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가 한국 대선에 주는 교훈

● 칼럼 2021. 12. 21. 02: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제정임 ㅣ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2016년 11월8일 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자 <뉴욕 타임스> 정치담당 기자들은 혼비백산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확신한 나머지 반대 상황엔 아예 대비하지 않았는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승자가 도널드 트럼프였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낸 질 에이브럼슨은 저서 <진실의 상인들>(Merchants of Truth)에서 당시 1면에 ‘마담 프레지던트’(여성 대통령) 기사를 준비해두었던 기자들이 황망하게 책상으로 뛰어가던 모습을 묘사했다. 그들은 여론조사를 믿었던데다, ‘여성혐오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던 남자가’ ‘탈세 등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놀람 속에 집권한 트럼프는 세가지 ‘퇴행’으로 미국 사회에 내상을 남겼다. 첫째는 과학을 부정하고 전문가를 불신한 일이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질 때, 트럼프는 방역책임자의 판단을 무시하고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를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트럼프 추종자들의 방역 비협조, 백신 음모론과 취약한 의료보험시스템이 겹쳐 미국에선 지난 2년간 3억3천만 인구 중 80만명이 코로나로 숨졌다. 우리나라 청주시 인구만큼이 사라진 것이다.

 

트럼프의 두번째 퇴행은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깨고 지구적 과제 해결을 방해한 것이다. 그는 2017년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였던 그는 탄소배출 규제가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이어 탄소배출 2위인 미국이 이렇게 나오자 기후위기 대응 동력은 떨어졌고, 기후재난은 가속화했다.

 

그의 세번째 퇴행은 소수자 혐오를 선동하고 사회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그는 여성을 비하했고, 장애인을 조롱했고, 유색인종·이주민·난민을 범죄자로 몰았다. 백인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억울하게 죽인 데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발포 위협도 했다. 그가 ‘코로나19는 중국 탓’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한 후 미국 곳곳에서는 한국인 등 아시아인을 겨냥한 ‘이유 없는 폭행’이 급증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트럼프는 엄중한 교훈을 준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재난 상황에서 국민이 무더기로 죽어나갈 수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지구적 과제 해결을 망치는 ‘민폐 국가’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많은 이들이 목숨 걸고 쟁취한 인권과 민주주의도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 석달간 우리는 ‘퇴행’이 아닌 ‘전진’의 길로 나라를 이끌 사람이 누구인지, 정신 바짝 차리고 따져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여론지형은 걱정스럽다. 후보의 가치관과 정책을 검증하기보다 가족을 둘러싼 추문 공방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가족이, 특히 세금으로 활동을 지원받게 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따져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이 될 인물의 생각과 정책을 검증하는 일보다 중요하진 않다. 연간 수백조원의 예산과 군대, 경찰, 행정 조직을 움직이는 책임자를 뽑는 일이다. 과연 민생과 인권, 민주주의를 개선할 사람인지, 아니면 뒷걸음치게 할 사람인지 살피는 데 우리는 더 집중해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최저임금제 후퇴를 시사했고,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발언 등으로 노동인권 침해 우려를 샀다. 기후위기를 막기엔 정부의 탄소감축 목표가 낮다고 환경단체들이 비판하는데도, 그는 기업을 위해 더 낮춰야 한다는 의중을 보였다. 또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며, 기본적 사실관계도 모른 채 탈원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토보유세 기반의 기본소득을 공약했다가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물러섰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을 외쳤지만 이를 위한 공시가격 현실화에 제동을 걸어, ‘표를 위해 원칙을 허무는 사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는 탈원전을 공약하고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검토를 시사하는 등 모호한 행보를 보인다.

