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까?

● 칼럼 2011. 10. 18. 14:01 Posted by SisaHan
나는 오래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 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처하는 성도들이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알까? 물론 피조물 인생이 어찌 창조주를 알 수 있을까? 그냥 그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우리의 불신을 따져 보며 다시금 그 사랑에 감격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한 작은 책에서 어느 분이 자신의 집 주변에서 묘목을 하는 분에게 물었던 질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이 묘목을 심고 가꾸는 모습을 유심히 봤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물 주는 날짜나 요일도 틀리고 물 주는 양도 틀렸다. 진짜 제 멋대로 였다. 일정하게 날을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사흘 나흘 만에 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같은 나무라도 많이 줄 때도 있었고 작게 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때로는 약한 나무들은 옳게 물을 먹지 못해 말라 죽기도 했다. 그래도 그 분은 그런 식으로 주셨다. 
너무 신기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분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채소는 한 두 달 가꿔 수확하지만 나무는 백 년을 내다 보기 때문에 사람이 주는 물로 만족을 할 것이 아니라 나무 스스로 땅속의 물을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물을 주는 것은 하늘을 흉내 내는 것 뿐이라고 하셨다. 어디 하늘이 예고하고 비를 주는가? 비가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고 많이 올 때도 있고 작게 올 때도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불규칙한 날씨에 적응 못하는 묘목은 말라 죽지만, 죽자 사자 땅속으로 파고 들어 수원을 찾아내는 나무는 백 년이 지나도 살아 남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무 스스로 불규칙한 삶에서 견딜 수 있는 생존방법을 스스로 터득 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뭄처럼 물을 안 주다가 때로는 많이 주어 소낙비를 맞는 것처럼 하면서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대단한 분이시다 하고 생각했다. 묘목을 하시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진정 나무를 키워도 철학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말하지 못하는 나무도 그렇게 훈련을 시켜서 이 땅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도록 만드는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 뜻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도 인생에게 충분한 물을 늘 골고루 또는 규칙적으로 주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배부르고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결코 그렇게 다루시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삶을 타개해 나가는 방법을 깨우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정녕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내게 흡족하지 않고 때로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해도 하나님의 뜻, 그 계획, 그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한마당] 소통은 듣기 보다 실천이다

● 칼럼 2011. 10. 18. 13:49 Posted by SisaHan
“커뮤니케이션 강의? 절대 듣지 말라!” 얼마 전 소통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고 고민 끝에 잡은 강의 제목이다. 최근 소통의 중요성이 정부는 물론 기업에서도 많이 부각되었다. 자연스럽게 소통에 대한 강연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소통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 소통능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 
이런 강의의 주요 결론은 ‘소통이 중요하다’이거나, 조금 구체적으로 가면 ‘듣기가 중요하며, 긍정적이고 열린 소통을 해야 한다’ 등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강의가 실제 소통을 개선하진 못한다. 도대체 뭐가 중요한 것일까? 
“누구나 길은 안다. 다만 그 길을 실제로 걷는 이는 소수이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달마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장은 소통능력 개선의 핵심을 짚고 있다. 즉, 알고 있는 원칙을 하나라도 실천할 때 소통은 개선된다.
오늘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천계획(액션플랜)을 만들어보자. 

#1. 소통능력을 가장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듣기의 실천이다. 
하지만 ‘남들이 말할 때 나는 잘 들어준다’는 것을 듣기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 정작 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기술은 ‘질문하기’이다. 질문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나오며,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종종 리더들로부터 “나는 회의에서 언제든 직원들에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지만, 정작 별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평소 직원들에게 질문은 얼마나 했는지 물어본다. 
소통을 개선하고 싶다면 오늘 동료나 후배 한 사람을 식사나 차 한잔 하자고 초대하라. 그리고 그에게 어떤 질문들을 할지 십분만 미리 생각해보라. 실제 만나서는 말하기보다 질문을 통해서 대화를 이끌어 가보려 노력하라.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질문은 ‘단답식’이 아닌 ‘주관식’ 질문이다. 주말에 영화를 봤다는 직원에게 단지 “좋았어?”라고 묻기보다는(“네 좋았어요”처럼 단답형으로 끝날 것이 뻔하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어?”라고 물어보자. 상대방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는 질문이 좋다. 

