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장동 우화

● 칼럼 2021. 9. 29. 02:0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대장동 우화

 

박용현 논설위원

 

노상강도들이 횡행하는 도시가 있다. 경찰관 A는 순찰 도중 노상강도가 시민들한테서 금품을 갈취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은 그렇게 피해를 면했으나, 그 사이 여전히 강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일부 시민들은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말았다. 강도는 한몫 단단히 챙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A의 행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 왜 시민 모두를 대피시키지 못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강도와 결탁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A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사실 이 도시에는 노상강도를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경찰관들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A를 격렬히 비난하던 경찰관 B는 강도한테서 금품을 나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대장동 의혹’을 지켜보며 떠올려본 우화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서 분명 부조리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경찰관 A가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했다면 노상강도를 제압해 체포하면 되는 게 아닌가. 왜 일부 시민들만 대피시키는 데 그쳤나. 하지만 우화 속 도시에서 노상강도는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 비정상적인 도시의 부조리는 바로 여기에서 잉태됐다. 노상강도가 들끓어도 아무도 근본 대책을 촉구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부산의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사업은 2007년 민간사업자에게 맡겨졌다. 애초 콘도·호텔 등 상업시설만 짓는 조건이었는데 사업자 요구로 아파트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부산시는 그밖에도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민간사업자를 도왔다. 그 과정에서 불법 로비가 벌어져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 출신 현기환씨와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이 처벌을 받았다. 개발이익은 1조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공 환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개발 계획과 인허가라는 공공의 권한과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지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천문학적 규모의 이득을 창출하지만, 정부는 그 이득을 시민들의 몫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소수의 민간사업자들이 독식하는 구조, 누가 봐도 부조리한 이 구조가 우리 사회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대장동 사업도 이 지역구의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영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박했고, 2010년 민간개발로 바뀐 뒤 신 의원의 동생이 이 사업 관련 로비를 받아 처벌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신영수 전 의원을 꺾고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새누리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는 줄기차게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공영개발에 반대했다. 당시 한 시의원의 발언에서 그들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대장동 개발은 원래 민영개발이 원칙이었다. 이재명 시장이 성남시장이 된 이후에 개발 허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대장동 개발 허가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대장동 개발은 민영개발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민영개발회사의 이익이 얼마 남든 손해가 나든 개발 허가를 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사가 이런 반발을 뚫고 개발이익 환수를 추구했다면 민관 공동이 아닌 전면적인 공영개발을 선택하는 게 옳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따라붙는다. 이 지사 쪽은 시의회의 반발과 막대한 사업비 자체 조달의 한계 등으로 관철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오른쪽부터), 박수영 의원, 정상환 법률자문위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른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화천대유·천화동인 관계자 8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오른쪽부터), 박수영 의원, 정상환 법률자문위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이른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화천대유·천화동인 관계자 8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타협책이지만 민관 공동개발을 추진해 5500억원을 환수한 것인데, 그럼에도 여기에 참여한 소수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의 거대한 수익을 누린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화천대유가 챙긴 막대한 이익을 애초 예측하고도 방치했다면 문제다. 나아가 이 지사가 뒷돈이라도 챙겼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의문점들은 수사 등을 통해 밝혀야 할 일이다.

 

아직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았고 정치권이 ‘개발이익 환수’냐 ‘특혜 개발’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한가지 바뀌지 않는 사실은 대장동과 같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든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간사업자가 아닌 공공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분노도 결국엔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이번 논란이 불거진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 개발로 인한 민간사업자의 일확천금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고 철저히 공공으로 환수하는 근본적 제도 개혁에 나설 동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화 속 세계로 말하자면, 노상강도를 범죄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 셈이다. 대선에 참여하는 후보와 정치세력들이 과연 토건 카르텔의 편에 서 있는지, 공공의 편에 서 있는지는 이제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됐다. 대장동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부동산 개발 불로소득 방지를 위한 공약과 실천 의지를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유권자들이 거기에 화답하리라 믿는다.

불변의 법치농락 카르텔

● 칼럼 2021. 9. 11. 02:1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불변의 법치농락 카르텔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던 법조 기자시절 기억나는 이야기다.

