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의 막장’ 보여준 주미대사 경질

● 칼럼 2012. 2. 26. 17: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인사가 만사’라더니 ‘망사’가 됐다.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마다 따라붙은 상투어가 된 지 오래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자화자찬했던 첫 각료 인사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으로 조롱을 받은 것부터 시작해, 최근 첨단 정보기술 분야를 다루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70대 고령에 고려대 출신인 이계철씨를 지명한 것까지, 이 대통령의 인사는 하나같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더해졌다. 20일부터 열리는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한덕수 주미대사가 15일 이 대통령을 만난 뒤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알고 보니 민간인이어야만 입후보 자격이 있는 무역협회 회장에 취임시키기 위한 즉흥극이었다. 후임 대사가 정해지지도 않고, 한 대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인 것을 보니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정부가 그토록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미외교를 고려한 인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실무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할 무역협회의 수장을 찾다 보니 일이 이렇게 풀렸다고 말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무역협회에서 하는 일이 자유무역협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전부도 아닐뿐더러, 대미외교보다 무역협회장을 우선시한다는 얘기인데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것보다 민주통합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이 문제가 4.11 총선에서 쟁점으로 부각할 것에 대비해 ‘FTA 전도사’로 불리는 한 대사를 긴급 차출했다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 때 총리 출신인 그를 내세워 같은 노 정권의 총리 출신인 한명숙 대표가 이끄는 민주통합당의 반FTA 공세를 막아보자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대사야 ‘나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해 시종일관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이질적인 정권을 넘나들며 부역하는 그의 화려한 변신을 보는 눈이 고울 리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대통령의 천박한 인식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내년부터 중국을 이끌어 갈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 현안에 대해 한창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대사에게 특명을 내려 두 나라가 한반도 문제 등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교환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을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소탐대실의 망국적 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500자 칼럼] 가족이란 울타리

● 칼럼 2012. 2. 26. 17: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들 내외와 한시적인 동거를 하고 있다. 매사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신세대와 홀가분함을 누리고픈 구세대와의 조합인 셈이다. 새 식구를 맞으면 무조건 2년은 함께 살겠다고 별러왔던 우리부부의 오랜 바램에 아이들도 순순히 응해 주었다. 막상 우리의 그늘 아래 녀석들을 들이고 나니 고유의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시간은 물론 사유의 공간까지 침입해 들어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일 년 남짓 동거하는 동안 신혼부부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고 우리내외는 새로운 트랜드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한다. 온 식구가 몸으로 부딪혀가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고 있는 지금 새삼스레 우리 가족의 향방을 되짚어 본다.
 
우리 이웃에는 늘 눈여겨보는 두 가정이 있다. 외딴섬처럼 동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한 백인 중년 여성의 가정과 삼대(三代)가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인디언 가정이 그것이다. 후자의 가정은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 단출한 삼대 가족이 아니라 미성년자 다섯 남매를 둔 젊은 부부가 어머니와 두 동생을 거느린 대 가족구성이다.
나는 한 때, 가족들 부양으로 허리가 휠 이 대가족의 젊은 부부를 가엾게 생각하면서 홀로 여유를 부리며 살아가는 외딴섬 백인 여성을 동경한 적이 있다. 최소한 그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기 전에는 그랬다.
내가 일시적으로나마 동경했던 그녀는 훤칠한 키에 중년의 나이임에도 군살 한 점 없는 몸매와 특별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탄탄한 경제력, 무엇보다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 홀가분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었다. 생업과 집안 일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변변치 않았던 나는 모든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만 쏟을 수 있는 그녀가 자연히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사 여유롭게 비춰지던 그녀의 환경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늘 행복과는 거리가 먼 표정이다. 정원손질을 할 때나 집수리를 할 때도 항상 혼자다. 집 치장은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히, 산뜻하게 하면서도 함께 즐길 가족이 없다는 게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집은 낮엔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 적막하고 밤엔 전등을 켜는 일이 드물어 늘 암흑이다. 더구나 가족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도 낯선 차량이 주차해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얼굴에 냉기를 띄고 홀로 나다니는 그녀를 보면 가족이란 울타리를 엮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반면 인디언 가족은 시시때때 북적거린다. 그들의 생활은 부유하지 못하고 주거환경 또한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열 명의 식구가 넘나드는 출입문은 언제나 열린 상태다. 또한 그들이 물어 나르는 소식으로 집안은 늘 활기가 넘친다. 잠시 내가 가엾게 여겼던 그 집 가장의 팔뚝과 가슴언저리에는 다섯 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 문신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따뜻한 가정에서 동거하는 열 식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정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탐스러움이 얼굴 가득 스며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동행하고 싶은 이웃 일 순위로 이들을 꼽는다. 
언급한 인디언 가정은 우리의 과거 모습이며 백인 여성의 가정은 우리의 현재, 혹은 미래의 모습인지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잘 품고 다스려서 위 두가정의 중간 어디쯤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한마당] 정치는 왜 하는 걸까?