 

언론은 이런 문제들을 집중 점검해야 한다. 후보들의 진짜 생각은 무엇이며, 실제 추진할 정책은 어떤 것인지, 날카롭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서 퇴행이 아닌, 좀 더 안전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나라로 전진하게 할 대통령감이 누구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5년 전 보수 정권의 참담한 실패는 박근혜의 카리스마에 눌린 측근들이 벌벌 떨며 호가호위하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지도자가 실은 제대로 국정을 이해하거나 이끌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게 실패의 핵심 요인이다. 문제는 측근이 아니라 지도자 자신이다.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사이 갈등은 ‘윤핵관’으로 시작해 ‘김종인’으로 끝났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대표가 당무를 중단할 정도로 두 사람의 대립 이유가 얼마나 중대한 것이었는지, 갈등의 원인은 사라진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은 없다. 지난 주말 윤석열과 이준석의 극적인 울산 회동 직후에 나온 발표는 “김종인씨가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뜬금없는 싸움과 화해가 또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이번 파동이 드러낸 국민의힘의 실상은 의미심장하다. ‘윤핵관’과 ‘김종인’이라는 두 핵심 키워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5년 동안 국민의힘은 변한 게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의 줄임말인 ‘윤핵관’이 핵심 이슈로 떠오른 건, 당무를 중단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버린 이준석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를 비판하면서부터다.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윤핵관을 모른다고 한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달간 ‘윤핵관’이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고 내용 파악도 못했다면, 후보의 눈과 귀를 막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누군가가 혼돈을 부추기는 상황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새누리당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른바 ‘친박 핵심 인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오직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이 ‘박심’을 말하니까, 친박·진박·종박이란 말이 등장하고 나중엔 ‘진박 감별사’라는 기상천외한 단어까지 언론에 오르내렸던 게 아닌가.

 

정치 지도자가 자기의 입으로 분명하게 국가 또는 당의 운영이나 선거운동 방향을 말하고 주변을 설득하지 못할 때, ‘윤핵관’이니 ‘진박’이니 하는 모호한 어휘가 정치권을 휘돌아다니게 된다. 이준석 대표는 이를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린 사람들’ 탓으로 돌렸지만, 누구도 대통령 또는 대통령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다는 걸 이 대표 스스로가 더 잘 알 터이다. 5년 전 보수 정권의 참담한 실패는 박근혜의 카리스마에 눌린 측근들이 벌벌 떨며 호가호위하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지도자가 실은 제대로 국정을 이해하거나 이끌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게 실패의 핵심 요인인 것이다. 문제는 측근이 아니라 지도자 자신이다. 정치에 뛰어든 이후 윤석열 후보 주변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윤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뭐가 다른 것일까 궁금해진다. 예리한 칼을 휘두르는 검찰 내부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한 게, 국민 삶을 책임지고 숱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 현안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과연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저녁 울산시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한 뒤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후보가 모호하니까, 이걸 가리려고 등장한 게 바로 ‘김종인’이다. ‘또 김종인이냐’는 말이 나오긴 해도, 그의 합류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 도움이 되리란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모습은 2012년 대선 때 이미 한번 봤던 것이다. 그때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후보의 간판 공약으로 내세웠고, ‘개발독재 주역의 딸’이란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오죽하면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 “박근혜까지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시대가 됐다”고 탄식했을까 싶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정확히는 취임도 하기 전에 ‘경제민주화’는 폐기됐고, 김종인씨는 나중에 “국민에게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를 게 없다. 김종인은 선대위에 참여하자마자 합리적 이미지의 금태섭과 정태근을 중용하고, ‘공정한 경제’를 내세워 10년 전의 경제민주화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정당이, 김종인 자신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1년 가까이 당을 이끌 때도 실질적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정당이 불과 몇달 만에 바뀔 리는 없다. 윤석열 후보가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발언한 건, ‘지도자가 유능할 필요는 없다, 사람만 잘 쓰면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전두환 시대에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 만행이 저질러졌고, ‘인사가 만사’라는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몇몇 중도개혁 인사들로 외양을 꾸밀 순 있겠지만, 국민의힘은 5년 전 또는 10년 전의 새누리당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윤핵관’과 ‘김종인’이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한겨레 칼럼] “기소 당하면 인생이 절단난다”

