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디 판결’은 미란다 원칙을 정립한 ‘미란다 판결’(1966년)과 함께 형사절차의 현대적 원칙을 빚어낸 최고의 판결로 평가된다. 캐나다 대법원도 1991년 ‘국가는 피고인의 혐의 입증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법정에 제출할지 여부와도 상관없이, 수집된 모든 증거를 피고인 쪽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캐나다 대법원은 “수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유죄 판결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국민 모두의 소유물이다”라고 밝혔다.
박용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A는 절도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절도가 벌어진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리바이를 증언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파티 참석자 한 명이 검찰에 와서 조사를 받는다. 파티에서 A를 봤다는 말을 잠깐 언급한다. 검사는 이 진술을 사건 기록에만 넣어두고 변호인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A를 기소한다.
미국에서는 검사의 이런 행위는 직권남용으로 위법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거나 형량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증거·증언을 확보했을 때 피고인 쪽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1963년 연방대법원 판결(브레이디 판결)로 확립된 원칙이다. 이를 어겼을 때는 무죄가 선고되거나, 기존 검찰 쪽 증거를 배척하고 재판이 진행된다.
미국변호사협회의 윤리강령도 ‘검사는 무죄나 감경 사유가 되는 증거 및 정보를 얻었을 때는 지체 없이 변호인과 법원에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검사도 한 명의 변호사로서 변호사협회의 규율을 받는 미국에서는 이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할 경우 변호사 자격이 박탈돼 검사직을 잃을 수도 있다.
‘브레이디 판결’은 미란다 원칙을 정립한 ‘미란다 판결’(1966년)과 함께 형사절차의 현대적 원칙을 빚어낸 최고의 판결로 평가된다. 캐나다 대법원도 1991년 ‘국가는 피고인의 혐의 입증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법정에 제출할지 여부와도 상관없이, 수집된 모든 증거를 피고인 쪽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캐나다 대법원은 “수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유죄 판결을 얻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국민 모두의 소유물이다”라고 밝혔다.
우리 대법원도 2002년 “검사가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제출해야 한다는 건 이렇게 문명국가의 보편적 형사절차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재판에서 나온 조 전 장관 딸 친구들의 증언을 보며 이 원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전 장관 딸 조아무개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가 허위라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고, 이와 관련해 2009년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에 조씨가 참석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의 하나다. 이는 공범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세미나에서 조씨를 봤다는 여러 증언을 배척하고,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조씨의 친구 박아무개·장아무개씨의 ‘현장에서 조씨를 본 기억이 없다’는 증언을 받아들여 유죄 이유로 삼았다. 정 교수는 세미나 장면을 찍은 동영상 속의 여학생이 딸 조씨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23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씨가 “검찰 조사에서 동영상을 보자마자 ‘저건 조씨다’라고 말했다”며 “검사가 ‘증거들을 보면 아니지 않겠느냐’고 질문해, ‘그럼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명확하게 조씨를 그(세미나) 자리에서 봤다는 기억이 있다면 검사 질문에 ‘아니다, 조씨다’라고 말했겠지만, 10여년 전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과 ‘그 자리에서 봤다는 기억이 없다’는 진술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더구나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데 있어, 당시 현장을 찍은 동영상 속 인물이 조씨인지 여부와 그 자리에서 조씨를 본 기억이 있는지 여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인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동영상을 ‘보자마자’ 나온 친구 박씨의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은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검사의 추가 질문 끝에 나온 희석된 진술들만 증거로 제출했다. 박씨의 애초 진술을 변호인 쪽에 알려주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다른 친구 장씨도 이번 재판에서 “동영상에서 확인된 여학생이 99% 조씨가 맞다”고 증언했다. 장씨는 이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현장에서 조씨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저는 없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조씨가) 아예 오지 않았다’라고 한 것”이라며 “저의 증오심과 적개심, 인터넷으로 세뇌된 삐뚤어진 마음, 즉 우리 가족이 너희를 도와줬는데 오히려 너희들 때문에 내 가족이 피해를 봤다라는 생각이 그날 보복적이고 경솔한 진술을 하게 한 것 같다”고 했다. 장씨는 조씨를 논문 제1저자로 등재한 단국대 장아무개 교수의 아들로, 장 교수는 검찰 조사를 받고 출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진실을 덮은 것이 박씨나 장씨의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도 객관적으로 다루는 공정한 태도를 지녔다면 이 사안은 기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건 조씨다’라는 진술이 기록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부터가 검찰의 객관성을 허문다.