● 칼럼 2012. 2. 26. 15:3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나는 때때로 국회의원들이 왜 국회의원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총선이 다가오니 그런 의문이 더 든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누구라도 당선되고 나면 부모에게 효도했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그러나 입신양명하는 것 자체가 국회의원이 되는 목표였다면 그건 정치를 수단으로 삼은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치는 욕망의 다툼을 넘어서지 않는다. 아무도 출세하고 싶으니 뽑아달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에 만족하는 정치인은 너무 많아 보인다.
 
출세의 정치는 지역주의, 소지역주의, 연줄의 동원, 불법적인 정치자금 문제를 일으킨다. 이제 이런 정치는 역겨움의 대상이다. 혹시라도 이런 것에 미련이 있는 후보라면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것이 좋다. 
그보다 좀 낫다는 게 인물론이다. 좋은 인상을 주는 후보라면 정치도 잘할 것 같다. 그러나 번드르르 말을 잘한다고, 배우 같은 용모를 가졌다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속았다.
제대로 된 정치는 현실 속에 정책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정당이 집권하고자 하는 이유는 자기 당의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당에는 정치적·정책적 방향을 규정한 정강·정책이 있고 그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이 정당원이 된다. 선거 때면 자기 당의 이념에 맞고 그 시기에 적합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지지를 구한다. 당의 정강·정책을 가장 잘 구현할 사람을 후보로 내세운다. 우리의 정당 제도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첩경은 당연히 각 정당이 탄탄히 다져진 정책을 가지는 일이요, 그런 후보를 많이 출마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한번 묻고 싶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 지금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들 중에 자기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읽어보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분이 몇이나 될까? 정당들은 후보를 선정할 때 이를 가장 잘 실천할 능력자를 찾아내고자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라도 지금 각 당이 여전히 계파 간 후보 안배에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좋은 정치에 대한 갈망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곪아터진 문제들은 정책 몇가지를 잘한다고 해결되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양극화와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의 뿌리가 재벌의 독점과 중소기업의 쇠락에 닿아 있음이 명백해졌다. 정치가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담을 없애고 국민 다수의 창의력과 능력을 키워주지 않고는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고비를 넘어설 수가 없다. 안심하고 살 집을 마련해주고 사회적 안전망을 단단히 갖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세계화의 풍랑을 넘어설 수 없다. 정치가 새로운 복지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정은의 새 북한 정권으로 인해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중국은 갈수록 강해지고 일본에 극우정권이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치가 새로운 외교안보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나라의 장래를 그리는 커다란 비전이 필요하다. 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에 절망한다. 정치에는 국민들이 갈구하는 ‘그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이 없는 정치 때문에 우리들의 가슴은 늘 그 무엇이 없어 허전하다.
비전을 갖지 못하는 정치는 우리의 절박한 문제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정치는 몸을 던져 땅속을 파야 한다. 몇길이라도 샘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맥을 찾아 메마른 나라를 희망의 물줄기로 적실 수 있도록.
정치가 과연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 김용익 서울대 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


[사설] 보훈처의 유공자 심사위원 교체 몰상식하다

● 칼럼 2012. 2. 20. 15:1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가보훈처가 지난달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원로 사학자들을 대거 교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바뀐 인사들 중에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 등도 포함돼 있다. 독립운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인정받는 학자들이다. 이들을 한꺼번에 배제하고 제대로 된 공적심사가 가능할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 대상 시기는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 8.15 광복 때까지다. 오랜 연구를 통해 이 시기 독립운동의 여건과 흐름, 심사 대상자의 구체적인 활동 등을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 정확한 공적 평가가 불가능하다. 정부의 어느 자리보다 전문성이 우선시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만열 명예교수 등을 교체한 것은 몰상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명예교수는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도 맡았다. <105인 사건과 신민회 연구> 등을 저술한 윤경로 전 총장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인 서중석 교수 등도 이 분야의 전문성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보훈처가 이들을 갑작스레 교체한 것은 박승춘 보훈처장의 이념성향 및 행태와 따로 떼놓고 판단하기 어렵다. 맹목적 보수우익 색채의 박 처장이 이념을 잣대로 양식 있는 학자들을 솎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만열 명예교수 등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하고, 만주국 장교로 항일세력을 탄압한 고 박정희 대통령을 사전에 올렸다. 또 2010년에는 국방부가 추진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명예원수 서훈에 반대해 없던 일로 되돌렸다. 만주국 중위였던 백 대장의 친일행적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운동을 이끄는 등 보수 성향이 뚜렷한 박 처장에겐 이 명예교수 등이 ‘눈엣가시’였을 소지가 크다. 지난해 보훈처가 위암 장지연, 윤치영 초대 내무장관 등 19명의 서훈을 취소한 뒤 보수언론의 비난을 받은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새 심사위원에 정치·사회학 등 비역사학 전공자들을 많이 채웠으며, 이들 가운데는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포함됐다는 얘기도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왜곡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보훈처는 심사위원 교체를 철회해 전문성과 양식을 심사의 토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