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조적 검찰 소아병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남일 ㅣ 디지털콘텐츠부장

 

그래서 남은 검사들은 이제 어쩌겠다는 것일까. 검찰조직을 지켜주겠다던 검찰총장이 대차게 직을 던지고 나갔다.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다. 그건 더 이상 같이 자장면 먹던 검사 윤석열이 아닌 정치인 윤석열의 일이다. 다 같이 조국·추미애와 싸울 때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정치인과 검사가 한배를 타는 건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1년, 남은 검사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사실상 정치를 택한 검찰총장을 박수 치며 떠나보내고 여전히 응원하는 검사들은 아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하려는 정치, 그의 대권가도를 알게 모르게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새 검찰총장이 와도 윤석열만이 진정한 총장이라며 상왕으로 모시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돼서 지금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을 없던 일로 만들어달란 것인가.

앞으로 검찰이 하는 수사마다 정치적 꼬리표가 붙게 될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생각 있는 검사라면 말장난을 상소문이랍시고 검찰 게시판에 올릴 시간에 제발 그 뜻 거둬달라며 전직 총장 집 앞에서 짧은 목을 내놓고 지부상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은 거창하나 지켜진 적 없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니 이제부터는 아예 없는 셈 치겠다는 것인가. 정치가 검찰을 흔든다며 호기롭게 실명 비판하던 검사들은, 저런 정치로는 안 된다며 직접 정치에 나서려는 검찰총장에게는 왜 아무 말 안 했던 것인가. 검찰이 정치를 흔드는 건 괜찮은가. 이 또한 내로남불인가.

윤 전 총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미리 준비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누구로부터가 없다. 정치의 언어는 한없이 헐렁해 보이지만 막상 뱉어놓으면 주어 하나가 없다고 몇날 며칠 난리법석이 벌어진다. 체제와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공소장에 흔히 쓰듯 성명불상자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검찰총장이 이런 첩보를 유훈으로 남겼으니 박수 쳤던 검사들은 체제 위협 세력 발본색원에 나서지 않겠는가.

정치는 엉망이고 사회는 혼란스럽다며 무력을 쥔 이들이 직접 나서면 쿠데타가 된다. 지금 미얀마가 그렇고 5·16, 12·12가 그랬다. 민주화 이후 가장 센 권력기관은 검찰이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검사들이다. 검사들은 구국의 심정으로 떠난다는 검찰총장을 따라 노도와 같이 들고일어나겠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현직 검사들이 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며 직을 던졌기 때문이고, 그렇게 떠난 총장에게 잘하신다며 박수 치는 검사들이 있기 때문이며, 검찰을 이용해 정치하려는 이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검사들이 많아서고, 당면한 조직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검사들은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억울해하는 피의자가 있다면 검사 당신은 무어라 하겠는가. 박수 칠 때 어서 조사실을 떠나라 하겠는가. 누가 괴롭히면 정치로 갚아주겠다며 옷을 벗는 게 검찰수사실무인가. 수사가 막히니 별건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하긴 몇몇 검사는 그렇게 금배지를 달았다. 검찰의 생존전략은 정권 페이스에 맞춰 충성과 배신의 스톱워치를 누르는 데 있지 않았던가. 힘 빠진 정권이 막판 내달려 등을 보인 것이 그리 억울한가. 솔직히 이번 정권은 다를 거라 믿었는가. 공익의 대표자라면서 내심 무엇을 바랐길래 그리 배신감을 토로하는가.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안 하면 된다. 이 간단한 답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이러할 것이다. 윤석열이 정말로 정치하겠다고 나서니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아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신기할 뿐이다. 후배 검사들이 앞으로 하게 될 정의로운 수사마저 정치수사, 표적수사라는 기본값에서 출발하게 만든 검찰지상주의자 윤석열의 행보가 황당하고, 조직으로 뭉쳐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검사들이 기이하기 때문이다.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즉각 수용했다. 연합뉴스


[칼럼]  윤석열 총장, 정치 하지마라

 

대선주자로 나서려면 ‘왜 내가 대통령을 해야 하는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두 가지가 없으면서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은 사기와 다름이 없다. 유권자는 절대 멍청하지 않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문에 사퇴했을까? 아니면 내년 3월9일 치러지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사퇴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검찰 수사권 박탈에 대한 반발은 명분이고, 대선 도전은 실리다. 명분과 실리를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보통은 명분을 내걸고 실리를 취한다. 정치인에게 애국은 명분이고 당선은 실리다. 애국과 당선을 선명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검찰총장 사퇴는 과거의 일이고, 대선 출마는 미래의 일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명분이 부각될 것이고 출마하면 명분은 사라질 것이다.

