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 찍게 하려고 일부러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한다.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쏟아내는 막말은 어떤가. 이쯤 되면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8일 경북 상주시 풍물시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어퍼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재승 | 논설위원실장
지난 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상식 밖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국정을 운영해보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윤 후보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가 28번의 주택정책으로 계속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을 찍게 하려고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부동산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 없는 사람의 표를 얻으려고 집값을 고의로 폭등시키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무주택자들을 바보로 아는가. 근거도 맥락도 논리도 없는 발언이다. 현 정부의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해 수권 능력을 평가받을 생각은 안 하고 허무맹랑한 선동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걸 ‘부동산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윤 후보는 같은 자리에서 “민주당이 못사는 사람들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서 양극화를 방치하고 조장했다”고도 했다. 증오를 부추기는 갈라치기도 문제이지만 서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 후보는 18일 대구 달성군 유세에선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 명품들 이런 것에 도시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들의 정치 거점 도시에 투쟁 능력, 투쟁 역량이 약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유통 대기업의 매장 신설은 골목상권 보호와 소비자 편익이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다. 광주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 주요 대도시마다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의 해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 후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악의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건가. 국민의힘은 이걸 ‘호남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민생 문제에까지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것도 문제이지만 민주화에 앞장서온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사실 윤 후보의 ‘아무말 대잔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주 120시간 노동’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집 없어서 청약통장 만들어본 적 없다’ 등 셀 수가 없지만,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 악성화되고 있다. 무개념에 적대감까지 더해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승리하겠다는 욕망의 민낯이 보인다.
입만 열면 쏟아내는 막말은 또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박살 내겠다” “말아먹었다” “거덜 냈다” “나라 꼬라지” “족보 팔이” “약탈 집단” “무식한 삼류 바보” 등 험악한 말들을 내뱉는다. 최소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다.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호응해주면 신이 나서 더 한다.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까 걱정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8일 저녁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유세를 하며 손가락을 뻗고 있다.
자신의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발언에 여권이 반발하자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짓”이라고 성낸다. 진솔하게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되레 뒤집어씌운다. 히틀러도 이렇게까지 수준 낮은 선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 후보도 문제성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윤 후보와는 수위와 빈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려야 하는 선거판에서 꿰맞추기식 양비론은 비겁한 물타기다.
윤 후보는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낼까? ‘반문 세력’ 결집을 위한 선거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복잡한 공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막말은 힘도 안 들고 전달력도 좋다. 맹목적 지지자들의 마음에 바로 와닿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비정상적 언행이 끊이지 않는 탓에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몸에 뱄다는 얘기다. ‘구둣발 무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다리가 아파 불편해서 그랬다고 ‘대리 해명’을 했는데, 보통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 신발은 벗는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걸 제대로 지적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또 비판하면 윤 후보는 “친여 매체가 민주당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고 공격한다. 자신의 허물을 겸허히 인정하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능력이 결여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
미래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낡은 노동관, 구태의연한 사상검열, 호전적 냉전의식이 난무한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성숙한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 나라가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결국 막아낼 것이다.
20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전이 막을 올렸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20대 대선의 공식 선거전이 막을 올렸다. ‘최악 중에 최악’을 뽑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혹평 속에 어떤 열기도, 희망도, 감동도 없는 이상한 선거가 진행 중이다. 모두 후보들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진짜 문제는 후보들에게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전환의 시대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대 대선은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 새 100년의 첫번째 대선이다.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후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이 나라는 근대국가가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비극을 모조리 겪었다. 식민의 역사, 분단의 역사, 냉전의 역사, 내전의 역사, 군사독재의 역사를 모두 경험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시련 속에서 우리는 찬란한 민주혁명과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100년 영욕의 역사를 돌아볼 때, 대한민국 새 100년을 열어갈 대통령의 자리는 결코 그 무게가 가벼울 수 없다. 이번 대선은 비극의 한 세기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도약하는 ‘역사적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둘째, 이번 대선은 ‘선진국 대한민국’이 치르는 첫 대선이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여, ‘30-50클럽’ 가입 등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선진국다운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성장 사회’에서 ‘성숙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이런 ‘사회적 전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셋째, 이번 선거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치르는 첫 대선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가치의 전도’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사유하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특히 물질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문명사적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번 대선은 바로 이러한 ‘생태적 전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요컨대, 20대 대선은 ‘대한민국 새 100년’의 역사적 전환, ‘선진국 대한민국’의 사회적 전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3중의 전환 시대’에 치르는 첫 선거이다. 이런 전환 시대의 의미를 통찰하고, 거대한 전환을 감당할 비전과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럽다. 첫째, 논쟁의 지점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미래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낡은 노동관, 구태의연한 사상검열, 호전적 냉전의식이 난무한다.