#2. 소통이 잘되는 조직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사회심리학자 중 ‘영향력’에 관한 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진정한 리더란 사람들을 만날 때 “내게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구일까?”가 아니라 “내가 먼저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고민하고, 그들에게 먼저 도움을 베푼다고 말했다. 
살면서 내가 남한테 받았던 도움 중 기억나는 것을 떠올려보라.(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평소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이제 내가 먼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찾아보자. 그리고 먼저 도움을 건네보자. 그 사람과 앞으로 더욱 소통이 잘될 것이다. 

#3. ‘장점의 발견’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이들이 그런 장점을 발휘할 때, 때로는 얼굴을 보고, 때로는 이메일로, 때로는 제삼자에게 그 사람에 대해 칭찬해보자. 칭찬할 때 그냥 “좋다”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은지를 칭찬하라. 
서울시장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동안 누가 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시민들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그게 앞으로 어떻게 해주겠다는 말보다 더 중요하다. 소통에 대해 공부할수록,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와 몸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

 

[한마당] 사상 최고의 성공

● 칼럼 2011. 10. 11. 18:05 Posted by SisaHan
2009년 8월 일본에 간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가 보려 한 모양이다. 갓 취임한 그해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역설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기대가 일본에도 있었다. “여기 와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세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지난 7월 87살에 세상을 떠난 누마타 스즈코는 그렇게 소망했다. 
1945년 8월6일, 21살이었던 스즈코는 히로시마 체신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 거기서 1㎞ 남짓 떨어진 곳에서 원자폭탄이 터졌다. 왼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잘라냈고, 약혼자는 전사했다. 스즈코는 1980년대부터 히로시마 피폭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증언자로 나섰다. 가해자로서의 일본 책임도 얘기하고 사죄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히로시마에 가지 않았다. 며칠 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는 당시 일본 외무성 야부나카 미토지 차관이 주일 미국대사에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시기상조’라며 말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시기상조라니? <아사히신문>은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갔다면 원폭 투하가 정당했다는 미국 보수세력이 반발했을지 모르고, 또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 논란이 새로 불거졌을 수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일본 정부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사설에 썼다. 아사히는 그러면서 히로시마를 둘러싼 미-일 간의 대립은 양국 관계의 심층부를 찔러대는 ‘역사의 가시’라며, 그때 그 방문이 실현돼 양국이 그 문제에 좀더 정면으로 맞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과거사에 참으로 집요하다. 그 자체는 좋다. 문제는 그게 주로 ‘피해자 일본’ 쪽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흘 전 일본 외무성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청구권 문제는 이미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매뉴얼을 또 읽었다. 예컨대 아사히가 이런 자세를 문제 삼으면서 정면대응으로 한-일 간의 역사적 가시를 뽑아버리자고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선 사람도 히로시마에서 수만명이 죽고 세대를 이어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할린으로 동원당한 수만명의 조선 사람들을 일본은 버려둔 채 자국민들만 데려갔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선 지금도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울고 있다.

일본 ‘천황’이나 총리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스즈코의 소망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보고 정면대처하라고 일본 언론은 쓴 적이 있나? 저 을미사변의 야만과 우금치 등 조선 천지를 피로 물들이고 만주와 중국의 조선 사람들까지 무차별 살육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강제연행하고 무책임하게 내버린 제국 일본의 만행을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가서 확인해보라고 한 적이 있나? 히로시마는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스기야마 국장의 얘기는 거짓이다.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도쿄 전범재판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조선침탈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미-일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이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자행한 범죄행각에 대한 단죄는 완전히 누락됐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남북한이 배제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미·일이 공모한 합작품이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는 식민지배 뒤 분단당했고 미국의 냉전전략에 몰입한 이승만과 친일파가 권력을 잡았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으로 세우려는 자들의 소망대로 미국이 각본을 쓰고 일본이 공모한 한반도 분단체제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게 역사상 최고의 근대화 성공 사례라고 그들은 자화자찬하고 있다.