양자역학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는 가능성의 상태로 병존한다.

윤석열 전 총장의 지금 상태가 바로 그렇다. 검찰 직접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특수부 검사들의 영웅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검찰 조직 전체의 명예를 팔아먹은 파렴치한일 수도 있다.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정치 바람’이 들어간 이유가 뭘까?

첫째, 여론조사 때문일 것이다.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충돌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윤석열 전 총장을 대선주자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뜨면 멀쩡했던 사람도 눈이 돌아간다.

2011년 청춘콘서트에 나섰던 안철수 교수가 그랬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그랬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그랬다. 그래도 고건·반기문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둘째, 수사 경험 때문일 것이다.

특수부 검사는 프레임을 짜는 사람이다. 프레임을 짜서 피의자를 악당으로 선언하고 구속영장과 중간 수사 발표를 통해 ‘여론재판’에서 성공하면 승리하는 것이다. 뒷날 법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아내면 금상첨화다.

무죄가 나와도 괘념치 않는다. “범죄 방식이 전형적인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서 입증이 어려웠다”고 치부하면 된다. 프레임을 짜서 상대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하면 안 된다. 대선주자로 나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잘할 수 없다.

‘치국경륜’의 핵심은 경제와 외교다. 정치 경험과 국정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을 할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이 경제와 외교를 알까?

부패가 만연한 부패 공화국에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 아니다. 범죄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둘째, 될 수 없다.

지금 여론조사 수치는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거품이라는 얘기다. 진짜라고 믿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대선주자로 나서려면 ‘왜 내가 대통령을 해야 하는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두 가지가 없으면서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은 사기와 다름이 없다. 유권자는 절대 멍청하지 않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좋은 방법이 있다. 그가 평생 쌓은 특수 수사 경험을 살려서 대한민국 수사 기관의 반부패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면 된다. 그러면 평생 존경받으며 살 수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검찰 후배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여권의 개들’을 비판하며 “살아 있는 권력과 싸우다 사그라지는 것이 정치 행보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육신도 정치 행보를 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윤석열 검사가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수천명의 검사와 판사들이 남아 있다”며 “그 소중한 직분을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위해 불꽃처럼 태우라”고 촉구했다.

김웅 의원의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윤석열 전 총장이 새겨들어야 한다.

‘천하의 윤석열 검사’가 거악 척결이라는 풍운의 꿈을 안고 검사가 된 수많은 후배 검사들을 쪽 팔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칼럼]  박용현ㅣ논설위원

 

1972년 어느 새벽, 영국 런던의 한 주택에 불이 났다. 소방관들은 2층에서 성노동자인 맥스웰 콘페이트가 목졸려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틀 뒤 인근에 방화 사건이 잇따랐다. 경찰은 방화 용의자로 붙잡은 청소년 3명을 조사한 끝에 콘페이트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 중 살인 혐의를 자백한 콜린 래티모어(18)는 심한 학습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소년들은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1974년 반전이 찾아왔다. 새 내무장관과 해당 지역 국회의원 등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콘페이트의 사망 추정 시각이 애초 경찰의 결론과 다르다는 법의학적 소견이 제출됐다. 결국 소년들은 다시 재판을 받게 됐고 1975년 무죄로 풀려났다.