아침에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얼굴이 부시시 하고 충혈된 눈에 열심히 껌을 씹는 검사를 볼 때가 있다. 야근에 지쳤거나 어떤 스폰서와 밤을 지샌 것이려니 궁금해 슬슬 몇 마디 던져보면 십중팔구는 역시 주취 탓이다. 민망했는지 공연한 선심성 빈말도 빼놓지 않는다. 다음에는 꼭 연락 할테니 같이 한 잔 하자구….

 

그날 검사들을 접대했던 ‘스폰서’는 모 행정관서 공무원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종의 비리혐의로 그 관서의 장이 몇 차례 검찰청을 들락거렸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후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라니…. ‘증거’를 쥐고는 곧바로 차장검사에게 쫓아가 유도질문을 꺼내는 기자에게 차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 그 친구, 강 검사가 불러서 알아봤는데, 뭐 별거 아니더라구”란다. 부하직원이 승진 청탁을 하며 봉투를 건넸다는데, 수사해보니 이미 돌려주었고, 액수도 미미해서 그 기관장을 혼내주되 기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 기관장의 비위는 돈 싸들고 청탁한 부하들이 여럿이라는 소문까지 파다했지만, 알고보니 그의 동생이 정보기관에 있었고, 결국 불문에 부치는 봐주기로 끝냈던 것이다. 어쩐지 수사는 시작했는데 그 뒤 감감 무소식이더니, 슬그머니 덮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선처에 보답하느라 검사를 모셔다 양주에 곤죽이 될 정도로 향응을 베풀었고….

 

공직 기강과 부정부패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공직자의 범죄를 덮어버리고, 형벌권과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청탁을 들어 준 대가로 접대를 받은 ‘사후 수뢰’까지 아무런 죄 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부정한 금품을 주고 받았던 행정관서 부패 공무원들은 본분을 저버린 부정청탁에 국민의 세금으로 향응을 ‘공여’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선량한 국민들과 국가에 고스란히 피해를 전가한 것이다. 검찰도 행정기관도 철퇴를 맞아야 할 사안이 분명했다.

 

취재를 확인한 검찰과 해당 관서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확실한 팩트의 기사였지만, 분통을 터트리는 기자에게 편집 데스크는 “김 기자, 방법이 없네, 중정(中情)에 보안사에, 총동원됐어, 이해하게!”하곤 달랠 뿐이었다. 신문사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는 때 였으니, 언론의 자유와 사명이란 단어는 고상한 수사에 불과했고, 분기탱천을 삭이며 위험한 줄타기에 도전해야 했다.

 

‘인혁당 사법살인’처럼 초대형 공작은 아니어도,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그런 식으로 크고 작은 민·형사 사건들이 왜곡·조작되거나 묻히는 사례는 당시에 흔치않게 있었다. 언론 역시 재갈이 물린 채 공생의 멍에와 카르텔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때가 언제적 인데, 그런 법조 안팎의 속성과 풍속도가 바뀌기는 커녕 고착화·지능화 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이 되고 있는 근래의 사건들에서 뚜렷하게 그 불편한 실체를 본다. 널리 알려진 노무현 수사와 이명박 BBK사건을 필두로, 김학의 사건, 옵티머스 사건 등 일탈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흐지부지 덮어버린 ‘나경원 사건’과는 달리, 수사도 하기 전에 기소해버린 ‘조국 사건’에, 최근의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까지. 사회정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참 교활하고 사악한 선택적 형벌권의 민낯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 카르텔의 일원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언론까지….

 

공직 당사자와는 관련없는 일가친족을 ‘멸문’지경으로 내몬 무지막지한 별건·연좌제 수사의 비열한 숫법은 조폭의 칼부림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냉혹한 칼끝이 정작 자신에게 향한다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검찰총장의 일가를 집적거렸다고 친위검사가 고발장을 만들어 야당과 민간단체에 고발을 ‘청부’했다는 폭로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기방어를 위해 국가사법체계를 악용한 범죄요 법치농락에 다름 아니다.

