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빈 둥지, 새 둥지

● 칼럼 2012. 2. 5. 16:35 Posted by SisaHan
무성한 나뭇잎에 가렸지만 보일 듯 말 듯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이층에 올라가 창문으로 내다보니 나뭇가지와 마른 풀잎, 그리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가느다란 헝겊쪼가리까지 이용해서 지은 새 둥지였다. 알을 품는 것 같더니 어느 사이에 새끼가 태어났는지 종일 조잘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와 새끼들을 보는 재미에 더운 줄도 모르고 여름을 났다. 나뭇잎이 헐거워질 무렵 문득 바깥이 조용하고 나뭇가지 사이가 허전한 것 같아 살펴보니 둥지가 비어있었다. 내 집이 빈 것처럼 가슴이 공허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약속이 있는 날이 잦아지면서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다같이 저녁을 먹기가 어려웠다. 곧 독립을 하겠다는 아들과 밥 한끼라도 더 먹고 싶어 애가 달았기 때문일까. 그날 저녁을 집에서 먹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갯불처럼 저녁 메뉴가 결정되었다.  
별 것도 아닌 아구찜이지만 세 식구가 다 있을 때 먹겠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던 중이었다. 아구를 꺼내고 콩나물을 다듬어 준비를 하는 동안 없던 힘도 솟는 듯 부엌을 날아다녔다. 탁구공이 튀는 것처럼 정신 없이 일하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갑자기 약속을 하게 되어 저녁을 먹고 온다는 내용이었다. 준비하고 있던 아구찜 생각에 언제쯤 들어오는지는 묻지도 않고 전화를 끊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맥이 풀려 앉아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우리끼리 먹으면 되는 거지 아구찜 하나 먹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여름내 정성스럽게 제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던 어미 새 생각이 났던 것이다.
 
마음 없이 만든 음식치고는 맛이 있었다. 매운 음식은 조심하고 있기에 고구마를 굵직하게 썰어 넣었더니 맵고 쏘는 맛을 상쇄시키는지 한결 부드러웠다. 얼큰한 음식을 만든 날에는 늘 그렇듯 남편이 소주잔을 내오고 술을 따랐다. 이름처럼 정말 ‘백 세까지 살 만큼 이로운 술’인지는 몰라도 혀에 감기는 달차근한 맛에 알코올을 의식하지 않고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알싸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느껴졌고 지나간 자리마다 불이 붙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술은 벌써 위장까지 단숨에 달려갔을 텐데도 불티가 떨어진 자국이 오늘따라 바느질 하듯 한 땀 한 땀 더딘 반응을 보이며 오래 따끔거렸다.
우리는 술잔에 기대어 자식의 독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빈 둥지를 지키는 노부부가 된다는 의미 이상의 허전함 때문인지 휑하니 커 보이는 식탁이 술 한 잔에 출렁였다. 흔들리는 게 어디 식탁 뿐이었을까. 남편의 얼굴에도 쓸쓸한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마땅히 독립시켜야 하고 흔쾌히 그리하리라고 다짐한 일이만 막상 눈 앞에 닥치니 가슴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러서야 할 때조차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꼭꼭 닫은 창문으로도 겨울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등이 시렸다.
 
어린 아들이 그토록 함께 보내고 싶어하던 때에는 맞벌이 부부로 뛰느라 못했던 일들. 비어있는 채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아프게 파고 들었다. 함께 채워가며 살고 싶고 막상 그럴만한 형편이 되니, 아들은 과거 우리 부부가 돌던 ‘현실’이라는 시간 궤도에 이미 들어선 모양이었다. 엇물려 돌아가는 시간들이 문득 두려웠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의당 한번쯤은 겪는 일이다. 희망과 체념의 끈을 번갈아 쥐는 손에 미련과 아쉬움이 땀처럼 묻어난다. 새는 낙엽을 떨군 빈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겨울을 견디어낸 후 잎이 무성해지면 떠나갔던 새들이 돌아와 다시 둥지를 틀게 마련이다. 덮어주고 가려주어 아늑하게 품어줄 무성한 잎들을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제 짝과 함께 지은 새 둥지에서 들려오는 재잘거림으로 아침을 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쯤 우리는 빈 둥지를 지키며 아구찜을 먹던 오늘의 허전하면서도 평화롭던 시간을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


<문화방송>(MBC) 기자들이 일제히 마이크를 내려놓고 제작거부에 들어간다. 편파·불공정 보도의 책임자를 퇴진시키라는 기자들의 일치된 요구를 사쪽이 거부하자 ‘최후의 선택’으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기자들의 제작거부로 뉴스 등에서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지만, 이런 파행의 근본적 책임은 일손을 놓은 기자들이 아니라 잘못된 방송을 바로잡을 생각이 전혀 없는 문화방송 경영진에 있음이 자명하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지난 18~19일 전영배 보도본부장 등의 퇴진과 보도부문 인사 쇄신을 요구하는 제작거부 찬반투표를 벌였고, 투표에 참여한 137명 가운데 84%인 115명의 찬성으로 제작거부를 결정했다. 투표 참여율도 92%로 대단히 높았다. 이런 압도적인 제작거부 결정은 문화방송 보도가 침묵과 왜곡, 불공정으로 얼룩진 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앞서 문화방송 기자회는 4.27 재보선과 10.26 재보선, 장관 인사청문회, KBS도청 의혹,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등의 보도에서 국민 눈높이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 결과는 <SBS>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추락한 뉴스 시청률에서 쉽게 확인된다.
<한국방송>(KBS) 역시 문화방송 못지않은 강한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방송의 기존 노조와 새노조가 지난 12~18일 실시한 신임투표 결과, 고대영 보도본부장에 대해 보도본부 재적 조합원의 3분의 2가 넘는 70.7%가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한국방송 새노조는 높은 불신임률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 체제에 대해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항의이며, 그동안의 온갖 불공정·편파 보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밝혔다.
 