조 전 장관 수사는 이 밖에도 여러 형사절차적 문제를 노정했다. 검찰이 주요 증거인 동양대 강사휴게실 피시(PC) 포렌식 결과를 일부만 선별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또다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의 제출 원칙’ 위반일 수 있다. 이 피시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절차를 위반했다는 법원의 판단도 나온 바 있다.
이러한 문제는 조국 개인에 대한 비난과 옹호로 열뜬 논란에서 한발 떨어져 봐야 할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형사절차의 원칙과 실행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씨와 장씨처럼 친구 부모의 수사·재판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는 게 어떤 이유로든 어려웠다면 그것은 문명사회의 형사절차가 아니다. 동영상이 증거로 남아 있는데 거기에 찍힌 인물이 조씨라는 기초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데 결과적으로 2년 가까운 법정 공방이 필요했다는 이 비합리성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조 전 장관의 딸은 지난달 법정 증인으로 나와 “재판에 유리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친구들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형사절차가 객관성을 잃어버린다면 전근대적 여론재판과 다를 게 없다.
이럴 때 중요한 게 형사절차를 개시하고 끌고 가는 능동적 주체인 검사의 역할이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피고인일지라도 검사는 그와 대립하는 상대방의 위치에 머물지 말고 객관성과 공정성의 담지자가 돼야 한다. 그런 검찰의 역할에서 바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의 제출 원칙’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 속에서 검찰은 결과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수사를 하는 집단이고, 그 전형의 하나가 조 전 장관 수사였다.
이번에 박씨와 장씨의 ‘오염된 증언’이 바로잡힌 것은 조씨의 세미나 참석이라는 단편적 사실을 확인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임한 태도의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내줬다. 수사는 사냥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형사절차는 야수의 본능이 아닌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두 젊은이의 고백적 증언은 조 전 장관 부부의 유무죄에 미치는 영향보다 아직 야만의 티를 벗지 못한 우리 형사사법제도의 현주소에 대한 경종으로 더 큰 울림을 준다.
온타리오 주의 코비드 확진자 수가 5일 연속 200명 미만을 기록했으며 700만명이 백신 접종을 마쳤다는 반가운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온타리오 주에서만큼은 코비드 사태가 조만간 종식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암울한 뉴스도 접하게 됩니다.
방역의 모범국이라 평가받던 한국이 4차 대유행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럽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난리입니다. 그리고 델타 변이보다 치사율이 더 센 람다 변이가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알파, 베타, 델타, 감마에 이어 다섯번 째인 람다 변이 바이러스가 또다른 대유행을 안겨다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다 오메가 변이까지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올 여름 전세계적으로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주 전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는 49.6도라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서부 지역이 폭염에 휩싸여 있습니다. 북유럽도 살인적 폭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오늘 내일 폭염이 시작된다고 하는데요. 작년보다 올해, 그리고 올해보단 내년에 폭염과 한파의 주기와 강도는 점점 더 잦아지고 강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이제는 기후위기가 아닌 기후재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자와 당나귀, 여우 셋이 힘을 합쳐서 사냥을 한 후, 사냥한 것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사자가 대뜸 당나귀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보라고 시킵니다. 당나귀는 사자의 명령대로 사냥한 것을 똑같이 삼등분합니다. 그러자 사자는 공평하게 나누지 않았다는 말도 안되는 생트집을 잡으면서 당나귀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런 후 이번에는 여우에게 사냥감을 나누어 보라고 지시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사냥한 것의 대부분을 사자의 몫으로 돌리고 자기는 쥐꼬리만큼 가져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자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야 공평하게 나누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여우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지혜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냐?" 여우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당나귀가 사자님께 잡혀먹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내게 일어날 일을 미리 대비합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간접 경험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귀중한 사실 하나가 있지요. 바로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날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에 그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대비하겠지요.