둘째, 논쟁의 지형이 극도로 보수적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샌더스와 워런은 대학 무상등록금, 대학생 부채탕감, 무상보육, 부유세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 한국에선 미국 민주당이 내놓은 수준의 공약을 내건 후보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정치지형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셋째, 논쟁의 관점이 지극히 미시적이다. 국가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구상해야 할 대통령 후보들이 ‘소확행’ 운운하며 현실 안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가장 당선이 유력시된다는 윤석열 후보의 퇴행성이다. 그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3대 전환’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이다. ‘새 100년의 대한민국’은 진취적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을 요구하지만, 그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다. ‘멸공’ 퍼포먼스에서 드러난 냉전의식, ‘선제공격론’에서 나타난 호전적 대결의식은 한반도에 새로운 전쟁위기를 자초할 위험이 다분하다. 또한 ‘선진국 대한민국’은 성숙하고 이성적인 지도자를 요청하지만, 윤 후보가 보이는 권위주의적 성격, 낮은 인권 감수성, 샤머니즘적 성향은 선진국 지도자의 수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나아가 ‘포스트코로나 대한민국’은 생태적 감수성을 지닌 지도자를 요구하지만, 윤 후보는 생태의식은커녕 생태적 기본 지식도 결여하고 있다.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낸 책임은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있다. 윤석열은 민주당에 대한 분노의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통절하게 반성하고, 진솔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촛불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선거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성숙한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 나라가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결국 막아낼 것이다.
[칼럼] 마음은 흐리고 몸은 뻣뻣한 후보가 집권하면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렬한 증오의 표현이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오직 수사니까, 그 수사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비리 수사하듯이 국정 운영을 해도 될 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한가한가. 모든 사람이 현 정부의 적폐 수사가 지나쳤다 비판해도, 그 칼을 휘두른 윤 후보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박찬수 | 대기자
“문재인 정부 스스로 문제될 게 없다면 불쾌할 게 없지 않겠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현 정부 적폐 수사를 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하자 윤 후보는 이렇게 대꾸했다. 다음날엔 “내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 어떠한 사정과 수사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후보가 ‘사정 수사는 하겠지만 정치보복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술은 마셔도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말처럼 교묘한 언사로 들린다. 역대 어느 대통령후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치보복’을 시사한 사례는 없다. 윤 후보의 발언은 검사 마인드로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의 단면을 드러낸다.
