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럼] ‘묻지 마 정권교체’는 곤란하다

● 칼럼 2022. 3. 5. 05:2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검사 시절의 일탈, 명백한 범죄를 짐짓 모른 척 봐주거나 거꾸로 결론을 정해놓고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혔다는 의혹도 많다. 대장동과 부산저축은행, 삼부토건, 고발사주, 판사사찰 등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부인과 장모의 주가 조작 의혹 등 여러 범죄혐의도 만만치 않다. 일부러 병역을 피했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남들이 써준 것을 읽기만 할 정도로 실력도 형편없다. 국정 과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한 사람이, 무엇보다 기본적인 태도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권교체론에 기대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그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국민이 선택할 시간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당선 가능성이 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각각 유능한 일꾼론과 정권교체론으로 맞서고 있다.

 

집권세력이 제대로 못했다면 바꾸는 게 맞다.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세력에 책임을 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묻지 마 정권교체’는 곤란하다. 집권세력이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꼼꼼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꿀 까닭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면, 그다음엔 ‘좋은 정권교체’인지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꾼 결과가 더 나쁘다면 선거는 그저 단순한 분풀이에 불과하게 될 거다. 5년 만의 대선을 그렇게 허비할 수 없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민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의미가 있으려면, 이전 정권보다 더 잘할 거란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안철수식 ‘묻지 마 정권교체’가 별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거다. 얼마 전 유세에서 “윤석열이 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윤석열을 찍은) 내 손가락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비난했던 사람이 갑자기 윤석열 후보를 지지해달라며 사퇴한 것도 ‘정권교체’를 위한 것이란다. 다당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 결국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권교체의 유력한 대안으로 윤석열 후보가 꼽히지만, 더 좋은 정권교체를 실현할 사람인지 의문이다. 다들 알고 있듯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나 문재인 대통령보다 무엇이든 더 잘할 가능성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무엇보다 대통령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시민으로서의 기본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사람들은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지만, 그건 몰상식하고 매너 없는 사람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은 전혀 다르다.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그 지도자의 역할에 따라 국민은 생사 갈림길에 서기도 하고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기도 한다.

 

국민 앞에서 진행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여준 윤석열 후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윤석열 후보는 국정 운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고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질문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아예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때론 두루뭉술하게 말하거나 동문서답을 했다. 토론의 규칙도 자주 무시했다. 검사 시절 피의자를 두고 호통치던 모습이 저렇겠구나 싶었다. 토론 내내 이재명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만 집중했다. 기회만 있으면 대장동에 대해 공격했지만, 막상 이재명 후보가 선거 이후라도 대장동 특검을 도입해서 끝까지 책임을 묻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이것 보세요”만 반복했다. 다섯 번을 물어도 끝내 답하지 않았다.

토론에 임하는 윤석열 후보는 상대 후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다. 토론을 엉망으로 만들어 미래의 정책과제를 챙겨야 할 귀한 시간을 날려버리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 후보만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는 국민마저 우습게 여기는 태도다. 후보 시절에도 저렇게 행동하는데,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토론을 처음 시작한 1997년 대통령 선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선거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렇게까지 무례한 후보는 일찍이 없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벼락공부로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후보로 나섰으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아무 말이나 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다며 주워 담는 건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검사 시절의 일탈, 명백한 범죄를 짐짓 모른 척 봐주거나 거꾸로 결론을 정해놓고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혔다는 의혹도 많다. 대장동과 부산저축은행, 삼부토건, 고발사주, 판사사찰 등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부인과 장모의 주가 조작 의혹 등 여러 범죄혐의도 만만치 않다. 일부러 병역을 피했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남들이 써준 것을 읽기만 할 정도로 실력도 형편없다. 국정 과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한 사람이, 무엇보다 기본적인 태도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권교체론에 기대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그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목회칼럼] "욕심을 버리십시오"

● 칼럼 2022. 3. 1. 07:0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기쁨과 소망] 욕심을 버리십시오

 

