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를 변방의 섬으로 놔두나

● 칼럼 2012. 2. 5. 16:32 Posted by SisaHan
설 명절이 지났다. 마을의 촌로들과 청장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덕담을 나누고 서로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사진전시회에서 마을의 옛 합동세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던 한 주민은 “(해군기지 찬반 주민들이) 같이 모여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주민들의 갈등은 깊었다. 
2007년 4월 불과 80여명이 모인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됐고, 이를 안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긴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4·3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육지경찰’이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왔고 무더기 연행사태가 일어났다. 풍요롭고 살기가 좋아 제주 사람들이 ‘일강정’(제일강정)이라고 불렀던 마을에서 5명 중 1명이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일강정’ 주민들을 누가 투사로 내몰았는가. 

정부와 해군은 해군기지 후보지 결정 이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국토해양부·제주도는 2009년 4월 제주 해군기지를 15만t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일 제주도와 국방부, 해군 관계자들이 참여한 실무협의회에서 2척은커녕 1척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도록 설계됐음이 드러났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항만 설계에 ‘오류’가 있다는 것도 제주도의 발표다. 

지난해 연말 국회가 올해 해군기지 예산을 96%나 삭감했는데도, 정부와 해군은 공사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내놓을 획기적인 지원책도 없어 보인다. 국가안보사업이니까 무조건 추진해야 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만 말할 뿐이다. 

제주도의 행보도 문제다. 오류가 확인되면 공사 중단 및 항만설계 변경 요구가 먼저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해군기지 유치에 따른 지역발전계획 예산을 확보해야 주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정부에 예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부로부터는 무시를 당하고, 주민들과는 갈등만 더욱 쌓였다. 

기지 건설이 강행될수록 각계의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작가들은 해군기지 백지화를 요구하며 25박26일 동안 온 나라를 걸었다. 천주교 사제들은 강정마을에서 매일 생명평화미사를 열고 있다. 31일에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지난 10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던 수녀들이 경찰에 무더기 연행된 데 항의하는 시국기도회가 열린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열강들의 관심을 받아온 섬이다. 오죽하면 해방 직후 미군이 제주도를 ‘지극히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을까. 태평양전쟁 때는 일제의 중국 폭격기지, 4·3 때는 미국의 봉쇄전략 시험무대가 됐다. 1948년 3월 이승만은 미국 육군차관에게 미 해군기지 사용을 제안했다. 1969년 9월에는 정일권 총리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철수할 경우 군사기지로 제공할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제주도의 전략적 요충지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은 모른 채 잊혀질 만하면 거론된다. 

하지만 섬의 숙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제주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항만설계 오류를 확인한 이상 일단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해군기지 공사장 외벽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합니다’라는 문구는 지금 주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리고 있다. 주민 갈등을 치유하고 제주도를 더는 변방의 섬으로 놔두지 않으려면, 정부와 해군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허호준 - 한겨레 신문 사회2부 기자>


[한마당] 두 개의 중국,두 개의 한국

● 칼럼 2012. 1. 30. 18:25 Posted by SisaHan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둔 지난 12일 밤, 타이베이 뒷골목의 소박한 선술집에서 친구들이 마주앉았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과 도전자인 민진당 차이잉원 주석의 정책에 대해 열띤 토론이 오가고, 누가 이길지에 대해 장난삼아 내기를 걸기도 했다. 화제는 중국 대륙으로 옮겨가 후진타오 주석의 대만 정책에 대한 평가, 올해 말 등장할 시진핑 체제가 어떤 난제를 맞이하고 있는지에 대한 난상토론도 벌어졌다. 빈 술병과 안주 접시가 계속 늘어가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토론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들 4명의 친구는 대만의 젊은 학자와 정치 평론가, 중국과 홍콩의 언론인이었다. 대만과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민진당의 경계를 모두 넘어 자유로운 말들이 오갔다.