 

여기까지 보면, 억울한 피고인이 누명을 벗은 이야기 또는 수사기관의 무리한 강압 수사를 드러내는 한 사례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오히려 더 극적인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무장관은 재수사 지시에도 경찰이 뭉기적거리자, 전직 고위 법관이 이끄는 조사팀을 구성해 사건의 전 과정을 들여다보게 했다. 1977년 조사팀은 엉터리 수사·기소의 문제점을 밝히고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필립스위원회’로 불리는 왕립형사절차위원회(1979~81)가 구성됐다.(위원회가 활동 중이던 1980년 경찰은 콘페이트 사건의 진범을 찾아냈다. 사건 초기에 경찰이 수사 초점을 소년들에게 맞추지 않았더라면 어렵지 않게 수사선상에 올랐을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곧 자살했다.) 필립스위원회는 백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을 깨고 경찰이 한 손에 쥐고 있던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당시까지 기소는 경찰에 소속되거나 고용된 법률가가 담당했는데 기소의 주도권은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쥐고 있었다. 위원회는 ‘수사 주체는 불가피하게 피의자가 유죄라는 심증을 갖게 되고 이에 반하는 증거에는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소는 수사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범죄 대응의 비효율화 등을 두고 사회적 논쟁도 벌어졌지만 결국 독립된 기소기관인 기소청(CPS)을 설치하는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영국이 1986년 수사·기소 분리를 단행한 전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로스킬위원회’(1983~86)도 구성됐다. 급증하는 금융·기업 범죄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위원회는 사건의 복잡성과 신속한 수사 필요성을 감안해 ‘예외적으로’ 수사·기소 기능이 통합된 기관을 만들 것을 권고했다. 이로써 특화된 수사 영역을 갖는 중대범죄수사청(SFO)이 1988년 발족했다. 주요 사건 위주로 연평균 12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는 이 기관은 수사관, 변호사, 회계사, 디지털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역으로 구성됐고 내부적으로는 수사·기소 기능을 분리하고 있다.

영국은 하나의 실패한 사건에서 ‘지금의 형사사법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성찰을 끌어내고 과단성 있게 제도를 변화시켰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예외도 도입했다. 1980년대는 영국 형사사법 역사에서 일대 개혁의 시기였던 셈이다.

 

우리도 지금 그런 시대를 지나고 있다. 개혁은 당위의 이식보다는 절절한 현실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형사사법체계를 몇번이고 갈아엎을 만큼의 비극적 사건과 뻔뻔한 횡포를 목도해 왔다. 수사기관은 살인범을 조작하고 간첩을 조작했다. 객관적인 법률전문가로서 수사를 감시해야 할 검찰은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수사기관이라는 그릇된 정체성에 갇혀 조작을 방조하거나 무능하게 간과했다. 검찰이 정치적·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직접 사건을 비틀고 덮고 만들어낸 것도 숱하다.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이들도 부지기수다.(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에만 83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드러난들 대부분 철저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근본적 제도 개혁에는 더더군다나 이르지 못했다.

영국 사례에 비춰보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뇌물 사건을 검찰이 축소·은폐한 것 하나만 갖고도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폐지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최근의 검사 룸살롱 접대 사건은 어떤가. 수사·기소가 분리돼 있다면,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소기관이 ‘다른 산수’만 적용했어도 기소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은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과 그 폐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례다. 검찰이 한 전 총리의 혐의를 뒷받침할 거짓 증언을 재소자인 증인들에게 사주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기소권까지 움켜쥔, 견제받지 않는 수사기관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방식이 지적됐던 사건이다.

그런데 수사·기소권 분리에 강력 반발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론 인터뷰가 보도된 바로 그날, 한명숙 전 총리 수사 과정의 비위 의혹을 조사해온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이 이 수사에서 배제된 사실이 공개됐다. 의혹을 뭉개겠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윤 총장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야말로 수사·기소권 독점을 통해 치외법권을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윤 총장의 요란한 반발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검찰의 특권 유지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수사·기소 분리가 반부패 수사 역량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폄훼다. 오히려 과거 보수정권들은 검찰이라는 독점적 수사·기소기관 하나만 장악하면 손쉽게 부패·비리를 은폐·축소할 수 있었다. 다양하게 분화된 수사기관이 전문 역량을 쌓고 서로 경쟁·견제한다면 수사기관이 멋대로 사건을 주무르거나 덮어버리는 일은 되레 어려워진다. 복잡한 경제범죄 대응이 중요하다면 특화된 수사기관을 만들고, 필요하면 관련 전문성을 쌓은 검사들을 데려가면 된다. 독립된 기소기관으로서 검찰은 이들 수사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동시에 권한 남용과 인권 침해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수사·기소를 한 기관에 귀속시킬 필요가 있다면 지금껏 드러난 폐해를 방지할 장치가 분명히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단일한 기관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허용돼선 안된다.(영국은 2000년 기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의 기소 기능을 감시·감독하는 기관인 기소감찰청까지 별도로 설립해 2중, 3중의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이것이 권력분립과 인권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원칙이다.