 

어디 검찰 뿐인가. 사법거래를 일삼았던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판사들은 법관의 양심은 팽개친 채 뭘 잘못했느냐고 고개를 쳐들고, 제식구 감싸기 덕에 면죄부를 챙겨 다시 재판을 맡아서는 보복하듯 요상한 판결을 쏟아낸다.

 

과거 독재시대 무소불위로 저지른 정치공작과 조작의 그림자, 멀게는 일제치하 고등계 형사들의 악독했던 행적의 뿌리가, 여전히 21세기 민주정치 시스템의 그늘아래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한심하고도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죄의식도 미안한 양심도 없다. 오히려 큰소리치며 역정을 낸다.

 

그들은 민주화든 문민화 든 관심도 변함도 없이 손에 쥔 권력을 즐기며 안주해왔기에, 늘상 그런 습벽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국민을 ‘돌보겠다’니, 위장된 양의 손을 내민 늑대처럼, 소름 돋을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검찰 개혁, 사법개혁·언론개혁을 통한 카르텔 혁파는 여전히 미완 상태인 이 시대 최우선의 국가적·국민적 과제다.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문정인 칼럼]

● 칼럼 2021. 9. 6. 06:0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8월15일 카불이 함락됐다. 온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우리에게는 한층 더 그랬다. 6·25 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와 1975년 4월30일 사이공 함락의 혼란과 비극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인천공항이 카불공항처럼 되지 말라는 법 있느냐”는 정치인들의 말은 이를 흡사 데자뷔처럼 생생히 되살려냈을 것이다.

 

외국 언론도 한몫했다. “한국이 이런 종류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미국의 지원 없이는 빠르게 붕괴해버릴 것”이라는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마크 티슨의 트위터 글이 언론 지면을 뒤덮었다. 한반도 문제를 오래 다뤄온 원로 외신 특파원 심재훈과 돈 커크도 “대만, 일본과는 달리 평화와 데탕트라는 공허한 슬로건을 남발하며 한-미 동맹을 저해하고 한-미 군사연습을 축소하는 문재인 정권 아래서 한국의 안보는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의 안보와 관련해 쏟아져 나온 말들은 크게 세 갈래다. 이를테면 ‘나비효과’다. 첫째, 우리 군에 대한 걱정이다. “현 정권은 우리 군을 적이 없는 군대, 목적 없는 군대, 훈련하지 않은 군대로 만들었다”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아프간 사태에 빗대어 나온 말이라 하겠다. 둘째, 평화협정 무용론이다. 카불 함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2020년 2월 체결된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도하 평화협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도 아프간과 같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은 주한미군과 동맹 문제였다. 주한미군 없이 안보를 담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워싱턴은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을 붙잡아 두기 위해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게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비판, 주문은 다분히 황당하게 들린다. 우선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아프간 병력의 90% 이상이 문맹이고 30만 병력 중 6만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유령 군대였다. 각 종족과 부족에서 충원되어 이질적 오합지졸로 구성됐다는 근본적인 한계에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지휘통제체계가 겹쳐, 미국의 군수병참은 물론 공중 및 정찰감시 지원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깡통 군대이기도 했다. 세계 수위의 전투력과 겹겹이 쌓아올린 전력투자비를 자랑하는 70년 전통의 한국군을 아프간군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군내 성폭력 문제 등 몇몇 사례를 들어 군의 안보 의식과 전투력, 기강을 도맷금으로 폄훼하는 일은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도하 평화협약이 문제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과 월맹 사이의 1973년 파리 평화협정도 그러했다.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는 아프간 정부를 사실상 배제한 채 탈레반과 무리한 협상을 전개했고, 아프간의 국내정치적 안정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 병력의 감축과 철수에 합의했다. 당시 협상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러나 이를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종전선언이 미군 철수와 동맹 붕괴로 이어질 것처럼 주장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상징적 제스처이자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종전선언이 한-미 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위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일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연동돼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평화협상을 주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프간과는 크게 다르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갈수록 강화되는 북한의 핵 능력에 억지태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자산이다. 그러나 아프간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동맹과 미군을 상수로 간주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을 통해 한국의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불 철수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서고자 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인계철선 같은 과거의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미군에만 기대려 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이렇듯 카불의 교훈은 따로 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스스로 비하해 상대의 오판을 초래하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객관적 현실을 왜곡하고 국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그리고 동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자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상식이다. 다만 눈앞의 이익 때문에 상식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언론중재법 논란의 아이러니