두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식 사장 임명과 연관이 깊다. 두 방송 구성원들의 움직임을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 확보 차원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할 두 방송의 최고 경영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제작거부를 이끌고 있는 박성호 기자회장 등에 대한 징계를 강행중이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두 방송의 사장은 당장 구성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뉴스를 제자리로 돌리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더 이상의 신뢰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검찰 수사가 멈칫거리고 있다고 한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 직후 한나라당이 수사를 의뢰한 지 20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사건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수사 경과를 둘러싼 내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검찰이 여전히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적 고려를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그동안 고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 건과 서울지역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에게 전달하려던 2000만원 건 등 두갈래로 수사를 벌여왔다. 후자의 경우 안병용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으나 전자에 대해선 박희태 국회의장 주변 인물들의 부인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굼뜨다는 데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고 의원을 소환 조사해 2008년 전당대회 경선에 나선 박희태 후보 캠프의 조직 구성을 파악해놓고도 박 의장의 핵심 측근인 조정만 정책수석과 이봉건 정무수석, 함아무개 보좌관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11일이나 지난 뒤에 벌였다. 이들 거주지에 당시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뒷북을 친 것이다. 특히 고 의원이 돈봉투를 돌려준 뒤 전화를 해왔다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집은 압수수색 검토 대상에서도 제외하는 등 적극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둘러싸고,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공천에서 탈락시켰던 인사를 억지로 당 대표로 만들려다 보니 승산이 희박하자 막판에 돈봉투 살포라는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금 출처가 총선자금이니 대선잔금이니 하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사건임에도 검찰 수사는 박 의장이 주변에 쳐놓은 방어막도 뚫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 돈봉투 고발 사건에서 참고인 진술과 폐쇄회로텔레비전 동영상까지 이미 확보하는 등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수사를 벌이는 것과도 비교된다. 
검찰은 그동안 총리실 민간인사찰 사건이나 디도스 사건 등 권력 핵심부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아온 사건에서 꼬리자르기 수사를 벌여온 게 한두번이 아니다. 임기 말인 지금까지도 정치검찰 소리가 나온다면 정말로 참담한 일이다.


[기고] 제주를 변방의 섬으로 놔두나

● 칼럼 2012. 2. 5. 16:32 Posted by SisaHan
설 명절이 지났다. 마을의 촌로들과 청장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덕담을 나누고 서로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열리는 사진전시회에서 마을의 옛 합동세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던 한 주민은 “(해군기지 찬반 주민들이) 같이 모여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주민들의 갈등은 깊었다. 
2007년 4월 불과 80여명이 모인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됐고, 이를 안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긴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4·3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육지경찰’이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왔고 무더기 연행사태가 일어났다. 풍요롭고 살기가 좋아 제주 사람들이 ‘일강정’(제일강정)이라고 불렀던 마을에서 5명 중 1명이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일강정’ 주민들을 누가 투사로 내몰았는가. 

정부와 해군은 해군기지 후보지 결정 이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국토해양부·제주도는 2009년 4월 제주 해군기지를 15만t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일 제주도와 국방부, 해군 관계자들이 참여한 실무협의회에서 2척은커녕 1척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도록 설계됐음이 드러났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항만 설계에 ‘오류’가 있다는 것도 제주도의 발표다. 

지난해 연말 국회가 올해 해군기지 예산을 96%나 삭감했는데도, 정부와 해군은 공사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내놓을 획기적인 지원책도 없어 보인다. 국가안보사업이니까 무조건 추진해야 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만 말할 뿐이다. 

제주도의 행보도 문제다. 오류가 확인되면 공사 중단 및 항만설계 변경 요구가 먼저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해군기지 유치에 따른 지역발전계획 예산을 확보해야 주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정부에 예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부로부터는 무시를 당하고, 주민들과는 갈등만 더욱 쌓였다. 

기지 건설이 강행될수록 각계의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작가들은 해군기지 백지화를 요구하며 25박26일 동안 온 나라를 걸었다. 천주교 사제들은 강정마을에서 매일 생명평화미사를 열고 있다. 31일에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지난 10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던 수녀들이 경찰에 무더기 연행된 데 항의하는 시국기도회가 열린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열강들의 관심을 받아온 섬이다. 오죽하면 해방 직후 미군이 제주도를 ‘지극히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을까. 태평양전쟁 때는 일제의 중국 폭격기지, 4·3 때는 미국의 봉쇄전략 시험무대가 됐다. 1948년 3월 이승만은 미국 육군차관에게 미 해군기지 사용을 제안했다. 1969년 9월에는 정일권 총리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철수할 경우 군사기지로 제공할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제주도의 전략적 요충지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은 모른 채 잊혀질 만하면 거론된다. 

하지만 섬의 숙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제주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항만설계 오류를 확인한 이상 일단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해군기지 공사장 외벽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합니다’라는 문구는 지금 주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리고 있다. 주민 갈등을 치유하고 제주도를 더는 변방의 섬으로 놔두지 않으려면, 정부와 해군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허호준 - 한겨레 신문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