멀게는 일제 강점기에 원형이 형성돼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후만도 67년이나 묵은 형사사법체계, 그것도 검찰의 특권화를 비롯한 숱한 부작용을 일으킨 제도를 21세기에도 유일한 선택지라고 강변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퇴보요, 헌법 정신의 파괴다. 윤 총장의 비장한 사퇴가 과장된 몸짓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박용현 논설위원

미국 텍사스주의 이상 한파가 전력 위기를 불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이 가동을 중단한 가운데 포트워스의 전력 회사에 고장 수리용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포트워스/EPA 연합뉴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지난주 미국 텍사스가 한파로 4일간 정전사태(순환단전)를 겪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사실 텍사스는 이미 2011년 단발성 한파로 몇시간의 정전을 겪었지만, 이후 당국이 전혀 대비하지 않은 탓에 수일 지속된 이번 한파로 발전소, 가스전, 상수도 등 주요 시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사태 초기 재생에너지를 반대해온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풍력이 정전 원인”이라고 비난을 쏟아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술 더 떠 “텍사스가 석탄발전과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미국 매체들은 일부 전기소비자들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근거로, “전력시장 개방 때문에 전기사업자들이 투자를 줄이며 정전사태와 요금폭등이 일어났다”는 보도도 했다. 이는 국내 언론에도 선택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사실과 동떨어진 선정적 보도들로 준비되지 않은 기후재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정전이 시작된 지난 15일 텍사스의 가스, 석탄, 풍력 시설과 원전은 예외 없이 모두 한파에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텍사스의 여름 기온에 최적화된 가스·석탄화력과 원전 설비 대부분이 단열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한파로 고장이 나고 총 30GW(원전 30기 분량)가 정지하면서 사태를 일으킨 공범이 되었다. 원전도 한파로 급수펌프 설비가 고장 나 정지하며 사태 악화에 일조했다. 실제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이 원전의 정지가 인근 텍사스주 최대 도시인 휴스턴의 정전사태에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국내 보수언론이 “그나마 원전 덕분에 블랙아웃을 막았다”며 이번 정전사태 내내 텍사스 전력공급량의 10%에도 못 미친 원전을 두고 아전인수식으로 보도한 행태는 어처구니없다.

“전력시장 개방”이 “정전”의 이유라는 보도들도 사실과 다르다. 이번 사태는 경쟁전력시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이미 10년 전 유사한 경험을 하고도 에너지 설비들의 단열처리를 의무화하지 않고 방치해온 공공사업위원회(PUC) 등 당국의 규제 실패에 원인이 있다.

“전기요금 폭등론”은 어떤가? 실제로는 텍사스의 주택용 전기소비자 중 문제의 요금제를 선택한 소비자들은 2만9천호(0.3%)에 불과하며, 나머지 소비자들은 약간의 요금이 올랐을 뿐 요금폭등은 없었다. 요금폭등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이미 주정부가 개입해 적절히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의 진앙인 ‘그리디’라는 3년차 신생 전력회사의 판매전략은 저렴한 도매전기요금(2020년 평균 약 90원/㎾h)을 주택용 소비자들에게 차익 없이 적용하되 매달 10달러의 고정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특이한 방식이다. 그러나 텍사스나 다른 경쟁전력시장이나 이처럼 주택용 소비자들을 변동폭이 큰 도매요금에 직접 노출시키는 무모한 판매 관행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전기판매회사들은 도매요금 변동의 완충 구실을 하며 고정요금제나 소비자들이 스마트계량기의 전력소비 데이터로 결정한 맞춤형 요금제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텍사스 사태의 본질은 특정 에너지나 시장질서와 상관없이 기후변화를 무시했을 때 현대사회가 어떤 재난과 혼란을 겪을 수 있는지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제 세계 각국은 탄소배출 저감 노력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미 변화된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탈원전 공방’이나 ‘시장 담론’ 같은 기존의 정치적 맥락에 이번 사태를 끼워 맞추다 보면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복잡하고 험악해진 기후변화 시대에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현명하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언론보도가 절실하다. 