‘죄 없으면 두려워할 게 뭐 있나.’ 밀폐된 조사실에서 검사가 쉽게 던지는 이 말은, 바꿔 말하면 “탈탈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어디 있겠나‘라는 일종의 겁박이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검사이던 금태섭씨는 <한겨레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검찰은 발칵 뒤집혀 금 검사를 인사조처했고, 연재는 첫회만 실린 채 중단됐다. 이 글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수사기관에 입건되어 피의자가 된 때의 곤혹스러움은 경험자가 아니면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도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 심지어 오랫동안 판사, 검사, 변호사로 활동하던 법률가나 수사가 직업인 경찰관도 피의자가 되면 불안에 떤다.” 피의자의 이런 불안감을 최대한 이용해 실수를 이끌어내고 유죄로 몰아가는 게 검찰의 수사 기법임을 이 글은 말한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할 법한 말을 지금 유력 대통령후보의 입에서 듣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국무부 이메일 논란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힐러리는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을 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선거에서 이기면 정적을 구속시키겠다고 말하는 후보가 있다. 이에 비하면 모든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시카고트리뷴>의 에릭 존은 칼럼에서 “아직 바닥이 아닌 건가?”라고 아연해했다. 트럼프 집권 시기에 미국 사회가 얼마나 분열되고 전세계에 갈등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해 10월 미국 퓨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 공동 1위가 바로 한국과 미국이다. 윤 후보의 발언이 현실화하는 순간 한국은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설 게 분명하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역대 정부에서 이전 정권 비리에 대한 수사가 없었던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이 공개적이고 전면적으로 이전 정권 수사를 벌인 적은 두 번 있다. 한번은 문재인 정부 때고, 다른 한번은 ‘중단 없는 개혁과 사정’을 천명한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직후에 집권했다. 김영삼 정부는 수십년간의 군부 통치 이후에 등장한 첫 민간 정부였다. 둘 다 ‘적폐 수사’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 외엔 어느 대통령후보도 상대 후보 또는 정치세력을 겨냥한 사정 수사를 다짐하진 않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김대중 후보는 “정치보복은 없다”고 선언했고, 2012년 박근혜 후보조차 ‘100%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해도 이전 정권 수사는 되풀이됐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진 게 한국 정치의 아픈 현실이다. ‘집권하면 전 정권 수사를 할 거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세번이나 강조한 윤 후보 말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렬한 증오의 표현이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오직 수사니까, 그 수사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비리 수사하듯이 국정 운영을 해도 될 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한가한가. 모든 사람이 현 정부의 적폐 수사가 지나쳤다 비판해도, 그 칼을 휘두른 윤 후보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백인정권에 27년간 투옥됐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뒤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한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의 마음은 흐리고, 몸은 열차 객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정도로 뻣뻣한 것처럼 보인다.
[칼럼] 구둣발과 검찰공화국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기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구두를 신고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윤석열 후보 공약대로 수사지휘권을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 | 법조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찰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법 분야 공약을 14일 내놨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진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에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가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유지해오거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해온 장치들을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8조에 명시된 법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로 꼽힌다. 1949년 이 법이 제정된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됐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선 검찰청의 수사에 장관이 직접 관여할 수 없도록 한 일종의 검찰 독립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이 조항을 폐지하고, 검찰에 예산편성권까지 주겠다고 한다.
검찰 독립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그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될 게 뻔하다.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견제장치마저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예컨대 임기 2년이 보장된 검찰총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거나, 수사를 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를 무슨 수로 통제한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횟수가 이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 이전에 수사지휘권이 행사된 경우는 노무현 정부 때 한차례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세차례 발동됐다. 역설적으로 과거보다 심했던 윤석열 검찰의 폭주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수사지휘권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지휘권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방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경찰에도 주겠다는 공약도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윤 후보 본인의 속마음이 반영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윤 후보는 ‘검경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의 공수처법 24조를 수정할 뜻을 밝히면서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제도 수정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목할 대목은 그가 이런 뜻을 밝히며 덧붙인 말이다. 그는 이런 제도 수정에도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공수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등 사건으로 입건돼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실상 ‘정치보복’을 시사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수사를 할 것인가’란 물음에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구체적인 혐의를 들지도 않고 ‘범죄’라고 기정사실화한 다음, 수사를 통한 ‘처벌’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중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의 인터뷰와 이번 공약을 종합하면, 윤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검찰공화국’이라는 실로 간단명료한 말로 압축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군사독재정권은 ‘군홧발’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짓밟아왔다. 국민 위에 군림해온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공교롭게도 윤 후보는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기 하루 전, 정책공약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에서 구두를 신은 채 맞은편 의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입길에 올랐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열차 좌석에 떡하니 올려진 구둣발은 이 시대의 암연을 암시하는 또렷한 징후가 돼가고 있다.
