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나라자산 팔아먹은 엘리트들

● 칼럼 2012. 2. 10. 16:46 Posted by SisaHan
미국계 펀드회사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인수한 뒤 그동안 4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드디어 손을 털었다. 1000억 사회공헌 약속도 흐지부지한 채, 막대한 수익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은 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넘겼다. 4조6000억원은 전국의 26만 국공립대 학생들이 3년 동안 무상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돈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속이 몹시 쓰리다. 
외환은행 인수 자격 여부조차 의심되었던 론스타가 어떻게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를 저지르고, 종업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하는 등 사회적 책임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철저히 배당금을 챙겨갈 수 있었을까?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을 팔아치우는 것이 마치 금융 선진화의 길이라는 식으로 떠들던 언론이나 학자들은 오늘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고, 우리가 외국자본에 너무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을 또다시 반복한다. 그들이 말하듯이 이제 과연 한국 금융시스템의 문제일까?
 
1910년 일본은 총칼을 들이대면서 조선 각료들을 위협하여 강제병합을 성사시켰다. 이완용 등 현지 대리인들은 그것을 문명화를 위한 시대의 대세라 말했다. 2002년 론스타는 김앤장을 앞세워 한국의 재경부와 금융당국의 최고위층에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 그들은 외환은행 매각을 ‘외자유치’라 표현하였다. 조선왕조는 종이 한 장의 서명으로 일본에 넘어갔지만, 국민의 피땀으로 만든 외환은행은 정체불명의 팩스 1장으로 론스타에 넘어갔다. 조선의 각료들은 ‘나라의 힘이 없어 스스로 문명개화할 수 없다’는 명분하에 나라를 팔아넘겼지만, 2003년 론스타의 현지 대리인들, 김앤장, 금감위, 외환은행장, 재경부 최고위층 관리들과 보수언론들은 멀쩡한 은행을 부실은행으로 판정하고, ‘외자유치’ 안 하면 곧 망한다고 협박하고, 금융 선진화라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위에서 바람잡고 아래서는 비밀리에 회동해서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외환은행을 팔아치웠다.
과거 조선의 각료들은 일본의 총칼이 두려워 굴복을 했지만, 오늘날 국내 대리인들은 스스로 앞장서서 법과 절차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공공자산을 팔아넘겼고, 론스타가 주가조작 등 용납할 수 없는 금융범죄를 벌여도 면죄부를 주었으며, 9년여 동안 온갖 논리와 법 지식을 동원하여 그들이 돈을 챙겨서 떠날 수 있도록 충실히 봉사했다. 그래서 외환은행 노조는 이 모든 일이 “대한민국 법과 원칙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말한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이들 현지 대리인들이 많은 돈을 챙긴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번의 론스타가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넘기며 거둔 수익의 일정 부분도 바로 국내 대리자들과 투자자들, 즉 ‘검은 머리의 외국인’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선진 금융기법 도입, 동북아 금융허브 등 그들이 그렇게 귀가 아프게 떠들었던 거짓말의 성찬을 지금 떠올려 무엇하랴? 분명한 사실은 과거나 오늘이나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국가의 공복들이 그럴듯한 논리와 법을 무기로 하여 국가 자산을 투기자본에 팔아넘겼고, 그 대가로 막대한 사적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그들은 또다시 ‘미래의 경쟁력’을 들먹이며 인천공항을 매각하겠다고 하고, 효율성 운운하면서 케이티엑스 매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옛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있지만 그들은 지난 9년 동안 과연 이 일과 관련해서 한 게 무엇인가? 
그들이 과연 앞으로도 반복될 이 국내 법률자문회사-국가관료들의 국민 배신 행각을 막을 의지와 힘이 있을까?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1500자 칼럼] 빈 둥지, 새 둥지

● 칼럼 2012. 2. 5. 16:35 Posted by SisaHan
무성한 나뭇잎에 가렸지만 보일 듯 말 듯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이층에 올라가 창문으로 내다보니 나뭇가지와 마른 풀잎, 그리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가느다란 헝겊쪼가리까지 이용해서 지은 새 둥지였다. 알을 품는 것 같더니 어느 사이에 새끼가 태어났는지 종일 조잘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와 새끼들을 보는 재미에 더운 줄도 모르고 여름을 났다. 나뭇잎이 헐거워질 무렵 문득 바깥이 조용하고 나뭇가지 사이가 허전한 것 같아 살펴보니 둥지가 비어있었다. 내 집이 빈 것처럼 가슴이 공허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약속이 있는 날이 잦아지면서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다같이 저녁을 먹기가 어려웠다. 곧 독립을 하겠다는 아들과 밥 한끼라도 더 먹고 싶어 애가 달았기 때문일까. 그날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갯불처럼 저녁 메뉴가 결정되었다.  
별 것도 아닌 아구찜이지만 세 식구가 다 있을 때 먹겠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던 중이었다. 아구를 꺼내고 콩나물을 다듬어 준비를 하는 동안 없던 힘도 솟는 듯 부엌을 날아다녔다. 탁구공이 튀는 것처럼 정신 없이 일하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갑자기 약속을 하게 되어 저녁을 먹고 온다는 내용이었다. 준비하고 있던 아구찜 생각에 언제쯤 들어오는지는 묻지도 않고 전화를 끊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맥이 풀려 앉아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우리끼리 먹으면 되는 거지 아구찜 하나 먹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여름내 정성스럽게 제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던 어미 새 생각이 났던 것이다.
 