송민호 토론토영락교회 담임목사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게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이란 긴 세월을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며 40년이란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매일 주시는 만나이기 때문에 구태여 욕심을 내서 많이 거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로 적당히 거두는 선, 즉 일 인당 오멜씩을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불필요한 욕심을 가지고 많은 양을 거두었다가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나는 저장하는 음식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daily food)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주시는 몫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둘 수 없어서 이틀 치 거두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안식일용으로 거둔 만나는 하루가 지나도 벌레가 생기거나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만일 1년 치를 한 번에 주셨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매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주시는 만나를 통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를 가르치십니다(마 6:11). 평생 먹을 것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7:34).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놓고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충실히 살고, 오늘 먹을 것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많이 초조하고 불안해합니다. 이전의 좋았던 모습을 그리며 아쉬워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삶을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겠습니다. 욕심은 언제나 금물입니다. ‘오늘 주시는 은혜로 족합니다’라는 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정찬 소설가 칼럼] 촛불혁명과 대통령 선거

● 칼럼 2022. 2. 23. 02:2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찬 소설가 칼럼]  촛불혁명과 대통령 선거

 

촛불혁명은 훼손된 유권자의 존엄성을 되찾는 역사적 행위였고,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사람다운 삶’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20대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의 계승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정찬 | 소설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는 역사학자 이 에이치(E. H.) 카의 명언이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빛을 급속히 잃어갔다. 인터넷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힘을 빠르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속도가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신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만 달려가게 한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니 과거는 잊힐 수밖에 없다. 과거의 중요성은 현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의 역할에 있다. 이 척도를 상실하면 현실에 매몰되어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한 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촛불혁명을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다. 2016년 10월29일 1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17년 4월29일 23차 촛불집회까지 183일 동안 1685만2천명의 시민이 참가해, 구속자와 사망자 한명 없이 민주주의의 질서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평화롭고 장엄한 혁명은 부패와 무능, 통치 권력의 비정상성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304명의 생명과 함께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절망스러운 깨달음과, 국민이 뽑은 대통령 권력이 비선실세에 의해 행사되었다는 사실로부터 형성된 분노였다. 집회에서 한 시민이 치켜든 팻말의 문구 ‘모이자! 내 나라다’에 주권자의 분노와 간절한 열망이 집약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박정희 카리스마’였다. 그러한 후광에 감정이입 된 이들이 박근혜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물론 박근혜도 불행에 빠뜨린 것이었다.

 

2016년의 마지막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시민들. 촛불집회는 2017년 4월29일까지 이어졌다.

 

촛불혁명이 진행되던 2016년 겨울의 주말은 유독 추웠고 눈비가 많이 내렸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11월26일, 광화문광장이 휑할까 걱정하며 나온 사람들이 150만명이었다. 영하 11도로 집회 이후 가장 추웠던 2017년 1월14일과, 한파에다 강풍까지 휘몰아친 2월18일에도 촛불의 열기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 열기로 집회장 안의 온도가 바깥보다 4도에서 6도까지 높았다.

 

촛불혁명이 그전의 혁명과 구분되는 것은 혁명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 때문이다. 수많은 ‘나’가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외치고, 노래 부르고, 퍼포먼스를 하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파편화되어버린 ‘나’가 ‘우리’로 변화하면서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피 흘림 없이 승리를 쟁취한 혁명을 이룬 것이었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함으로써 촛불혁명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세계에 확인시켰다. 촛불혁명이 시작된 2016년의 세계는 인종주의, 쇼비니즘, 기독교 근본주의, 안티페미니즘 등으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에 신음하고 있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어가는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악성의 형태로 분출되어 난민 약자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 테러와 전쟁이 난무하는 지구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촛불 시민들은 민주주의 원리를 평화적으로 구현하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그들의 놀람은 “도시가 시위의 불빛으로 이렇게 빛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답다”라는 국외 네티즌의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한국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좌절의 절망과 고통을 견디며 조금씩, 느리게 민주주의를 쌓아나가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촛불혁명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생명체이듯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생명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욕망 사이에서 늘 위태로웠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 너머 저쪽에 있었다. 촛불 시민들이 광장에서 꿈꾼 것은 잘못 선출된 권력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민주주의 너머에 있는 저쪽의 민주주의였다.