눈이 많이 왔습니다. 창문너머 이웃집 지붕도 하얗고 집 앞의 길도 하얗고 저 건너 나무도 하얗고 세워둔 차도 하얗습니다. 밤이 되고 기온이 떨어져 내린 눈이 살짝 얼어붙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침에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손이 시립니다. 찬바람 맞으며 차창에 얼어붙은 얼음을 긁어내고 눈을 치울 생각 때문이겠지요. 겨울이 낭만적이기는 합니다만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몇 자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이들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쓰던 글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소리는 창밖에서 들려옵니다. 꼭대기 층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아래서 제설업체 직원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는 포근한 잠자리에 들어서 행복한 단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내고 내일을 기대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누군가는 먼 나라의 공주를 구하려고 불을 뿜은 용과 싸우는 기사의 용감한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고요히 기도하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거룩한 말씀을 새기며 깊은 묵상으로 들어갈 때, 누군가는 골똘히 생각하며 또박또박 하루를 일기장에 담아낼 때.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위해 시간을 가꾸고 있을 그 때 얼어가는 눈을 서걱서걱 긁어내고 소금을 뿌려 아침이 미끄럽지 않도록 길을 여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그 분들은 이른 새벽에도 그렇게 길을 내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교회 문을 열기 위해서 일찍 나간 새벽에도 너른 주차장 한쪽으로 설산을 만들고 있었고, 걸어야 하는 좁은 길을 말쑥하게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별들도 깜빡이며 졸고 태양은 코를 골고 있는 밤 같은 새벽에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접으며 포근하고 따뜻한 곳에 몸을 뉘일 때 김을 내 뿜으며 땀 흘리며 길을 열고, 많은 사람들이 일을 내려놓고 깊이 잠들어 아늑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때 분주하게 움직이며 길을 여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과 다른 길을 여시고 다른 길을 걸으신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모두가 평탄하고 넓은 길을 찾고 오르는 길을 찾을 때 좁은 길을 여시고 내려가는 길을 여신 예수님.
사람들이 캄캄한 세상의 밤이 혼돈과 흑암인줄도 모르고 그 안에서 평안을 구하고 잠을 청할 때 빛을 가져오신 예수님은 캄캄한 하늘 아래에서 십자가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사방이 고요하고 바람에 날리는 눈마저 숨죽여 흩어지는 오늘 밤에 말없이 서걱서걱 길을 내는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없이 수고하고 땀 흘리며 섬기며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여러분들의 어깨 너머에도 예수님의 미소가 보입니다. 샬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는 지난해 7월26일 <문화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제 아내는 (저한테)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후에도 몇번 “아내가 정치 참여에 아주 질색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2주 전인 7월12일 김건희씨는 ‘서울의소리’ 이아무개 기자와 통화하면서 “나는 기자님이 언젠가 제 편 되리라 믿고, 나 진짜 우리 캠프로 데려왔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가 좋은 성과 이루면서 (…) 사회정의 구현하는데 같이 노력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했다.
‘우리 캠프’로 영입하고 싶다, 이게 정치 참여에 질색했다고 한 사람이 한 말이 맞나? 물론 남편의 대선 출마가 결정된 뒤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돕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윤 후보는 그 5개월여 뒤인 12월22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부인은 언제 등판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등판)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답했다. ‘주요 의사결정이나 정치적 결정에 대해 부인과 상의하나’라는 질문에는 “잘 안 한다. 나하고 그런 얘길 안 하기 때문에 (아내가) 섭섭하게 생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여전히 김씨는 정치를 싫어하고 상의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씨는 이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한테 그런 거(선거운동) 좀 컨셉트, 문자로 보내줘. 내가 이걸 좀 정리해서 우리 캠프에 적용을 좀 하게”, “우리 남편한테도 다른 일정 같은 거 하지 말고, 캠프가 엉망이니까 조금 자문 같은 거 받자, 이렇게 할 거예요. 담주부터 그렇게 할 거야”(7월21일). 정치 현안과 관련해선 ‘김종인이 (총괄선대위원장) 수락했네’라는 물음에 “원래 그 양반이 오고 싶어 했어 계속. 거 봐 누나 말이 다 맞지”(12월3일)라고 정보력을 과시했다.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거야”(9월15일)라며 경선 경쟁자를 흠집내달라고 사주했다.