지난주 대만 대선 취재차 간 타이베이에서 본 중국과 대만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베이징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른 뒤 3시간 만에 타이베이에 도착해 곧장 휴대전화를 켜니 자동 로밍으로 대만의 통신망에 접속했다. 곳곳에서 위안화를 타이베이달러로 환전할 수 있었다. 고궁박물관이나 타이베이101 빌딩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84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대만을 여행했다. 
서울과 평양을 직항 항공편으로 오가고, 한국 휴대전화가 북한에서 자동 로밍되고, 한국과 북한 젊은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자유롭게 남북한의 고민을 토론하는 날은 언제나 오게 될까? 남북한의 교류를 전면 금지한 5.24 조처만이라도 언제 풀리게 될까? 엉겁결에 양안 지식인들의 대화에 끼어 앉은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반분열법이나 미사일로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위협하던 중국은 경제 관계와 인적 교류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2008년 ‘양안 화해’를 내건 마잉주 대만 총통의 집권이 계기가 됐다. 현재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중국과의 통일을 원치 않지만, 사람과 경제의 교류를 통해 양안의 동포들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서서히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나의 중국’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두 개의 중국’도 뚜렷이 보였다. 베이징을 출발해 대만에 도착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같은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지만,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됐다. 
마잉주 총통은 선거 전 직접 외신기자들 앞에 나와 즉석에서 질문에 답했다. 모든 기자들이 원하는 질문을 자유롭게 던질 수 있었다. 후보들의 모든 일정은 기자들에게 20~30분 단위로 공개됐다. 중국에서 지도자들의 일정이나 가족 관련 뉴스는 ‘국가기밀’이다. 
선거 전날 밤 타이베이 교외의 체육관에서 열린 차이잉원 후보의 집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축제 같은 정치 참여 열기에 놀랐다. 길거리에선 어떤 시민에게 말을 걸어도 선거와 대만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공무원들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는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대만 민주주의 효과’는 대만해협 건너 중국인들을 술렁이게 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선거가 중국의 대만 정책의 승리임을 강조하려 했으나, 중국 누리꾼들의 관심은 대만 동포들이 누리는 민주와 자유에 집중됐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내가 죽기 전에 지도자를 선거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해협 저편의 열띤 총통 선거를 보니, 질투가 파도처럼 일어난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의 유명 부동산회사 완커의 왕스 회장은 직접 대만 선거를 지켜본 감동을 웨이보에 올렸다. 대만에 머물고 있는 중국 친구는 선거날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에 가서 난생처음 국민들이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보고 왔다고 했다. 
중국이 경제와 돈으로 대만을 바꾸고 있다면, 대만은 민주주의와 투명한 사회의 힘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 한겨레신문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


[한마당] 망나니가 휘두른 칼

● 칼럼 2012. 1. 23. 18:19 Posted by SisaHan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검찰의 칼이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를 찌르지는 못했다. 이번에 이 두 사람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일을 포함하여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에서 검찰의 칼을 거둔 법원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상식의 최저선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애초 불법 민간인 사찰의 희생자가 되어 자신의 블로그에 촛불 동영상을 올렸다가 기소된 김종익씨는 이번에는 조전혁 의원의 막가파식의 고소를 받은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로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낙서를 했다고 검찰에 기소된 대학강사는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정연주·한명숙 두 사람과 달리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치명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은 도대체 애초부터 사건으로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 세금 환급을 포기한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것이나, 기업가의 신빙성 없는 진술 한마디로 전 총리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100만명 이상이 본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혐의로 사기업 사장을 기소하고, 그냥 장난 정도로 봐줄 낙서사건에까지 칼을 휘둘러댄 것이다. 이들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글로 적으면 책 한권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근본을 뒤흔든 중요사건이라 볼 수 있는 디도스 공격, 저축은행 사건,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 등에서 검찰은 칼을 꺼내는 시늉만 했다. 
사람들은 정연주·한명숙씨가 무죄가 되었으니 ‘사필귀정’ 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죄’는 결코 원상회복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입은 개인적 상처도 크지만, 정 전 사장을 쫓아낸 이후 지난 3년 동안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편파방송과 국민 바보 만들기 작업을 한 결과, 이 정권의 더 심각한 비리와 부정은 그대로 축소·은폐될 수 있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PD수첩> 사건이 무죄가 되었지만,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고,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과 언론인들의 입은 얼어붙었다.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의 중죄에 제대로 칼을 들이대지 않는 것은 그런 범죄의 재발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이었고, 과거 같으면 여러 번 탄핵을 당할 수도 있는 사안에 연루된 현 정권을 살려주는 일이었다. 

