼십 여년 만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던 날, 그 쏴아 했던 감정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고 할머니란 소리가 술술 저절로 나왔다. 정겨운 호칭이 하나 더 주어졌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의 탄생으로 썰렁했던 집안에 훈기가 돌고 메말랐던 감성이 봄비 맞은 들녘처럼 촉촉해졌다. 나날이 달라지는 아이의 재롱으로 활력이 생겼고 팍팍하던 삶에 윤기가 돌았다. 그렇게 나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던 녀석이 지금은 장거리 출타 중이다. 
대구의 친정에 다니러간 며느리에게서 종종 아이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이 온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나 아이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기엔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새로 보내온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 속으로 빠져들다가 신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녀 서현이가 홀 한 가운데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비틀 베틀 걷고 있었다. 젖먹이를 안고 빙 둘러 앉아있던 아이엄마들의 시선이 모두 서현에게 쏠렸다. 어떤 아이엄마는 부러운 듯, ‘저기, 언니 걷는 것 좀 봐.’ 하는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펼쳐진 상황이 상상되지 않아 아들에게 물었더니, 엄마와 함께하는 생후 6~7개월 반, 유아 조기교육실의 전경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한 돌짜리 서현이가 동생들 반에 침입하여 아장걸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된 상황이었다. 동영상을 몇 차례 더 돌려보며 이 기이한 현상을 관찰하다가 머리가 띵 해 옴을 느꼈다. 조기교육 열풍이 젖먹이들에게 까지 뻗쳐있음이 확연해서였다. 무한경쟁시대에 교육이 대세라지만 유아들의 성장발육까지도 교육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게 씁쓸했다. 
한국의 영유아교육의 현주소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대에 맞는 할머니 역할을 하려면 현재 돌아가는 추세는 알아두어야 할 것도 같았다. 한 사이트에서 영유아교육의 적정 시기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육십프로가 넘는 응답자가 생후 6개월부터 12개월 전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또한 교육의 지표는 창의력과 신체발달, 인성에 역점을 두었고 감성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오감을 골고루 자극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하였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모두 바람직한 이론을 바탕한 목표설정이었으나 정형화된 방법이 마음에 걸렸다. 교육의 시기도 태아교육을 생각하면 이르다고 볼 수 없지만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시기를 그렇게 잡는다는 게 의아했다.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속담을 실천시키는 시발점으로 보아야 할 지 아리송하기까지 했다. 꼭 전문교육기관을 거쳐야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엄마들의 사고가 위험스럽고 틀에 박힌 시스템 안에서 얼마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오늘따라 할머니와 함께 한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어머니의 매운 회초리를 피해 할머니 치마 속으로 숨어들던 기억이며 올망졸망한 형제들 입에 박하사탕 하나씩 물려놓고 옛날 옛적에……. 로 시작한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어린 소견에도 참 재미있었다. 충렬왕전, 박 혁거세전, 홍길동전 등등 할머니의 이야기엔 오늘날처럼 인성, 감성, 창의력을 강조하지 않아도 그 속에 모두 녹아있었다. 특별히 오감을 자극 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아도 산으로 들로 뛰고 놀면서 자연히 해결되었던 그 시절을 내 손녀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대를 거스르는 할머니가 되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나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되기 위해 이야기 창고부터 불려야겠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 임순숙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


오는 12월1일 정기연주회에서 무대에 올릴 교성곡 ‘통일 대한’은 분단된 우리 조국이 하나되기를 염원하는 작품이다. 
연주회에 앞서 간단한 곡 해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곡은 앞부분에서 새벽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드는 여명과 함께 반도의 강산은 조용히 귀한 모습을 드러낸다. 
Violin이 높은 음으로 적막에 쌓인 조용한 아침의 아름다운 나라를 묘사함과 동시에 Cello와 Viola가 가슴 깊이 맺혀있는 민족의 비통함을 주제로Timpani는 참혹하게 희생되어 간 선조들의 죽음을 암시하고 분노에 찬 울부짖음과 비명은 현악기와 관악기에 의해 상반된 선율로 제시된다. 이어서 참다 못해 터져나오는 울분은 슬픔으로 변하며 민족의 흐느낌이 조용이 전개되어 나간다. 
이런 가운데 한가닥 통일의 염원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순수한 그리고 탐욕이 없는 민족적 통일의 염원이 한 어린이의 독창으로 시작되어 물결처럼 퍼져 많은 어린이들의 입을 통하여 전파되고 드디어는 젊은이들과 전국민의 시위로 변한다. 그러나 오래도록 침략에 시달리던 백성의 슬픔과 아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민족상쟁’으로 무참하게 혼돈을 겪게 되며 처참한 고통과 희생을 맞게 된다.
 