이쯤 되면 헷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 후보는 정말로 부인의 정치적 행보를 몰라서 저런 말을 했나, 아니면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건가.
몰라서라면 경우의 수는 다시 두가지다. 첫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대로 사실상 배후에서 ‘우리 캠프’를 움직이는데도 윤 후보는 몰랐다. 둘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자신의 위상을 뻥튀기한 것이다. 남편이 ‘바보’거나 부인이 ‘허언증’이거나다. 그럴 리야 있겠나. 개인적으로는 알면서 거짓말을 한 것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이유다.
윤 후보가 부인 역할에 대해 ‘동문서답’으로 넘긴 건 또 있다. 지난해 10월 ‘개 사과’ 논란 때, 김씨가 에스엔에스(SNS)팀의 막후 지휘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 후보는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면서도 “제 처는 다른 후보 가족들처럼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아서 오해할 필요 없다”고 피해나갔다.
문제는 윤 후보가 ‘제 아내는 역할이 없다’고 방어막을 친 뒤에서 김씨가 실제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때 벌어진다. 이런 인물을 부르는 말이 ‘비선실세’인데, 김씨는 비선실세의 대명사 최순실씨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최씨야 애초 대통령 옆에 있을 자격이 없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비서관을 부리며 청와대를 무단 출입한 게 발각됐고, 국정농단이 들통났다. 최씨의 존재 자체가 국정농단의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만약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늘 청와대에 함께 머물 자격을 부여받을 존재다. 그때도 윤 후보는 계속 지금처럼 ‘아내는 정치를 질색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국민들은 김씨가 실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배우자의 대외 활동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다고 ‘비선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지는 못한다. 공개된 ‘비선’ 배우자가 그냥 비선실세보다 더 위험한 이유다.
하물며 김씨는 이 기자에게 특정 언론을 콕 집어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하하하, 무사하지 못해.” “얘네들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다.” 웃으며 한 얘기라 더 오싹하다. 지금이 또 다시 어른거리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차단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김씨와 윤 후보의 말 사이 간극을 곱씹고, 행간의 진실은 뭔지 묻고 또 캐물어야 한다.
[사설] 추가 공개된 ‘김건희 발언’, 분명한 해명 필요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 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취파일’과 관련해 <열린공감티브이(TV)>를 상대로 낸 방영금지 가처분신청에서, 서울중앙지법이 19일 “사생활 부분을 제외하고 방송해도 된다”고 결정했다. 대선 후보 배우자의 신분과 발언의 공적 성격을 분명히 적시하면서, 서울서부지법이 14일 공개를 금지했던 내용 대부분을 추가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법원이 인용한 김씨의 발언을 보면 하나같이 헌법적·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김건희씨뿐 아니라 윤석열 후보도 이런 발언들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하는 게 마땅하다.
재판부는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김씨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견해, 여성관, 정치관, 권력관 등은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논문 및 각종 학력·경력·수상실적 표절·왜곡·과장 의혹 등도 유권자의 공적 관심 내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봤다. 결혼 전 사생활 의혹도 “기업, 검찰 간부 등과의 커넥션, 뇌물수수 의혹 등과 얽혀 국민의 관심사가 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새로 공개된 김건희씨의 발언을 보면, 앞서 <문화방송>(MBC)이 공개했던 내용보다 더욱 충격적이다. 김씨는 일부 언론사를 지칭하며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넣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보복의 방안으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놀랍다. “한동훈 (검사장)하고 연락을 자주 하니 제보할 것이 있으면 대신 전달해주겠다”고 한 대목은 검찰 고위직에게 단순한 친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암시한다. 한 검사장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절 최측근이었다. 윤 후보는 부인의 이런 행동을 모를 수가 있었던 건지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김씨가 무속에 심취해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윤 후보 주변에 무속인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정에 무속이 개입했던 폐단을 이미 박근혜 정부 때 똑똑히 봤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윤 후보 장모 문제를 제기한 정대택씨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철회되는 과정에 김건희씨가 개입한 정황을 녹취록을 근거로 취재해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이것 또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김종인, 김건희에 불쾌감…“말을 너무나 함부로 한다”
“저런 언행이 대통령 부인 적합하겠냐는 여론 만들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21일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7시간 통화 녹취록에서 자신을 거론한 것에 대해 “그 사람이 말을 너무나 함부로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라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잘 아시다시피 내가 사실은 선대위에 선뜻 참가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다”라며 “무슨 거기에 보면 잔칫집이니까 오고 싶었을 거라고 그런 얘기가 났는데 나는 그 사람이 그게 말을 너무나 함부로 하다 보니까 이제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이렇게 본다”고 말했다.