벧전 4:7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최근 들어 인류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인간의 겸손과 절제 덕분에 장미빛 전망으로 대체될지 아니면 끝없는 욕심과 교만으로 더 혹독한 내일을 여는 문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아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한국이 선진 7개국 정상회의, 즉 G7에 초대되어 전례없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G8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뒤이어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하라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UNCTAD가 57년 전 발족한 이후 개발도상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월반’시킨 사례는 이번 한국이 처음이라니, 대단한 사건이다. 사사건건 정부 여당을 비판해 오던 야당의 한 대선주자가 뜻밖에도“UNCTAD가 한국의 지위변경을 결정한 7월2일을 국경일로 하자”고 공개 제안한 것을 보면, 그의 말대로 ‘역사적인 경사’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세계 10대 무역국이고, 경제규모나 국민소득에서도 10위 안에 들어서 이탈리아를 추월했다는 말도 들린다. 군사력은 세계 6위라고 한다. 전자제품과 자동자, 선박 등은 세계 상위그룹이다. 경제나 국방 등 국세(國勢) 뿐만이 아니다. K팝과 K문화예술, K방역, K스포츠 등 이른바 한류(韓流) 혹은 한풍(韓風: Korean Style)이 지구촌을 주름 잡는다. 미-중 등 대국들도, 개도국-후진국들도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도움을 청하려 손짓한다. 국제사회에서 명실공히 ‘선진’의 대우를 받는 선진국이 다 된 것만 같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자신은 왜 어깨가 으쓱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고 한 구석 모자란 느낌이 드는 것일까. 마치 양복을 입고 갓을 쓴 모양새처럼…번지르한 고급양복 입었다고 품격있는 신사라고 내세우긴 자신없고, 진한 향수에 비싼 화장품으로 단장했다고 우아한 미녀라고 우기기엔 민망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 스스로도 우리가 이젠 당당한 선진국이다 라고 확신하며 큰소리 치기에는 자신이 안서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져보면 아직 ‘선진’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모자란 구석구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두리번거리다 내달리는 운전사들이 선진국 네거리에는 거의 없다. 공무를 수행중인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막말을 하고 멱살을 잡는 일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흔하지 않다. 우리네 주변의 쉽고 간단한 ‘비교검증’ 자료들이다. 일상의 하찮은 언행에서 의식구조와 습성까지 선진·후진의 수준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지성과 품격, 도덕과 정의감 등이 바탕이 되고 의식화 되어 품행으로 표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 소소함을 넘어 몇가지 거시적인 사례들을 보자.
군사력 6위라지만, 한국은 마음대로 전시작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국방의 장애 상태에 있다. 세계에 유례없는 희한한 군사종속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위 보수라는 사람들은, 더구나 군의 장성 출신들이 그 전작권을 회수하면 절대 안된다, 나라 망한다고 우겨댄다. 어느 선진국에 그런 기이한 상황이 있고 그런 보수층이 존재하는가.
부동산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 투기에는 기를 쓰면서 폭등했다고 원망하고, 폭락하면 경기침체라고 아우성이다. 값 오르면 좋아하면서도 세금에는 기겁을 한다. 부동산과 세금을 빌미로 선거 때마다 몰표를 활용하는 강남부자들이 과연 선진 시민들인가.
한국의 정치판을 선진스럽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외치면서도 상대 헐뜯기와 이전투구, 갈등 조장만 횡행한다. 오직 자기 당선과 이권에 연연하는 정치인들 뇌리에 공복과 헌신의 개념이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러니 국민 90%가 원한다는 수술실 카메라 설치법하나 처리 못한다. 중대재해법은 누더기가 되었다. ‘선진화 법’을 만들어도 후진을 면치 못하는 국회의 현주소다.
사법은 인권과 정의의 보루인가.