 

다가오는 대선은 역사적 주체로서의 촛불 시민을 광장으로 다시 소환한다. 대선은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역사의 광장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염원을 얼마나 구현해왔는가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터이지만,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비율이 높다는 사실에 통절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촛불의 빛은 지금도 우리 사이를 흘러가고 있으며,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척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차기 정부가 갖추어야 할 것들 가운데 촛불혁명을 구현하는 의지와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게 된다.

 

촛불혁명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 한국을 ‘꼭두각시 대통령의 나라’라고 보도했던 외신 매체들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자 한국인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에 놀라움을 표현하는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그동안 미국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여겨왔고, 한국이 민주화를 이룬 지 불과 30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경이로운 진보다”라고 했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촛불혁명을 계기로 재벌이 주도하는 허약한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는 물론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을 얻었으며, 세계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모델이자 지정학적 핵심 플레이어가 되려는 순간과 마주 섰다”라고 썼다.

 

촛불 시민들이 희구한 것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것은 주권자의 존엄성이 훼손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훼손된 유권자의 존엄성을 되찾는 역사적 행위였고,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사람다운 삶’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은 신냉전과 극우 포퓰리즘,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 갈수록 위험해지는 세계 속에서 민주주의의 역할이 그만큼 높아져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정부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형성된다.

 

20대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의 계승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차기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손에 촛불혁명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칼럼] 윤석열의 상식 밖 언행, 참을 수가 없다

● 칼럼 2022. 2. 22. 02: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 찍게 하려고 일부러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한다.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쏟아내는 막말은 어떤가. 이쯤 되면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8일 경북 상주시 풍물시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어퍼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재승 | 논설위원실장

 

지난 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상식 밖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국정을 운영해보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윤 후보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가 28번의 주택정책으로 계속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을 찍게 하려고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부동산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 없는 사람의 표를 얻으려고 집값을 고의로 폭등시키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무주택자들을 바보로 아는가. 근거도 맥락도 논리도 없는 발언이다. 현 정부의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해 수권 능력을 평가받을 생각은 안 하고 허무맹랑한 선동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걸 ‘부동산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윤 후보는 같은 자리에서 “민주당이 못사는 사람들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서 양극화를 방치하고 조장했다”고도 했다. 증오를 부추기는 갈라치기도 문제이지만 서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 후보는 18일 대구 달성군 유세에선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 명품들 이런 것에 도시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들의 정치 거점 도시에 투쟁 능력, 투쟁 역량이 약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유통 대기업의 매장 신설은 골목상권 보호와 소비자 편익이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다. 광주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 주요 대도시마다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의 해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 후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악의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건가. 국민의힘은 이걸 ‘호남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민생 문제에까지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것도 문제이지만 민주화에 앞장서온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사실 윤 후보의 ‘아무말 대잔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주 120시간 노동’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집 없어서 청약통장 만들어본 적 없다’ 등 셀 수가 없지만,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 악성화되고 있다. 무개념에 적대감까지 더해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승리하겠다는 욕망의 민낯이 보인다.

 

입만 열면 쏟아내는 막말은 또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박살 내겠다” “말아먹었다” “거덜 냈다” “나라 꼬라지” “족보 팔이” “약탈 집단” “무식한 삼류 바보” 등 험악한 말들을 내뱉는다. 최소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다.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호응해주면 신이 나서 더 한다.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까 걱정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8일 저녁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유세를 하며 손가락을 뻗고 있다.

 

자신의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발언에 여권이 반발하자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짓”이라고 성낸다. 진솔하게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되레 뒤집어씌운다. 히틀러도 이렇게까지 수준 낮은 선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 후보도 문제성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윤 후보와는 수위와 빈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려야 하는 선거판에서 꿰맞추기식 양비론은 비겁한 물타기다.

 

윤 후보는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낼까? ‘반문 세력’ 결집을 위한 선거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복잡한 공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막말은 힘도 안 들고 전달력도 좋다. 맹목적 지지자들의 마음에 바로 와닿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비정상적 언행이 끊이지 않는 탓에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몸에 뱄다는 얘기다. ‘구둣발 무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다리가 아파 불편해서 그랬다고 ‘대리 해명’을 했는데, 보통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 신발은 벗는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걸 제대로 지적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또 비판하면 윤 후보는 “친여 매체가 민주당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고 공격한다. 자신의 허물을 겸허히 인정하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능력이 결여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