앞서 공개된 김씨의 통화 녹취록에서 김씨는 김 전 위원장 합류에 대해 “원래 그 양반이 오고 싶어 했어 계속. 그러니까 누나 말이 다 맞지?”라며 “본인이 오고 싶어 했어. 왜 안 오고 싶겠어? 여기가 자기 그건데. 먹을 거 있는 잔치판에 오는 거지”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김씨가 ‘정권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얘기를 했다. 일반 국민이 ‘과연 저런 언행을 하시는 분이 사실 대통령의 부인으로 적합하겠느냐’ 하는 여론을 만드는 잘못을 일단 저질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는 누가 단적으로 얘기할 수가 없고 결국은 국민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나”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이슈와 관련해 “안철수 후보의 지지도가 18% 이상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단일화 얘기가 그렇게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20%에 육박하면 보수 지지층의 단일화 압박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고 “윤석열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 압력에 의해 단일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안 후보는)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해정 기자
법원, 서울의소리 '김건희 통화' 공개 대부분 허용
"공개로 얻게 될 공공이익이 우월"…사생활 관련·제3자 대화 녹음만 금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자신과 이명수 씨의 '7시간 통화' 녹음을 공개하지 못 하게 해달라며 유튜브채널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대부분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김태업 수석부장판사)는 21일 김씨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방영금지·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만 인용하면서 대부분 내용의 방영을 허용했다.
방영이 금지된 내용은 ▲ 공적 영역에 관련된 내용과 무관한 김씨 가족들의 사생활에만 관련된 발언 ▲ 서울의소리 촬영기사 이명수 씨가 녹음했지만 이씨가 포함되지 않은 타인 간의 비공개 대화 등 2가지이며 나머지는 방영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김씨가 제20대 대통령선거의 예비후보자인 윤석열의 배우자로서 언론을 통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공적 인물이고 대통령의 배우자가 갖게 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그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견해와 언론관·권력관 등은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공적 관심사로서 공론의 필요성이 있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김씨의 결혼 전 유흥업소 출입과 동거 의혹 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사생활에 연관된 사항이 일부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 문제는 기업, 검찰 간부 등과의 커넥션, 뇌물수수 의혹 등과 얽혀 이미 각종 언론에 수차례 보도되는 등 국민적인 관심사가 돼 있어 단순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한 사항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음성권, 명예권, 인격권, 사생활의 자유 등이 일부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함로써 얻게 되는 그보다 우월한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했다.
전날 열린 심문기일에서 김씨 측은 "서울의소리가 친여 성향 유튜브 열린공감TV와 사전 모의했다"며 "정치 공작에 의해 취득한 녹음파일이므로 언론의 자유 보호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녹음파일의 내용 자체는 김씨의 발언을 그대로 녹음한 것으로서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기술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씨가 기자 신분을 밝힌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했고 대화 내용이 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이는 이상 언론·출판의 자유 보호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오로지 사생활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하고 현저한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며 김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으며, 이씨가 녹음한 타인 간의 비공개 대화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씨 측은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를 이씨가 동의 없이 녹음해 불법이고, 통화 내용이 공개되는 경우 인격권에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된다며 서울의소리 등을 상대로 방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