석광훈 전문위원

[칼럼] 김학의 출금과 정의의 형평

● 칼럼 2021. 2. 3. 05:08 Posted by SisaHan

박용현 논설위원

1.

지난 2004년 독일에서는 경찰이 유괴범에게 아이를 숨겨놓은 장소를 말하지 않으면 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한 사건이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사흘째 어딘가에 감금돼 있는 아이를 구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당한 조처였다는 주장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고문 위협은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돼선 안된다는 주장이 부딪쳤다. 여론은 경찰관 쪽에 우호적이었고,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지만 벌금형에 집행유예라는 ‘상징적 처벌’을 내렸다.

내가 저 논쟁에 참여했다면 경찰관의 반대 편에 섰을 것이다. 수사기관이 추구하는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적법절차를 지켜야 하고, 특히 고문이나 사찰, 자의적인 구금 등은 그로 인한 인권 침해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절대적이고 양보불가능한 금지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충돌은 이런 사례에선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어떤가.

열살 소녀를 납치한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은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조를 진행해 소녀의 주검이 묻힌 장소를 알아냈다. 그 즈음 경찰 수색팀이 주검이 묻힌 장소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범인의 자백 직후 경찰은 수색을 중단하고 범인을 앞장세워 주검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후 범인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했고 그 결과로 발견한 소녀의 주검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석방해달라고 주장했다.(미국에서는 1966년 ‘미란다 판결’ 이후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않는 조사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야 검찰 조사 때 변호사가 입회할 권리가 인정됐고 변호사가 피의자와 떨어진 뒷자리가 아니라 바로 옆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은 2017년부터다. 아직도 변호사는 조사가 끝난 뒤에야 또는 검사의 승인을 얻어야 진술할 수 있는 등 변호사 조력권의 실질적 보장은 여전히 미흡하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요한 적법절차다. 이를 위반했으니 범인은 무죄 방면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의 관념을 자극하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닉스 대 윌리엄스·1984년)에서 만장일치로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의 적법절차 위반(변호사 없는 취조)이 없었더라도 합법적인 다른 방법(수색팀의 수색)을 통해 같은 결과(주검의 발견)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므로, 이 경우에까지 적법절차 위반의 책임을 물어 증거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덮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방대법원은 ‘불가피한 발견 원칙’(inevitable discovery rul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법원칙을 세움으로써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균형과 조화를 꾀했다.

우리 대법원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의 실현도 형사소송 절차를 통해 달성하려는 중요한 목표이자 이념이므로, 형식적으로 보아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그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한 취지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절차 조항의 취지와 그 위반의 내용 및 정도, 구체적인 위반 경위와 회피 가능성,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 또는 법익의 성질과 침해 정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등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3월22일 밤 해외 도피를 시도하고 긴급 출국금지가 이뤄진 시간대별 상황.

2.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절차 위반을 두고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는 것을 보며 위의 사례와 법원칙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외 도피를 방치하는 게 정의에 부합하는가’, ‘봐주기 수사를 한 검사들은 놔둔 채 본말전도 아닌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출국금지 과정에 절차 위반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출국금지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출국금지의 필요성, 절차 위반의 심각성 정도,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 등 여러 요인을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위 검찰 공직자가 사람의 성을 뇌물로 주고받으며 인권을 유린한 범죄의 심각성으로 보나, 검찰이 두차례나 봐주기 수사로 국가 형벌권을 무력화시킨 전비로 보나 해외 도피를 허용할 경우 형사사법 정의에 끼칠 해악은 너무나 컸다.