단결! 그것만이 치욕적인 역사의 반복을 막는 길! 분단없는 한 나라, 한 민족을 이룰 수 있다. 
“저멀리 보이는 내 고향 아지랑이 끼고 어릴 때 봄피리 소리가 강가에 들리네 푸른 금수 강산 아름다운 강산이여 오늘의 거룩한 일로 내일을 맞으리. (안석주 시)” 는 소박한 민족의 조국을 사랑함과 그리움의 표현이고 “오! 아름다운 반도 우리함께 지킬 대한, 백두와 남해에 한라, 그 정기 영원해 대한의 젊은 이들 기억하나 통일 대한 자유와 평화의 나라 머지않아 이루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영원한 평화 이루어 아들과 딸에게 전하자.(김승순 시)” 는, 통일되어 평화로운 나라를 후손 대대에 물려 주자는 우리들의 소망이며 이는 결국 분화구에서 용암이 솟아 분출하듯 통일의 갈망으로 변한다. “통일 대한, 통일 대한 !. . .”을 외치는 소리에 이어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며 승리감에 차서 ‘통일대한’을 반복하고 웅장하게 끝을 마감한다.

교성곡 ‘통일대한’은 단순히 통일에의 염원만이 아닌 심오한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고통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함축해서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 음악을 통해 지난 날의 아픔과 고난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된다는 의지와 바램도 상징적으로 포함 되어 있다. 
5천 여년 역사에서 수없이 이웃나라들의 침략을 받아온 나라,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상처를 입고 비참하게 희생되어 간 나라, 근래에 와서도 과거의 만행은 아랑곳 없이 또다시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 이웃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우리는 위치해 있다. 가슴이 터질듯한 분노에 사로 잡히지만 그리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 절절한 심경과 의지를 함축해 정성 껏 만든 곡이 ‘통일 대한’이다. 이제 예멜 Philharmonic 합창단과 교향악단은 140여명의 연합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240여 명의 음악가들이 모여 이 의미심장한 Message를 온 세계에 선포하려고 한다. 
하루 하루를 안락하게만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대한의 현실이기에!…
덧붙일 것은, 이 작품에는 안병원 선생의 아름다운 두개의 선율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주제가 되어 있음을 밝혀둔다.

< 김승순 - 예멜합창단·교향악단 지휘자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마침으로써 18대 대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전통적인 여야 양자대결로 짜인 구도 속에서 두 후보는 앞으로 25일 가까운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불꽃튀는 경쟁을 벌일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국가와 사회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을 탐색하고 이를 실현할 적임자를 찾는 과정이다. 흥미롭게도 올해 대선에서 각 후보들이 내건 시대정신은 엇비슷하다. 복지, 평화, 공존, 소통, 화해, 통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내릴 때가 됐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결과일 터이다. 각 후보들의 정책적 화두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건설, 양극화 해소, 한반도 평화 등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겉보기의 유사성과 달리 본질적 차이는 뚜렷하다. 똑같이 소통을 말하지만 ‘진짜 소통’도 있고 ‘가짜 소통’도 있다. ‘말뿐인 복지’, ‘진심 없는 화해’, ‘구호에 그치는 평화’도 있을 것이다. 대선은 이런 차이들을 유권자들이 찾아내는 과정이다. 경제민주화 문제만 하더라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불발 과정만 봐도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시대정신의 구현은 단순히 공약으로 표현되는 말과 글의 차원을 넘어선다. 후보의 삶의 발자취, 인격과 품성, 철학과 이념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체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후보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과 세력들의 면면에서 오히려 시대정신을 추진할 의지가 선명하게 읽히기도 한다. 각 후보는 물론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에 대한 정밀한 검증과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 빠뜨리지 않고 확인해야 할 과제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다. 한때 국제적인 찬탄의 대상이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새로 들어서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꽃을 다시 활짝 피울 막중한 책임을 마주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이는 다른 시대정신에 선행하는 요소일 것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뭐래도 ‘정권 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를 결정하는 정치행사다. 단순히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다툼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계승과 단절을 결정짓는 분기점이다.
여야 기성 정치권은 그동안 ‘무소속 후보 돌풍’에 맞서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정당정치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 단어는 바로 책임이다.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론’의 손을 들어줄지, 아니면 ‘정권 재창출론’의 손을 들어줄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의 이런 성격 자체를 감추고 호도하는 자세는 떳떳하지 못하다.
 