● 칼럼 2021. 12. 1. 02:4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내로남불 무감각의 검찰주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국민의힘 서울캠퍼스 개강 총회’ 행사에서 대학생들과 대화하며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평생 검사로 살아왔고 검찰총장까지 지낸 이의 통찰이 담긴 말이다. 검찰권이 지니는 공적 무게감과 벼려진 양날의 칼 같은 위험성을 투박하지만 와닿는 언어로 표현했다. 그는 “범죄를 은폐하는 것은 그 범죄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도 했다. 윤 후보의 말은 최근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선명하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짚어내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먼저 ‘고발 사주 의혹’. 요체는 검찰이 특정 인물들을 찍어 검찰에 고발하도록 국민의힘에 고발장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에 착수해 기소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전제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기소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특정 인물들에게 “재앙”을 선사하기 위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윤 후보가 말한 “함부로 기소”하는 위험성을 오싹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 특정 인물들 중에는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피디도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은 언론의 의혹 제기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됐는데,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기에는 지지부진하다가 그가 퇴직한 뒤 수사가 급진전돼 권오수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대거 구속·기소됐다. 이제 김건희씨에 대한 수사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결국 고발 사주는 검찰총장의 가족과 관련한 정당한 의혹 제기를 한 언론인들의 “인생이 절단”날 뻔한 사건인 셈이다.

 

만약에 고발 사주가 실제로 실행돼 기자·피디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면 주가 조작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아마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이 점에서 고발 사주는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는 측면도 지닌다.

 

‘장모 문건’은 또 어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일 때 장모 최아무개씨가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최씨를 두둔하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고 대검찰청 대변인이 이를 언론에 적극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최씨는 이후 은행 잔고증명서 위조와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로 기소됐고 후자는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장모 문건 역시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얼마 전 대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기소 자체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가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뒤 관련 검사들이 징계를 받자 검찰이 예전에 기소유예로 끝냈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을 끄집어내 유씨를 재기소했는데, 대법원이 ‘보복성 기소’라고 인정한 것이다. 간첩죄를 뒤집어 씌웠다가 무죄를 받자 다른 혐의로 다시 기소한 검찰의 행태는 “굉장히 무서운 것” 그 이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검사는 없다.

 

이밖에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 룸살롱 향응 검사 99만원 불기소 사건 등 검찰이 “법률적 숙련”을 이용해 기소를 불기소로 바꾸고 불기소를 기소로 바꾼 사건들은 부지기수다.

 

이렇게 검찰은 한없이 무거운 검찰권을 노리개 삼고, 검찰권의 사유화라는 위험천만한 유희를 벌여왔다. 윤 후보는 그 조직의 일원이었고 수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자신이 검찰총장으로서 ‘판사 사찰’ 문건 작성·배포, ‘채널에이(A) 사건’ 감찰·수사 방해 등 일그러진 검찰권 행사로 징계를 당했다. 법원은 이 징계 사유가 중대해 면직 처분도 가능할 정도라고 판결했다.

 

서두에 인용한 윤 후보의 말은 ‘검찰의 중립성 보장 방안’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는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검찰권이 아무리 불공정하게 행사돼도 조직 전체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데 그 안에서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히든 달라질 게 있을 리 없다. 고발 사주, 장모 문건, 보복 기소 등 비뚤어진 검찰권 행사를 엄히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검찰을 향한 출발점이다. “무서운” 권한을 주면 책임도 무섭게 묻는 게 민주국가의 원리다. 독일·스페인·노르웨이·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 판검사의 직권남용·직무유기를 일반 공무원보다 더 중하게 처벌하는 ‘법 왜곡죄’를 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검찰 인사를 통해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윤 후보의 답변을 보며 오히려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윤 후보는 그를 검찰총장에 앉힌 인사가 검찰 중립성을 위해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할까. 그는 검찰 중립성과 배치되는 행위로 징계를 받지 않았나. 무엇보다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퇴직해 대선에 뛰어든 것 자체가 검찰 중립성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 아닌가. 이 질문은 대선 후보 윤석열에게, 그리고 만약 그가 당선되더라도, 묻고 또 물어야 할 태생적 질문이다. 다음에 윤 후보를 만나는 청년들도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 박용현 논설위원 >

                             [민중의 소리 최민의 시사만평]

좋든 싫든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 부부

배우자 공적 업무에 미칠 영향 가늠해야

 

 윤석열 · 김건희 씨 부부. 