● 칼럼 2021. 8. 27. 02:0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언론중재법 논란의 아이러니

 

국회 법사위에서 박주민 위원장대리가 야당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강행에 맞서 ‘언론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여기에는 사뭇 결이 다른 목소리가 섞여 있다. 25일치 <한겨레> 사설은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에 대한 반대와 법안 일부 조항에 대한 반대를 정확히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법안의 디테일에서 언론자유 훼손 가능성을 진지하게 우려하는 목소리와, 기득권 지키기나 정치적 목적의 무작정 반대 목소리는 당연히 구분돼야 한다. 언론중재법 논란은 언론자유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언론자유 외침의 진정성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문제에 대한 입장이다.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권력 감시라는 건 상식이다. 이에 관한 현대적 법리를 구축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년)은 “(민주사회에서는) 정부와 공직자를 향해 격렬하고 신랄하고 때론 불쾌할 정도로 날 선 공격이 가능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면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숨구멍조차 막게 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공적인 인물·사안에 관해서는 허위의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나 공격도 용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 감시가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연방대법원은 공적인 인물이 이런 공격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유도 제시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치밀한 검증과 비판을 받아야 하는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잘못된 보도에 반박 기자회견·인터뷰 등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일반 시민보다 우월하다는 점 등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우려하는 핵심 이유도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한 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공적 관심사 등에 대한 보도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우회로나 틈새가 없는지 더 정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보도에는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면, 언론자유를 외치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윤 전 총장은 부인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보도한 매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최근엔 김씨의 이력서 허위 기재 의혹 보도가 나오자 언론사에 기사 삭제와 사과를 요구하며 “후속 조치가 없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의혹 보도가 나왔을 때 이를 부인하는 윤 전 총장 쪽의 입장은 의혹 제기 보도를 압도할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한다. 그런데도 언론을 상대로 툭하면 법적 대응에 나서거나 으름장을 놓는 윤 전 총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 재갈법’이라고 공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도입하려고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보다 훨씬 더 가혹한 법적 제재인 형사처벌에 대해선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언론보도에 강하게 대응할 때는 형사 고소·고발을 한다. 민사소송보다 압박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형성된 까닭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경 없는 기자회’ 등 언론자유 옹호 단체들은 언론보도에 대한 형사처벌, 특히 징역형을 강하게 반대한다.

 

현대국가에서 대부분 사라진 태형처럼 반문명적 형벌로 취급한다. 유엔은 우리나라에도 폐지를 권고해왔다. 이런 제도를 놔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자유를 침해하느냐 마느냐를 논쟁하는 것은 모순이다.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나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형사처벌하라고 주문하거나 이에 찬동했던 이들이 오늘은 언론자유의 수호자처럼 행세하는 건 웃픈 현실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의 권력감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라면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부터 주장해야 마땅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정도의 허위보도라면 현행법상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더구나 형법상 명예훼손죄에는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처럼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공적 관심사 등에 대한 예외 조항도 없다.

 

야당·언론단체 등이 진정으로 언론자유를 원한다면 언론보도에 대한 고소·고발부터 없애고 형사처벌 폐지에 나서야 한다. 여당도 이런 토대 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해야만 언론자유를 보장하되 약자인 시민들의 피해를 막겠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언론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조화된 언론개혁을 하려면 언론중재법 개정 이상의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법 정비가 필요하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폐지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인 인물·사안에 대해서는 그래야 한다. 민형사적 제재 수단 대신 정정보도·반론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면 된다.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허위보도나 명예훼손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형사처벌보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한 제재가 바람직하다.

 

적어도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이중처벌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보도에 대한 개별적·직접적 제재 이외에도 언론의 책임성을 높이고 균형 잡힌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찾는 일도 시급하다. 부쩍 높아진 언론자유와 언론개혁 목소리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찬반이라는 앙상한 구도로 소모되고 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