올해 대선은 새로운 정치 실현의 첫 단추를 여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정치 쇄신, 정당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절실해졌다. 
각 후보는 정치혁신의 미래 청사진을 펼쳐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말로는 새로운 정치를 말하면서 흑색선전, 색깔론 등 네거티브에만 의존해서는 새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올해 대선은 ‘51 대 49의 승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박빙의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변수들이 어떻게 대선판을 흔들지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두 후보가 혼돈의 와중에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펼쳐 멋진 승부를 가리길 기대한다.


[한마당] 정치와 대중의 망각

● 칼럼 2012. 12. 4. 21:01 Posted by SisaHan
정치는 대중의 망각을 먹고 자라는 것일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가 24일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씁쓸하다.

노병이 돌아왔다.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했지만, 한국 정치의 노병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게다가 귀환한 노병은 적잖이 흡족한 표정이다. 이 전 총재는 “박 후보가 저희 집으로 찾아와 매우 정중하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유비의 ‘삼고초려’에 마음을 연 제갈공명에 자신을 비견하는 듯한 태도다.
하지만 이 전 총재가 누군가. 그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부패인 불법 정치자금의 상징이다.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의 16대 대선 후보로 나선 2002년에 그의 측근들은 재벌들로부터 823억원의 대선자금을 받았다. 현금이 실린 차를 통째로 넘겨받아 ‘차떼기’라는 전무후무한 별칭까지 얻었다. 아랫사람 10여명이 처벌받고 자신은 불입건됐지만, 차떼기의 정점에 그가 있음은 불문가지다. 823억원은 당시 대선 후보의 법정 선거비용 한도인 226억320만원의 3.6배나 됐다.
 
앞서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이 전 총재의 주변 인사들은 대기업들에서 166억3000만원을 불법모금했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은 당시 임채주 청장과 이석희 차장 등 국세청 고위간부들이 개입한 탓에 ‘세풍 사건’으로 불렸다. 국가기관까지 불법 대선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동원했으니 국기를 뒤흔든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 후보는 그런 이 전 총재를 삼고초려해 손을 잡았고, 그 순간 박 후보가 주장해온 정치쇄신은 빛이 바랬다. 정치쇄신은 경제민주화와 함께 박 후보가 일찍부터 내세운 대표상품이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재벌개혁 포기와 함께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팽’하면서 한쪽 날개를 꺾었고, 이번엔 이 전 총재를 끌어들이며 정치쇄신의 날개마저 접었다.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사건에 연루돼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영입하자 “쇄신 이미지가 깨졌다”며 반발했던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도 이 전 총재에 대해선 별말이 없다. 안 위원장은 대검 중앙수사부장 시절 차떼기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당사자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박 후보만 나무라긴 어려운 일이다. 선거철에 표가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다. 지도자가 되려는 정치인이 말과 행동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 못하는 경우는 대중이 제대로 감시하고 기억할 때뿐이다. 정치인의 혹세무민은 그 절반의 책임을 대중의 망각에 물어야 옳다.
박 후보와 이 전 총재가 손을 잡은 지 사흘 뒤 안대희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쇄신의 대장정을 촉구했다. 그 정치쇄신의 주요항목에 선거쇄신이 포함돼 있다. 일체의 불법 선거자금을 근절하고 그 위반행위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박 후보에게 선거쇄신 의지가 있다면 말에 앞서 두 차례나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이 전 총재와 거리를 뒀어야 마땅하다.

올해 하반기에 관심을 끈 영화 가운데 <MB의 추억>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는 5년 전 이명박 대선 후보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꼼꼼하게 복기해 지금 상황과 비교한다. 대중의 망각이 어떤 잘못된 결과를 낳는지 경고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 “여러분,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놈입니다. 그러나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입니다!” 
이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우습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다. 두 번 속으면 그것은 기억하지 못한 자의 책임이다.
< 한겨레신문 정재권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