마음 없이 만든 음식치고는 맛이 있었다. 매운 음식은 조심하고 있기에 고구마를 굵직하게 썰어 넣었더니 맵고 쏘는 맛을 상쇄시키는지 한결 부드러웠다. 얼큰한 음식을 만든 날에는 늘 그렇듯 남편이 소주잔을 내오고 술을 따랐다. 이름처럼 정말 ‘백 세까지 살 만큼 이로운 술’인지는 몰라도 혀에 감기는 달차근한 맛에 알코올을 의식하지 않고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알싸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느껴졌고 지나간 자리마다 불이 붙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술은 벌써 위장까지 단숨에 달려갔을 텐데도 불티가 떨어진 자국이 오늘따라 바느질 하듯 한 땀 한 땀 더딘 반응을 보이며 오래 따끔거렸다.
우리는 술잔에 기대어 자식의 독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빈 둥지를 지키는 노부부가 된다는 의미 이상의 허전함 때문인지 휑하니 커 보이는 식탁이 술 한 잔에 출렁였다. 흔들리는 게 어디 식탁 뿐이었을까. 남편의 얼굴에도 쓸쓸한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마땅히 독립시켜야 하고 흔쾌히 그리하리라고 다짐한 일이만 막상 눈 앞에 닥치니 가슴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러서야 할 때조차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꼭꼭 닫은 창문으로도 겨울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등이 시렸다.
 
어린 아들이 그토록 함께 보내고 싶어하던 때에는 맞벌이 부부로 뛰느라 못했던 일들. 비어있는 채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아프게 파고 들었다. 함께 채워가며 살고 싶고 막상 그럴만한 형편이 되니, 아들은 과거 우리 부부가 돌던 ‘현실’이라는 시간 궤도에 이미 들어선 모양이었다. 엇물려 돌아가는 시간들이 문득 두려웠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의당 한번쯤은 겪는 일이다. 희망과 체념의 끈을 번갈아 쥐는 손에 미련과 아쉬움이 땀처럼 묻어난다. 새는 낙엽을 떨군 빈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겨울을 견디어낸 후 잎이 무성해지면 떠나갔던 새들이 돌아와 다시 둥지를 틀게 마련이다. 덮어주고 가려주어 아늑하게 품어줄 무성한 잎들을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제 짝과 함께 지은 새 둥지에서 들려오는 재잘거림으로 아침을 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쯤 우리는 빈 둥지를 지키며 아구찜을 먹던 오늘의 허전하면서도 평화롭던 시간을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


<문화방송>(MBC) 기자들이 일제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제작거부에 들어간다. 편파·불공정 보도의 책임자를 퇴진시키라는 기자들의 일치된 요구를 사쪽이 거부하자 ‘최후의 선택’으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뉴스 등에서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지만, 이런 파행의 근본적 책임은 일손을 놓은 기자들이 아니라 잘못된 방송을 바로잡을 생각이 전혀 없는 문화방송 경영진에 있음이 자명하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지난 18~19일 전영배 보도본부장 등의 퇴진과 보도부문 인사 쇄신을 요구하는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벌였고, 투표에 참여한 137명 가운데 84%인 115명의 찬성으로 제작거부를 결정했다. 투표 참여율도 92%로 대단히 높았다. 이런 압도적인 제작거부 결정은 문화방송 보도가 침묵과 왜곡, 불공정으로 얼룩진 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앞서 문화방송 기자회는 4.27 재보선과 10.26 재보선, 장관 인사청문회, KBS도청 의혹,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등의 보도에서 국민 눈높이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 결과는 <SBS>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추락한 뉴스 시청률에서 쉽게 확인된다.
<한국방송>(KBS) 역시 문화방송 못지않은 강한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방송의 기존 노조와 새노조가 지난 12~18일 실시한 신임투표 결과, 고대영 보도본부장에 대해 보도본부 재적 조합원의 3분의 2가 넘는 70.7%가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한국방송 새노조는 높은 불신임률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 체제에 대해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항의이며, 그동안의 온갖 불공정·편파 보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밝혔다.
 
두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식 사장 임명과 연관이 깊다. 두 방송 구성원들의 움직임을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 확보 차원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두 방송의 최고 경영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제작거부를 이끌고 있는 박성호 기자회장 등에 대한 징계를 강행중이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두 방송의 사장은 당장 구성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뉴스를 제자리로 돌리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더 이상의 신뢰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검찰 수사가 멈칫거리고 있다고 한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 직후 한나라당이 수사를 의뢰한 지 20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사건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수사 경과를 둘러싼 내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검찰이 여전히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적 고려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그동안 고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 건과 서울지역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에게 전달하려던 2000만원 건 등 두갈래로 수사를 벌여왔다. 후자의 경우 안병용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전자에 대해선 박희태 국회의장 주변 인물들의 부인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굼뜨다는 데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고 의원을 소환 조사해 2008년 전당대회 경선에 나선 박희태 후보 캠프의 조직 구성을 파악해놓고도 박 의장의 핵심 측근인 조정만 정책수석과 이봉건 정무수석, 함아무개 보좌관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11일이나 지난 뒤에 벌였다. 이들 거주지에 당시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뒷북을 친 것이다. 특히 고 의원이 돈봉투를 돌려준 뒤 전화를 해왔다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집은 압수수색 검토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등 적극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둘러싸고,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공천에서 탈락시켰던 인사를 억지로 당 대표로 만들려다 보니 승산이 희박하자 막판에 돈봉투 살포라는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금 출처가 총선자금이니 대선잔금이니 하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사건임에도 검찰 수사는 박 의장이 주변에 쳐놓은 방어막도 뚫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 돈봉투 고발 사건에서 참고인 진술과 폐쇄회로텔레비전 동영상까지 이미 확보하는 등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수사를 벌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검찰은 그동안 총리실 민간인사찰 사건이나 디도스 사건 등 권력 핵심부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아온 사건에서 꼬리자르기 수사를 벌여온 게 한두번이 아니다. 임기 말인 지금까지도 정치검찰 소리가 나온다면 정말로 참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