재판을 거래했던 대법원장과 수하 판사들은 뻔뻔하기 그지없고, 단죄해야 할 법관들은 그들이 죄가 없다고 선고한다. 징계조차 받지않고 복귀한 일부 농단 판사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재판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돌변해 ‘마시던 우물에 침뱉 듯’ 독설을 쏟으며 본색을 드러낸 것도 우습지만, 정치색을 감추지 않다가 중도 사퇴해 “나라를 밝힌다”며 대선판에 뛰어든 감사원장도 ‘후진’스럽기는 오십보백보다. 두 사람은 결국 공직을 개인적·선택적으로 활용해 정권 흠집내기와 항명, 자기보호와 출세에 써먹었고, 사욕의 발판삼아 정치검찰·정치감사원의 오명을 씌우며 절대중립을 짓밟고 말았다.
언론은 어떤가. 재벌과 노사는? 너무 많다. 곳곳에 대한민국의 선진도약을 먹칠하는 후진적 양태는 널려있다.
‘졸부’라는 말이 있다. 벼락부자 되어 의시대지만 그 심중에는 치사한 성정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선진을 자랑하기에 앞서 구석구석까지 선진인지, 몇 군데만 잘난 기형체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선진국은, 선진 시민들이 선진 시스템과 선진 공복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불편도 걱정도 없고 고통도 없는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나라를 말한다. < 김종천 시사 한겨레 편집인 >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 느슨해지자 한동안 묶였던 규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잔뜩 응축됐던 일상에 생기가 돌면서 그동안 집에만 갇혀 지냈던 아이들이 마음에 쓰였다. 바이러스 전파율이 예전보다 많이 느슨해졌다고는 하나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안심하기엔 이른 듯했다. 아니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기에 한번쯤 일탈을 시도해야 했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가족캠핑을 구상하여 곧 실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와 같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캠핑 사이트 예약이 시작되자 마자 우리가 원하는 날짜는 순식간에 빨간 색으로 덮여버렸다. 며칠 시도한 끝에 겨우 사이트 예약에 성공했다. 알곤퀸 팍에서 3박4일 간 캠핑 소식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더니 한동안 아이들의 환호로 떠들썩했다. 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들의 해방구, 알곤퀸 공원에 도착했다. 호수가 인접한 아늑한 캠핑장에 식구들의 텐트가 세워졌다. 우리 부부의 텐트 옆엔 큰 아들네, 건너편엔 늦게 합류한 작은 아들네가 자리를 잡았다. 얇은 텐트막 넘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루엣 되어 캠핑장을 유영했다. 내 어린 시절, 여섯 남매가 이방 저방에서 웃고 떠들면 할머니는 늘 흐뭇한 표정으로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하셨다. 그때 할머니의 마음이 이토록 풍요로웠을까. 지척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인기척에 훈훈한 밤이 되었다.
혼돈의 세상사는 잠시 내려놓으라는 듯 늦여름 알곤퀸 공원은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푸르름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겨워 보였다. 빙그르 둘러앉아 와인잔을 들며 담소하는 사람들, 모닥불 피워놓고 독서삼매에 빠진 노부부, 아이들 돌보느라 분주한 젊은 부부 등 자연속에 있으니 그냥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공공의 적을 향해 매진했던 투사들이 잠시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광경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어떤 연대감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이른 저녁, 식구들이 캠파이어 가까이 모여 쉼 없이 깔깔거렸다. 아침부터 하이킹, 카누 타기, 그냥 뒹굴기 등 각자의 희망대로 시간을 보낸 후 느긋하게 불가에 모여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참이었다. 순간 인원 점검을 해 보니 할아버지, 아들, 손녀 삼대가 빠져있었다. 저녁 찬거리를 위해 고기 잡으러 갔다는 후문에 또 한번 배꼽을 잡았다.
우리 가족은 5:3 혹은 3:5 뭉치기로 유명하다. 다름아닌 혈액형이 같은 식구들끼리 잘 뭉친다는 뜻이다. 다섯 명의 O형들이 세 명의 A형 강태공들을 기다리다 늦은 저녁식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도 똑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열살 짜리 손녀가 일어나기 무섭게 눈비비며 따라나서는 모습은 앙증맞기도 하지만 신기한 현상이기도 했다. 고기 잡는 손맛을 너무 일찍 터득한 게 아닐까. 호숫가의 삼대 덕택에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꿈꾸는 캠핑이 되었다.