칼을 휘둘렀던 사람들은 승승장구 출세하여 아직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옷을 벗은 사람은 연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기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도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다. 과거 검찰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또다시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며 권력 뒤에 숨을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나라 최대의 암적인 존재는 검찰이다”라고 말했다. 

망나니는 결코 스스로의 판단으로 칼을 휘두르지 않고 오직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이다. 그런데 망나니의 잘못 휘두른 칼에 맞아 엉뚱한 사람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칼을 맞지 않아야 할 사람이 맞고, 마땅히 칼을 맞아야 할 사람이 살아남아 국민이 누려야 할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시장의 공정성, 정의가 여지없이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이며, 어떻게 망가진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무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피해자 보상과 검찰 사과로도 충분치 않다. 국민참여 국회 청문회를 제안한다.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한마당] 시키는 일만 하다가는

● 칼럼 2012. 1. 14. 13:49 Posted by SisaHan
‘파블로프의 개.’ 먹이를 줄 때 종소리를 울려주면 어느 순간부터 종소리만 울려도 침을 흘리게 되는 참으로 멍청한 개다. 
파블로프는 그 개를 가지고 좀더 복잡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종소리가 아니라 원을 보여주면서 먹이를 줬다. 어느 순간부터 개는 원 모양만 보면 침을 흘리게 되었다. 이제는 훈련의 강도를 더 높여, 개가 원과 타원을 구별하도록 훈련시켰다. 원 모양을 보면 침을 흘리도록 먹이를 주고, 타원 모양을 보면 먹이를 주지 않았다. 이제 개는 원과 타원을 아주 정확하게 구별하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 생겼다. 짓궂은 파블로프가 타원 모양을 점점 원에 가깝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원과 타원의 구별이 어려워지자 아무 때나 침을 흘렸다. 그래도 실험이 계속되자, 개는 낑낑거리기 시작했고, 우리 안을 빙빙 돌아다니며 오줌을 흘렸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물어뜯는 등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파블로프는 신경증 환자가 보여주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하여 ‘실험적 신경증’(experimental neurosis)이라 불렀다. 개도 똥오줌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정신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개를 가지고 파블로프보다 더 못된(?) 실험을 했다. 우리에 갇힌 개에게 전기고문을 가하는 실험이다. 개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의 개는 코로 지렛대를 누르면 전기고문을 멈출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개는 몸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했다. 한동안 전기고문을 가하니, 첫번째 집단은 고문이 시작되면 바로 코로 지렛대를 눌러 고문을 멈추게 했다. 두번째 집단은 그저 전기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두 집단의 개 모두 우리 문을 열어놓고 전기고문을 가했다. 고문이 시작되자 첫번째 집단의 개는 바로 문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두번째 집단의 개는 도망갈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이 현상을 셀리그먼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불렀다.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이야기다. 

‘실험적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은 개의 정신질환이 아니다. 인간의 상황을 개에게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랜 기간 처하면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 스스로 차를 운전하면 절대 멀미를 하지 않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차가 언제 가고 언제 서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이 그저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 개같이 한다!’고 투덜대는 거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약한 정도의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하다. 집안 문제든 사회문제든 도무지 내가 어떤 결정에 주체적으로 관여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어떻게 밀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있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더이상 무기력하게 ‘바보상자’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속 듣고 싶은 노래,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을 결정할 수 있는 까닭에 즐거운 것이다. 그깟 티브이 출연자를 결정하는 버튼 누르기도 그렇게 즐거운데,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일은 얼마나 설레고 흥분될까?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제발 쫄지 말자는 이야기다!

< 김정운 명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