출국금지라는 조처의 법적 성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형사소송법상 절차와 달리, 출국금지는 법무부 장관이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면 내릴 수 있는 행정조처다. 세금·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출국을 금지시킬 수 있다. 해외로 출국할 자유 또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지만 체포·구금·압수수색 등으로 침해되는 기본권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법적 판단이 깔려있는 셈이다. 그래도 김 전 차관이 외국에 사는 가족을 만날 목적이나 사업상 필요로 출국하다 제지당했다면 권리 침해에 더 무게를 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해외여행 목적이었다면 여행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심야에 위장까지 해가며 공항에 나타난 김 전 차관이 출국금지로 침해당한 법익은 ‘해외 도피의 자유’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문제가 되고 있는 출국금지는 밤 11시가 넘어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가 알려지는 등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검사가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사건번호나 내부 결재 등 필요한 절차를 위반했다는 게 논란의 주된 이유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상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법무부 장관이 직접 출국을 금지키는 방법도 있었다. 앞서 살펴본 ‘불가피한 발견 원칙’에 비춰보면 어떤가. 절차 위반(요건을 갖추지 못한 검사의 출국금지 요청)이 없었더라도 합법적인 다른 방법(장관의 출국금지 조처)을 통해 같은 결과(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대법원도 출국금지 처분의 위법성 판단과 관련해 “출국금지 요청이 있는 경우에도 법무부 장관은 이에 구속되지 않고 출국금지의 요건이 갖추어졌는지를 따져서 처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출국금지 요청이 요건을 구비하지 못 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출국금지 처분이 당연히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출국금지 처분의 요건이 (실제로) 갖추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그 적법 여부가 가려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대법원 2012두18363 판결)

2019년 3월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해외 도피 시도를 보도한 사진.

3.

거듭 말하지만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에서 위법이 확인되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다만 이 사안을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다룰지는 제반 상황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압수수색 등의 과정에서 형사소송법 절차를 어긴 검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사안만 유독 심각하게 절차 위반에 대한 ‘응징의 시범 케이스’로 삼는 건 아무리 봐도 형평성과 공정성의 원칙에 반한다.

검찰이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의 문제점을 따져보겠다면, 출국금지를 주도한 검사와 법무부 관계자만 겨냥할 게 아니다. 해당 검사가 대검찰청에 출국금지 요청을 해달라고 했지만 “소명이 더 필요하다”며 거부당했다고 한다. 과거에 검찰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덮어버린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상황에서 어떤 소명이 더 필요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법원은 이후 김 전 차관 재판에서 성접대 혐의의 유죄가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대검이 보인 소극적인 태도가 적절했는지, 당시 대검 지휘부는 어떤 입장이었으며 어떻게 관여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또 당시 법무부·검찰 내부자가 김 전 차관에게 출국금지 관련 상황을 알려줘 도피 시도를 도왔다는 의혹도 함께 규명해야 한다. 당시 법무부가 이런 의혹에 대해 수사 의뢰를 했으나, 검찰은 공익법무관 2명이 호기심에서 정보를 조회했을 뿐 김 전 차관 쪽에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며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김 전 차관을 두차례나 봐준 검사들과 그를 출국금지시킨 검사를 대하는 검찰의 이중성에 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얼굴이 드러난 동영상을 보고도 덮어버린 수사 검사들과 그 윗선에 대해 형사처벌은커녕 징계 등 최소한의 책임 묻기도 시도한 적이 없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의 적법성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면 앞선 두 차례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본말전도’라는 의문을 풀어줄 도리가 없다. 상식의 잣대로 보나 법적 잣대로 보나 ‘수사 농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진다.

이런 논란과 의구심을 해소하는 방법은 객관적인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다. 검사의 직무상 위법 혐의를 다루는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일 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공직자 사건과 달리 검사 관련 사건은 공수처장의 이첩 요구와 무관하게 무조건 공수처에 넘기도록 돼 있다. 물론 공수처는 아직 검사와 수사관 선발이 이뤄지지 않아 수사를 곧바로 진행할 수 없다는 사정이 있다. 하지만 법 규정대로라면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위법인 상태다. 이 또한 절차 규정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사안이다.

박용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