 

전두환과 노태우는 반란 수괴이자 학살자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두려움과 염치는 달리 가졌다. 둘을 가른 차이는 뭐였을까. 나는 이순자와 김옥숙이 아닐까 직관한다. “내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우기고 돈은 뒤로 빼돌리고 대놓고 골프채 휘둘러온 이와, 자식을 통해 대리 사과라도 하고 추징금을 완납하고 줄곧 숨죽여 지내온 이를 각각 배우자로 둔 차이랄까. 부창부수라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수십 년 영욕을 함께해온 부부라면 삶의 태도, 특히 공적 태도는 일치하기 마련이다. 좋든 싫든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를 세트로 욕하고 세트로 예우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런지 때론 배우자를 보면 퍼즐이 맞춰지기도 한다. 민망하지만, 사실이다. 저 여자(남자)가 왜 저렇게 괜찮은지(형편없는지) 오랜 커플(결혼) 생활을 해온 이라면 파트너(배우자)를 보고 미스터리가 풀린 적도 꽤 있다. 가령, 아무리 봐도 그릇이 아닌 듯한 빌 클린턴이 어찌 대통령이 됐는지, 누가 봐도 우월한 비주얼의 멜라니 트럼프는 왜 그리 표정이 썩어 있는지 말이다.

 

정치인의 배우자는 참으로 모순된 자리이다. 비선인데 늘 노출된다. 큰 관심을 받지만 소신이나 발언은 삼가야 하고, 최측근 실세이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책임은 없는데 또 공적 관리는 받는다. 나서면 나댄다 하고 가만있으면 구린 게 많다 한다. 압축성장의 과정만큼이나 배우자 역할에 대한 인식의 편차가 크고 거기에 또 남녀 성비 불균형과 성역할 고정관념까지 얽히고설켜 있으니, 그래서 그간 정치인 배우자들은 낯내기 좋고 욕은 안 먹을 봉사활동만 주야장천 해왔는지 모르겠다. 두 유력 대선 주자의 배우자인 김혜경씨와 김건희씨가 어떤 이유로든 목욕탕에 때 밀러 다니지 않는 것만 해도 역사의 큰 진전이라 해야 할까.

 

후보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격렬히 관심을 끄는 게 옳다고 본다. 그야말로 사생활이다. 사이좋게 손 흔들고 인사 다니는 정도까지만 허용하고 지켜보자. 가장 가까운 심기 경호인이자 열성 지지자니까. 후보의 공적 업무 수행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는 정도 이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하필 이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는 크고 작은 구설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검찰 수사 선에 올라 있다. 논문 표절이나 허위 경력 기재 등도 큰 논란거리다. 윤 후보가 유난히 공사 구별이 안 되는데다 “선거는 어차피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말할 정도의 인식을 가진 까닭에 더욱 걱정된다. 저러다 대통령 되면 진짜 자기 가족만 봐주거나 배 불리는 게 아닌가 해서다. 가족의 범위는 쉽게 유사 가족으로 확장된다. 내 가족, 내 측근, 내 지지 그룹, 내 세력의 비즈니스가 돼버린다면? 김건희씨가 발언권도 없이 혹독한 시험대에 오르는 이유는 이런 남편 윤석열의 인식과 처신 때문이다. 국민 원망하지 마시라.

 

일을 더 그르치는 건 국민의힘이다. 이 와중에 배우자포럼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모임을 발족하려 한다. 원내외 당협위원장 배우자들이 모여 강의 듣고 토론하고 대선에서 할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란다. 김건희씨의 ‘공개 활동’을 돕기 위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실과 다르다”며 “당대표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본인과 본인의 배우자가 나서서 진작부터 꾸려왔고 당 중앙여성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 활동이라 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배우자가 있고 그 배우자는 곧 여성이라는 전제도 우습지만,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는 배우자에게 당의 공조직이 지원하는 모양새도 부적절하다. ‘아내포럼’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게 다행일까.

 

비혼이라는 이유로 ‘자동 패싱’ 당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그나마 이 일로 욕먹는 것은 피하겠다. 밖에다 대고 되지도 않을 성별 갈라치기 하지 말고 안에서 벌어지는 이런 후진 일부터 걸러주면 좋으련만. < 김소희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