<한승동  논설위원>


[한마당] 용기와 오만의 차이

● 칼럼 2011. 9. 30. 18:11 Posted by SisaHan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내년 경제 전망이 나온다. 지금까지 나온 내년 경제 기상도는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4%로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6%로 더 낮게 점쳤다. 올해 예상 성장률(4%)에다 내년 전망치들까지 모으면 이명박 정부 집권 5년 동안의 경제운용 성적표가 나온다. 
연평균 성장률은 3%대 중후반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747’(연평균 7% 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목표가 반토막짜리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전임 국민의 정부(연평균 4.4% 성장)나 참여정부(4.3%)에 견줘서도 초라한 성적이다. 이 대통령은 ‘어떻게 된 거냐’는 국민의 면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뭐라 답할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나쁜 대외여건을 강조할 것 같다. 
대외여건이 이명박 정부 들어 유독 나쁜 건 맞다. 출범 첫해부터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팀은 일찌감치 7% 성장 목표를 접어야 했다. 다만 집권 후반기에 한번쯤 7% 성장을 맛볼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다가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로 두루뭉술하게 바꿨다. 
경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국민 약속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예기치 않게 대외여건이 너무 나빠졌다. 그래서 임기 안에는 7% 성장이 어렵다. 하지만 다음 정권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경제 체질을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두루뭉술한 약속마저 지키기 어려울 듯하다. 대외여건만큼이나 내부 체질도 나빠진 탓이다. 수출 둔화는 물론이고 소비 둔화, 재정과 통화 여력의 소진까지 겹쳐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성장의 주요 동력들이 모두 허약한 상태다. 그래서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부터 본격 저성장 시대를 예고했다. 이명박 정부가 다음 정권에 도약의 발판을 넘기는 게 아니라 침체의 수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경제의 체질 저하는 위기를 내재화한 결과다. 위기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뿌리를 찾아 제거하기는커녕 땜질 처방으로 일관하다 보니 도처가 지뢰밭이다. 
온 나라가 주저앉을 뻔했던 9.15 정전사태, 끝없이 불거지는 저축은행 부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 등은 지뢰 폭발의 서막이다. 숨어 있는 지뢰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데다 폭발력은 더 클 것 같아 두렵다. 
잠복한 위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전에 경고음이 울렸는데도 정부와 당국이 ‘폭탄 돌리기’ 식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저축은행 부실화 과정에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저축은행 부실의 원흉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은 위험지수가 올라간 지 오래됐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보증을 선 시중은행들에 채권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종용하는 한편, 2008년 하반기부터는 자산관리공사(캠코)를 시켜 환매조건부로 사주게 했다. 사실상 공적자금을 동원한 부실 감추기였다.
 
가계부채는 더 커진 시한폭탄이다. 지난해 정부가 8.29 부동산활성화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한 뒤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성장률의 세 배를 웃돌고 있다.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져버렸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저축은행보다 가계부채가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할 정도다. 
경제에는 바깥이든 안이든 위험요소가 늘 있기 마련이다. 예방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치면 근본적인 처방으로 조금씩 누그러뜨려야 한다. 
용기 있는 자는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극복하려 든다. 반면에 오만한 자는 겉으로만 큰소리칠 뿐 뒤로는 비겁하게 위기를 다른 데 떠넘길 궁리나 한다. 용기에는 역사적 평가가 남지만 오만이 앞서면 치욕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것이 용기와 오만의 결정적 차이다.

< 박순빈 한겨레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