별 보러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따라 나섰다. 깜깜한 호숫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망부석처럼 우뚝우뚝 서서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낮게 앉은 별무리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나도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향해서 나직이 소원을 빌었다. ‘예전의 일상으로 얼른 돌아갈 수 있기를’ 하고.
[1500 칼럼] 브루스 트레일( Bruce trail) 예찬
임순숙 수필가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자유로운 여행이 쉽지 않은 요즈음 나는 종종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들을 보며 허기를 달랜다. 건강한 땀냄새가 그대로 느껴지는 고국의 농어촌 주민들의 일상이나, 아직 가 보지 못한 먼 나라의 신비한 풍경 속을 헤메다가 나오면 심란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유튜브에 올려진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산에 관한 다큐물이다. 히말라야 산맥, 안데스 산맥, Mt.마터호른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명산들을 간접체험하고 나면 오래도록 진한 여운이 내 안에 남는다. 지난 인생 여정 중 반 이상은 산과 무관했었는데 중년 넘어 ‘산 바라기’ 삶으로 바뀐 연유는 전적으로 브루스 트레일의 영향임을 인지한다.
이층 침실 창가에 서면 전나무 가지 사이로 야트막한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계절 변화가 겨우 읽혀질 만한 거리에 있는 그곳은 평평한 주변 지형에 비해 제법 도드라진 품새를 내뿜는 유일한 곳이다. 산이라 칭하기엔 높이가 좀 아쉽고 앞동산이라 부르기엔 옆으로 뻗은 자태가 어색하지만 나의 중년기의 시름을 보듬어준 마음의 고향이자, 이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낌없이 속살을 내어준 브루스 트레일의 한 자락 이다. 간간이 그 능선을 바라보며 지난 추억 떠올려보는 시간은 여느 부자가 부럽지 않다.
브루스 트레일은 남서쪽 나이아가라 강에서 북서쪽 죠지언 베이, 토버머리(Tobermory)까지 이어지는 캐나다에서도 유수한 트레일로, 메인길과 사잇길을 포함하여 총 길이 1300km 가 넘는다. 토론토는 물론 GTA 지역을 포함하여 외곽지역에서도 접근이 용이하여 평소에도 적잖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은둔의 시기엔 브루스 트레일의 진가는 더욱 더 그 빛을 발한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구축된 길이라 인위적이지 않고 길을 걷는 동안은 나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같은 눈높이로 동식물을 대하게 된다.
이곳에 첫발을 내딛은 시기는 아마도 이민생활 십 여년 차, 심신이 가장 피폐했던 때로 기억한다. 당시 운영하던 사업체에 작은 변화가 생겼을 무렵 하이킹 회원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접하곤 주저없이 동참하게 되었다.
초겨울로 기억되는 하이킹 첫날엔,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왜 그렇게 감미롭던지 땀 범벅에도 아랑곳 않고 마냥 걸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자연을 향해 늘 목말라 하면서도 쉬이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시절, 오랫동안 억눌려있던 오감이 한 순간에 열리며 자연과 합일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킹 첫날부터 브루스 트레일에 푹 빠졌던 나는 매주 토요일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들녘을 누볐다. 비바람, 한파, 폭설 등 하이킹을 훼방하는 악천후쯤은 개의치 않고 열성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억지로 행하는 일이라면 금방 실증이 났으련만 마음이 동해서 걷다보니 체력 향상은 물론 매사 자신감도 배가되었다.
브루스 트레일과 인연을 맺기 전과 후의 삶은 극과 극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후의 삶은 매 순간 윤기가 돌았고 일의 성과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다가 장거리 트레킹을 다녀온 후엔 무탈, 무병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내 삶에서 브루스 트레일과의 인연은 엄청난 축복이며 필연이었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생 후반기에 그 인연의 땅과 마주하며 살게 될 줄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